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원은 미소를 지었다. 유환의 찡그린 얼굴이 못생기기는커녕 오히려 이상하게도 귀엽게 느껴졌다.“이렇게 발목을 접질린 건 방치하면 안 돼요.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해요.”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를 뿜어냈다.“내 말대로 해요. 내가 같이 가줄게요.”유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달콤한 미소를 짓더니 편안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그녀는 마음이 꿀로 가득 차는 것처럼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밤늦게 임우정은 집에 돌아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소연화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발견했다.“무슨 일이에요?”임우정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소아 때문이에요?”소연화는 임우정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가 어디서 들었는지 강씨 가문의 사모님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서는...”임우정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니 바로 위층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소연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사모님 정말 사실인가요?”임우정은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말했다.“네.”“제 생각에 이 일은 좀 어려울 것 같네요.”소연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아가씨는 돌아오셔서 울지도 않고 소란도 피우지 않았어요. 그저 혼자 방에서 있었는데 저녁을 먹으라고 해도 나오지 않았어요. 사모님 설마 아가씨가 사모님을 탓하는 건 아니겠죠?”임우정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의 심장을 완전히 쥐어 짜는 것같은 통증이 가슴에서 느껴졌다.그녀는 저녁밥을 들고 강소아의 방문 앞에 서서 몇 분 동안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노크했다.예상 밖으로 강소아는 금방 문을 열었고 아주 침착해 보였다.임우정은 마음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점점 더 강하게 떠 올랐다.그녀는 이것은 아마도 폭풍이 오기 전 고요함이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했다.임우정은 깊은 한숨을 쉬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부드러운 딸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엄마. 나도 마침 내려가서 밥 먹으려고 했는데 왜 갖고 왔어?”임우정은 순간 멍해졌다.강소아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에 들린 식판을 받아
임우정은 잠시 멈칫하며 딸과 조금 떨어져 함께 문 쪽을 바라보았다.육경섭이 문 앞에 서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그는 이미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임우정이 저녁 식사를 들고 오기 전부터 그는 딸의 방문 앞을 서성였다.육경섭도 혹시나 딸이 기분이 안 좋아서 밥을 안 먹을까 봐 걱정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되찾은 딸이 다시 그들을 떠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그는 들어가서 딸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몰랐다.육경섭은 아버지이자 남자였기에 어떤 말은 딸이 그와 말하기 싫어할 것 같았다.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임우정이 위층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그는 바로 옆에 숨었다가 임우정이 노크를 하자 몰래 고개를 내밀고서는 방안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했다. 두 사람이 왜 껴안고 울고 있는 걸까?육경섭은 너무 초조해져서 그제야 노크하며 문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티 나지 않게 하려고 그냥 지나가다 들린 것처럼 연기했다.“난 마침 서재를 지나가다가 들렀어.”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마침 여길 지나가는데 엄마와 딸이 울고 있길래. 아이고 임우정 네가 내 귀한 딸을 괴롭혔지?”육경섭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연기에 맞장구를 쳐달라고 임우정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하지만 그의 웃긴 모습에 아내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나도 안 웃겨.”임우정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입꼬리는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강소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빠는 무시해. 태어날 때부터 유머 세포라고는 없었으니까. 젊었을 때 최 아저씨와 강 아줌마 카페에서 얼마나 소란을 피웠는지 몰라. 네 아빠가 웃기면 손님들이 다 도망갔어.”“네가 잘못 기억한 거 아니야?”육경섭은 눈을 부릅뜨며 반박했다.“항상 무서운 표정을 하는 사람은 최연준이었어.”“그럼 넌 무슨 얼굴인데? 돼지 얼굴?”육경섭은 순간 말문이 막혀서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고 이내 가족 셋이 함께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강소아는 마치 어렸을 때
