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절대 내 딸을 해치게 두지 않겠어!”“이 멍청한 여자! 육명진이 이 아이를 육소유로 속였을 때, 왜 그 기회를 잡아 육씨 집안의 재산을 차지하지 않았어? 그런 기회를 놓치다니, 넌 정말 죽을 죄를 지은 거야!”“아니야... 모든 게 육명진의 잘못이지 내 딸과는 아무 상관없어. 네가 이러면 안 돼... 나도 알아. 나도 네가 억울하고 화났다는 거 알아. 하지만 제발 이 분노를 이제는 끝내줄 수 없겠니?”육연우는 충격에 휩싸여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은 공허하게 비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성소월은 갑자기 육연우 앞으로 달려와 육연우의 어깨를 세차게 붙잡고 흔들었다.“연우야, 어서 가! 빨리 가!”“그 사람이 널 해치지 못하게 해... 어서 도망가!”육연우는 반응할 겨를도 없이 성소월이 육연우를 옆으로 밀쳐버렸고 성소월 자기 머리를 벽에 시게 부딪혔다.*배인서의 상처는 많이 호전되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보낸 시간은 배인서의 어두운 인생에서 드문 한 줄기 무지개였다.최지용은 나무로 배인서에게 저격용 총을 만들어 주었다.배인서는 총을 받자마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를 애로 보는 거예요?”“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정교한데요!”최지용은 얼른 변명을 늘어놓았다. 배인서는 그 총을 만져보았다. 최지용의 말처럼 총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표면이 매끄러워 손에 전혀 거칠지 않았다.군인을 해본 남자들은 모두 이렇게 다재다능한가? 전장에 나가고 부엌일에, 심지어 목공 일까지 이렇게 능숙하다니.이런 멋진 저격용 총을 어린 남자아이가 가지고 논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리고 인내심 많은 최지용이라면 나중에 정말 훌륭한 아버지가 될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배인서의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배인서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방금 든 잡생각들을 떨쳐내려고 했다.“배인서 씨, 왜 그래요?”배인서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치 열이 난 것처럼 보였다.“어디, 어디 아파요?”“아니에요.”
최지용은 배인서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배인서는 이미 방에 스스로를 가둔 상태였다. 최지용은 몰래 집 밖으로 돌아 나가 창문 너머로 배인서를 지켜보았다.배인서는 손에 든 나무 저격용 총을 오랜 시간 고요히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천을 꺼내 들고 조심스레 총을 닦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지용은 마음속에 따스한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그때 전화가 울렸고 최지용은 급히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최군형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며칠 전부터 아담 교수가 오성에 와 있더라고요. 이미 고모와 고모부를 통해 연락했고 만날 시간도 정해놨어요. 약속 시간은 모레 오후로 잡았으니 그때 저랑 소아랑 같이 가요. 이제 곧 진실이 드러날 거예요.”“모레라니?” 최지용은 만남 약속이 약간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희 고모랑 그렇게 친한 사이라면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없나? 내일은 어떨까?”“내일은 환자가 있대요.” 최군형이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를 만날 시간이 안 된대요.”“환자라고?” 최지용은 약간 의아해하며 농담조로 말했다. “흥, 오성에 우리 집 말고도 아담 교수랑 연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몰랐네. 나는 아담 교수가 최씨 가문만 알고 지내는 줄 알았지.”최군형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사실 처음에는 최군형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담이 오성에서 활동하면서 친한 건 최연희와 신석훈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최씨 가문 말고는 아담을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하지만 이번 환자는 과연 누굴까? 이런 대단한 인물을 끌어낼 만한 사람이라니 말이다.“뭐, 하루 이틀 차이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어차피 곧 진실이 드러날 테니.”최지용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서 뭔가 떠오른 듯 주저하며 웃었다.“군형아, 그런데... 네가 전에 말했던 그 방법 있잖아. 그... 그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최군형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당황했다. “어떤 방법이요?”“네가 그
