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도 의심이 많은 성격이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많았다.이번 일은 유서정이 저지르고 유지영에게 덮어씌우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에 유지영이 가만히 있을 것이다. 일을 빨리 끝내려고 말이다.이런 생각에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유서정에게 물었다.“서정 씨 듣기로는 임지혜 씨와 친하다면서요?”반대로 유지영은 임지혜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맞아요, 오래 알고 지낸 친구예요.”유서정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흠잡을 데 없는 태도였다.나는 순간 깨달았다. 유지영은 희생양일 뿐이다. 그러나 핸드폰을 들고 있던 사람은 유지영이고 유서정에 관한 단서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유지영이 범인을 자처하는데 내가 어쩌겠는가? 더군다나 그녀를 통해서 유씨 가문을 경고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이때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고현성의 문자였다.[너 유씨 가문에 있어?][이미 알고 있었잖아요.]다음에 그는 답장으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그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출장 간다더니 갑자기 거긴 왜 갔어? 설명할 준비는 됐고?”[제가 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요?]고현성은 한동안 답이 없었다. 그러다 다시 문자가 왔을 때 집사가 들어오며 말했다.“고 대표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고현성이 들어오기 전, 나는 몰래 음성 메시지를 클릭했다. 이어폰에서는 그의 슬픈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일은 내가 알아보고 있었어. 근데 왜 갑자기 서당으로 가버린 거야? 수아야, 난 너한테 못 해준 게 너무 많아. 그러니 이제는 나를 조금만 더 의지해 주면 안 될까?”나는 메시지를 들으며 고현성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차가웠다. 하지만 날렵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커다란 체구로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켰다.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그렇게 입고 안 추워?”덤덤한 표정과 달리 화가 난
나는 문득 고현성이 보낸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현성 씨를 못 믿어서 여기까지 온 건 절대 아니에요. 그냥 우연히 단서가 잡혀서 오게 됐어요.”고현성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그럼 거짓말은 왜 했어?”‘거짓말...’나는 출장으로 서당시에 오게 됐다고 했다. 다소 초라한 변명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솔직하게 말했다.“사건의 단서가 유씨 가문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원래는 현성 씨한테 알려주려고 했는데, 강 비서한테서 들으니 유씨 가문의 사모님이 현성 씨 고모라고 하더라고요. 현성 씨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숨겼던 거예요. 미안해요.”말을 마친 나는 그에게 물었다.“그런데 현성 씨는 왜 갑자기 서당에 온 거예요?”고현성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나를 한참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 나는 얼굴을 만지작대며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봐요?”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달콤한 말을 했다.“네가 보고 싶어서. 너랑 다른 도시에 있고 싶지 않았어.”그는 곧 말을 이어갔다.“그래서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널 만나러 왔어. 너한테 연락하기 전에 고모가 먼저 연락할 줄은 몰랐지만. 나도 마침 서당에 있다니까 네가 유씨 가문의 저택에 있다고 알려줬어.”알고 보니 고은경은 거실에 나오기 전에 이미 고현성에게 연락했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일부러 고현성에게 전화를 한 건 나를 속이기 위해서였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화났어요? 다음부터는 꼭 솔직하게 말할게요.”내가 이렇게 말하자 고현성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이제 어디로 갈 거야?”“저는 상주시로 돌아가고 싶어요.”“조민수 때문에?”나는 그의 볼을 콕 찌르며 대답했다.“네, 내일 정기검진이 있어요. 안 가면 민수 오빠가 걱정할 거예요. 운성까지 찾아올지도 모른다니까요.”‘오빠’라는 말을 듣고 고현성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는 손을 뻗어 나를 감쌌다. 무언가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결국 말을 삼켰다.