한편 유환은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재크가 그녀를 위해 개인 주치의를 예약해 두었었고 의사가 그들을 오래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문성원은 그녀를 안고 은밀하게 VIP 통로를 통해 진찰실에 도착했다.유환의 발목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저 며칠 잘 쉬면서 제때 약을 챙겨 먹으면 괜찮아질 정도였다.하지만 유환이 가장 처음 물은 것은 촬영 일정은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간호사가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환자분 서서 하는 장면은 촬영할 수 없지만 앉아 있거나 누워서 대사만 하는 장면은 괜찮을 거예요.”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발목이 이 지경이 됐는데 촬영은 무슨 촬영입니까? 완전히 나을 때까지 푹 쉬세요.”“하지만 저 때문에 촬영팀 전체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요.”유환은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재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평소 그녀를 보물처럼 여기던 매니저는 이번에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그게 유환아. 밴이 아직 정비가 안 됐어. 아니 밴을 크게 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아.”“뭐?”유환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그럼 날 어떻게 픽업하겠다는 거야?”“유환아 너도 날 좀 이해해 줘. 나도 다른 일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너 혼자 촬영장에 가야 할 것 같아.”“뭐?”재크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전화를 끊었고 유환은 너무 화가 나서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버릴 뻔했다.“이 나쁜 놈. 이제는 감히 나한테 이런 말을 해? 내가 아주 가만두지 않을 거야.”“일단 진정해요.”문성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동안 내가 촬영장에 데려다줄게요. 그런 다음 다시 픽업해서 집에 데려다주고요.”유환은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순간 그녀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고개를 들어 맑고 선명한 그의 눈을 마주쳤다.그 순간 그녀는 얼어붙었다.유환은 그제야 자기가 한쪽 다리를 침대에 얹어놓고 팔을 그 위에 올린 채 다른 쪽 다리를 흔들며 털털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게다가 큰 목소리로
하지만 이번에는 막은 손의 위치가 조금 예민한 곳이었다.유환이 고개를 숙이자 문성원은 그제야 자기 손이 그녀의 가슴 앞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깜짝 놀랐다.“아 죄송합니다.”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떨더니 급히 내렸다.‘끝났어. 정말 끝났어. 순간 너무 다급해서 그곳을 만진 건데 설마 유환 씨가 날 경험이 풍부한 변태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그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몰려오는 민망함에 차라리 쥐구멍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난 괜찮아요.”유환의 작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입가에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그런데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한 여자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온 그 여자를 자세히 보니 하수영이었다.‘방금 저 여자가 차를 막은 거야?’유환은 입술을 깨물며 문성원에게 가슴을 습격당해 행복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팔짱을 끼며 다시 차가운 얼굴로 돌아가 전투 준비를 끝냈다.그런데 그녀는 무슨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내가 여자 친구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싸워?’유환은 어두워진 얼굴로 깊은 한숨을 쉬며 문성원을 바라보았다.“내가 뒤에 가서 앉을게요. 성원 씨 여자 친구 왔어요.”문성원은 너무 당황해서 순간 하수영은 자기 여자 친구가 아니라고 말할 뻔했다.하지만 최군형이 지시한 임무가 떠올라 그는 주먹을 꽉 쥐고서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유환은 한숨을 쉬며 안전벨트를 풀려고 했지만 갑자기 손마디가 굵은 손이 그녀를 붙잡았다. 따뜻한 그의 손에 유환은 또 한 번 마음이 흔들렸다.“문성원 씨. 성원 씨.”하수영은 차 창문을 두드리며 말했다.평소에 온화하던 문성원은 하수영을 째려보며 버튼을 불러 차 창문을 내렸다.하수영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유환을 발견하자마자 화가 치밀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왜 이 여자가 여기 있어요?”유환도 화가 났지만 지금 상황에서 보면 하수영이 조강지처였고 그녀가 뻔뻔한 세컨드 같았기에 참는 것이 최선이었다.하지만 그