육연우는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깨문 채 두 손으로 옷자락을 초조하게 만지작거렸다. 아담 교수는 육연우에게 몇 군데 정신 치료 기관을 추천해 주며 종이에 적어주었다. 아담 교수의 눈에는 연민의 기색이 어렸다. “이 병은 시간을 끌면 안 됩니다.” 아담 교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치료가 더 어려워져요. 어머니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보내는 게 좋습니다.”육연우는 그 종이를 받아 들고 교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조용히 감사의 말을 건넸다.그 후, 육연우는 직접 여러 치료 시설을 직접 방문해 보았다.그곳들은 모두 조건이 나쁘지 않았으며 공립 병원도 있고 사립 병원도 있었다. 환경은 조용하고 깨끗했으며 간호사들도 책임감 있게 일하고 있었다. 요양하기에 적합한 곳처럼 보였다.그러나 육연우는 병원들의 또 다른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그 안의 환자 중 일부는 멍하니 있거나 미쳐버린 듯한 상태였다. 복도를 걷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비명과 외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육연우는 이곳의 간호사들이 악명 높은 요양원처럼 환자들을 학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 소리는 모두 환자들이 발작할 때 통제할 수 없는 절규였다.그럼데도 그 소리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간호사는 앞서 걸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미소를 띠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그들 앞에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그 사람은 거의 광기에 사로잡힌 듯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끔찍하고 음산한 표정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외쳐댔다.육연우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곧 강한 체격의 직원들이 달려와 그 사람을 제압하고 밧줄을 가져와 묶었다.직원들이 그를 강하게 제압하는 순간 육연우는 그의 손목에 깊게 팬 붉은 자국을 보았다.육연우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갑작스럽게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어머니에게도 이런 상처가 남을 것이란 생각에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마음이 가슴 깊이 울렸
육연우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어 엄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엄마의 품은 여전히 따뜻했고 그 손길은 예전처럼 부드럽게 육연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미안해...” 성소월은 눈물을 머금은 채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일부러 그렇게 한 건 아니야... 엄마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어.”육연우는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모녀는 서로를 꼭 끌어안고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았다.며칠 동안 육연우는 자주 아담 교수를 찾아갔다. 성소월을 정신 요양원에 보내기 위한 준비 외에도 간호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육연우는 마음 한구석에 몰래 품고 있던 생각이 있었다. 바로 직접 어머니를 돌보겠다는 것이었다.“연우 씨, 신중하게 생각해 보세요.” 아담 교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런 환자는 전문적인 인력이 돌봐야 합니다. 연우 씨가 함께 있으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그렇지 않을 거예요...”“절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담 교수는 육연우를 바라보며 깊은 남색 눈동자에 약간의 동정과 무력감을 담고 말했다.“자신이 이성적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사가 어머니에게 전기 충격 같은 치료를 할 때, 그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면 연우 씨도 감정에 휘말려 이성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의사에게 오히려 짐이 될 뿐입니다.”“하지만, 아담 교수님.” 육연우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효도하고 싶을 때 부모는 곁에 없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제가 어머니를 돌볼 수 있을 때, 어머니가 고통을 혼자 감당하게 두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아담 교수는 한숨을 쉬며 육연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아래층에서는 강소아와 최군형이 거의 동시에 그곳에 도착했다.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여긴 어떻게 왔어요?”“너도 왔잖아.”최군형은 웃으며 앞으로 나아가 강소아의 손을 잡았다.며칠 전, 두 사람은 이미 이곳에 왔었지만, 아담 교수는 직업윤리 때문에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는 말을 들은 강소아와 최군형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최군형은 어릴 적 종종 변 할아버지가 일하던 서재에서 놀곤 했다. 변덕수는 추리 소설 작가로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병이 바로 해리성 정체감 장애였다.그 당시 최군형은 아직 어렸기에 이 병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변 할아버니는 최군형에게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이건 정신 질환 중 하나란다.