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강서연이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그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옆에서 말리고 있긴 했지만 윤정재가 한 수 더 위인 게 분명해 보였고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윤정재는 바로 눈치채고 은침을 다시 옷소매에 숨겼다.“강서연?”최연준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배우급 연기를 펼쳤다. 그는 목의 대동맥 부분을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운 척했다.“왜 그래요?”화들짝 놀란 강서연이 재빨리 다가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좀 아파...”최연준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머리도 조금 어지러워.”“도련님.”방한서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놀라게 하지 말아요. 아까 제가 힘껏 말렸고 윤 회장님도 도련님을 건드리지 않았어요.”“콜록콜록.”최연준은 심하게 기침하며 방한서를 무섭게 째려보았다. 방한서는 그제야 눈치채고 냉큼 입을 다물었다.최연준의 기침 소리 덕에 다행히 마지막 한마디가 묻혀버렸다.강서연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최연준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어디를 다쳤는지 계속 물었다. 그리고 가끔 윤정재를 돌아보기도 했다.윤정재의 두 눈에 분노만 가득했고 전에 있었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었다.“빌어먹을 자식!”윤정재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지금 서연 씨 앞에서 연기한다 이거지? 그래, 어디 한번 연기해 봐!”그는 다시 은침을 번쩍 꺼내 들더니 최연준을 찌르려 했다. 강서연은 그제야 은침이라는 걸 확인하고 최연준 앞에 나서서 지켜주었다. 윤정재를 노려보는 그녀의 표정이 아주 진지했고 살벌한 기운까지 내뿜었다.“서연 씨...”“윤 회장님,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쟤를 믿지 말아요. 지금 연기하는 거라고요.”“그럼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예요?”강서연이 또박또박 말했다.“회장님께서 침술에 능하시다고 들었는데 오늘 그 들고 있는 은침으로 사람을 해하려 할 줄은 몰랐어요.”윤정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잇지 못했
최연준과 강서연이 최상 빌라에 도착했다.최문혁과 은미연이 사는 곳은 성수 별장이었고 빌라에서 풍경이 가장 예쁜 곳이었다.뒤쪽에는 산이 있고 강이 흐르고 있으며 정원에 정자도 있는 게 마치 조선 시대의 양반 저택을 연상케 했다.강서연은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바빴다.최재원이 큰아들을 가장 예뻐한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큰아들이 가진 것도 없고 무능해도 가문에서 가장 좋은 걸 차지했다.“할아버지께서는 우리 아버지를 참 예뻐하셔.”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담담하게 웃었다.“그래서 작은삼촌이 날 눈엣가시로 여겼던 거야.”“사람은 진짜 자기 자식도 차별해요?”강서연이 궁금해했다.최연준의 아버지는 입을 꾹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점잖은 사람이다. 최재원이 최진혁처럼 말을 잘하는 아들을 더 예뻐해야 정상일 텐데.“할아버지는 우리 아빠가 첫아들이라 더 예뻐한다고 하셨어.”최연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부모는 아무래도 첫 자식을 더 예뻐하나 봐. 작은삼촌 말고도 고모 두 분과 막내 삼촌이 있어. 하지만 다들 해외에서 일하느라 집에는 자주 오지 못해.”“일반적으로 연준 씨 작은삼촌 같은 분이 어르신들의 예쁨을 더 받던데.”강서연이 커다란 두 눈을 깜빡였다.“연준 씨 할아버지는 참 똑똑하세요. 자식들의 성격과 특징을 잘 알고 계시고 옳고 그름도 똑똑히 가리시잖아요.”“그럼.”최연준은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최재원이 어리석었더라면 최상 그룹도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 그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 서로의 이익을 공평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두 사람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성수 별장에 도착했다.“연준 씨가 사는 집은 여주 별장, 연준 씨네 형이 사는 집은 해원 별장인데...”강서연이 부드럽게 물었다.“연희 씨는 왜 여기에 살아요?”“여자애는 자기 집이 필요 없으니까.”강서연이 입을 삐죽거렸다.“이 집은 아직도 남아 선호 사상이 남아있어요?”“남아를 선호하는 게 아니라.”최연준이 피식 웃었다.“시집가기 전에 부모님과
