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연은 눈썹이 흔들리더니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몰라 했다.“아니, 아예 장을 봐왔다니까, 생선도 사고 채소도 사고. 이것저것 다 사 와서 냉장고가 터질 지경이야.”윤문희는 미간이 움직이더니 베란다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저 봐. 저기 저렇게 쌓아 뒀어. 마트를 통째로 들고 온 줄.”강서연은 어머니를 소파에 앉히고는 부엌에 들어가 보려는데 마침 최연준이 요리를 들고나왔다. 마주 선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멈칫했다. 강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최연준의 시선을 피했고 곧장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방은 상상 그 이상으로 어질러져 있었고 전쟁을 치른 것 같은 상태였다. 강서연은 결국엔 이 난장판을 본인이 거둬야 한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처음 함께할 때를 떠올려 보면, 최연준은 양반집 자제처럼 누군가 시중을 드는 걸 당연시 했고 가끔 주방에 들어가면 지금보다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었다. 그때 강서연은 집안일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어서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제 와서 그 모습이 왠지 이해가 갔다. 최연준은 어려서부터 애지중지, 당연히 여러 사람의 시중을 받으면서 컸을 것이고, 집안일은 손 한 번도 대보지 못한 도련님이었을 것이다. 집안일이 상당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최연준은 마지막 요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뻣뻣하게 서서는 두 손은 어색하게 앞치마를 만지작거렸다.강서연은 땀 범벅이 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장모님...”최연준은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뗐다.“보기엔 이래도 맛은 있을 거예요. 드셔 보세요!”윤문희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강서연을 의자에 끌어 앉혔고 강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 집에서 한 번이라도 이런 걸 해 봤을까? 자기 부모님께 밥 한 끼라도 지어 드려봤을까? 굳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자세를 낮춰가며 비위를 맞출 일이 뭐가 있다고... 나랑은 태초부터 전혀 다른 세상 사람인데.’여기까지 생각이 든 강서연은 갑자기 마음이 괴로워졌
주문한 어묵탕이 곧 나왔고 강서연은 느긋하게 숟가락을 들고 어묵탕을 가볍게 저어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탕의 시원하고 얼큰한 향이 최연준의 코끝을 파고들었다.최연준은 고개를 들어 강서연을 한 번 쳐다보았고, 강서연의 시선은 그에게 있지 않았다. 그는 마음이 또 바닥 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다 강서연이 일어서더니 빈 그릇 하나를 가지고 다시 앉았다. 그녀는 당근을 골라내고는 어묵 한 꼬치와 국물을 거기에 담아냈다. 그러더니 어묵탕을 그의 앞으로 밀어 놓고는 한참 침묵 뒤에 겨우 한 마디를 뱉어냈다.“먹어요.”최연준은 또 흠칫 놀라더니 빙그레 웃어 보였다. 강서연이 병원에서 나온 뒤로 처음 그한테 한 말이어서 그런지 약간 울컥했다.갑자기 예전에, 제인 호텔로 데리고 가서 식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손에 든 돈이 얼마 없었음에도 그의 부탁을 최대한 들어주던 그녀. 결국 비싼 랍스터 볶음밥을 주문해 주던 그녀. 그리고 거의 먹지 않은 채 다 구현수에게 나눠 주던 그녀. 최연준은 문득 본인이 거지가 돼도, 강서연이라면 자신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킬 것 같았다.‘아니, 감옥살이 신분의 구현수도 다 받아 줬으면서, 어떻게 나를 밀어내지?’최연준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서연아,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강서연은 멈칫했고 눈만 살짝 움직이더니 한참 만에야 시선을 들어 최연준을 보았다. 최연준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강서연은 여전히 불편했고 뭔지 모르게 두려웠다.“현수...”그녀는 하마터면 이름을 잘못 부를 뻔했고, 입술을 깨물더니 한참 후에야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최 도련님... 할 말이 뭔데요. 해요.”최연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 설마 나랑 선을 긋겠다는 건 아니지?”강서연은 쓴웃음을 지었다.“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 년 동안 현수 씨라고 불렀는데. 지금 갑자기...”최연준은 마음이 급해서 답했다.“지금도 현수 씨라고 불러도 돼. 예전처럼
