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수현의 품에 안긴 윤아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됐다고 하자 기분이 착잡했다.뭐가 됐다는 거지? 설마 말이 많아서 귀찮다는 건가?“난 네가 한 말로 족해.”수현의 말에 윤아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적어도 너의 마음속에 나도 애들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거잖아.”수현은 윤아를 안고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늦었다. 얼른 자자.”수현은 윤아를 놓아주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윤아는 옆으로 누워 수현을 바라봤다.“그럼 일단은 이사 안 해도 되는 거지? 계속 이렇게 다 같이 지내는 거지?”수현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생각을 뒤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응, 일단은 같이 지내자. 근데… 아이들이 크면 우리 나가서 살아도 되겠지?”아이들이 크면?윤아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올해 다섯 살, 곧 새해가 다가오긴 하지만 아이들이 클 때까지 기다리면 사실 아직 멀었다.윤아는 아직 머나먼 미래의 일로 수현이 기분 나빠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일단 말이 나왔으니 그러자고 했다.“그래.”수현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약속했다? 나 속이면 안 돼.”“응.”수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앞으로도 무르기 없기다.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거야.”“알았어.”수현은 윤아의 말투가 어딘가 피곤해 보인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윤아는 무거운 눈까풀을 이길 힘이 없어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비몽사몽인 상태에서도 그와 대화하려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 수현은 윤아의 볼을 만지작거리더니 부드럽게 말했다.“늦었다. 얼른 자.”“응, 잘자.”윤아가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하며 잠에 들려다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너도 일찍 자. 밤새우지 말고.”졸려서 정신도 못 차리면서 그에게 빨리 자라고 당부하는 모습에 수현은 자기도 모르게 윤아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그래, 같이 자자.”“잘자, 심공주.”잘 자라는 말을 윤아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꾸하
수현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금방 깨서 그런지 나른한 게 퍽 섹시했다.윤아는 수현의 목소리에 매혹되어 한참 멍해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수현이 반쯤 감은 눈으로 핸드폰을 꺼내 한번 확인하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윤아를 당겨 품에 꼭 끌어안았다.“아직 일러. 조금 더 자도 돼.”윤아도 더 자고 싶어서 자세를 바꾸려했다. 한 자세로 너무 오래 있으니 손이 다 저렸다.하여 수현이 끌어안자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 말했다.“나 자세 좀 바꾸자. 일단 이거 풀어줘.”눈을 감고 다시 잠에 들려던 수현이 다시 눈을 뜨고는 윤아의 허리에 감은 손을 풀어줬다.윤아가 자세를 바꾸자 수현은 다시 윤아에게 바짝 붙어 꼭 끌어안았다.“됐어? 자자.”“응.”윤아는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아까는 되게 졸렸는데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정신이 말짱해졌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다시 눈을 뜨고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잠이 오지 않을 때 침에 누워있는 게 더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 수현이 허리까지 감싸고 있자 순간 그 팔이 천근만근으로 느껴졌다. 너무 무거웠다.이렇게 생각할수록 윤아는 점점 불편해져서 몰래 손을 내밀어 허리에 올려놓은 수현의 손을 밀어내려 했다.수현이 자고 있었길래 깨우기 싫어 아주 살금살금 행동했다. 손을 밀어내고 몰래 아래층으로 내려가 무슨 일로 이렇게 복작복작한지 확인해보고 싶었다.하지만 수현의 팔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밀어낼 수가 없었다.“…”윤아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밀어내려 했다. 그러다 결국 팔을 밀어내기는커녕 수현을 잠에서 깨우고 말았다. 윤아는 거칠어진 수현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가 잠에서 깼음을 눈치챘다.“다 잤어?”아니나 다를까 수현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수현이 깼으니 윤아는 더 눈치 볼 것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응, 깨니까 다시 잠들기 힘드네. 시끄럽길래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윤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현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정신을 차려보