“언니, 다른 쿠키 굽는 법도 가르쳐주면 안 돼요? 집에서 엄마에게 해드리고 싶어요.”강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상태가 그동안 눈에 띄게 많이 좋아졌다.최연희와 신석훈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아주 잘 어울렸다. 마치 캠퍼스 소설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 같았다.강서연은 최연희가 신석훈과 얘기할 때 얼굴이 저도 모르게 발그스름해진다는 걸 알아챘다. 강서연이 최연준에게 눈짓하자 최연준은 단번에 알아챘다.두 사람은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서연은 최연희에게 태블릿 PC로 웨딩드레스를 골라달라면서 자연스레 최연희의 방으로 들어갔다. 최연준은 신석훈에게 물어볼 게 있다면서 정원으로 불러냈다.“고마워요.”그의 진심 어린 인사에 신석훈은 몸 둘 바를 몰랐다.“친구끼리 이러지 않아도 돼요.”“진짜 진심으로 고마워요.”최연준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그때 내가 어려움에 부닥쳐서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을 때 석훈 씨가 내 목숨을 살려줬어요...”“아니에요. 그 어르신이 주신 약이 연준 씨를 살렸죠. 난 단지 그 약을 연준 씨에게 먹였을 뿐이고요.”“그래도 당신이 보살펴주지 않았더라면 살지 못했을 거예요.”최연준이 웃으며 말했다.“이젠 내 동생까지 구해줬으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그런 소리 말아요.”신석훈이 머리를 긁적였다.“난 원래 의사잖아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게 당연하죠. 계속 이렇게 고맙다고 하면 되레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알았어요.”최연준은 그에게 부담 주기 싫었다.“앞으로는 더는 꺼내지 않을게요. 하지만 이 은혜는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아마... 연희도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최연준은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석훈 씨, 우리 연희 어때요?”신석훈이 깜짝 놀랐다.“회복 잘하고 있어요. 사실 연희의 상태가 너무 심각한 건 아니었어요. 적극적으로 치료에도 협조하니까 호전되는 속도도 빠르고요. 앞으로 가족분들이 신경 더 많이 쓰셔야 할 겁니다. 뭔가 이
신석훈은 최연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알아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뭐가 잘못됐는지 알지 못했다.“정말 그저 여동생으로만 생각해요?”최연준의 질문에 신석훈은 숨을 들이쉬며 머뭇거렸다.“아니면요?”신석훈이 최연준을 보며 말했다.“무엇으로... 생각해야 하는데요?”“다른 쪽으로 생각해본 적 없어요?”‘다른 쪽이라...’신석훈은 또다시 멍해졌다. 그의 이런 모습만 보면 최연준은 답답하기만 했다. 이러니 임우정도 결국에는 놓치고 말았지.“연준 씨.”신석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도대체 무슨 뜻이에요?”최연준은 그를 힐끗 째려보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계속 동생으로만 생각해요.”그러고는 홱 돌아섰다.신석훈은 제자리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최연준의 뒤를 따라나섰다.예전에 강주의 마을에 있을 때도 최연준은 성격이 이상했고 두어 마디 하다가 홱 돌아서곤 했다. 그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그를 멀리했지만 신석훈만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이젠 오성으로 돌아왔고 신분도 되찾았지만 성격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방안에서 최연희는 열심히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는데 가끔 강서연과 독특한 디자인에 관해 얘기를 나누곤 했다.“이건 C사의 한정판 웨딩드레스인데 타이트한 디자인이 언니와 잘 어울릴 것 같아요.”“언니, 이것 봐요... 이런 머메이드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여왕이 따로 없을 거예요.”“와, 이걸로 해요. 베라의 고급 웨딩드레스인데 가슴 쪽에도 전부 보석이 박혀있어요.”강서연은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내 웨딩드레스를 고르는데 연희 씨가 더 열심히 골라주네요? 연희 씨도 입어보고 싶지 않아요?”최연희는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연희 씨.”강서연이 자연스럽게 물었다.“결혼식 날에 연희 씨가 신부 들러리 서줄 수 있어요?”“정말요?”최연희의 두 눈이 반짝였다.“네. 그리고 신랑 들러리는 석훈 씨에게 서달라고 할 생각이에요.”최연희의 두 볼이 화끈 달아올랐다.“언니도 참.”강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당장 빌라 본가로 가보셔야겠어요.”“무슨 일이야?”“회장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답니다.”