갑자기 출몰한 최연준의 모습에 회의장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최재원의 차갑고 엄숙하던 표정이 약간 온화하게 누그러졌다.“돌아왔어?”최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아버지.”최재원은 고개를 까딱하며 앉으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러나 최연준은 회의실을 천천히 도보하더니 그 긴 회의실 테이블 끝자리 중앙에 곧게 서서는 매서운 눈빛으로 이사진의 얼굴을 자세히 한번 훑어보았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센 분위기에 다들 숨조차 함부로 쉬지 못했다.최진혁은 혼이 나간 듯이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실룩하더니 간신히 미소를 짜내면서 입을 열었다.“연준아, 어떻게 온 거야?”“제가 별로 반갑지 않은가 보네요, 삼촌?”최연준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그럴 리가! 그저 묻는 거야...”“제가 삼촌하고 지한 형의 걸림돌이 될까 봐 걱정하시는 건가 싶어서.”최진혁은 화가 난 얼굴로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최연준을 째려보았다. 그에 반해 최연준은 담담하게 최진혁의 자리로 걸어가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삼촌, 여기 제자리였던 것 같은데요.”“연준이 너...”“제가 자금조달 능력이 부족할지 몰라도, 자금 문제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최연준은 심오한 눈빛을 하고는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얘기했다.“제가 자금 다 마련했거든요.”최진혁은 문득 의아했다. 이렇게 큰 액수의 자금을 그가 무슨 수로 마련했다는 건가 싶었다. 최연준이 외가 쪽에 손 벌리지 않고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사실 최재원이 제일 꺼리는 사태가 최상 가문의 일에 외부 세력이 개입되는 것이었다.이를 잘 아는 최진혁은 조손 둘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본인 앞에 주어졌다 생각되었고 씩 웃어 보였다.“허, 또 영국 측에 손을 벌렸나 보네? 연준아, 내가 삼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넌 최씨 집안 자손인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무엇을 하든, 최상 가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거 명심해.”“그쪽이 연준이 너의 외할아버지가 맞기는 해도 최상하고는 남이야.
자료를 펼쳐 보던 회의실 사람들은 놀란 눈치였다. 상업기획서는 완벽하고 상세했고 충분한 자금 출처는 놀랍게도 동명과 레이안 두 회사가 적혀있었다.동명과 레이안은 상장 회사다. 원래는 조용하더니 갑자기 주식시장의 다크호스로 등장해서 연속 상한가를 친 최근 유명해진 회사였다. 모두가 이 두 회사의 배후에 최연준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최연준은 웃는 듯 아닌 듯 최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제 기억이 맞는다면, 삼촌, 동명하고 레이안 사장님을 만나려고 했다죠, 아마.”“너, 연준이 너...”최진혁은 말문이 막혀 제대로 말을 내뱉지도 못했다. 이 두 곳 외에도 투자 회사 하나가 더 있었다. 앞서 인수하려 했던 회사 이름들이 모두 자료에 기록되어 있었다. 눈부신 이력은 누가 봐도 멋있는 성적이었다.최연준이 정색해서 말했다.“입찰 자격을 얻었고 비딩도 그저 절차를 밟는 거라서. 서부 땅 이전 절차는 비밀리에 잘 처리되고 있어요. 삼 일 뒤, 공지가 뜰 겁니다. 낙찰자는 당연히 저 최연준이고요. 삼촌, 이제 서부 땅은 제 것입니다.”최연준은 냉소를 지었다.“삼촌이 지한 형 데리고 굳이 저의 밑으로 와서 일하길 원하신다면, 뭐, 제가 두 분 자리는 까짓거 마련해 드리죠!”“최연준!”최진혁은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상기되었고 이를 갈며 최연준을 노려보았다. 최연준도 질세라 똑같이 차가운 시선으로 최진혁을 째려보았다. 그 표정은 마치 사나운 늑대같이 매서웠다.“연준.”최진혁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허, 참 조용히도 숨어서 많은 일을 했네. 이런 일뿐만 아니라 신분도 숨기고 다니고. 그러니 너를 용서 못 한다고 아직도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지...”최연준은 피식 웃었다.“그러는 삼촌은 시시각각 자신의 신분을 잘 드러내고 다니시나 봐요. 그래서 최상 가문의 명분을 내걸고 해외 불법 조직하고 결탁도 했나 보죠?”“뭐라는 거야!?”최재원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매서운 눈매로 최진혁을 바라보았다.“할아버지, 아니면 삼촌이 무슨 돈으로 저 땅
