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강서연에게 전화를 걸어 작은 방을 계속 임대할지 말지를 물어왔다. 강서연은 마음이 조여왔다. 그곳은 최연준과의 추억이 많이 담긴 곳이어서, 아직 최연준에 대한 화가 다 풀린 건 아니지만, 둘의 추억들이 사라지는 건 또 싫었다.집주인이 큰 소리로 물었다.“구 씨 새댁, 기면 기다 말 좀 해요! 계속 임대를 안 할 거면 다른 사람한테 세를 내놓게!”강서연은 주저 없이 말했다.“안 돼요. 저희 분명 일 년 계약했어요. 아직 만료일도 아닌데 왜 이러세요!”“그래요. 구 씨 새댁, 일 년은 안 됐죠. 그런데 월세를 내야지, 안 그래요.”강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밀리지 않을게요! 있다가 바로 계좌 입금해 드릴게요! 그리고요. 저 구 씨 새댁이 아니에요!”그녀는 목소리를 한층 더 높여 집주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저희 남편 최 씨예요!”“아... 그래요. 그래, 최 씨 새댁!”집주인 입장에서는 방세만 제때 받으면 되는 거라 새댁이 최 씨든, 구 씨든 예수님이든 아무 상관 없었다.강서연은 전화를 끊고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윤문희는 웃으며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썹을 꿈틀하며 강서연에게 물었다. “딸, 방금 뭐라 했어?”강서연은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나 방금 뭐라고 했지? 남편... 남편이 최 씨라고?’주먹만 한 강서연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고, 눈꺼풀은 한참 내려앉은 채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윤문희는 자애롭게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서연아, 엄마가 가끔 내 정신이 아니긴 해도, 내가 볼 때, 너 최 서방을 좋아하는 것 같아. 많이.”“엄마...”“여자가 보통 ‘남편’ 이란 단어를 함부로 남발하지 않지.”윤문희는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이미 내뱉은 이상, 마음속 깊이 자리한 것이고, 그 위상 또한 흔들림 없을 거야. 그게, 평생을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해. 딸, 내가 볼 때 최연준은 네가 기댈 수 있는 사람 같아.”강서연은 고개를
울리는 핸드폰을 본 강서연은 약간 멍을 때리더니 통화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너머로 부드러운 미소의 최연준이 보였다. “뭐예요?”강서연은 말없이 본인의 카메라를 꺼버렸다. 최연준은 개의치 않고 여전히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중저음에 낮게 깔린 목소리는 마성의 음성이었다.“난 지금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어.”강서연이 흠칫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한눈에 봐도 꽤 큰 정원이 비쳤다. 어둠 속에서도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임을 알 수 있었다. 최연준의 등 뒤 배경은 우뚝 솟은 산들과 크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잠깐씩 분수 소리도 같이 들렸다. ‘어릴 때부터 이런 곳에서 자랐구나... 나와는 진짜 천지 차이.’강서연은 갑자기 열등감이 들었고, 창가에 앉아서 불안한지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한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핸드폰도 칠흑 같은 블랙 화면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마음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아직 전화를 끊지 않고 듣고 있었기에. 핸드폰 너머로 최연준은 강서연의 호흡과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걸로도 이미 충분했다.“서연아.”최연준은 나지막이 물었다. “강주의 날씨는 어때? 별 보여?”강서연은 고개를 들어 봤고, 강주는 날이 흐려서 그런지 밤하늘이 먹먹하게 안개가 자욱해서 뭐가 보이지 않았다.“여기 하늘 봐 봐.”최연준은 핸드폰을 들어 별빛이 흘러내리듯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비췄다. 바다처럼 넓고 너무 예쁜 밤하늘이었다. “밤하늘이 너무 예뻐서. 별도 많고.”하지만 강서연의 핸드폰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조용히 웃음을 참았다.‘최연준, 좀 유치하네.’“거긴... 안 추워요?”강서연이 조용히 물어왔고 최연준은 어리둥절하다가 이어서 웃으며 답했다.“응. 별로. 아침저녁만 좀 쌀쌀하네.”“옷이 얇아 보이네요. 감기 안 들게 몸 잘 챙겨요.”“그래!”그는 핸드폰 화면에다 힘껏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거기 별들 영상으로는 안 보여요.”강서연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최연준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좋은 소식?”