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들은 이미 글렀으나 남은 손자까지 그렇게 되는 꼴은 볼 수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우진은 윤아의 방문을 한 번 보았다. 말은 내뱉었는데 소용이 있을지는 모르겠다.우진이 한창 생각에 잠겨있는데 앞에 사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그는 선우가 돌아온 것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대표님.”선우는 방문 앞에 가서 서서 눈을 고정한 채 입술을 약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는 말을 하지 않았고 우진도 옆에서 끈기 있게 기다렸다.한참 후에 선우가 입을 뗐다.“좀 어때요?”우진은 잠시 멈칫했다.‘아까 금방 보지 않았나? 왜 또 묻는 거지?’“그대로일 겁니다.”“그래요?”선우의 목소리는 아주 낮아 그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묻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진 비서.”그가 갑자기 부르자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대표님?”검푸른 눈빛은 마치 벽을 관통해 윤아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를 미워했겠죠?”우진이 입술을 오므렸다.“지난 5년간 윤아 님에게 잘해주고 배려도 많이 해줬으니 기억을 잃든 아니든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나를... 미워하지 않는다?”선우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난 어쩐지 나를 죽도록 미워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자신을 망가뜨리면서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요.”한참을 쳐다보던 우진이 말했다.“윤아 님이 괴롭히는 건 자기 자신이죠.”선우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뭐라고요?”“윤아 님은 기억을 잃었고 지난 5년 동안 당신이 잘해줬던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그런데도 여기에 남아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대표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까?”“네?”“지난번 윤아 님이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여대생 때문에 경찰 두 명이 조사를 받은 것 말고는 왜 지금까지 경찰이 오지 않는 걸까요?”우진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마치 주의를 주려는 듯 말했다.“왜 그런 건지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선우가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
“대표님. 윤아 님 몸 상태가 안 좋아지기도 했으니 이만 보내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윤아 님을 위해서도, 대표님을 위해서도...”“윤아 님 기억이 돌아온다 해도 분명 대표님이 잘해줬던 것만 기억할 겁니다. 원수지간이 될 일은 없을 거고요. 그리고 중요한 건 대표님도 윤아 님이 잘 살길 바라지 않습니까?”우진은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윤아 님이 정말 잘못될 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까? 그때가 되면 되돌리려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아시잖습니까.”“그만해!”감정이 북받치던 선우는 무슨 충격 때문인지 갑자기 소리를 내 끊고 음산하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누가 그런 소리를 지껄이랍니까? 진 비서가 나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 비서가 모시는 사람은 진수현이 아니라니라 나예요!”우진은 그의 감정이 통제 불능인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때부터... 그는 감정 조절이 안 되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우진은 예전에 그의 신변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탓인지 분노도 느끼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진수현 대표님을 따라간 건 맞지만 그분도 대표님께 자비를 베풀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애초에 그분이 어쩌다 그렇게 다치게 된 건지, 대표님이 어떻게 여기서 서있을 수 있었던 건지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그분과 윤아 님은 늘 대표님을 친구라고 생각했어요.”“친구? 내 여자를 뺏는 놈이 무슨 친구라는 겁니까?”“여자를 뺏어요?”우진이 가차 없이 반박했다.“윤아 님은 원래 진수현 대표님과 함께였어요.”“그래서요? 그 어린 계집애 앞에서 자기 옆자린 영원히 강소영이라는 말을 했어요. 그때 윤아가 무슨 심정이었을지 생각해 봤어요?”우진은 침묵했다.한참 후에야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세 분의 과거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두 사람이 여전히 대표님이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무리해서는 안 되고 그랬다간 이 일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라는 것도요.”선우는 자리를 박차고
정윤의 윤아의 행동의 보며 살짝 뿌듯했다. 하지만 선우가 윤아의 상황을 묻자 사실대로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전에 정신과 의사를 부르는 것도 너무 어려웠는데 만약 윤아가 뭘 좀 먹기 시작한다는 걸 선우가 알기라도 하면 더는 정신과 의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돌려보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생각이 길어질수록 정윤은 이 일을 선우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비록 정윤을 데려온 건 선우지만 이 모든 건 윤아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우는 지금 이상한 딜레마에 빠진 것 같았다. 정윤은 윤아가 좋아지는 게 선우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렇게 자아 설득을 마친 정윤은 윤아가 먹고 난 음식을 치우고 방을 나섰다.서재를 지나가는데 선우가 예전처럼 정윤을 불러세웠다.“오늘은 어때요?”정윤은 오늘 조금 빨리 걸어 선우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했다. 고용주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건 용기가 필요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선우가 거기서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냥 지나가긴 그른 것 같았다.정윤은 하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잠깐 망설이다가 선우를 보며 하려던 말을 다시 멈췄다.하지만 정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선우가 먼저 이렇게 물었다.“예전과 똑같나요?”어떻게 말해야 들키지 않을까 고민하던 정윤이었는데 입을 열기도 전에 선우가 알아서 판단한 것이었다.그러면...아무 얘기도 안 해도 되는 건가?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는 건 정윤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선우가 알아서 원하는 방향으로 판단했으니 정윤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선우는 정윤이 주저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또 전과 같은 결과라고 생각하고는 그저 손을 흔들어 정윤에게 물러가라고 했다.이에 정윤은 정말 크게 한시름 놓았다.정윤은 윤아의 병이 완전히 낫기 전까지 이렇게 쭉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선우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표정이 어두워졌다.윤아는 거의 살고 싶은 욕구가 없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소식은 아직 없었다. 우
