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럼 조금 쉬었다가 내가 요리해 줄게.” 멈칫하던 고현성이 부드러운 어투로 물었다.“뭐 먹고 싶어?”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요리할 줄 알아요?”질문이 입 밖에 나오고 나서야 불필요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전에도 그가 나를 위해 요리해 준 적이 있었으니까.임지혜가 좋아하는 굴비 요리였지만.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못 먹어봤어?”“먹어봤죠. 그냥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에요.”“뭐 좋아해, 굴비?”고현성은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전에 네가 굴비 요리 자주 해주던 게 생각나네. 제일 좋아하는 거지? 이따가 한 마리 구워줄게.”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물었다.“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생선을 구해요?”“있어. 비서가 전에 가져왔어.”짧게 대꾸한 나는 굴비를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았다.이제 와서 정정하기도 싫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그런데 무척 신기했다. 나와 고현성은 지금 아주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도 무차별적으로 그에게 쏘아붙이지 않았다.바로 그때 비서가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고현성이 보는 앞에서 전화를 들고 그의 설명을 들었다.“대표님, 인터넷에 떠도는 그 기사는 고 대표님께서 막았어요. 영상도 지우는데 큰돈을 들인 것 같아요.”나는 고현성을 힐끗 쳐다보았고 그는 덤덤한 표정이었다.대꾸한 나는 문득 진서준이 떠올랐고 유씨 가문과의 계약을 잃고 진씨 가문에서 분명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잠시 고민하던 내가 말했다.“연씨 가문에 요즘 어떤 계약이 있지?”비서가 의아하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 대표님?”“진씨 가문에 큰 계약 두 개를 골라서 진서준에게 맡겨요. 이건 강 비서가 알아서 하고 나 대신 그 사람 챙겨줘요.”전화를 끊자 고현성이 의아한 어투로 물었다.“진서준한테 잘해주네. 전에 알던 사이야?”나는 대답하지 않고 호기심에 물었다.“그런데 왜 진씨 가문을 도와준 거예요? 단지 연씨 가문과 맞서기 위해서?”그가 단호하게 대답했
다들 내가 엉뚱한 사람을 사랑해서 연씨 가문을 고현성에게 준 거고 원래는 고정재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3개월 전 연씨 가문을 고현성에게 줬을 때 그는 나와 이혼하고 싶어 했고 나는 그를 뼛속까지 이가 갈릴 정도로 미워했지만 그래도 연씨 가문을 넘겨줬다.그를 사랑한다는 것 말고도 그가 제일 적절한 사람이었으니까.그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고 진화그룹을 작은 기술 회사에서 이렇게 큰 규모로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뜻인데 야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연씨 가문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고정재였다면 난 아마 연씨 가문을 주지 않았을 거다.그는 예술가였고 재계는 뜻이 없었기에 내가 아무리 그를 사랑해도 연씨 가문이 우선이었다.그러니 고현성이 어부지리로 가진 건 절대 아니었고 상황이 이렇게 된 지금도 나는 연씨 가문을 그에게 넘겨주고 싶었다.이런 오해가 마음속에 남아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해명했다.“고현성 씨, 어부지리 아니에요. 내가 생각이 있어서 그 쪽한테 넘겨준 거예요. 주위를 둘러봐도 운성에 제일 능력 있고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니까.”그는 3년 동안 연씨 가문과 대적했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고현성은 잠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가 내 팔을 잡고 물었다.“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해?”“오빠가 나보고 상주로 오라고 재촉하고 있어요.”“연씨 가문을 내게 준다는 거야?”“네. 나는 먹고 살 걱정 없고 자식도 없는데 남은 시간도 장담 못하니까 연씨 가문에만 매달리고 싶지 않아요. 현성 씨가 제일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여전히 연씨 가문을 넘기고 싶어요.”“나를 원망하지 않아?”그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하죠. 예전에 나한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는데.”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원망할만해.”“연씨 가문은 원하면 언제든 가져가요.”“그럼 고정재는?”나는 인상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그 사람 얘기를...”그는 무