조민수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두 사람 결혼 생각이 없다고?”“적어도 지금은.”조민수의 깊은 눈동자에 내가 담겼다. 그 순간 고현성이 갑자기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올라가자.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힘들었잖아. 올라가서 샤워하고 밥이나 먹자.”이 말을 들은 조민수는 별장 열쇠를 나에게 넘겨줬다.“난 오늘 야근이야. 내일 아침 데리러 올게. 다른 문제 없으면 운성으로 돌아가도 돼. 하지만 아니라면... 여기서 지낼 준비 하고 있어.”조민수는 나를 안고 토닥이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가 떠난 다음 고현성이 대뜸 말했다.“둘이 안고 있는 거 난 싫어.”“사랑하는 걸 어떡하겠어요.”“사랑?”나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네, 민수 오빠는 세상에서 저한테 가장 잘해주는 사람이에요. 어머니가 남겨준 사람이니까요.”“그럼 나는?”나는 그를 힐끗 노려보며 말했다.“아직까지만 민수 오빠라고 해두죠.”고현성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이제 나와 조민수의 관계가 궁금한 듯했다.“내가 알기로 연씨 가문과 조씨 가문 사이에는 별다른 관계가 없을 텐데? 둘이 어떻게 알게 된 거야?”나는 아무에게도 조민수의 과거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건 조민수의 비밀이므로 내가 함부로 말할 자격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충 둘러댔다.“어머니 친구 아들이에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죠. 저한테는 그냥 친오빠 같아요.”고현성은 내 대답에 만족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없이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질투하는 모습조차 귀여웠던 나는 웃음을 참으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일단 조민수 애인의 방으로 가서 클렌징을 찾았다.방에는 화장품이 아주 많았다. 예쁜 옷도 많았다. 나와 몸매가 비슷했기에, 나는 아무 옷이나 골라서 새로운 화장품과 함께 내 방으로 들고 갔다.그렇다, 이 별장에는 내 방이 있었다. 그러나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었다.나는 메이크업부터 지우고 씻으러 갔다. 확인
고현성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바다에 비친 은하수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의 눈빛이 되냐고 묻고 있었다.나는 큰 결심을 내리고 대답했다.“좋아요.”...아침에 일어났을 때, 고현성은 내 곁에 없었다. 일어난 지 한참 됐는지 이불에서는 그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나는 몸을 일으켜 씻고 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언니는 어젯밤 새벽 3시 정도에 답장을 보냈다.[나 금방 깼어. 너 몸은 어때? 참고로 결혼은 당분간 희망 없을 것 같아.][왜요?]‘혹시 둘이 싸웠나?’답장이 바로 없자 나는 밖으로 나왔다. 고현성과 조민수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두 사람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살금살금 다가가자 조민수가 덤덤하게 협박하는 것이 들렸다.“두 번 다시 수아한테 상처 주지 마요. 안 그러면 내가 데리고 떠날 거예요.”“조민수 씨와는 상관없는 일일 텐데요.”조민수의 안색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나는 소리 내어 그를 불렀다. 내가 내려온 것을 보고 그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가자, 병원에 가야지.”내가 없을 때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차에 오른 다음에도 흉흉했다. 내가 애써 화제를 꺼내도 응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조민수는 아주 피곤해 보였다.검사가 끝난 20분 후, 의사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했다. 다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아 보여서 안정을 취할 것을 제안했다.조민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너 요즘 스트레스받을 일 있었어?”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나도 몰라. 장례식이 끝나고 쉬지 못해서 그런가?”“흠... 운성에 돌아가서는 몸조리 잘해.”운성에 가도 된다고 허락받은 것이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응!”“약도 제때 먹고.”“알았어.”조민수는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줬다.비행기에서 고현성이 말했다.“조민수 씨는 널 과하게 걱정해.”“오빠니까요.”“여자친구는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고현성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혹시
“사모님, 암 말기입니다...”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의사에게 물었다.“뭐라고요?”의사는 진단서 위에 팔을 올려놓고 또박또박 말했다.“사모님, 2년 전 유산했을 때 자궁 소파술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가 후에 감염까지 된 바람에 자궁에 암 덩어리가...”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의사의 말을 가로챘다.“그럼 얼마나 남았나요?”“암세포가 퍼져서 길어야 석 달 정도...”그 후로 의사가 더 뭐라 말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머리가 윙 했다. 머릿속에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만 계속 반복해서 맴돌았다......그날 저녁, 고씨 가문 별장.조금 전 나와 뜨거운 잠자리를 가진 남자가 바로 나의 남편 고현성이다.결혼 3년 동안 그는 매번 별장으로 돌아와 나와 관계를 가진 후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마치 더러운 뭔가를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후에는 매정하게 나가버렸다.별장으로 들어와서부터 나갈 때까지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오늘도 그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후 양복을 갈아입고 또다시 나가려고 했다.나는 침대에 앉아 고현성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러자 고현성이 입술을 깨물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그의 무관심한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나는 하고 싶었던 말들이 전부 목구멍에 막혀 결국 이 한마디만 했다.“조심해서 가요.”아래층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의 검은색 마이바흐를 내려다보면서 고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고현성이 전화를 받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나와 고현성은 올해로 결혼한 지 3년 되었다. 고현성과 결혼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그 여자의 목숨으로 고현성을 협박하면서 나와의 결혼을 강요했다.고현성은 반항도 해봤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나와 결혼했다.3년 동안 나를 대하는 고현성의 태도는 늘 차가웠고 잔인하기만 했다. 심지어 나와 잠자리를 할 때도 그 여자의 이름 임지혜를 부르곤 했다