집주인이 강서연에게 전화를 걸어 작은 방을 계속 임대할지 말지를 물어왔다. 강서연은 마음이 조여왔다. 그곳은 최연준과의 추억이 많이 담긴 곳이어서, 아직 최연준에 대한 화가 다 풀린 건 아니지만, 둘의 추억들이 사라지는 건 또 싫었다.집주인이 큰 소리로 물었다.“구 씨 새댁, 기면 기다 말 좀 해요! 계속 임대를 안 할 거면 다른 사람한테 세를 내놓게!”강서연은 주저 없이 말했다.“안 돼요. 저희 분명 일 년 계약했어요. 아직 만료일도 아닌데 왜 이러세요!”“그래요. 구 씨 새댁, 일 년은 안 됐죠. 그런데 월세를 내야지, 안 그래요.”강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밀리지 않을게요! 있다가 바로 계좌 입금해 드릴게요! 그리고요. 저 구 씨 새댁이 아니에요!”그녀는 목소리를 한층 더 높여 집주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저희 남편 최 씨예요!”“아... 그래요. 그래, 최 씨 새댁!”집주인 입장에서는 방세만 제때 받으면 되는 거라 새댁이 최 씨든, 구 씨든 예수님이든 아무 상관 없었다.강서연은 전화를 끊고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윤문희는 웃으며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썹을 꿈틀하며 강서연에게 물었다. “딸, 방금 뭐라 했어?”강서연은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나 방금 뭐라고 했지? 남편... 남편이 최 씨라고?’주먹만 한 강서연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고, 눈꺼풀은 한참 내려앉은 채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윤문희는 자애롭게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서연아, 엄마가 가끔 내 정신이 아니긴 해도, 내가 볼 때, 너 최 서방을 좋아하는 것 같아. 많이.”“엄마...”“여자가 보통 ‘남편’ 이란 단어를 함부로 남발하지 않지.”윤문희는 목소리를 낮춰 말을 이었다. “이미 내뱉은 이상, 마음속 깊이 자리한 것이고, 그 위상 또한 흔들림 없을 거야. 그게, 평생을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해. 딸, 내가 볼 때 최연준은 네가 기댈 수 있는 사람 같아.”강서연은 고개를
울리는 핸드폰을 본 강서연은 약간 멍을 때리더니 통화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너머로 부드러운 미소의 최연준이 보였다. “뭐예요?”강서연은 말없이 본인의 카메라를 꺼버렸다. 최연준은 개의치 않고 여전히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중저음에 낮게 깔린 목소리는 마성의 음성이었다.“난 지금 마당에서 산책하고 있어.”강서연이 흠칫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한눈에 봐도 꽤 큰 정원이 비쳤다. 어둠 속에서도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임을 알 수 있었다. 최연준의 등 뒤 배경은 우뚝 솟은 산들과 크고 웅장한 건물이었다. 잠깐씩 분수 소리도 같이 들렸다. ‘어릴 때부터 이런 곳에서 자랐구나... 나와는 진짜 천지 차이.’강서연은 갑자기 열등감이 들었고, 창가에 앉아서 불안한지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한참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핸드폰도 칠흑 같은 블랙 화면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마음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아직 전화를 끊지 않고 듣고 있었기에. 핸드폰 너머로 최연준은 강서연의 호흡과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걸로도 이미 충분했다.“서연아.”최연준은 나지막이 물었다. “강주의 날씨는 어때? 별 보여?”강서연은 고개를 들어 봤고, 강주는 날이 흐려서 그런지 밤하늘이 먹먹하게 안개가 자욱해서 뭐가 보이지 않았다.“여기 하늘 봐 봐.”최연준은 핸드폰을 들어 별빛이 흘러내리듯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비췄다. 바다처럼 넓고 너무 예쁜 밤하늘이었다. “밤하늘이 너무 예뻐서. 별도 많고.”하지만 강서연의 핸드폰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조용히 웃음을 참았다.‘최연준, 좀 유치하네.’“거긴... 안 추워요?”강서연이 조용히 물어왔고 최연준은 어리둥절하다가 이어서 웃으며 답했다.“응. 별로. 아침저녁만 좀 쌀쌀하네.”“옷이 얇아 보이네요. 감기 안 들게 몸 잘 챙겨요.”“그래!”그는 핸드폰 화면에다 힘껏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거기 별들 영상으로는 안 보여요.”강서연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최연준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좋은 소식?”“저 예외적으로 대학에 붙었어요!”“예외적으로?”“네! 오성대! 저 의학원에 붙었어요.”강서연은 웃으며 핸드폰을 돌려받았다.“윤찬이 정말 오성대에 붙었어?”최연준은 조금 많이 의외였다. 