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는 환상을 가지게 돼. 성격도 극적으로 변하고 하는 행동 역시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최군형은 이 병이 그저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최군형은 얼굴을 찌푸리며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호정길이 김 할머니를 납치했던 그날 밤, 그렇게 강력한 보안 시스템을 가진 최씨 집안에 호정길이 총을 들고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조사 끝에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감시 카메라를 확인한 결과, 연회 당일에 날씬한 체형의 여자가 수상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후드티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체형을 근거로 성소월일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확신을 갖지 못했다. 최군형의 동생인 최군성과 육연우의 혼약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성소월을 의심하면 두 집안의 관계에 상처를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여자는 틀림없이 성소월이었다.또 다른 인격을 가진 성소월일 가능성이 높았다.*이른 아침, 배인서는 이미 마당을 오가며 걷고 있었다.상처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인서는 한 번도 운동을 멈춘 적이 없었다. 배인서는 ‘건강은 운동에서 온다’는 믿음으로 많이 움직일수록 회복이 빨라진다고 여겼다.최지용은 그런 이론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놀랍게도 배인서에게는 그 이론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 듯했다. 지금 배인서는 더 이상 목발에 의존하지 않고도 꽤 안정적으로 걸
“배인서 씨...” 최지용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이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하는 걸 원치 않아요. 내가...” 최지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인서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부터 저는 엄마가 없어요.”최지용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라고요?”배인서는 눈을 감고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나중에 최지용은 알게 되었다. 그날은 배인서의 엄마 배홍이 사형을 집행 받은 날이었다.배인서의 엄마는 인신매매범이었고 강호에서 이름난 ‘홍이 언니’였다. 배홍이 저지른 악행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하지만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배인서에게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엄마였다.최지용은 감정이 북받쳐 배인서를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배인서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저는 이제 엄마가 없어요.” 배인서가 중얼거렸다. “이제 영원히 엄마가 없어요.”“저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도 볼 수 없었어요.”“지금쯤, 아마도 엄마는 이미 떠났겠죠...”“배인서 씨.” 최지용의 가슴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엄마가 없어도 내가 있잖아요.”배인서는 잠시 멍해졌고 그제야 자신이 이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 그 짧은 나약함이 자신을 그 품에 머물게 했고 최지용의 은은한 향기에 감정이 휩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배인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힘껏 최지용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필요 없어요, 당신은 필요 없어요!”“배인서 씨.”“당신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배인서는 최지용의 눈을 감히 마주하지 못하고 외쳤다. “저는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당신은 필요 없어요.”하지만 배인서가 그렇게 말하면 말할수록 최지용은 더 배인서에게 다가가고 싶어졌다.최지용의 접근은 오히려 배인서를 더 깊은 자책감과 열등감에 빠뜨릴 뿐이었다.배인서는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자신과 최지용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고 자신은 최지용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이제 최지용도 배인서의 엄마가 사형수라는 사