“저 예외적으로 대학에 붙었어요!”“예외적으로?”“네! 오성대! 저 의학원에 붙었어요.”강서연은 웃으며 핸드폰을 돌려받았다.“윤찬이 정말 오성대에 붙었어?”최연준은 조금 많이 의외였다. 겨우 열여섯, 열일곱 살의 처남이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이라서.“네, 합격 통지서를 받았어요.”강서연은 은근히 동생이 자랑스러운지 말했다. “오성대 교수님이 직접 뽑아주셨어요. 찬이가 모두 다섯 번의 시험을 치렀고 모두 좋은 성적으로 시험도 통과하고 대학도 합격했어요!”“축하해요!”자신을 닮은 어린 처남이 더 특별한 느낌이어서 최연준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성적이 출중해서 어린 나이에 명문대 입학을 한다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처남이 오성으로 와서 학교 다녀야겠네. 이참에 처남을 핑계 대고 강서연과 장모님 다 오성으로 모시고 올라오는 것도...’최연준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흥분했다.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처남. 학교 첫등교하는 날에 나한테 말해요. 내가 픽업 갈게요.”강서연이 앞질러 거절했다.“아니에요! 찬이도... 이젠 다 큰 사람인데 혼자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죠. 굳이 필요 없어요. 진짜! 스스로 알아서 학교로 가서 잘할 거예요.”“서연아...”강서연은 시선을 피하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늦었어요. 먼저 끊을게요. 일찍 쉬어요.”최연준이 인사도 하기 전에 핸드폰 통화는 끊겼고, 화면에서 그녀의 모습도 사라졌다.그는 한참 멍하니 핸드폰을 보았고, 텅 빈 것 같은 마음에 괴로웠다.“도련님.”방한서는 좋은 마음에 최연준을 위로했다. “강서연 씨 시간이 필요하니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그래, 알지.”최연준의 목소리는 보기보다 차분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아. 적어도 서연이가 지금 나를 무작정 피하는 건 아니라서!”방한서는 최상 가문 도련님 최연준이 이렇게 누구한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세상만사 마음이 통해야 순리에 맞
윤문희는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었다.그녀는 두 눈이 빨갛게 된 채, 마치 귀신이라도 보듯 강명원을 매섭게 쳐다보았다.지난날 그가 그녀를 받아들인 것은 맞지만, 그는 그녀를 망치기도 했다. 그리고 강서연이 그의 친딸이라고 믿게 한 바람에 하마터면 이 딸을 버릴 뻔했다!윤문희의 머릿속에는 오랜 기억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어두웠던 과거의 고통은 평생 다시는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상처였다...“허, 설마 아직도 그 남자를 생각해?”강명원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그 남자는 벌써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으니, 진작에 너를 버렸어! 그 남자는 윤 씨 가문을 점령하고, 너를 이용해서 목적을 달성한 후, 너를 내팽개친 거야!”“그만 해요!”윤문희는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이 세상에서 너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나뿐이야!”강명원의 이목구비가 거의 일그러졌다.“윤문희! 강진 그룹은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려고 해, 새로운 약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말도 안 돼요!”윤문희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생각도 하지 말아요! 그 물건은 내가 이미 망가뜨렸으니, 지금 내 손에 없어요. 강명원 씨가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윤씨 가문의 그 누구도... 손에 넣을 생각하지 말아요!”“너...”강명원이 손을 들자 강서연이 갑자기 앞을 막아 나섰다.“너랑 상관없는 일이니 비켜!”“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지만, 제발 우리 엄마를 자극하지 마세요!”강서연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여기는 우리 집이에요.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강서연, 너...”“아빠!”강유빈이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이 미친 여자한테 묻지 말아요, 아빠가 찾고 있는 물건은 분명히 이 방에 있을 거니 우리가 직접 뒤져요!”강명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이 이렇게 뻔뻔스러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강서연은 강유빈에게 달려들었다. 강명원은 강서연의 손목을 잡고 휘둘렀고, 그녀는 갑자기 균형을 잃고 벽에 그대로 부딪혔다!아픔을 참고 일어