윤아는 수현의 저돌적인 키스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숨이 가빠졌다. 숨을 고르고 있는데 수현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왜 밀어?”툴툴대는 모습이 마치 큰 억울함이라도 당한 것 같았다.윤아가 그런 수현을 속으로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우리 아직 양치하기 전이잖아. 그래서 밀어낸 거야.”그러면서 작은 소리로 불평했다.“양치도 안 하고 키스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이를 들은 수현이 위험한 눈빛을 내뿜으며 윤아의 허리를 꼬집었다.“왜 없어? 전에는 계속 그래 왔잖아.”이 얘기만 꺼내면 윤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누가 너한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키스하래?”“싫어?”“그건 아닌데…”수현은 입냄새가 없었고 자기 전에도 양치했기에 아침에 일어나 키스를 해도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하지만 그래도 이런 행위가 내키지는 않았다. 양치도 하지 않고 키스하는 행위가 윤아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윤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수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심공주, 너는 눈치챘는지 모르겠는데, 너 지금 나 엄청 거부하고 있다?”“내가 언제?”“아니라고?”수현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진지하게 말했다.“너 돌아오고 나서 지금까지 우리 한 번도 사랑을 나눈 적이 없잖아.”윤아의 얼굴이 순간 화끈 달아올랐다.“그건 전에 네가 다쳐서 그런 거지.”윤아가 또 상처 핑계를 대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지만 수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또 그 소리야? 그게 언제 일인데. 뒤에 하라는 대로 다 하면서 말끔하게 나았잖아.”수현은 말끔하게 나았다는 말에 힘을 실었다. 윤아가 어떻게 변명하는지 지켜보려 했다.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수현은 윤아의 반박 능력을 너무 얕잡아봤다.윤아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말끔하게 다 낫긴. 다친 지 얼마나 됐다고. 상처가 아물고 아프지 않다고 해서 몸을 막 다루면 안 돼.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데, 말끔하게 나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해. 의사 선생님께서 몇 달 동안은 격렬한 운동
수현에게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한 것이다.원래도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하지만 이 말에 수현은 기분이 잡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 말을 매우 신경 쓰는 것 같았다.윤아는 그제야 자기가 말실수했음을 눈치챘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를 찾으러 가라고 하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정신을 차린 윤아가 얼른 만회하려 했다.“그런 말이 아니라…”“그럼 무슨 말인데? 다른 사람 찾아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는 소리야?”수현은 윤아가 그와 함께 있는 걸 거부한다고 생각했다. 그 원인은 윤아가 기억을 잃은 것도 있겠지만 수현이 다친 것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제일 큰 원인이라면 아마 거부감이 들고 싫어서였겠지?늘 수현이 어르고 달래야만 단맛을 좀 볼 수 있었다. 얼마 없는 달콤함이라도 느끼기 위해 수현은 늘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결국 다른 사람을 찾으라는 말이 돌아왔다.이게 진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수현은 이렇게 민감해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자로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아를 마주할 때마다 수현은 초조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절대 아니야!”수현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윤아가 얼른 다독였다.“그냥 무심코 한 말이야. 그런 생각한 적 없어.”윤아는 이렇게 해명하면서 먼저 수현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윤아의 달콤한 체취가 수현의 숨결에 파고들었다. 수현은 우울한 표정으로 윤아를 바라봤다.“가끔은 무심코 던진 말이 너의 가장 진실한 생각을 대변하기도 하지.“아니야!”윤아가 힘껏 고개를 저었다.“오해하지 마. 정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야!”말하면 할수록 윤아는 점점 다급해졌다.“다른 건 의심해도 되는데 이건 진짜 아니야.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내가 어떻게 좋아하는 남자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분이 우울하긴 했지만 윤아의 흔들림 없는 태도와 그를 좋아한다는 말에 그래도 많은 위안을