최군형도 같은 생각이었다.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최군성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할까?두 사람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침묵하던 중, 갑자기 최군형의 전화가 울렸다.전화기 너머로는 강서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군형아, 군성이가 아까 허둥지둥 뛰쳐나갔어. 연우가... 군성이랑 헤어지겠다고 했대! 빨리 동생에게 연락해 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물어봐.”최군형의 얼굴빛이 변했고 그는 서둘러 최군성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그쪽에서는 아무도 받지 않았다.강소아가 최군형을 진정시키며 먼저 육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육연우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답했다.“언니, 저... 집에 막 도착했는데, 엄마가 사라졌어요!”“뭐라고?!”그 순간, 두 사람의 가슴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육연우, 내 말 잘 들어.” 강소아는 침착해지려 애쓰며 최대한 간결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이미 네 엄마에 대한 일을 알고 있어... 이 일 때문에 군성에게 이별을 고한 거지?”“언니...”“너 참 어리석구나!” 강소아는 답답한 마음에 조금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가 너한테 혼자 이 일을 감당하게 할 리가 없잖아!”육연우는 잠시 말없이 침묵하다가 눈물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일단 울지 말고.” 강소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차분하게 생각해 봐. 성 아줌마가 갈 만한 곳이 어디일지 말이야. 성 아줌마는 네 엄마잖아. 네가 우리보다 더 잘 알지 않겠니?”“어디일지 확실히 떠오르면 바로 내게 메시지로 알려줘. 내가 사람을 보내서 찾아볼게.”“언니.” 육연우는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번에 제가 언니에게 서쪽에서 배인서를 찾아달라고 했을 때 하나의 전화번호도 보냈었죠, 맞죠?”강소아는 잠시 멍해졌지만, 곧 그 일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그 번호는 아마도 엄마가 자주 연락하던 사람이었어요.” 육연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니... 제 말은 그건 엄마의 또
최군형은 자신과 군성이 부모님의 가장 큰 걱정거리임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평안한 노후를 보내려면 자신이 먼저 안전해야 했다. 최군형은 앞으로 다가가 엄마를 안아주고 아버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는 아버지가 사실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을지 최군형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 앞에서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괜찮아서 정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강서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큰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는 정말 놀랐어!”“군성이는 어릴 때부터 복이 많은 아이잖아요.” 최군형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동생은 복이 많은 사람이니까, 분명 괜찮을 거예요!”“하지만 이번 사고는 너무 이상해요.” 최군형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군성이는 운전 실력이 꽤 좋은데 어떻게 이런 사고가...”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소아가 경찰관 몇 명을 데리고 다가왔다.“운전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누군가가 해코지하려 한다면 어쩔 수 없죠.”최군형은 강소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강소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분들은 경찰관이에요. 더 정확히 말하면 수사관이세요. 모두 저희 아버지 친구분들이세요. 군성이가 사고가 났을 때 바로 연락을 드렸어요. 그런데 이 사건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서 군성이가 수술받는 동안 이미 해결됐어요.”“정말이야?”최연준과 강서연은 급히 다가왔다.“아버님,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강소아는 강서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사실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저와 군형 씨가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요. 수사관분들께 조사를 요청한 것은 저희 추측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였죠.”“맞습니다.” 수사관 중 한 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육 아가씨와 최 도련님의 짐작이 맞았습니다. 둘째 도련님을 다치게 한 사람들은 작은 조직의 조직원이었고 현재 그 사람들은 모두 법의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그 사람의 배후는... 성소월이었나요?” 최군형은 눈