고현성이 살짝 멈칫했다.“또 무슨 수작이야?”창밖에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의 23살 생일까지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그날은 섣달 그믐날인데 그때까지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매끈한 배를 어루만졌다.“내가 현성 씨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나에 대한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딱 3개월만 연애해요, 우리.”고현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꿈도 꾸지 마.”휴대전화 너머로 온기라곤 전혀 없는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방 안에 가득한 외로움이 날 덮치는 것 같았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심장이 저릿할 정도로 아팠다.나는 울고 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현성 씨, 나랑 이혼하고 싶다면서요? 그럼 이렇게 해요. 나랑 3개월 연애하는 동안에 예뻐해 주고 챙겨줘요. 설령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날 사랑하는 척해요. 만약 3개월 버티면 이혼해 줄게요. 그리고 연씨 가문의 모든 재산도 다 현성 씨한테 줄게요. 생각해봐요. 3개월만 버티면 나랑 이혼할 수 있고 수십조 원에 달하는 재산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 그리고 당당하게 임지혜 씨와 결혼할 수도 있고요. 현성 씨한테는 전혀 밑지는 장사가 아니에요.”고현성이 덤덤하게 물었다.“너랑 같이 3개월 동안 연기하라고?”3개월 동안 관중은 나 하나뿐이었다. 결국에는 나 자신을 기만하는 거나 다름없었다.나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말했다.“네. 나랑 연애해요.”“허. 역겨운 소리 좀 그만할래?”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고현성은 내가 보는 앞에서 검은색 마이바흐를 몰고 별장을 나가버렸다....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머리가 윙 했고 목이 너무 말라 침을 삼킬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어젯밤에 너무 많이 운 모양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의사의 말대로 약을 먹은 다음 준비한 후 회사로 출근했다.고현성의 아내인 것 외에 나는 선양 그룹의 대표였다. 한창 회사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데 고씨 가문 진화 그룹의 회장 고승철에게서 전화
고현성이 화를 내면서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내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나가려던 그때 가장 만나기 싫었던 그 사람을 만났다. 바로 고현성이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는 여자 임지혜.나는 임지혜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고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임지혜가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고씨 가문 사모님 맞죠?”순간 멈칫한 나는 그녀를 흘겨보았다.“왜 그러시죠?”“사모님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좋아요?”임지혜의 도발에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옅은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지만 립스틱은 진한 레드색을 발랐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도 얇은 롱원피스에 하얀색 코트로 가녀린 몸을 가리고 있었다.‘예쁘긴 하네. 이러니까 현성 씨가 그렇게 좋아하지.’연적끼리 만나봤자 좋을 일이 없었다. 나는 임지혜를 무시하고 그냥 가려 했지만 그녀가 나를 비웃었다.“내 자리를 빼앗아 갔는데 편할 리가 없겠죠. 현성이가 수아 씨를 사랑해요? 귓가에 대고 달콤한 얘기를 해주던가요? 밥도 해준 적 없죠? 특별한 날에 선물 사주던가요? 한 번도 그런 적 없죠? 현성이는 절대 수아 씨한테 해주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그저 선양 그룹 대표라는 이유로 사모님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에요.”임지혜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녀가 한 말들은 전부 고현성이 그녀에게 해줬던 것들이었다. 질투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질투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모님 자리도 지키지 못하게 생겼는데...나는 덤덤하게 웃으며 맞받아쳤다.“그럼 지혜 씨는요? 3년 전에 난 지혜 씨한테 기회를 줬었어요. 지금 인정하든 안 하든 현성 씨 와이프는 나예요. 그리고 지혜 씨 말이 맞아요. 난 선양 그룹 대표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현성 씨한테 결혼을 강요했어요. 근데 당신은...”절대 남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상대가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만 건드린다면 그대로 갚아주는 성격이었다.그런데 고현성은 이런 나를 3년이나 모욕했다
고현성은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발견하고는 소파에 편하게 앉아 내가 저녁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 몇 시간 동안 내버려 둔 탓에 음식이 차갑게 식어버렸다.입맛이 없어서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던 나는 밥을 천천히 먹었다. 그런데 기다리다가 인내심이 바닥난 고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연수아, 대체 어쩌겠다는 거야?”나는 그릇을 내려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때 고현성의 시선이 음식 쪽으로 향했다.“다 네가 한 거야?”고현성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나는 설거지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무덤덤하게 말했다.“낮에 현성 씨한테 저녁에 집에 와서 밥 먹겠냐고 물어봤었잖아요. 들어오겠다고 해서 현성 씨가 좋아하는 요리들로 한상 차렸죠.”고현성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나는 수저를 치우던 동작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두 눈 사이에 예전에 느꼈던 따뜻함은 이제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침묵을 택했다. 아무 말 없이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나왔을 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위층을 올려다보며 올라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안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어보니 고현성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다리 위에 얇은 금색 노트북이 놓여있었다.나는 잠옷을 챙기고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손가락이 하얗게 될 때까지 욕조에 앉아 있다가 욕실 문을 연 순간 짙은 기운이 날 감싸 안았다.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침대까지 끌려갔다. 마지막에 고현성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혜가 그러는데 3년 전에 네가 강요해서 미국으로 간 거래.”고현성은 이미 내가 그런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여자는 3년 전에 그와 6억 원 사이에서 고민도 없이 6억 원을 선택했다.그렇다. 3년 전에 내가 임지혜에게 선택을 하라고 한 건 사실이었다.만약 임지혜가 고현성을 선택했더라면 나는 고씨 가문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