“저...”하수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때마침 호준성이 뒤에서 쫓아왔다.“그러니까,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내 머리에 이렇게 큰 상처가 있는데 오늘 실밥 풀어야 하는 날인 거 알잖아, 그런데 나를 여기다 내팽개쳐?”하수영은 당황해서 눈동자가 사방으로 흔들렸다.호준성은 아직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말은 비교적 또렷했다. 그는 다리를 절며 차 앞으로 다가와 먼저 호화로운 지바겐을 살펴본 후, 고개를 들어 차 안을 들여다봤다.문성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유환 쪽 창문을 올려버렸다.그는 유환에게 선글라스와 모자를 잘 쓰라고 한 후, 직접 차에서 내렸다. 그가 호준성을 바라보는 눈빛에 조롱과 희롱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하수영, 소개 안 해줄 거야?” 문성원이 가볍게 웃었다.호준성도 하수영을 보며 말했다. “뭐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하수영은 한참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이분은 문성원이에요, 제 남자 친구. 성원 씨, 이쪽은 육자 그룹 영화 도시 프로젝트의 담당자, 호...”“호준성?” 문성원이 비웃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호 매니저님,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호준성은 그를 힐끗 보며 마지못해 악수를 나눴다. 그는 하수영에게 변호사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훤칠하고 돈 많은 사람일 줄은 몰랐다.그는 이 여자가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남자 친구를 두고 자신과 잠자리를 가지려 하다니? 단지 돈을 좀 더 나누어 갖기 위해서? 육자 부동산 한 채를 소유하기 위해서?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호준성은 기침을 두 번 하고는 매니저의 태도를 잡았다. “저기, 성원아! 네 차 참 멋진데, 나를 집에 데려다 줄 수 있겠나? 우리 집은 남성에 있는데, 여기서 멀지 않아. 한 20킬로미터 정도 될 거야!”“흥!”문성원이 냉소하며 말했다. “호 매니저님,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오해할 게 뭐가 있어?” 호준성은 눈을 부릅뜨고 자기 머리를 가
“이봐요, 정말 재밌는 얘기를 하시네요!” 전화기 너머 차가운 목소리에는 약간의 조롱이 담겨 있었다. “저희는 정식 외국 투자기업입니다. 어떻게 오성 도시에서 불법 행위를 할 수 있겠어요?”“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에요! 여보세요?”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전화기 반대편에서는 서지현이 밝은 블루 컬러의 사롱을 입고 게으르게 전화를 내려놓으며 최군형과 강소아에게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이 변성기 정말 효과가 좋네!” 서지현이 웃으며 말했다. “방금 내 목소리를 남자 목소리로 바꿔줬어!”“이모님 연기도 정말 뛰어나셨어요!” 최군형이 아첨하며 말했다. “역시 우리 삼촌이 가르쳐주신 대로네요!”서지현은 윙크하며 옆에 있던 강소아의 작은 손을 잡았다. 그녀는 이 예쁜 소녀를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강소아도 서지현을 매우 좋아했다. 처음 만난 것 같은 친근함을 느꼈다.지난번 대황궁에 갔을 때, 그녀는 적당한 옷이 없어서 서지현이 예전에 입었던 드레스를 입었었다.이번에 실제로 만나게 된 서지현은 강소아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나이를 무색케 할 만큼 여전히 아름다웠다.혼혈인의 입체적인 얼굴선과 그녀가 지닌 천부적으로 고귀한 기품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어때?” 최군형이 강소아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웃었다. “내가 예쁜 이모가 있다고 했었지? 틀리지 않았지? 아쉽게도 이 며칠 우리 아빠가 배우 삼촌의 일정을 꽉 채워놓은 바람에 아쉽게도 삼촌은 못 뵙게 되었어. “ “그를 만나지 못해도 상관없어!” 서지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소유를 만났다는 거야. 그게 이번 여행의 보람이지!”“이모?” 최군형이 놀라며 물었다. “우리 소유요?”“그렇지 않으면?”“그럼 저는 뭐예요?”“음...” 서지현이 생각하다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조카사위지!”마침 그때 최군성과 육연우가 손을 잡고 들어왔다. 이 말을 듣고 최군성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최군형은 ‘싸울래?’라는 눈
“왜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호준성은 이제 그녀를 보는 것조차 거슬렸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한 번도 일이 제대로 풀린 적이 없다고 느꼈다.하수영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저... 저 그저 건물을 지으려는 두 개의 땅에 관해 묻고 싶어서요. 구매자를 찾으셨나요?”“그 얘기 꺼내지도 마! 생각만 해도 열 받아!” 호준성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기성 산업이 나랑 협력하지 않겠대. 육자 그룹 이름을 꺼내도 소용없었어!”“기성 산업?” 하수영은 순간 멍해졌다. 최근에 외국 기업이 하나 들어와 세력이 강하다는 소문을 떠올렸다.하지만 직감적으로, 너무 화려한 버섯은 독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게다가 그 회사는 남양 쪽 자본이라는 소문이...