하지만 이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선우가 늘 침묵으로 이 모든 걸 감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큰일을 겪을수록 선우는 더 침묵했고 그렇게 침묵하다 보니 오히려 성격은 부드러워지고 사람들을 향해 웃을 줄도 알게 되었다.모든 슬픔과 고통은 그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선우는 아버지의 무책임함과 그 속에서 자아를 잃은 엄마까지 원망했다.선우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모든 걸 거부하면서도 조금씩 잠식당했고 동화되어 결국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정도까지 오게 되었다.윤아를 놓아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신경 쓰이는 사람이 윤아밖에 없는데 그녀까지 떠나보내면 선우는 아무것도 없었다.아침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지태가 찾아왔다.그는 늘 하던 대로 윤아의 방으로 찾아가 윤아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소통을 거부하는 환자를 만나면 치료하기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유지태는 그만큼 인내심이 있기에 조금씩 해결하기로 했다.고작 며칠이 더 지났을 뿐인데 유지태는 윤아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고 꼭 고쳐주고 싶었다.유지태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계속 말이 없던 윤아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유 선생님.”유지태는 아마 윤아가 자기를 부를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지 멈칫했다.“윤아 씨, 드디어 저랑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저한테서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선우한테 가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네?”유지태는 약간 어리둥절했다.“저는 아프지 않거든요.”윤아가 한마디 덧붙였다.유지태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아 씨, 윤아 씨가 아프다는 게 아니니 긴장할 필요 없어요.”유지태는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그냥 편하게 대화를 나누면 돼요. 자신에게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제 말은 몸이든 정신이든 다 정상이라는 거예요.”유지태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봐 윤아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유지태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윤아를 지켜보며 윤아가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다.“그
선우는 들었던 다리를 천천히 거두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유지태를 바라봤다.“오늘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죠?”아무런 진척이 없는데 들어가서 20분이나 있었다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대표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네요? 윤아 씨에게 진척이 있다면 기뻐하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선우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유지태를 바라봤다.“그럼 말씀해 보세요, 그 진척에 대해서.”“뭐 특별한 진척은 아닙니다. 이제는 저를 무시하지 않으니 그냥 몇 마디 더 나눈 것뿐이에요.”이를 들은 선우가 미간을 찌푸렸다.“대표님, 혹시 가능하다면 대표님도 상담해 드리고 싶은데.”“무슨 말이죠?”“현재 윤아 씨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 대표님 아니신가요? 윤아 씨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과 소통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선우는 원래 거절하고 싶었지만 윤아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 아니냐는 질문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다시 삼켰다.“네, 우리 다 해야 하는 거죠?”유지태는 그들을 한번 쭉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대표님과 정윤 씨면 되겠네요.”유지태가 손으로 선우와 정윤을 가리켰다.둘은 유지태와 함께 떠났다.우진은 거기에 남아 있다가 사람들이 떠나자 노크했다.“윤아 님.”인기척이 없자 우진이 다시 말했다.“잠깐 들어가도 될까요?”“들어오세요.”우진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윤아는 우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부터 대꾸하고 싶었지만 아직 선우가 밖에 있을까 봐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우진이 한마디 덧붙이고 나서야 윤아는 선우가 밖에 없음을 확인했다.우진이 방에 들어가자 윤아는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오셨어요? 사람들은 다 갔나요?”“네.”우진은 윤아가 좋아하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다들 유 선생님과 같이 갔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신 거예요? 오늘은 좀 오래 나누시는 것 같던데.”“음, 어떤 일에 대해서요.”윤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진을 향해 다가왔다.“비서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말씀해 보세요.”“어제 저한테