최군형은 방금 다 먹은 닭 날개 꼬치를 들고 최군성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꼬치를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엄마가 항상 옳다니까. 넌 정말...”최군성은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뭐가?”최군형은 이를 악물며 한 마디로 대답했다.“유난이야!”그 말을 내뱉고는 최지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최군성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리둥절했다. 멀찍이서 바라보니 저쪽은 꽤 북적거리고 있었다. 최군성의 내면 깊은 곳에서 ‘흥겨운 분위기를 즐기는 본능’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최군성은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스케치북을 펴고 빠르게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다른 사람들은 대충 윤곽만 그린 반면, 특정 인물을 그릴 때만큼은 세심하게 한 획 한 획 공들여 그려내어 풍경 속에서도 돋보이게 했다....모든 일이 마무리되었고 이제 남은 건 최지용과 백인서의 결혼식이었다.최군형도 두 사람의 결혼을 돕고 싶어 최근 며칠 동안 집에 머물며 부모님과 함께 세심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지용이와 인서는 둘 다 조용한 걸 좋아하니, 웅장한 것보다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결혼식이 더 잘 어울릴 것 같구나.”최연준은 상자에서 온갖 보물들을 꺼내며 결혼 선물로 줄 것을 고르고 있었다. 그중 강서연은 분홍빛 진주 세트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게 딱이겠네! 인서에게 정말 잘 어울릴 거야.”“엄마.”최군형은 살짝 놀라며 말했다.“그건 외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주신 거잖아요. 남양 주변 해역에서만 나는 진주라면서요.”“맞아, 그런데...”강서연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분홍색은 젊고 사랑스러운 느낌이잖아. 이제는 엄마한테 조금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어.”“누가 그래!”최연준은 즉각 반박하며 손을 뻗어 진주 세트를 집어 들려 했다. 그러자 강서연은 그의 손등을 톡 치며 진주를 되찾아왔다.“인서에게 줄 거니까 당신은 끼어들지 말아요!”“우리 다른 선물을 하자고! 이건 당신이 간직해야 할 물건이야!”두 사람은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
강소아가 손짓하자 최지용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백인서에게로 달려갔다.“이제 딸을 보러 가야겠네요!”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저 대신... 인서 좀 돌봐줄 수 있을까요?”최지용은 그 말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아까는 주저하며 다가가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주변에 권욱과 강소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은 백인서의 오빠였고 다른 한 사람은 그녀의 절친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섣불리 다가가면 괜히 이상하게 보일까 봐 망설였다.최지용이 어깨를 펴고 당당히 백인서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뭐 해요?”최지용은 깜짝 놀랐다.“너야 말고 뭐해?”권욱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감히 내 눈앞에서 내 동생한테 손대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어?”“...”최지용은 당황해서 말을 잃었다.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뭔가 삐걱거렸던 것 같았다. 서로 영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땐 권욱이 백인서의 오빠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오히려 잠재적 경쟁 상대로 여기기도 했었다.그리고 지금...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다.“쓸데없이 귀찮게 하지 말고 물러나!”권욱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최지용을 흘겨보며 말했다.“동생과 나에겐 나눌 얘기가 산더미처럼 쌓였으니 방해하지 마!”“할 얘기가 뭐가 그렇게 많은데요?”“예를 들면... 인서가 권씨 가문에서 맡게 될 직책 같은 거?”“그나저나!”최지용은 그제야 떠오른 듯 고개를 치며 말했다.“아까 권욱 씨 입으로 직접 말했어요. 최상 그룹과 권오 그룹이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권씨 가문이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동생을 우리 최씨 집안에 시집보내겠다고요!”“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권욱은 태연하게 모른 척하며 말을 돌렸다.“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저기요, 권욱 씨!”두 남자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백인서는 살짝 뒤로 물러나 두 사람의 시야에서 벗어났다.백인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잔잔히 미소 지었다. 과거에는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비명이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백인서?”배윤아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큰 소리를 질러?”“아니야... 난 백인서가 아니야!”백시연은 목이 쉬도록 외치며 갑자기 강소아를 돌아보았다.“말해봐! 아까 다 알고 있었던 거잖아? 내가 백인서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 수 있게 똑똑히 말하라고!”“인서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강소아는 담담하면서도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차분히 백시연의 손을 밀어냈다.“혹시 술이라도 마신 거야? 취한 것 같아.”“강소아 씨!”백시연은 분노에 치를 떨며 외쳤다.