남양을 떠올리자 그녀는 강소아가 생각났고, 그 생각에 마음속의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제가 보기에 협력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녀는 소파에 앉아 투덜댔다. “사기꾼이면 어쩌려고요? 계약서에 사인하고 돈을 가져가 남양으로 도망치면 어디서 찾겠어요?”“네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호준성은 그녀를 소파에서 끌어 올려 밖으로 세게 밀쳤다.하수영은 비틀거리며 멀리 날아갔고, 등은 복도 벽에 부딪혀 머릿속이 멍했다.“호준성! 당신...”“내가 뭐? 내 판단이 틀릴 리가 없어!” 호준성은 경멸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알기나 해? 그 재단 뒤에 남양 황실의 지원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남양 왕도 사기꾼이라는 거야? 나를 속이려 한다고? 그 사람들이 뭘 노린다고!”“황실?” 하수영은 이 말을 듣고 더욱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급히 다가가 호준성의 손을 잡았다.호준성은 지금 그녀를 미친 듯이 피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그는 힘껏 밀쳐냈다.두 사람은 한동안 밀고 당기며 사무실과 복도에 그들의 고함이 가득했다.“호준성, 당신 그들과 협력하면 안 돼요!” 하수영은 절규했다.“이 년아, 이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당신 나한테 집 한 채 주기로 했잖아요
하수영이 잠시 정신이 멍해진 사이, 호준성은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이 순간 호준성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그 땅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그저 빨리 아무도 모르게 그 땅을 팔아 돈을 챙기고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호준성은 핏발 선 눈으로 이를 갈며 외쳤다. “누가 내 돈줄을 막으면, 그놈을 끝장내 버릴 거야!”바로 그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낯선 번호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상대방은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호준성 매니저님이시죠?”호준성은 순간적으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방금 전의 사나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헤헤... 네, 접니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저는 기성 산업의 수서 비서 안나입니다. 그냥 안나라고 부르시면 돼요.”호준성의 눈이 반짝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안나요? 무슨 일인가요?”안나는 은방울 같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한참을 웃고 나서야 말했다. “호 매니저님, 농담이죠? 왜 제가 연락드렸는지 모르시겠어요? 며칠 전에 무슨 문의를 하셨죠?”“혹시... 당신네 대표님이 제 땅에 관심이 있다는 건가요?”“그렇습니다.”안나는 계속 말했다. “호 매니저님, 저희 두 분의 대표님께서 말씀하시길, 육자 그룹은 오성에서도 명문가로 알려져 있으며, 비록 4대 가문보다는 못 하지만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들었어요. 최근에는 영화 촬영지도 개발 중이라던데요...”“맞아요 맞아요!” 호준성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땅은 바로 영화 촬영지 옆에 있어요! 당신네 귀한 대표님께 전하세요. 그 땅을 사면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라고!”“알겠습니다, 매니저님.” 안나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직접 만나 뵙고 싶다고 하시는데, 언제 시간이 되시나요?”*전화를 끊고 나서, 강소아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유환은 자신의 잡지 화보를 고르면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 번 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어머나, 이러다 연예계에 나와 경쟁할 사람 하나 더 생기겠네요!”“아니에요! 전부 변성
송윤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결혼?생각해 보니, 송윤지와 배현진은 처음 만날 때부터 결혼을 전제로 교제했던 것 같다.임우정이 소개한 관계이기도 했고 송윤지 자신도 조건이 나쁘지 않았으니 배씨 가문에서도 만족스러워하며 미래의 배씨 가문 며느리로 받아들였다.배현진 역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배현진은 연애 경험이 없었고 송윤지는 기억을 잃은 후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잃어버린 기억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송윤지는 과거에 대해 알 방법이 없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된 것이다.배현진은 결혼 상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일했고 능력도 뛰어난 데다가 배씨 가문의 배경까지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했다.그런데도 송윤지는 늘 그와의 관계에서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윤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윤지야! 대답 좀 해! 무슨 일이야?”“아, 아무것도 아니야.”