우진은 바깥을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잠깐 망설이는 듯 보였다.“괜찮아요.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말씀하세요. 그들이 돌아오면 돌아오는 거죠. 어떻게 대처할지 제게도 생각이 있거든요.”사실 어제 우진과 얘기를 나누고 나서 윤아도 생각을 정리했다. 만약 정말 선우를 설득해 이곳을 떠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나가야지 너무 수동적으로만 있으면 안 된다.수동적으로 있으면 영원히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테고 우진의 심리적인 문제도 치료되지 않을 것이다.윤아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눈빛이 밝았다. 아마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은 듯했다. 본인이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는 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우진은 살아만 있다면 이 모든 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네, 윤아 님이 이미 결정했다면 윤아 님 뜻을 따르겠습니다.”선우와 정윤이 오기 전 우진은 계속 윤아에게 두 아이에 대한 일을 말해줬다.윤아와 수현의 서사에 대해서는 우진도 잘 몰랐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윤아가 두 아이와 어떻게 지내는지 우진은 종종 옆에서 보았기에 아이에 대해서는 우진도 할말이 많았다.윤아는 아이에 관한 얘기에 큰 흥미를 보였다. 우진이 말주변이 없다고 해도 윤아는 우진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열심히 들었다.윤아는 우진이 들려주는 얘기로 아이들의 성격과 표정과 생김새를 상상했다.생각하면 할수록 윤아의 눈동자는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우진은 많은 말을 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선우가 돌아오지 않자 우진이 윤아에게 이렇게 말했다.“윤아 님,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할까요. 너무 오래 있은 것 같아요.”우진이 벌써 간다는 말에 윤아는 실망한 표정으로 입술을 오므렸다. 조금 더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아쉽긴 했지만 자신과 있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생각에 윤아는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우진이 가고 윤아는 소파에 앉아 아까 우진이 들려준 두 아이의 소식을 떠올리며 기분이 더 좋아졌다.얼마나 지났을까, 정윤이 돌아왔다.정윤이 들어오는 걸 느끼지 못했던 윤아는 입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하면서 매우 잘 보살펴줬다. 분명 월급을 주는 건 선우인데 정윤은 그녀를 더 향해 있었다.“아참, 윤아 님. 요 며칠 밥 잘 드시고 계신다는 거 아직 대표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조금 더 마음 졸이게 하려고요.”마치 윤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정윤이 한마디 보충했다.윤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고마워요.”정윤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윤아가 진짜 웃은 것이다. 정윤은 그 미소에 따라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만 나간다면 윤아 님은 앞으로 문제없겠지?“별말씀을요. 앞으로도 잘 챙겨드릴게요. 매일매일 지금처럼요.”매일?윤아는 시선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대꾸하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정말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여기를 떠나면 이곳에 있는 사람도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윤아는 정윤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윤이 재잘재잘 계속 떠들어댔다.“윤아 님, 처음엔 밥을 계속 안 드시니까 너무 걱정됐어요.”며칠 전 얘기가 나오자 윤아는 할 말이 없었다. 만약 우진이 윤아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으면 정말 계속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두 아이는 어떡할까?생각만 해도 무서웠다.살고 싶은 의지가 없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윤아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가볍게 물었다.“얼마나 얘기한대요? 선우한테 알려줘요. 내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이를 들은 정윤이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윤아 님, 드디어 대표님을 만나주시는 거예요? 전에는 대표님이 오시면 상대하기 싫어하셨잖아요.”낡은 것을 파괴하지 않으면 새것을 세울 수 없다고 여기를 떠나려면 선우를 만나야 했다.정윤이 방을 나섰다. 선우와 유지태의 상담이 끝나면 윤아에게 가보라고 할 생각에 계속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선우는 나오지 않았다. 정윤은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유지태와 뭘 그렇게 오래 얘기하는 거지?약 한 시간을 기다린 정윤은 더
“선우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정윤은 방으로 돌아와 윤아에게 소식을 전했다.“네, 근데 대표님 안색이 조금 이상해 보였어요.”윤아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가 정윤의 말에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안색이 이상하다고요”정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전체적인 느낌과 표정이 전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았어요.”이를 들은 윤아가 입을 앙다물었다.정윤의 말도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며칠간 선우를 보지 못했고 윤아도 그런 선우를 신경 쓰지 않았다.대부분 자고 있었기에 선우가 몇 번 찾아와도 못 본 척하기가 일쑤였고 그러면 선우는 가만히 침대맡에 서 있었다.어떤 때는 반 시간, 어떤 때는 한 시간, 또 어떤 때는 오전 내내 서 있었다.하지만 윤아는 모르고 있었고 윤아가 잠에서 깨면 정윤이 알려줬다.그런 선우가 지금 갑자기 윤아를 만나겠다고 한다.설마 요즘 버티다가 지겨워서 끝장을 보려는 건가?...정윤은 윤아에게 새로운 옷을 가져다주었다.윤아의 옷차림은 꽤 캐주얼했다. 하얀 터틀넥 니트에 기모가 있는 바지를 입고 밖엔 회색 코트를 걸쳤다. 긴 머리까지 묶으니 전체적으로 정신이 나 보였다.비록 요 며칠 음식을 조금 먹긴 했어도 몸은 아직 허약했고 날씨가 추운 까닭에 윤아의 얼굴과 입술엔 아직 핏기가 없었다. 아직 완전히 낫지 못한 게 뻔했다.윤아는 걸어가고 싶었지만 선우가 어디서 휠체어를 가지고 왔는지 올라타게 하고는 정윤에게 밀라고 했다.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멀쩡한데 휠체어가 웬 말인가.하지만 정윤이 이렇게 말했다.“윤아 님, 아마 요 며칠 잘 먹지 못하는 바람에 몸이 허약해져서 걷기엔 힘들까 봐 휠체어를 보낸 것 같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가면 체력을 보존할 수 있을 거예요.” 윤아는 순간 선우의 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윤아는 휠체어에 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서 있으면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아직 후유증이 채 낫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휠체어가 있으니 확실히 더 편했다.약속은 저녁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