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기쁘면서도 부끄러웠다.고현성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보고 싶어.”출혈은 심하지 않아서 욕조 물이 살짝 붉어진 정도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출혈 부위를 닦으며 화제를 돌렸다.“아주머니 몸은 어때요? 일기 예보를 보니까 금운은 아직도 눈이 온다면서요.”“응, 손바닥만 한 곳이 전부 눈으로 뒤덮였어.”나는 핸드폰을 스피커 모드로 전환하고 침대에 놓아뒀다. 그리고 가운을 입으며 되도록 차분한 척 말했다.“정말 예쁘겠네요.”“정말 예쁘지.”나는 문득 미소를 지으며 그를 불렀다.“현성 씨.”“응?”“저도 현성 씨가 보고 싶어요.”고현성은 침묵에 잠겼다. 말을 안 하면서도 전화는 끊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먼저 전화를 끊고 운성에 있는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내 최근 상황을 알리자, 주치의는 잠시 생각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사모님, 최근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그는 내가 고현성의 아내일 때 주치의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고 자세히 말했다.“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요즘 혼란스러울 일이 많아요. 제가 누굴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오늘 이상한 전화도 걸려 와서... 좀 그러네요.”나는 전화의 내용까지 전해줬다.“수술을 받자마자 재발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모님은 심적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인 것 같네요. 일단 생리 기간을 확인해 보세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맘때였던 것 같거든요?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큰 감정 기복을 피하세요. 약까지 규칙적으로 드시면 큰 문제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주치의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두 달 전의 수술은 정말 성공적이었습니다. 감염됐던 부분이 상당 부분 회복했고, 약만 잘 드시면 완치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알겠습니다.”“밤새는 건 절대 안 되니까 푹 주무셔야 해요.”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곧장 화장실로 갔다. 생리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돼서 우선 생리대를
나는 오래전부터 고현성의 기억상실을 의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밝혀낼 방법이 없었다. 그가 말실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지금까지 저를 속이고 있었던 거예요?”고현성은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창문을 통해 그의 표정을 똑똑히 봤다. 너무나도 당당해서 이를 악물게 되었다.그가 기억을 잃은 척 연기한 것이 밝혔다고 한들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그에게 놀아난 것뿐이었다.진실을 알고 나니 내려가서 문을 열어줄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 고현성이 차분한 어조로 나를 협박하듯 말했다.“네가 나한테 보고 싶다고 한 말 녹음했어. 내려오지 않으면 고정재한테 보낼 거야.”“...”‘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치사할 수 있지?’나는 화가 나는 데도 어쩔 수 없이 내려가서 문을 열어줬다. 문을 열자 잔디밭에 있는 헬리콥터가 보였다.얇은 옷만 입고 나가자 봄바람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추운 와중에 비꼬듯이 말했다.“누가 재벌 아니랄까 봐. 등장 하나 화려하네요.”고현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돈이 많은 걸 어쩌겠어.”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뻔뻔해.”“넌 귀여워.”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물었다.“널 속이지 않고는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그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나를 끌어안더니 약간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데. 전부 잊은 척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다가갈 수 없었어. 네 방어벽을 뚫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만 했어.”고현성이 내 장례식에서 대성통곡했다는 말을 최희연에게서 들었을 때, 나는 그의 마음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나에게 다가오려고 할 줄은 몰랐다. 기억상실이라고 하면 내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넘겨줄 줄 알았던 걸까?사실 나에게는 그를 원망할 기운도 남지 않았다. 가끔 독설을 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그다지 탓하지 않았다.“근데 왜 갑자기 실토한 거예요?”나는
오늘의 고현성은 유난히 감성적이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나는 문득 임지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만약 현성이 수아 씨를 사랑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을 거예요. 그만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반대쪽은 내가 잘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나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물었다.“지혜 씨한테도 이렇게 다정하게 말했어요?”임지혜가 언급되자, 고현성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우린 그런 사이 아니었어.”“그렇게 오래 사귀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나는 진심 어린 사랑을 말하는 것이었다.그리고 나는 단지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기 마련이고, 모든 것을 집요하게 추궁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뒤늦게 무례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빠르게 말을 바꿨다.“제가 괜한 질문을 했네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줘요.”