송윤지는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언니,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전화기 너머에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한참 지나서야 송윤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난 네가 빨리 배씨 가문에 시집가서 배씨 가문의 보호를 받았으면 좋겠어.”송윤지는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언니, 설마 형부가 언니를 찾아왔어?”“더 이상 묻지 마...”“솔직히 말해봐!”결국 송윤희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그가 60억이 필요하대... 도박하다 고금리 대출까지 써서 총 60억이야! 저 천벌 받을 놈이!”송윤지의 가슴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었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언니, 60억이라고? 그 큰돈을 어떻게...”“그래, 도박하다가 돈을 잃고 고금리 대출까지 썼대.”“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침착해.”송윤지는 언니를 안심시키려 애쓰며 말했다.“내가 현진 씨
임지강은 매일 같은 시간에 유치원 정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론 최가원을 데리러 온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단지 송윤지를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임지강은 송윤지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지어 보이는 맑고 순수한 웃음을 좋아했다.그 모습은 마치 송윤지가 과거 임지강과 함께 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임지강은 종종 상상했다. 만약 두 사람의 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쯤 이 유치원에서 뛰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 자신이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쯤 둘은 더 나은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의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갈 용기도 없었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할아버지! 할아버지!”맑고 명랑한 목소리가 임지강의 생각을 현실로 끌어냈다.그는 자신이 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가원은 반짝이는 눈으로 임지강을 올려다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할아버지, 우리 여기 오래 서 있었잖아요!”“아... 그렇구나.”임지강은 바짝 마른 입술을 핥으며 최가원의 손을 잡고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할아버지, 매일 이렇게 오는 거 힘들지 않아요?”“뭐?”최가원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혹시 송 선생님 좋아해요?”임지강은 그 말에 순간 멈칫하며 당황했다. 얼굴은 살짝 굳었고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커졌다.“무슨 소리야! 이 꼬맹아,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흥!”최가원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어리다고 눈이 멀진 않았거든요! 할아버지, 송 선생님 볼 때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거 알아요? 할아버지만 몰라요!”“너...”임지강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내 눈 멀쩡하니까 신경 꺼!”최가원은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할아버지! 할아버지!”“왜 또!”임지강은 짜증을 내듯 말했다.하지만 작은 손이 그의 손을 잡는 순간, 마음은 또 한없이 부드러워졌다.“할아버지.”최가원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이스크림 사주시
“송윤지, 듣고 있어?”송윤지는 정신을 차렸다. 막 대답하려던 순간, 전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현진 씨, 아직도 여기서 커피 마시고 있어요?”“리사, 무슨 일이야?”“서류에 서명할 게 있어요!”배현진은 웃으며 대답했고 그 즉시 전화를 끊어버렸다.송윤지는 허탈한 마음에 가슴 한쪽이 텅 빈 듯했으며 심장은 빠르게 뛰고 답답함이 온몸을 휘감았다.송윤지는 본능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저 여자는 누구일까? 왜 배현진은 저 여자의 말을 그렇게 잘 들을까? 어떻게 그 여자가 일하라고 부르자마자 바로 가버린 걸까?그들은 매일 같이 지내며 서로 다른 감정을 키워가고 있는 걸까?방금 배현진은 송윤지에게 인사 한마디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감정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송윤지는 침대 가장자리에 기대어 앉아 생각이 엉키기 시작했다. 그때 눈앞에 작은 딸기 곰 인형이 눈에 띄었다.참 아이러니했다. 약혼자인 배현진과 보낸 시간보다 이 작은 곰 인형과 함께한 시간이 더 길었다.송윤지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인형을 집어 들었다. 인형을 꼭 안고 침대에 누워 천천히 눈을 감았다....송윤희가 오성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그동안 남편인 오강호는 송윤희를 찾지 않았고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송윤희는 여전히 불안했지만, 적어도 폭력에 시달리지 않는 지금이 비교적 편안한 나날이었다.이날 아침, 송윤지는 출근했고 송윤희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코너에서 갑자기 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송윤희는 반응할 새도 없이 누군가에게 입과 코가 막힌 채 인적 없는 구석으로 끌려갔다.송윤희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고 가까스로 벗어나 마주한 것은 그녀가 평생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악마의 눈이었다.“오강호? 너...”“흥! 여보, 잘 지냈어?”오강호는 뻔뻔하게 웃으며 눈빛과 표정에 계산된 악의가 가득했다.오강호는 몰락한 모습 그대로였다. 더럽고 낡은 옷에 온몸에서는 악취가 났고 머리는 기름져 보였다.송윤희는 두려움에