나는 머리를 말린 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가지고 놀았고 우리 둘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고요한 분위기도 결국 깨져버렸고 적막을 깬 건 윤다은의 전화였다.왜 나한테 전화했을까... 나는 의아했다.내가 받을지 말지 망설이고 있을 때 고현성이 고개를 내밀며 위에 뜨는 이름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한 듯 말했다.“다은이 눈에는 고정재밖에 없어.”고현성은 고정재를 형이라고 부른 적이 거의 없었고 두 사람은 가까워 보이지 않았다.고현성이 옆에 있어서 전화를 받지 않자 윤다은은 아예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걸었다.짜증이 난 고현성이 내 손에서 전화기를 빼앗아 통화버튼을 누르고 물었다.“다은아, 무슨 일이야?”짜증스러운 고현성의 목소리와 윤다은도 그가 받을 줄 몰라 잠시 당황하며 말했다.“작은오빠, 수아 언니는?”“네 새언니는 왜 찾는데?”그는 뻔뻔하게도 윤다은에게 새언니라고 부른 것을 요구했고 윤다은도 제꺽 반응하며 물었다.“새언니는?”고현성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뭐 때문에 찾는 건데?”라고 물었다.“나 또 경찰서에 갇혔어.”“...”윤다은은 애처롭게 설명했다.“큰오빠를 찾을 엄두는 안 나고 오빠도 날 욕할 것 같아서 수아 언니한테 연락했어.”고현성이 차갑게 말했다.“쌤통이다.”“...”“작은오빠, 나 좀 구해줘.”“알아서 해.”고현성은 잔인하게 거절하고 바로 통화를 끊었고 나는 망설이며 말했다.“이러면 안 되지 않나요?”고현성은 나에게 휴대폰을 다시 건네며 말했다.“사고 칠 땐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 안 한대? 하루 동안 가둬서 혼 좀 내야 해. 내일 시간 나면 데리러 가야지.”고현성은 잠시 망설이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다은이도 좀 불쌍해. 너 못지않게 고정재를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고정재랑 같이 자랐으니 몇십년은 됐네.”그는 자주 고정재를 언급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았다.나는 짜증스럽게 물었다.“고정재 씨 얘기 그만
고현성이 샤워 가운을 당기는 순간 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더욱 화가 났다.나는 서둘러 이불을 집어 내 몸에 감고 고현성에게 매섭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의 노골적인 눈빛이 내 몸에 향하는 걸 보았다.나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죽은 듯이 누워있는데 그 남자는 여전히 침대 반대편에 가만히 있었고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특히 지금은 내가 고양이 앞에 선 쥐가 된 기분이었다.나는 감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손으로 이불 모서리를 단단히 잡았다.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보고 고현성은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경멸하듯 말했다.“한심하긴.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겠어?”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현성이 갑자기 내 몸을 덮쳐왔고 나는 애써 침착한 척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내려가요.”허, 뻔뻔한 남자!지금 내 마음은 그에게 향해 있지 않았고 그를 사랑하지도 않았다.게다가 이런 상황은 한번 일어나면 두 번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운성을 떠나지 않는 한 그는 늘 갖은 방법을 동원해 나를 침대로 끌어들일 것이다.나는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싫어요.”나는 몸부림쳤고 고현성은 어두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뻗는 순간 내 몸에서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미안, 참을 수가 없었어.”나는 말없이 가운을 주워 입었고 방은 유난히 조용했다.고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나는 곧 통유리창 너머로 그가 수영장으로 건너가는 모습을 보았다.이 방은 마침 별장 대문의 풍경을 담고 있었는데 그는 수영장 라운지에 앉아 옆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몇 모금 피우고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담배를 껐다.유난히 작아 보이는 그의 등이 어젯밤과 겹쳐 보였다.나는 다시 뒤돌아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눈을 감고 뒤척이다가 갑자기 비서가 나에게 걸었던 전화가 생각났고 그는 고현성이 많은 돈을 써서 검색어를 삭제했다고 말했다. 사실 나를 도와줄 필요가 없는데 그는 여전히 그렇게 했다.게다가 갖은 수단을 써서 연씨 가문을 상대한 것