강소아는 백시연의 손을 잡고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인서야, 우린 자매잖아. 여기서 소란스러운 모습 보이지 말자. 오늘은 어쨌든 육씨 가문의 중요한 날이기도 하고 내 딸도 여기 있어... 그러니까, 제발 진정해 줘.”“아니야...”“인서야!”“아니라고! 아니라고!”백시연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난 백인서가 아니야! 몇 번을 말해야 믿을 거야?”배윤아는 피식 웃으며 백시연의 팔짱을 끼고 태연히 말했다.“어머, 백인서. 왜 그래? 백인서가 아니면, 왜 백인서 얼굴을 하고 있는 건데? 그런데... 굳이 너와 백인서의 다른 점을 꼽으라면... 손목에 그림이 있다는 거?”“비켜!”백시연은 배윤아를 거칠게 밀어내고 다급히 무대를 향해 뛰어갔다.백인서는 고요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마침내 기다리던 이 순간이 왔다.백인서는 천천히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눈앞의 백시연을 바라보았지만,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눈앞의 이 사람은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보였다.백인서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백시연은 진짜 악마일지도 모른다고.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한쪽은 천사, 다른 한쪽은 악마. 그리고 자신과 백시연 같은 쌍둥이의 운명은 그런 인간의 본성을 극대화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가면은 순금으로 빚어졌고 가장자리에는 보석이 촘촘히 박혀 조명이 닿을 때마다 눈 부신 빛을 흩뿌렸다.백시연은 그 자리에 선 채 몸이 굳어버렸다.“이... 이럴 수가!”그 사이, 백인서는 이미 무대 위로 올라가 권욱 옆에 서 있었다.권욱은 이어서 말했다.“이분이 바로 제 이복동생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늘 제 동생을 걱정하며 꼭 찾아달라고 당부하셨죠. 이제야 동생을 찾게 되었습니다!”권욱은 백인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눈빛 속에는 진심 어린 애정과 따스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동생의 출생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죠. 우리는 결국 한 가족입니다. 동생을 찾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동생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요... 우리 권씨 가문이 제 동생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하늘의 뜻일지도 모릅니다. 동생의 존재는 제 딸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분은 제 동생일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의 은인이기도 합니다!”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고 몇몇은 감동에 겨워 눈가를 붉혔다.하지만 백시연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동생이란 말인가? 그리고 왜 저 여자도 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분명 백인서는 종수가 지하실에 가둬뒀고 곧 처리될 운명이 아니었던가.“그리고 이어서 발표하겠습니다!”권욱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권씨 가문의 재산 중 절반을, 이 세상 유일한 동생에게 넘기겠습니다!”“뭐... 뭐라고?”백시연의 온몸은 떨림으로 굳어졌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갔다.“아니야... 이건 아니야!”“뭐가 아니야?”강소아가 일부러 물었다.“인서야, 어디 아파?”“그게....”“권 대표는 네 직장 상사잖아? 상사가 가족을 찾은 거니 축하해줘야지!”백시연은 차가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강소아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백시연의 귀에 속삭였다.“그렇게 백인서의 자리가
“그게... 무슨 뜻이에요?”백시연은 침착함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지만, 권욱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이 카드가 제 거 아니면 누구 건데요?”“난 그런 말 한 적은 없는데?”권욱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번졌다.“그냥 문득 우리 아내도 이런 비슷한 카드를 몇 장 가지고 있던 게 떠올랐을 뿐이야. 카드 색깔도 이런 파란색이었고 뒷면에는 대나무 무늬의 홀로그램이 새겨져 있었어. 조씨 가문은 학문을 중시하는 전통을 지닌 집안이라 대나무처럼 강인하고 꿋꿋한 식물을 특별히 아낀다고 하더군. 한번 뒤집어 확인해 볼래?”백시연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가 이내 창백해졌고 손은 카드 위에서 더욱 굳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백시연은 강소아를 찾아갔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약속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묘안석이 그렇게 비싼 줄 몰라서 서둘러 나오느라 준비가 부족해 지금은 이 카드밖에 없다고 둘러댔다.그러고는 억지로 친근한 미소를 띠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소아 언니, 우리 자매처럼 친한 사이잖아요. 언니 딸은 곧 제 딸이나 다름없죠! 가원이에게 쓰는 돈이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강소아는 미소를 머금고 백시연의 손에서 카드를 슬쩍 가져가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고마워! 