임지강은 송윤지를 태운 채 차를 돌려 좁은 골목을 빠져나갔다.차 안은 충분히 따뜻했지만, 송윤지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고 몸도 떨고 있었다.임지강은 대화를 시도하며 송윤지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아, 집이 이 근처인가요?”“여기서 조금 더 가야 해요.”송윤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평소엔 이 길로 안 다녀요. 오늘은 퇴근이 좀 늦어서 여기로 가면 더 가까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따라올 줄은 몰랐어요...”“이런 어둡고 조용한 골목은 조심해야 해요.”“네...”송윤지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뭔가 떠올린 듯 고개를 들어 임지강을 바라보았다.“근데... 임 대표님, 여긴 어떻게 오신 거예요?”임지강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임지강은 자신이 송윤지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사실 임지강은 최근 송윤지를 계속 몰래 따라다녔다. 혹시 집으로 가는 길에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돼서였다. 송윤지의 집은 중간 정도의 가격대인 아파트 단지에 있었고 시내 중심가라 주변은 늘 붐볐기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오늘은 예외였다.임지강은 입술이 바짝 말랐고 대충 둘러댔다.“제 친구가 근처에서 작은 바를 운영해요. 제가 가서 좀 도와줬거든요.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바람 쐬러 골목에 나갔는데... 우연히 송윤지 씨를 만난 거죠.”“술을 마셨어요?”송윤지는 눈을 크게 뜨고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차 안에서는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송윤지는 여전히 걱정하며 말했다.“술 마셨으면 운전하면 안 되죠!”“아, 뭐...”임지강은 자신이 벌인 거짓말이 허술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태연하게 계속 이어갔다.“아니에요. 제가 마신 게 아니라 친구가 마신 거예요. 그래서 친구랑 같이 바람 쐬러 간 거죠.”“그럼, 그 친구분은요?”“그게...”“친구를 골목에 혼자 두고 온 거예요?”“그러니까...”임지강은 더 이상 거짓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자신이 왜 이렇게 허둥대는지 이해
송윤지는 언니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쪽에서 다가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임지강이었다.하지만 송윤지는 왜 언니 송윤희가 임지강을 보고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송윤희는 본능적으로 송윤지를 뒤로 물리며 자신이 앞에 섰다.“언니, 왜 그래요?”송윤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임지강도 송윤희를 보고 시선이 약간 흔들렸다. 하지만 이전의 냉랭함과는 달랐다. 오히려 임지강의 눈빛에는 어딘가 간절한 느낌이 담겨 있었다.송윤희는 당황스러웠다.강렬하고 단호한 인상만 풍기던 임지강에게서 이런 간절한 눈빛을 본 건 처음이었다.“언니.”송윤지가 조용히 말했다.“이쪽은 임 대표님, 임지강 씨야. 우리 반 아이의 가족분이셔.”“아... 그래?”송윤희의 목소리가 떨렸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임 선생님은 아이가 있으신가 봐요? 그럼... 결혼하셨겠네요?”“그런 거 아니야.”송윤지가 설명했다.“이분은 아이의 외종할아버지셔.”“네, 맞습니다.”임지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임지강은 단어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말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송윤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송윤지는 임지강의 말에서 어떤 의미도 읽지 못했지만, 송윤희는 송윤지를 옆으로 끌고 가서 망설이며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윤지야, 너... 조심해.”송윤지는 송윤희가 남편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송윤지는 언니를 안심시키려 말했다.“걱정하지 마. 여긴 국제 유치원이야. 보안이 철저해서 형부가 여길 찾아와도 나를 어쩌지 못할 거야.”“내가 말하는 건 네 형부뿐만이 아니야. 그리고...”송윤희는 말끝을 흐렸다.송윤희는 몰래 고개를 돌려 멀리 서 있는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송윤지의 손을 꼭 쥐었다.2년 전, 송윤지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송윤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비록 나약한 성격이지만 모든 걸 걸고 동생을 지키고 싶었다.동생이 간신히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시작한 지금, 임지강이라는 남