“허, 강명원 씨, 감히 나랑 해보자는 거예요?”그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오늘 강유빈과 당신이 여기서 죽었다고 해도 이 도시에서 실종 인구가 2명 늘 뿐 나는 살인범이 되지 않을 거예요.”“너...”“다른 사람을 괴롭힐 때 그 뒤에 누가 있는지부터 생각해봤어야죠!”최연준의 드센 기세에 강명원은 연신 뒷걸음질 쳤다.더는 지탱할 수 없었던 강유빈은 손발을 마구 허우적댔다.“강명원 씨.”최연준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앞으로 계속 나랑 해볼 건지, 아니면 생각도 없는 딸과 함께 꺼질 건지 잘 생각해봐요.”강명원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 딸을 내려놔... 우리가 갈게.”“간다고요?”최연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강 회장님은 사람 말귀도 못 알아들어요? 나는 꺼지라고 했는데요!”그가 손을 풀자 강유빈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기어가다시피 밖으로 도망쳤다.강명원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모욕만 당했다. 문을 나설 때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아 개처럼 기어나갔다.집안이 드디어 조용해지자 강서연은 황급히 엄마를 위로하려 엄마의 어깨를 감싸고 자신에게 기대도록 했다.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윤문희의 창백한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엄마...”강서연은 약을 가져와, 황급히 엄마의 입에 넣었다.“박스는?”윤문희는 긴장하며 물었다.“서연아... 서연아! 그 박스, 박스가 어디 있어!”“엄마, 걱정하지 마세요.”강서연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박스는 저한테 있어요. 제가 잘 간직하고 있어요!”“잃어버리지 말아!”“안 잃어버려요, 엄마.”“서연아, 이건 엄마가 남겨주는 거야, 그리고 찬이도....”진정제를 먹은 윤문희는 차츰 조용해졌고,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는 고마움에 그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이 필요해?”최연준이 한숨을 내쉬더니 눈살을 찌푸렸다.“강명원이 왜 왔어?”“나도 몰라요.”강서연
“무슨 일인데요?”강서연은 어리둥절했다.최연준은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당장 구현수와의 혼인 관계를 청산해야 해.”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걱정하지 마. 방법이 있으니깐. 또 한 가지...”그가 웃었다.“강서연 씨가 오성의 서교 땅 프로젝트를 인수해 이 땅이 더 높은 상업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줘!”“네?”강서연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타고난 사람은 없어.”최연준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처음부터 배우면 빨리 성장할 거야.”“하지만...”“서연아.”그가 진지하게 말했다.“넌 할 수 있어.”강서연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이런 느낌은 이상했다. 열등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가 하사하는 선물처럼 느껴졌다.하지만 예전에 그가 최연준이 아니었을 때,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들을 그녀에게 꺼내주고, 월급카드도 그녀에게 줬으며, 커피숍도 그녀에게 주었지만... 그녀는 전혀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묵묵히 그의 손바닥에서 손을 빼내는 강서연의 얼굴에 어둠이 스쳤다.“서연아, 다른 뜻은 없어...”최연준은 그녀의 안색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무언가를 설명하려는데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강서연은 그를 힐끗 보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윤문희를 보살폈다.최연준이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로 육경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얘기하신 사람을 다 데려왔는데 지금 나한테 있어요.”“알았어요, 고마워요.”최연준이 조용히 말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다 최연준 씨와 트러블이 있는 거예요?”육경섭이 씩 웃으며 물었다.“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고 싶어요? 얘기만 해봐요, 여기 10대 고문 같은 것이 잘 갖춰져 있는데, 대신 먼저 쓸까요?”“그럴 필요 없어요.”최연준이 전화를 끊었다.육경섭을 찾아가기 전에 그는 먼저 오피스텔로 가서 캐비닛에 있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꺼냈다. 그가 가볍게 웃으며 손에 들고 막 떠나려 할 때, 옆에 있는 꽃 배나무 무늬의 작은 박스를 힐끗