최연준이 어두운 얼굴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강서연과 최연희가 그의 뒤를 따랐고 은미연과 최문혁도 따라나섰다.최재원의 본가에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전부가 최씨 가문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갑자기 쓰러졌다는 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최진혁과 최지한이 진작 도착해있었고 최연준이 도착했을 때 박경수가 초조한 얼굴로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할아버지 상태는 어떠세요?”“의사 선생님이 안에서 진찰하고 있어요.”불시의 필요에 대비하여 최상 빌라에는 전문적인 의료팀이 있다. 하지만 의료팀에 사람이 많아 최연준은 그들을 믿지 못했다. 하여 의료팀을 전부 내보내고 신석훈만 안으로 들여보냈다.신석훈은 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 진단을 내렸다.“혈관 색전증이에요.”“혈관이 막혔단 말인가요?”“네.”신석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다행히 그리 심각하지 않아요. 제때 발견해서 아까 의료팀이 혈관을 뚫어주는 주사를 놓은 덕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최연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에요.”강서연이 일그러진 얼굴로 나지막이 물었다.“혈관 색전증은 노년층에서 자주 발병하는 질병인데...”“왜 그래?”강서연이 입술을 적셨다.“내가 이 집에 올 때마다 서재에서 할아버지가 혈관을 뚫어주는 약을 드시는 걸 봤어요. 평소에도 건강에 매우 신경 쓰시는데 혈관이 왜 막혔죠?”“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신석훈이 설명했다.“하나는 연세가 있으셔서 약으로도 조절이 안 될 수 있고 또 하나는... 음식 때문이에요. 평소 지방과 염분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면 혈관이 쉽게 막힐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어떤 약도 효과가 없어요.”최연준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최씨 가문에서 식단을 조절하는 것도 욕망을 조절하는 것 중의 하나이기에 어릴 적부터 음식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할아버지
진용수는 이제는 적응한 듯 그저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하지만 바로 윤정재에게 무자비하게 제압당했다!“마시면 안 돼!”윤정재가 눈을 부릅떴다.“술 마시면 운전 못 하잖아!”진용수가 혼란스러워하며 말했다.“회장님께서 방금... 끝나고 걸어간다고 하지 않으셨나요?”“내가 언제!”윤정재는 진용수에게 눈을 부릅뜨고 성을 내고 있지만 전화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상하고 무조건 맹종했다.“서연아, 조급해하지 마... 너무 급해하지 마요!”“제가 근처에 있어요.”“멀지 않아요. 제가 곧 가서 반드시 영감님을 낫게 해 줄게요!”“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저한테 고마워할 필요가 없어요.”윤정재는 재빨리 외투를 입고 뛰쳐나갔다.진용수는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씁쓸하게 웃었다. 손대지도 않은 칵테일 두 잔을 미련하게 보고는 한숨을 쉬며 쫓아 나갔다.이 술집은 분명히 최상 빌라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가는 도중에 윤정재는 쉬지 않고 진용수에게 액셀을 세게 밟으라고 재촉했다.최상 빌라의 본채에 도착했을 때 이미 거실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윤정재의 시선은 강서연에게만 향해 있었다.윤정재는 강서연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딸에게 필요한 사명감과 영예감을 갖고 약상자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최연준은 윤정재의 뒷모습을 보며 어진 빌딩에서 자기와 말다툼을 하고 씁쓸하게 떠나는 윤정재가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들었다.최연준은 강서연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은 채 복잡한 심경으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잠시 후 윤정재가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앞으로 몰려갔다.“다들 걱정하지 마세요.”윤정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조금 전에 영감님에게 침을 놓아줬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그러고는 알약 한 병을 꺼내서 박경수에게 건네주었다.“이 약을 하루에 두 번, 한 번에 한 알씩 영감님께 드리세요.”박경수는 약을 정중히 받아 들여오고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제가 봤을 때 영감님은 영양분이 과잉되어 혈관 색전증이