이날은 송윤지가 처음으로 지각한 날이었다.송윤지는 허둥지둥 유치원 정문을 향해 달렸다. 평소 같았으면 경비 아저씨께 인사를 건넸겠지만, 오늘은 그럴 틈조차 없었다.전력으로 달려 출근 체크를 위해 지문을 찍었지만 이미 출근 시간이 1분 지나 있었다.송윤지는 몹시 아쉬웠다.단 1분의 지각으로 이번 달 개근 보너스를 놓치고 말았다.사무실로 돌아온 송윤지는 다른 선생님들이 수업 중이라 자리에 없음을 확인했다.오늘 오전에 마침 수업이 없었던 송윤지는 깊게 한숨을 쉬며 의자에 앉아 있었고 어젯밤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송윤지는 자신의 부주의함을 자책했다. 임지강의 차에서 잠들었던 것도 모자라 그렇게 오래 자다니... 눈을 떠보니 이미 아침이 밝아져 있었다.송윤지는 임지강의 외투에 싸여 있었고 차의 좌석은 어느새 평평하게 눕혀져 있었다. 임지강은 차 밖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새벽의 여명은 그의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한층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송윤지는 황급히 차에서 내려섰다. 전날의 드레스를 갈아입지도 못한 상태였다. 임지강은 송윤지를 근처에 있는 우성 호텔로 데려갔고 운전 중에 이미 송윤지가 갈아입을 방을 예약해 두었다.방 안에 들어가 보니 백화점 매니저가 여러 브랜드의 옷을 들고 송윤지를 기다리고 있었다.지금 송윤지가 입고 있는 옷은 바로 임지강이 골라준 크림색 투피스였다.세련된 샤넬풍의 디자인으로 단정하면서도 발랄했고 색상은 송윤지의 피부 톤과도 잘 어울렸다.그 옷은 마치 그녀를 위해 특별히 맞춘 듯 완벽하게 잘 맞았다.송윤지의 심장이 쿵쾅거렸다.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모습과 미소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송 선생님, 오셨군요?”원장이 문을 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하며 들어왔다.송윤지는 당황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출퇴근 기록을 확인해 보니 오늘 1분 지각하셨더군요.”원장은 부드럽게 말했다.“사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평소에 성실히 일하시고 헌신적으로 일해 주시는 분이니
“괜찮아요?”임지강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송윤지를 바라보았다.송윤지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송윤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고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분위기는 다시 어색해졌다.임지강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렸다.“저... 제가 농담 하나 해 드릴까요?”“토마토가 끓는 국물에 뛰어들었어요. 그래서 토마토수프가 됐죠. 그런데 그 친구 계란이 구하려고 같이 뛰어들었는데, 그 결과는... 토마토 계란 수프! 하하하...”송윤지는 멍하니 임지강을 바라보았다.임지강은 두 번 웃다가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송윤지를 바라보았다.송윤지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고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이 가득했다.“어... 재미없었어요?”송윤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농담은 별로 재미없었지만, 임지강이 너무 웃겼기 때문이다.분위기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차는 도로 옆에 멈춰 있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엔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송윤지는 의자의 머리받침에 몸을 기댔고 피로가 몰려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하루 종일 피곤했던 송윤지는 따뜻한 차 안에서 결국 잠이 들고 말았다. 임지강은 시동을 끄지 않은 채 히터의 온도를 적당히 조절했다.임지강은 송윤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송윤지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었고 이마와 입술에 키스하고 싶었다.그러나 임지강의 손은 송윤지의 얼굴 가까이 가기도 전에 다시 멈춰졌다. 몇 번이나 손을 멈췄던 임지강은 결국 그 욕망을 억누르기로 결심했다.송윤지를 깨울까 봐 두려웠다.만약 송윤지가 깨어난다면 이 순간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게 될 테니까.송윤지가 잠든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사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는 어떤 접점도 생기지 말아야 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은 임지강의 삶에 어렵게 찾아온 선물 같았다.송윤지가 몸을 조금 뒤척이자, 임지강은 숨을 죽였다. 임지강은 조심스럽게 외투를 덮어주며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송윤지는 거절하려 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남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송윤지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임지강의 말을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았다.