겨우 열여섯, 열일곱 살의 처남이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이라서.“네, 합격 통지서를 받았어요.”강서연은 은근히 동생이 자랑스러운지 말했다. “오성대 교수님이 직접 뽑아주셨어요. 찬이가 모두 다섯 번의 시험을 치렀고 모두 좋은 성적으로 시험도 통과하고 대학도 합격했어요!”“축하해요!”자신을 닮은 어린 처남이 더 특별한 느낌이어서 최연준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성적이 출중해서 어린 나이에 명문대 입학을 한다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처남이 오성으로 와서 학교 다녀야겠네. 이참에 처남을 핑계 대고 강서연과 장모님 다 오성으로 모시고 올라오는 것도...’최연준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흥분했다.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처남. 학교 첫등교하는 날에 나한테 말해요. 내가 픽업 갈게요.”강서연이 앞질러 거절했다.“아니에요! 찬이도... 이젠 다 큰 사람인데 혼자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죠. 굳이 필요 없어요. 진짜! 스스로 알아서 학교로 가서 잘할 거예요.”“서연아...”강서연은 시선을 피하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늦었어요. 먼저 끊을게요. 일찍 쉬어요.”최연준이 인사도 하기 전에 핸드폰 통화는 끊겼고, 화면에서 그녀의 모습도 사라졌다.그는 한참 멍하니 핸드폰을 보았고, 텅 빈 것 같은 마음에 괴로웠다.“도련님.”방한서는 좋은 마음에 최연준을 위로했다. “강서연 씨 시간이 필요하니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그래, 알지.”최연준의 목소리는 보기보다 차분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아. 적어도 서연이가 지금 나를 무작정 피하는 건 아니라서!”방한서는 최상 가문 도련님 최연준이 이렇게 누구한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세상만사 마음이 통해야 순리에 맞
윤문희는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었다.그녀는 두 눈이 빨갛게 된 채, 마치 귀신이라도 보듯 강명원을 매섭게 쳐다보았다.지난날 그가 그녀를 받아들인 것은 맞지만, 그는 그녀를 망치기도 했다. 그리고 강서연이 그의 친딸이라고 믿게 한 바람에 하마터면 이 딸을 버릴 뻔했다!윤문희의 머릿속에는 오랜 기억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어두웠던 과거의 고통은 평생 다시는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상처였다...“허, 설마 아직도 그 남자를 생각해?”강명원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그 남자는 벌써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으니, 진작에 너를 버렸어! 그 남자는 윤 씨 가문을 점령하고, 너를 이용해서 목적을 달성한 후, 너를 내팽개친 거야!”“그만 해요!”윤문희는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이 세상에서 너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나뿐이야!”강명원의 이목구비가 거의 일그러졌다.“윤문희! 강진 그룹은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려고 해, 새로운 약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말도 안 돼요!”윤문희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생각도 하지 말아요! 그 물건은 내가 이미 망가뜨렸으니, 지금 내 손에 없어요. 강명원 씨가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윤씨 가문의 그 누구도... 손에 넣을 생각하지 말아요!”“너...”강명원이 손을 들자 강서연이 갑자기 앞을 막아 나섰다.“너랑 상관없는 일이니 비켜!”“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지만, 제발 우리 엄마를 자극하지 마세요!”강서연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여기는 우리 집이에요. 당장 나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강서연, 너...”“아빠!”강유빈이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이 미친 여자한테 묻지 말아요, 아빠가 찾고 있는 물건은 분명히 이 방에 있을 거니 우리가 직접 뒤져요!”강명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이 이렇게 뻔뻔스러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강서연은 강유빈에게 달려들었다. 강명원은 강서연의 손목을 잡고 휘둘렀고, 그녀는 갑자기 균형을 잃고 벽에 그대로 부딪혔다!아픔을 참고 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