나중에 가원이가 크면 널 두 번째 어머니로 생각할 거야.”백시연의 얼굴 근육이 떨렸지만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인서야.”강소아는 다정한 눈빛으로 백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요즘 권욱의 공익 프로젝트를 도맡아 관리하고 있다면서? 잘한다는 칭찬이 자자하더라. 몇 번이나 넌 정말 유능한 관리형 인재라고 말했어.”“아... 그래요?”백시연은 속으로 긴장하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그럼!”강소아가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앞으로도 너한테 정말 잘해줄 생각이야.”그 말을 듣자 백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10억 원을 써서 강소아의 호의를 얻은 거라면 나쁘지 않은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다.“소아 아가씨
연회장 한편에서 백시연은 마침내 잠시 자리를 빠져나갈 기회를 잡았다. 화장실에 간다고 둘러대고는 한적한 구석에 숨어 종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언가 해답을 찾고 싶었다.긴 신호음 끝에야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백시연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왜 이렇게 늦게 받아요?”백시연은 알지 못했다. 종수가 이미 경찰차에 타고 있었고 간신히 경찰의 허락을 받아 전화를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아저씨! 정말 급해서 전화했어요. 지금 뭐 하고 계셨어요?”종수는 억지로 미소를 짓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시연아...”뭔가 말을 더하려던 종수는 경찰이 허리춤에 총구를 겨누는 바람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됐어요, 됐다고요!”백시연은 짜증을 내며 말을 끊었다.“딱 한 가지만 물을게요... 아까 소아 아가씨가 저한테 10억 원짜리 선물을 요구했는데, 그거 줘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10억?”“네!”상황을 모르는 백시연은 초조한 듯 말을 더 이어갔다.“그 재수 없는 여자가 과거에 강소아와 무슨 약속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강소아가 저를 보자마자 자기 딸이 말하기 시작했다면서 선물을 요구하더라고요. 뭐였더라... 묘안석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게 10억 원짜리래요!”종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 그건 강소아가 원하는 게 아니라 조순영을 대신해 요구한 것이라는 사실을.세상은 언제나 공평했다. 무엇을 얻었다면 그 대가는 반드시 같은 무게로 돌아오게 마련이었다.종수는 지친 듯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아저씨? 종수 아저씨!”백시연은 초조한 목소리로 외쳤다.“뭐라도 말 좀 해주세요! 줘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시연아, 이제 너도 어른이야. 이런 일은 네가 직접 판단해야 해.”“제가 알아서 할 수 있었으면, 아저씨께 묻겠어요?”백시연은 이마를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오늘의 종수는 어딘가 낯설고 이상했다.“솔직히... 전 주고 싶지 않아요. 그런 비싼 걸 고작 어린애한테 준다
“뭐라고요? 10억 원이요?”백시연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강소아는 슬쩍 백시연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왜 그래? 고작 10억 가지고. 게다가 가원이에게 큰 선물을 주겠다고 네가 먼저 약속한 거잖아. 혹시 후회라도 하는 거야?”“그럴 리가!”배윤아가 옆으로 걸어오며 백시연의 어깨를 힘차게 두드렸다.“우리 인서는 분명히 선물을 줄 거야, 그렇지? 너희 둘 사이에 보석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잖아.”백시연의 얼굴이 단단히 굳어졌고 입술이 굳게 닫혔다.10억? 조순영에게서 받은 카드에는 고작 10억 원뿐이었다.백인서가 이때까지 이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이 정도 돈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걸까?그래서 강소아가 그렇게 말한 것일까?“어머, 저 사람은 육 아가씨와 친하다던 백인서 아니야?”그때, 근처에 있던 여배우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방금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었어?”“예전에... 둘이 약속했나 봐, 백인서가 육 아가씨의 딸에게 선물을 주기로.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바뀐 것 같아!”“정말? 풉! 상류층 자매라는 것도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봐! 백인서는 육 아가씨와 둘도 없는 사이처럼 보였는데. 육 아가씨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잖아... 이제는 최씨 가문의 아들과 친해지니까, 가식적인 행동도 하기 싫어졌나 봐.”“그 선물이 10억 원짜리라고 하던데... 역시 두 사람 우정은 10억 원도 안 되는 거였어!”백시연의 얼굴은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다. 뒤돌아 그들에게 따지려던 찰나, 강소아가 재빠르게 백시연의 손목을 붙잡았다.“됐어, 인서야.”강소아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저 사람들은 평소에도 입만 살았어. 나중에 제대로 혼내 줄 거야.”“그래야죠, 저 사람들은 정섭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이잖아요. 제대로 가르쳐야 해요!”백시연은 화를 내며 말했다.“소아 언니, 저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나온 건 정섭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해서이기도 하지만 결국 언니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저렇게 뒤에서