육경섭은 그를 흘겨보며 가볍게 피식 웃더니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갔다.사람들은 문 앞에 불빛이 비치는 것을 보자 저마다 문 쪽으로 달려갔다.“뭐 하는 거야!”육경섭이 호통쳤다.“형님 살려주세요... 전엔 어디서 뵌 적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형님께 미움을 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얘기 좀 해 주시겠어요?”“형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최연준이 앞으로 나아가 가족관계 증명서를 그들 앞에 내놓았다.“이건...”“이 증명서에 나와 있는 두 사람은 혼인 관계를 청산해야 해.”최연준은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하지만 남자가 없으니, 나에게 가장 빠른 해결책을 줘야겠어!”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던 두 사람의 머리 위쪽으로 한 줄기 빛이 비쳐 가족관계 증명서의 내용을 엿볼 수 있었다.“구현수?”누군가 알아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이분은... 강 씨네 그 사위예요...”“아는 사람이야?”최연준은 눈썹을 찡그렸다.“아니요, 몰라요...”그 사람은 식은땀을 흘리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허둥대며 사실을 털어놓았다.“그런데 1년 전 강 회장님이 사람을 보내 딸이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하면서 좀 봐 달라고 했어요...”최연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넣었다.“어떻게 봐주는 건데?”“양쪽 모두 현장에 나오지 않고 주민등록 번호로 입력하는 거예요...”“이 자식이, 말을 한 번에 다 할 수 없어?!”육경섭은 책상을 내리쳤다.그 사람은 눈을 질끈 감고 간이 콩알만 해져 나머지 얘기를 다 했다.“저, 저, 저. 제가 그분들에게 등록해 줬어요! 하지만 인터넷으로 조회해보니 구현수의 주민등록증이 오래전에 말소됐더라고요. 실종자예요! 실종자가 어떻게 결혼할 수 있어요? 그리고 또, 두 사람이 함께 오지 않으면 등록할 수 없게 돼 있어요. 그래서 가짜 가족관계 증명서 두 장을 만들었어요...”“뭐라고?”육경섭은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이 가족
강서연은 줄곧 침대 옆에서 윤문희를 보살폈다. 하지만 윤문희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명원과 강유빈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간 바람에 그전에 했던 치료가 물거품이 돼버리고 말았다.강서연은 넋이 나간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그녀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신석훈이 전에 윤문희를 치료했던 주치의와 정신과 전문의에게 문의한 결과 다들 환경을 한번 바꿔보라고 했다.“서연 씨, 환경 좀 바꾸면 아주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신석훈이 계속하여 말했다.“제가 아주머니의 증상과 비슷한 여러 케이스를 연구해봤는데 환경이 바뀌니까 다들 회복되더라고요. 회복되는 정도는 다르긴 하지만. 아주머니는 강주에서 안 좋은 일을 겪었잖아요. 그럼 계속 이곳에서 지내게 하지 말고 환경을 바꾸거나 생활 방식을 바꾸면 아주머니한테 도움이 될 거예요.”한숨을 내쉬던 강서연은 최연준이 그날 했던 말이 떠올랐다.‘정말 함께 오성으로 가야 하나?’“서연아...”윤문희가 두 눈을 떴다. 허약한 몸을 이끌고 일어나 앉으려 애를 썼다. 강서연은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고는 등받이를 가져다주었다.“엄마, 좀 어때요?”“가슴이 답답해.”윤문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이곳에만 있으면 강명원이 나한테 했던 짓들이 자꾸만 떠올라...”그녀의 손을 잡은 강서연은 코끝이 찡해져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만약 구현수에게 협박당하지 않았더라면 이 기분을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번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그녀는 윤문희의 기분이 어떨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그 일이 지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트라우마 때문에 커피숍에 가지 못했다. 마당에 들어설 때마다 구현수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했던 그날이 떠올랐다.“엄마.”그녀가 잠깐 멈칫하더니 떠보듯이 물었다.“우리가 다른 도시로 가서 사는 건 어떨 것 같아요?”“다른 도시?”윤문희가 화들짝 놀랐다.“찬이가 다니는 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