나는 이 주제를 빨리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고현성은 오히려 진지하게 설명을 이어갔다.“내가 지혜를 만난 건 대학교 졸업 직후였어. 그때 내 친구들은 모두 여자친구가 있었고, 나도 지기 싫어서 선택한 사람이었지. 근데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 내가 금욕적이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거든. 우린 그냥 몇 년 동안 겉으로만 연인 관계를 유지했어.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랑이 뭔지도 몰랐어. 괜히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고현성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지혜한테 마음이 없으면서도, 강제로 헤어지게 하니까 기분이 나빴어. 그래서 너를 원망하게 된 거야. 3년 동안 속으로는 원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뭘 원했다는 거예요?”잠시 기억을 되새겨 보니, 결혼한 3년 동안 고현성은 집에 굉장히 자주 돌아왔다.고현성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3년 후 지혜가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해준 적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결
전화는 아주 신속하게 끊겼다. 갑자기 남자 목소리가 들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고현성이 정답을 말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나는 고현성이 대뜸 임지혜의 이름을 말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는 이 장난 전화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현성은 전화를 돌려주며 나를 껴안았다.“내가 아직 지혜랑 만나고 있을 때, 일이 바빠서 데이트도 별로 못 하고 그랬어. 대부분 시간은 나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지. 지혜는 기분이 나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맞혀보라고 했어. 물론 난 상대해 주지 않았지만.”잠시 말을 멈춘 그는 훨씬 어두워진 눈빛으로 말했다.“이 일은 내가 조사할게. 임지혜가 한 짓이라고 해도... 내가 확실하게 답을 줄 거야.”2달 전 최희연이 임지혜에게 단단히 화가 나서 차로 들이받은 적 있다. 그때의 고현성은 임지혜에게 답을 주겠다고 했다.“난 지혜를 위해 진실을 밝힐 거야. 네가 다쳤어도 똑같아. 그리고 내가 가만히 있으면 지혜가 시끄럽게 굴 거야. 남자친구가 돼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고현성은 정말 좋은 남자다. 단 사랑하는 사람에 한해서 말이다.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네, 믿을게요.”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의 품에 기대어 몸을 더 가까이 밀착시켰다. 그러나 그가 팔을 벌려 더 가까이 끌어안을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찔했다.“움직이지 마, 그냥 가만히 있어 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부의 뜻을 알아챈 그는 더 이상 강요하지도, 어떤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잠시 후 그는 나를 내려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침대에 편하게 엎어져 있었다.머리를 말리고 난 고현성은 어젯밤 입었던 정장을 다시 입었다. 구겨진 셔츠를 본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말했다.“선양그룹은 내 집이랑 더 가까워. 괜찮으면 거기서 살아도 돼.”나는 그의 집에서 보낸 3년을 기억했다. 혼자 텅 빈 별장에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지내던 시절을 말이다.다시 돌아가고 싶
“응, 안 먹었으면 내가 데리러 갈게.”진화그룹에서 집까지 거리가 꽤 되었다. 오가려면 두 시간은 걸릴 것이라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막 먹었어요.”고현성은 항상 바빴다.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회사였다.나는 그가 두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는 의심 없이 약을 잊지 말고 챙겨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이때 강해온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대표님, 그 사람을 찾았습니다.”나는 강해온을 바라보며 물었다.“누구예요?”“유서정입니다.”나는 유씨 가문과 아무런 원한이 없었다. 심지어 현재는 협력 관계에 있다.유서정은 그런 짓을 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기 때문이다.나는 의아한 기분으로 물었다.“확실해요?”“최근 임지혜 씨와 접촉한 사람 중 한 명이 유서정 씨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서당에서 걸려 온 전화라...”“그것 말로 다른 단서는 있어요?”“없습니다. 그냥 제 추측일 뿐이라서요. 확실하게 하려면 서당에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포폰은 유씨 가문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장난 전화는 사소한 문제였다. 하지만 곧 죽을 거라는 저주가 내 마음속에서 불안감을 유발했다.나는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내가 어떤 명분으로 방문하는 게 좋을까요?”강해온은 우물쭈물하며 쉽게 말하지 못했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이제야 강해온은 말했다.“사실 유서정 씨는 고 대표님이 잘 압니다. 고 대표님한테 부탁하시면 쉽겠지만...”강해온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고 대표님이 연루되면 상황이 복잡해질 겁니다.”‘현성 씨가 잘 안다고?’나는 고현성을 바라보던 유서정의 눈빛을 바라봤다. 유서정은 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궁금한 마음에 계속 물었다.“왜요?”“유서정 씨의 새어머니가 고 대표님의 고모입니다. 두 집안은 항상 가까웠어요. 만약 유서정 씨가 이번 일의 배후라면, 고 대표님은 처리하기 곤란할 겁니다