권욱과 조순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벅찬 기쁨에 눈물이 터져 나왔고 이내 서로를 끌어안은 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권 대표님, 사모님, 정말 큰 경사입니다!”의사는 골수 검사 결과를 들고 환히 웃으며 말했다.“드디어 아가씨를 살릴 수 있게 됐습니다!”“맞아요, 정말 기쁜 일이네요.”최지용이 권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한심하긴, 그만 울어요!”권욱은 흐느끼면서도 반박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네 딸이 아픈 게 아니니, 넌 당연히... 당연히 이 고통을 알 리가 없지!”최지용은 기가 차 웃으며 권욱의 등을 두 번 세게 두드렸다.백인서는 마음 한편의 큰 짐을 덜어낸 듯 병실 안에 있는 권온유를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그나저나.”조순영이 문득 입을 열었다.“백시연의 골수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왔습니다.”의사가 고개를 저었다.“대부분의 지표는 일치했지만 몇 가지 중요한 항목이 맞지 않아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정말 신기한 인연이네요.”최지용이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쌍둥이라고 해도 신체의 세포가 다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네요.”한 명은 강인하고 선량했고 다른 한 명은 어리석고 악랄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라도 서로 다른 개성과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다. 누구도 타인의 성격과 운명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그러게 말이야.”권욱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다른 쌍둥이였다는 걸 알게 됐으니 이제 모든 진실을 밝힐 때가 된 것 같네.”...축하 연회 날, 손님들로 붐비는 연회장은 떠들썩하고 활기가 넘쳤다. 오성에서 유명한 대가문은 물론, 연예계의 반 이상이 모인 듯했다.정섭 엔터테인먼트는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했기에 대상 수상 경력이 있는 배우들조차 강소아의 초대를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연회장에 들어선 백시연은 평소 TV에서만 보던 유명 여배우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광경에 기가 죽고 말았다.백시연은
차 안에서 백인서는 멍하니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앉아 있던 두 남자는 서로를 힐끔거리기만 할 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조금 전 나눈 대화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백인서는 갑작스레 쏟아진 진실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이 권씨 가문의 사생아라니.“네 어머니와 우리 아버지가 꽤 가까운 사이였던 모양이야.”“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은 물건이 있었어. 바로 회중시계인데, 그걸 백시연이 가지고 온 거지.”“인서야, 너와 백시연이 쌍둥이 자매란 거 알고 있었어?”백인서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리가 깨질 듯 욱신거렸다.어머니가 이렇게 많은 진실을 감추고 있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인서야?”최지용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백인서의 손을 잡았다.그러자 앞좌석에 있던 권욱이 뒤를 돌아보며 싸늘한 눈빛으로 최지용을 쏘아보았다.“놔라!”“뭐요?”권욱은 입을 삐죽이며 최지용이 꼭 잡은 백인서의 손을 가리켰다.참 이상했다. 평소에는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매형이 된 순간부터 그가 갑자기 거슬리기 시작했다.“인서는 좀 쉬어야 해!”권욱은 찡그리며 말했다.“손은 왜 자꾸 붙잡고 있는 거야?”최지용은 순간 멍해서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권욱을 쳐다보았다.“무슨 상관이에요?”“난 인서 오빠야! 당연히 내가 상관해야 할 일이지.”“웃기지 좀 마세요!”“너...”“그만 좀 싸울래요?”백인서가 뒤돌아 두 사람을 힐끔 쳐다봤다.머릿속이 이미 복잡할 대로 복잡한데 이 두 사람은 백인서를 편히 둘 생각이 없는 듯했다.최지용과 권욱은 서로를 노려보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눈싸움을 벌였다.“온유는 아직 병원에 있어요?”백인서가 갑자기 물었다.“응...”“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요!”“뭐라고?”권욱은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백인서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진짜 동생이라면 온유 고모가 되는 거잖아요. 아직 적합한 골수를 찾지 못했다면서요? 제가 한번 해볼게요!”권욱은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