이렇게 말한 윤아는 수현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수현의 이마에는 핏줄이 튀어 올랐고 실눈을 뜨고 있었다.“?”윤아는 어리둥절했다. 그냥 말만 했을 뿐인데 이 정도로 흥분한다고? 이런 패티시가 있나?윤아가 이런 가능성을 떠올리는데 수현이 진지하게 말했다.“나 언제 묶어?”“?”윤아는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수현은 마치 구미가 확 당긴 듯 윤아의 하얗고 가는 손목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다음에 한 번 해볼까?”이 말에 윤아는 얼른 수현의 손을 뿌리치며 얼굴을 붉힌 채 쏘아붙였다.“너 지금 약간 변태 같은 거 알아?”“부부 사이에 변태가 어디 있어?”수현이 반박했다.윤아는 인내심을 잃었다. 이제 더는 듣기 좋은 말도 나오지 않았다.“나 내려가 볼 거야. 넌 더 잘 거야?”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수현도 정신이 말짱해졌다.“아니야, 같이 내려가자.”두 사람은 함께 씻고 아래로 내려갔다.아래층으로 내려온 윤아는 아까 왜 그렇게 시끄러웠는지 알 것 같았다. 어른들이 아이를 데리고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이 근처는 다 심인철의 땅이었다. 게다가 이웃집과 거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불꽃놀이를 한다 해도 이웃에 방해가 될 일은 없었다.윤아가 내려오자 심인철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시끄러워서 깬 거야?”윤아는 이 말에 대꾸하지 않고 되물었다.“왜 이렇게 일찍 깨셨어요?”“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저녁에도 일찍 자지. 요즘 젊은이들은 저녁에 잠을 안 자서 문제야. 그러니 아침에 못 깨어나지. 그렇게 악순환이 되는 거야.”익숙한 잔소리에 윤아는 머리가 지끈거려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반박했다.“아빠, 우리가 언제 밤새웠다 그래요? 나랑 그이는 그래도 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에요. 평소에 야근도 별로 없고 오락 활동도 없고. 잠도 되게 잘 잔다니까요?”“맞아요.”이선희가 윤아의 편을 들었다.“국내에서 같이 지낼 때 보니까 일찍 잠에 들더라고요. 생활 패턴이 아주 규칙적이에요.”심인철도 윤아가 와서 지내는 동안 꽤 규칙적이
식사할 때 심인철은 진태범과 이선희가 담백한 요리가 입에 맞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하지만 이선희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입에 안 맞을 건 또 뭐예요. 저희도 요즘 이렇게 간단하고 담백하게 먹는 걸 좋아해요.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보니까 이런 음식이 제일 좋더라고요.”이선희는 사실 음식을 늘 절제했다. 외모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너무 달거나 칼로리가 높은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깔끔하고 친환경적인 음식만 고수했기에 피부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하지만 최근에 이 규칙에 금이 가고 있다.이선희는 요즘 윤이와 서훈과 지내면서 아이들이 너무 예뻐 밥을 풀 때 항상 넘쳐나게 펐다.아이들이 배부르게 먹고 포동포동하게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다.하윤과 서훈은 윤아의 가르침 아래 항상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받아 갔고 절대 낭비하지 않았다. 윤아도 과하게 먹기보단 적게 먹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선희가 퍼준 밥은 아이들이 다 먹어 치우기에 너무 많았다. 먹다가 배가 부른 아이들을 이선희는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괜찮아. 절대 낭비 안 해. 남기면 할머니가 먹으면 되지.”자기관리가 철저했던 이선희는 그렇게 활짝 웃으며 손주들이 남긴 잔반을 먹어 치웠다.칼로리 계산도, 당도 계산도 더는 하지 않았다.하여 이선희는 최근에 거의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손주들이 좋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이선희가 아이를 돌보는 걸 옆에서 지켜봐 온 윤아는 이선희가 그녀보다 아이를 더 잘 보살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을 바꿔 윤아가 이선희라면 그렇게 시시각각 아이들의 행동을 살피지는 못했을 것이다.아이들을 어찌나 아끼는지 만약 윤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살겠다고 한다면 이선희 성격에 아마 별말은 하지 않겠지만 무조건 자주 아이들을 보러 올 것이고 아이들을 보고 나면 떠나기 아쉬워질 수도 있다.지금까지의 관찰로 봤을 때 남아 있겠다고 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러니 이사 가는 건 생각도 하지 말