내가 진유겸의 연락처를 조사하는 일까지 고현성이 알고 있을 줄 몰랐다. 이렇게 되면 연씨 가문에 그의 내통자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설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건 아닌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사생활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현성은 내 복잡한 감정을 눈치챘는지 담담하게 설명했다.“오늘 아침 네 비서가 말해줬어.”나는 말문이 막혔다.서당으로 가는 길, 나는 차 안에서 강해온에게 물었다.“희연이가 진유겸의 연락처를 알아보라고 부탁했죠?”강해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찾았어요?”그는 고개를 흔들었다.“회사 연락처만 찾고, 개인 연락처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 대표님한테 문의했더니 네트워크 데이터를 통해 찾았다고 합니다.”내가 왜 고현성에게 연락했는지 묻기 전에, 그는 이미 솔직하게 털어놨다.“현성 씨가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연락처를 알려줬어?”강해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고 대표님은 대표님의 일에 전혀 간섭하지 않습니다.”그렇다면 고현성은 나한테 진유겸을 조사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이다. 정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서당은 운성과 달리 해가 강하다. 아직 3월밖에 안 됐는데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내가 외투를 벗자 강해온이 받아 들며 말했다.“혹시 일을 망칠까 봐 유씨 가문에는 미리 알리지 않았습니다.”“그럼 찾기 쉽지 않겠네요. 이미 번호를 폐기했을지도 몰라요. 다시 전화하지 않는 한 말이에요.”강해온은 웃으며 물었다.“서당에 직접 오신 이유가 전화 오길 기다렸다가 현장에서 잡으려는 거 아닙니까?”지금까지 전화를 걸어 온 패턴을 보면 오후에 또 장난 전화가 올 것이다. 만약 유서정이 맞다면 절대 피할 수 없게 된다.나는 웃으며 말했다.“우선 유씨 가문 밖에서 기다려 봐요.”전화가 오기만 하면, 나는 강해온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전화를 걸었다는 건 유심이 아직 삽입된 상태로 있다는 것이니 증거를 확보할 수
“아, 선물 전하러 오신 분이죠?”“네.”멋대로 대문을 열 수 없었던 도우미는 황급히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집사님한테 소식을 전할게요.”도우미가 집사를 부르러 간 동안, 내 핸드폰은 계속해서 울렸다. 이대로 전화를 받지 않을 수는 없어서, 나는 결국 수락 버튼을 눌렀다.전화 건너편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너 날 조사하고 있더라?”나는 고개를 돌려 유씨 가문의 저택을 바라봤다.커다란 별채가 모여 있는 공간 너머로 보이는 앞마당의 인공 호수에는 금빛 잉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장면이었다.나는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이런 전화를 받고도 조사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왜, 내가 임지혜 씨를 조사하는 걸 알고 마음이 급해졌어요?”“네가 날 찾을 수 있을 것 같아?”“그건 두고 보면 알겠죠.”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그 순간, 핸드폰 건너편에서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무시하고 나에게 위협을 가했다.“시한부 주제에 나대지 마. 네 모든 행동이 나한텐 서투르고 멍청해 보여. 넌 정말 불쌍한 인간이야.”그는 항상 나의 건강 문제를 비꼬는 식으로 말했다. 이때 핸드폰 건너편에서 또 다른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수아 대표님이 보낸 사람이 왔습니다.”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유씨 집안사람이 틀림없었다.상대는 당황한 듯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집사가 문을 열어주었다.내가 누군지 몰랐던 집사는 강해온에게 물었다.“강 비서님, 이분은 누구신가요?”내가 먼저 나서서 대답했다.“저는 강 비서님의 비서입니다.”강해온은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고 나를 ‘최희연’으로 불렀다. 집사는 내게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강해온에게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회장님은 해외에서 요양 중이라 서당에 계시지 않습니다. 대신 대표님이 집에 계십니다.”나는 의심스럽게 물었다.“회장님은 요즘 회사 일에 잘 관여하지 않으신다 들었습니다. 그러면 가문
유지영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의 시선은 서서히 유서정에게 향했다.유서정은 아주 태연해 보였다. 그러나 나보다도 급한 말투로 유지영을 다그쳤다.“지영아, 네 목소리가 왜 이렇게 들려?”유지영은 입술을 깨문 채 무언가 생각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연수아 당신 원하는 게 뭐예요? 날 찾아서 어쩌려고요? 어쩌자는 거냐고요?!”이 말을 들은 순간에는 유서정을 의심하던 마음이 다시 유지영 쪽으로 기울었다.그녀가 나를 연수아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집사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혹시 선양그룹의 연수아 대표님이세요?”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무시하던 집사가 이제는 존칭을 사용하며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나는 집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이틀간 녹음해 둔 것을 유지영에게 들려주었다.녹음을 들은 유지영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그녀는 급하게 유서정을 바라봤다. 유서정은 담담하게 달래기만 했다.“겁먹지 마, 지영아.”그러고 나서 유서정은 또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우리 유씨 가문 잘못이에요. 저도 지영이가 이런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어요. 선양 쪽에서 먼저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면 우리가 책임을 질게요.”유서정은 아주 쉽게 말했다. 이번 일을 금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필요한 건 돈이 아닌데도 말이다.나는 잠시 말없이 저택의 정원을 바라봤다. 고풍스러운 가짜 바위와 정자가 잘 꾸며져 있었지만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나를 잘 아는 강해온이 내 생각을 읽고 대신 말했다.“이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입니다. 저희가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죠. 판단은 경찰에 맡기겠습니다.”유서정은 놀란 듯 물었다.“이 정도의 체면도 안 지켜주는 건가요?”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그렇게 너그럽지 못해서요. 은혜를 원수로 갚지만 않으면 사람으로서 할 도리 다 했다고 생각해요.”나는 또 얼굴이 창백해진 유지영을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