“아, 뒷마당에 어떤 물고기를 키워요?”지루한 질문이었지만 고현성과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고 다행히 그가 참을성 있게 내 말에 대꾸했다.“다 조기야.”조기...임지혜를 위해서 키우는 건가?여기 임지혜를 자주 데려오나?나는 실망한 내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고 짧게 대꾸하며 무심하게 말했다.“임지혜 씨가 전에 굴비 좋아한다고 나한테 말한 적 있어요.”고양이를 쓰다듬던 고현성의 손이 멈췄고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여기 데려온 적 없어. 걔를 위해 키우는 것도 아니고.”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럼 누구를 위해 키우는 거예요?”고현성의 눈빛이 나를 향했고 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나를 위한 거라고 하지 마요. 난 굴비 싫어해요.”고현성은 당황했다.“뭐?”나는 태연하게 말했다.“난 굴비 싫어해요. 비린내가 심하고 가시도 많은데 임지혜 씨 말로는 당신이 좋아한다길래 결혼하고 당신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매번 요리했죠. 비록 결혼생활 동안 당신은 내가 한 요리를 한 번도 먹지 않았지만.”3년간의 결혼 생활에 난 모든 걸 바쳐 헌신했고 그때의 나는 참 한심했다.고현성은 중얼거렸다.“그랬구나...”나는 의아하게 물었다.“뭐라고요?”고현성은 고개를 저으며 나를 보면서 말했다.“일찍 자. 내일 내려가자. 난 경찰서에 다은이 데리러 가야 해.”짧게 대꾸한 나는 창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었다.요즘 불면증이 심해서 눈을 뜬 채 주황빛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고 밝은 빛이 오동나무에 드리우며 얼룩져갔다. 그리고 고현성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러 다시 수영장으로 가는 모습도 보였다.고현성은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 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나는 급히 눈을 감고 자는 척하다가 멀어지는 발소리에 눈을 떴고 이윽고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옷을 챙겨입고 나가자 고현성이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화장할래? 여기 화장품 있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고현성의 곁에 내가 연적으로 생각했던 여자는 딱 한 명만 나
안전벨트를 매주던 고현성의 움직임이 멈췄고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비서는 한숨을 쉬며 설명해 주었다.“진서준 씨가 어젯밤 호수에 빠졌는데 제때 구하지 못했어요. 진씨 가문에서 지금 장례식을 준비 중이고 대표님을 초대했어요.”나는 중얼거리며 물었다.“장례식이 언제죠?”“오늘이요.”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이렇게 급하게요?”“어쨌든 진씨 가문으로 돌아온 서자이고 외부 사람들은 아직 그분의 존재를 모르고 있으니 진씨 가문에서도 조용히 진행하려는...”나는 그의 말을 가로채며 지시했다.“강해온 씨, 지금 당장 진씨 가문과 상의해서 진서준 씨를 우리에게 넘겨준다면 기꺼이 1년 동안 진씨 가문과 협업하겠다고 전해요.”비서는 재빨리 대답했다.“네.”전화를 끊고 나서도 믿지 못하고 있는데 고현성이 내 볼을 살살 건드리며 말했다.“진서준은 진씨 가문의 두 아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 눈빛이 맑고 사업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지. 전에 왜 진씨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마음속에 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 사람이 나는 아니에요.”만약 최희연이 진서준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면 무너지지 않을까?“알아, 나한테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 때 너무 행복해했고 그 여자와 꼭 결혼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어. 그 사람한테 설득당해서 진씨 가문 중에서 그 사람을 골랐고 계약을 따내지 못하더라도 진씨 가문과 협업해서 보상해 줄 생각이었어.”잠시 침묵이 흐른 뒤 고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네 마음도 얻어서 너도 연씨 가문 계약으로 도와주려 했으니 앞으로 순탄한 길을 걸을 텐데 인생이란 게 참 허무해. 결국...”고현성은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문득 최희연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번듯한 겉모습 안에 산뜻한 바람과 밝은 달 같은 영혼이 있어. 그 사람의 연약함, 감수성, 자존심과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의지를 나는 잘 알고 있어.”최희연을 위해 기꺼이 목