서훈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까밝히지는 않았다. 어른에게도 어른의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선희는 이미 진태범의 계략을 눈치챈 것 같았다.진태범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선희가 눈을 찌푸리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진태범을 바라봤다. 이에 진태범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졌고 코를 긁으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왜 그래?”물어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선희가 아예 이렇게 말했다.“이따 애들이 남긴 거 당신이 해결해요.”“…”진태범은 묵묵부답이었다.“들었죠?”진태범이 코를 긁적거리며 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진태범이 대답하고 나서야 이선희는 흡족한 듯 고개를 돌렸다.더 먹으려던 진태범은 이선희의 말에 조용히 젓가락질을 멈췄다.이미 먹을 만큼 먹었는데 하윤과 서훈이 남긴 음식까지 먹으면 평소에 먹던 양을 초과하게 되니 천천히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이따가 더 먹기가 힘들어진다.두 사람의 사랑싸움을 일렬로 직관하고 있던 윤아가 수현의 귓가에 속삭였다.“아버님 원래 어머님 앞에서 이러시는 편이야?”이를 들은 수현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아빠가 엄마한테 밀리는 거?”“음, 그렇지?”“우리 집은 다 그래.”“잉?”수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애정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내 말은 우리 진씨 집안 남자들이 다 그렇다고. 사랑꾼이야. 결혼하면 와이프밖에 모르지.”“…”이 말에 윤아는 놀라면서도 어이없다는 듯 수현을 힐끔 쳐다봤다. 얼굴이 두꺼운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분명 진태범을 칭찬했는데 그 칭찬을 자기에게 돌린 것이다.휘둥그레진 윤아의 눈을 보며 수현은 그런 윤아가 너무 귀여워 자기도 모르게 윤아의 코를 쓸어내렸다.“갑자기 왜 그런 표정으로 봐? 내 말 틀려?”“아니.”윤아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거두었다.“셀프 칭찬을 이렇게 할 줄은 몰랐지.”수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내 장점은 이거 말고도 많아. 천천히 알아가게 될 거야.”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심인철은 사위와 딸이 꽁냥거리는
“알지.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 나도 다 기억해. 근데 새해잖아. 기분이 좋으니까 한잔하고 싶어서.”심인철을 이렇게 말하며 진태범을 바라봤다.“어떠세요? 점심에 한잔하실래요?”진태범이 고개를 끄덕였다.“좋네요. 마신지 한참 됐는데.”이렇게 말하자마자 진태범은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이 느꼈고 이에 난감한 표정으로 멋쩍게 코를 만지작거렸다.차화연도 이때 입을 열었다.“점심에 차를 마시는 건 어때요? 차로 술을 대신하면 건강에도 좋고, 속도 안 쓰리고.”한 사람은 못 마시게 하고 한 사람은 차로 술을 대신하자고 했다. 와이프가 이렇게 나오니 심인철과 진태범도 별수 없었다.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으면서 가족의 평화를 지내기 위해 두 사람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점심, 반백이 된 남자 둘이 나란히 앉아서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심인철이 직접 차를 만들었기에 의미가 더 남달랐다.심인철은 차를 만들면서 술을 마시지 못한 것에 아쉬워했지만 느긋하게 차를 마시면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딱히 술을 마시지 않아도 흥미진진했다.다른 가족들은 다 밖으로 나갔고 집에는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 다들 마트로 나간 것이다.이선희는 원래 여자끼리 나가서 쇼핑하면 된다며 수현더러 집에 있으라고 했는데 수현이 이렇게 반박했다.“나도 갈래요. 물건 사면 짐 들어줄 사람은 있어야죠.”이를 들은 이선희가 눈썹을 추켜세웠다.“아이고, 바쁘기로 소문난 우리 아들이 짐꾼을 자처할 때도 있네?”“왜 그래요.”수현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오늘 이렇게 짐 들어주겠다고 나섰잖아요.”이선희가 혀를 끌끌 차더니 낮은 소리로 윤아에게 말했다.“네가 있으니 이렇게 부지런하지 전에는 종래로 같이 쇼핑해 본 적이 없어. 나는 아들이 엄마랑 같이 쇼핑도 해주고 짐도 들어주고 하는 게 부러워서 나가자고 했거든, 근데 매몰차게 거절했어.”이에 윤아가 가볍게 눈을 깜빡였다.“그래요? 그러면 어머님, 다음부터 짐꾼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그이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