송윤지에게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을 거고 나쁜 사람이 절대 아닐 거라는 믿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왔다.이상하게도 송윤지는 임지강에게 본능적인 신뢰를 느꼈다....임지강은 운전해서 송윤지를 놀이공원으로 데려갔다.오늘은 휴업일이라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송윤지가 놀이공원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마치 마법이 펼쳐진 듯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송윤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불빛이 반짝였고 곧 주변의 조명들이 송윤지의 발걸음을 따라 하나씩 켜지며 동화 속 세계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커다란 눈을 뜨고 이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멀리 하늘 높이 솟아오른 대관람차는 형형색색의 네온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가까이에서는 회전목마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그 옆에는 솜사탕 모양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송윤지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고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여기 마음에 드나요?” 임지강이 부드럽게 물었다.“네!”송윤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눈앞의 남자가 바로 이 꿈같은 놀이공원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여기서 좀 놀지 않을래요?” 임지강은 송윤지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이 순간부터 모든 놀이기구는 송윤지 씨만을 위해 운행할 거예요.”“아니에요... 너무 부담스러워요.” 송윤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그냥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그럼... 제가 사진 몇 장 찍어드릴까요?”송윤지는 잠시 멍하니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의 깊은 눈빛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번져 나오는 듯했다.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이 감정에 송윤지는 살짝 당황했다.송윤지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이걸 설렘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배현진과 함께 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
환호와 축복 속에서 배윤아는 감동과 약간의 수줍음을 담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최군성은 그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배윤아를 공주님처럼 안아 올렸다. 그 순간 밤하늘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지며 파티장은 꿈같은 황홀함으로 물들었다.연회는 떠들썩하게 흘러갔다. 모두가 최군성이 평소처럼 활발하고 외향적인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온전히 곁에 있는 배윤아에게만 집중했다. 어색한 미소를 짓거나 배윤아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 외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평소 친구들과의 유쾌한 소란도 없었다. 최군성은 조용하고도 차분한 매력을 발산하며 온전히 배윤아에게만 시선을 맞췄다.하객들을 응대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최군형과 강소아의 몫이 되었다.두 사람은 부부답게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절도 있고 품격 있게 하객들을 맞았다.한편, 임지강은 구석에 서서 연회의 활기와 웃음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듯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임지강은 와인을 천천히 삼키며 입안에 퍼지는 씁쓸한 맛에 잠시 눈을 감았다.이번 연회를 위해 배현진 역시 귀국했다. 배현진은 송윤지의 곁에 서 있었다. 배현진은 송윤지에게 어깨를 감싸는 숄을 걸쳐주며 송윤지 손에 있는 와인을 포도 주스로 바꿔주었다.송윤지는 배현진을 향해 미소 지으며, 그 눈빛엔 반짝이는 빛과 함께 어딘지 모를 온기가 스며 있었다.임지강의 가슴이 조여 오는 듯했다. 예전에 이런 눈빛은 오직 임지강을 향해 있었었다.연회는 젊은이들의 무대였고 어른들은 각자 목적에 따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최연준과 강서연 부부는 배경원 부부와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고 최씨 가문과 배씨 가문에 어떻게든 엮이려는 사람들이 아첨 섞인 대화를 이어갔다.육경섭은 술기운이 오르자,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구들과 작은 방에서 카드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고 있었다.임우정은 육경섭을 대신해 사람들을 응대하며 상황을 정리한 뒤, 구석에 서 있는 임지강을 발견했다.“오늘 정계 인사들도 꽤 많이 왔어.”임우정은 임지강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