차 안에서 주체할 수 없이 울었던 나는 눈물을 참으며 차에서 내렸고 고현성의 부축을 받으며 연씨 가문에 들어섰다.한가운데에는 진서준의 수정관이 있었고 그 안에서 진서준은 평온하게 누워 있었는데 최희연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하지만 예상외로 최희연은 울지 않고 그저 눈가가 붉어진 채 그의 곁을 지키다가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그런 최희연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나는 최희연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고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이자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내 친구였다.우리는 서로를 잘 알았고 그녀는 9년 전 남자에 대한 내 사랑도 이해해 주었기 때문에 3개월 전에 특별히 묻기까지 했다.“수아야, 너 뭔가 슬퍼 보이는데?”그녀는 나를 껴안으며 울먹였다.“자꾸 이유 없이 울잖아. 이미 3년 전에 그 남자는 네 사람이 됐는데.”당시 최희연은 아직 진서준을 찾지 못했고 나는 남자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사랑까지 얻지는 못했다.그녀는 나를 이해해 줬고 나도 당연히 그녀를 잘 알았다.진서준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 당시 나의 사랑 못지않았다.내가 다가가서 최희연을 살며시 안아주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는 내 품에서 소리 없이 흐느끼다가 목이 메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사라졌어... 이젠 진짜 그 사람이 없어. 수아야, 난 왜 이렇게 불행한 걸까? 힘들게... 힘들게 찾은 지 3개월도 안 됐는데 이대로 사라졌어.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마침 근처에 있던 고현성이 우리가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치껏 돌아섰고 나는 최희연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슬픔에 잠긴 그녀의 말을 들었다.“내 남은 인생에 그가 없어.”최희연은 이제 조금의 희망도 갖지 못했다.나는 한참을 최희연 곁에 있다가 나가서 비서에게 지시했다.“강해온 씨, 나 대신 사람들에게 알려요. 연씨 가문 최희연의 이름으로 운성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람들을 장례식에 초대해요. 진씨 가문에서 치러주지 않는 장례
나는 서둘러 방을 나섰고 어느새 별장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왔다.모두 검은색 정장이나 검은색 드레스를 맞춰 입고 고인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있었다.내가 찾아갔을 때 최희연은 뒷마당에 있는 그네에 앉아 있었고 단정한 검은 치마에 머리를 질끈 올려 묶은 채 머리에는 흰색 리본을 달고 있었는데 지금 그녀는 막 피어난 나무 앞 복숭아꽃을 바라보고 있었다.산들바람이 불어오면서 꽃잎이 그녀의 몸에 떨어졌는데 그 색이 너무 선명해서 눈이 부셨다.그녀의 몸에 붙은 꽃잎을 떼어주러 다가간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고 어떤 말도 부질없는 것 같았다. 평생 사랑했던 남자가 관에 누워있다.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최희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장례는 네가 직접 치러야 해. 무엇보다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르게 해야지. 최희연, 진씨 가문에게 그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보여줘.”최희연은 의아해했다.“진씨 가문?”나는 진서준이 진씨 가문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하나하나 설명했고 이 말을 듣자마자 최희연은 바로 추측했다.“서준이는 절대 사고로 호수에 빠져 죽은 게 아니야. 내가 조심스러운 사람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아. 절대 자기를 위험한 상황에 두지 않아. 너 가족 음모론이라고 알아?”최희연이 말하는 가족 음모론을 연씨 가문 외동딸인 나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집안 자식들이 재산 경쟁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물었다.“진씨 가문 사람들을 의심하는 거야?”최희연은 눈이 붉어진 채 극도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난 지금 누구든 의심스러워. 절대 사고로 죽을 사람이 아닌데 증거를 찾을 수가 없어. 일단 장례식부터 마치고 반드시 진실을 밝혀낼 거야.”나는 최희연의 어깨를 끌어안아 진정시키며 말했다.“그래, 네가 꼭 진실을 알아내.”최희연은 눈을 감았다.“그 사람 보러 갈래.”나는 떠나는 최희연을 바라보았다. 가녀린 그녀의 등이 비틀거렸다. 아름다운 그녀는 줄곧 순수한 사랑을 했고 전에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