최진혁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런 추태를 부려 그의 체면을 구겼다.이때 다른 사람들이 최진혁을 신경 쓰지 않는 건 둘째 치고, 최지한조차도 보지 못하는 척한다!최진혁이 막 최지한을 부르려고 하는데 자기 친 아들이란 놈이 사람들 속에서 몰래 도망가려는 것을 발견했다!“지한아, 최지한!”최진혁은 감정이 격해졌다.“야, 이 망할 놈아!”“경수야, 나 좀 도와줘!”박경수는 최진혁을 힐끗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영감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안 돼서 제가 빨리 위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너...”최진혁이 화를 내기도 전에 최연준은 가주의 기세로 모두에게 명했다.“할아버지는 이미 위험에서 벗어났으니 다들 그만 여기에 모여들 있고 할 일을 하러 가세요!”모두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예, 도련님!”최연준은 웃으며 강서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너희들 다 가면 나는 어떡해!”최진혁이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최연준! 이 얌생이야... 나한테 사람 한 명이라도 남겨주고 가야지! 다들 돌아와! 야!”“어르신, 조용히 하세요.”윤정재가 냉소했다.“영감님께서 쉬고 계시는데 여기서 소란을 피울 거예요?”최진혁은 할 수 없이 눈만 부릅뜨고 있었고 사람들이 잇달아 그의 앞에서 떠나는 것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마당을 걸어가던 윤정재는 진용수가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재촉해 차에 오르려고 했다. 갑자기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감사해요.”윤정재는 잠시 멈칫하고 돌아서서 최연준과 눈이 마주쳤다.윤정재는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그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최연준은 윤정재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 모습이 뚱냥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웃었다.“왜 웃어?”윤정재는 눈을 부릅떴다.“아무것도 아니에요.”최연준이 담담하게 말했다.“회장님, 제가 좀 전에 한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내가 네
윤정재는 한참 동안 최연준을 응시했고 눈에 의심이 가득했다.“당최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듣겠네.”“회장님.”최연준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렸다.“저한테까지 숨길 필요는 없어요! 저는 병은 볼 줄 몰라도 할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이 한약을 드시는 것을 보았는데, 전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왜 갑자기 문제가 생겼을까요? 그리고 경수 아저씨께서 최근에 할아버지께서 약을 유난히 많이 드신다고 하였어요. 전에는 사흘에 한 번 드셨는데 지금은 하루에 세 번도 드실 수 있다고 해요. 약이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어요. 산해진미 앞에서도 세 입밖에 드시지 못하는데 이런 약에 대해 통제 불능이라는 게 이해가 안 가서요.”최연준은 안색이 어두워지고 또박또박 물었다.“회장님, 이 약에는 보약만 들어 있는 게 아니죠?”윤정재는 조용히 최연준을 바라보았다.‘이 녀석은 다행히 멍청하지 않아 문제의 본질을 한눈에 간파할 수 있구나. 음, 그러고 보니 서연이가 이 녀석과 결혼하는 것도 보장이 될 수 있네. 똑똑한 사람과 살면 귀찮은 일이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후대의 아이큐도 낮지 않을 것이고. 서연이가 얼마큼 영리하고 귀여운 아기를 낳을까... 똑똑한데다가 부모님의 빼어난 외모를 물려받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장차 윤씨 가문에도 후계자가 있을 거야!’윤정재는 생각만 해도 자애로운 미소가 지어졌고 최연준을 바라보는 눈빛도 한결 부드러워졌다.‘이제 좀 마음에 드네!’그러나 최연준은 윤정재의 내심 세계를 알지 못했고 윤정재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래, 맞아.”윤정재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약에 다른 성분이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아직 성분을 알아내지 못해서 당분간 입 밖에 내지 말도록 하자. 사전에 대비하지 못하게 하려고.”최연준은 즉시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사리 분별은 할 수 있어. 노인에게 만성 독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