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성이 샤워 가운을 당기는 순간 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더욱 화가 났다.나는 서둘러 이불을 집어 내 몸에 감고 고현성에게 매섭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의 노골적인 눈빛이 내 몸에 향하는 걸 보았다.나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죽은 듯이 누워있는데 그 남자는 여전히 침대 반대편에 가만히 있었고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특히 지금은 내가 고양이 앞에 선 쥐가 된 기분이었다.나는 감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손으로 이불 모서리를 단단히 잡았다.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보고 고현성은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경멸하듯 말했다.“한심하긴.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겠어?”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현성이 갑자기 내 몸을 덮쳐왔고 나는 애써 침착한 척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내려가요.”허, 뻔뻔한 남자!지금 내 마음은 그에게 향해 있지 않았고 그를 사랑하지도 않았다.게다가 이런 상황은 한번 일어나면 두 번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운성을 떠나지 않는 한 그는 늘 갖은 방법을 동원해 나를 침대로 끌어들일 것이다.나는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싫어요.”나는 몸부림쳤고 고현성은 어두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뻗는 순간 내 몸에서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미안, 참을 수가 없었어.”나는 말없이 가운을 주워 입었고 방은 유난히 조용했다.고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나는 곧 통유리창 너머로 그가 수영장으로 건너가는 모습을 보았다.이 방은 마침 별장 대문의 풍경을 담고 있었는데 그는 수영장 라운지에 앉아 옆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몇 모금 피우고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담배를 껐다.유난히 작아 보이는 그의 등이 어젯밤과 겹쳐 보였다.나는 다시 뒤돌아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눈을 감고 뒤척이다가 갑자기 비서가 나에게 걸었던 전화가 생각났고 그는 고현성이 많은 돈을 써서 검색어를 삭제했다고 말했다. 사실 나를 도와줄 필요가 없는데 그는 여전히 그렇게 했다.게다가 갖은 수단을 써서 연씨 가문을 상대한 것
“아, 뒷마당에 어떤 물고기를 키워요?”지루한 질문이었지만 고현성과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고 다행히 그가 참을성 있게 내 말에 대꾸했다.“다 조기야.”조기...임지혜를 위해서 키우는 건가?여기 임지혜를 자주 데려오나?나는 실망한 내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고 짧게 대꾸하며 무심하게 말했다.“임지혜 씨가 전에 굴비 좋아한다고 나한테 말한 적 있어요.”고양이를 쓰다듬던 고현성의 손이 멈췄고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여기 데려온 적 없어. 걔를 위해 키우는 것도 아니고.”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럼 누구를 위해 키우는 거예요?”고현성의 눈빛이 나를 향했고 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나를 위한 거라고 하지 마요. 난 굴비 싫어해요.”고현성은 당황했다.“뭐?”나는 태연하게 말했다.“난 굴비 싫어해요. 비린내가 심하고 가시도 많은데 임지혜 씨 말로는 당신이 좋아한다길래 결혼하고 당신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매번 요리했죠. 비록 결혼생활 동안 당신은 내가 한 요리를 한 번도 먹지 않았지만.”3년간의 결혼 생활에 난 모든 걸 바쳐 헌신했고 그때의 나는 참 한심했다.고현성은 중얼거렸다.“그랬구나...”나는 의아하게 물었다.“뭐라고요?”고현성은 고개를 저으며 나를 보면서 말했다.“일찍 자. 내일 내려가자. 난 경찰서에 다은이 데리러 가야 해.”짧게 대꾸한 나는 창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었다.요즘 불면증이 심해서 눈을 뜬 채 주황빛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고 밝은 빛이 오동나무에 드리우며 얼룩져갔다. 그리고 고현성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러 다시 수영장으로 가는 모습도 보였다.고현성은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 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나는 급히 눈을 감고 자는 척하다가 멀어지는 발소리에 눈을 떴고 이윽고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옷을 챙겨입고 나가자 고현성이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화장할래? 여기 화장품 있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고현성의 곁에 내가 연적으로 생각했던 여자는 딱 한 명만 나
안전벨트를 매주던 고현성의 움직임이 멈췄고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비서는 한숨을 쉬며 설명해 주었다.“진서준 씨가 어젯밤 호수에 빠졌는데 제때 구하지 못했어요. 진씨 가문에서 지금 장례식을 준비 중이고 대표님을 초대했어요.”나는 중얼거리며 물었다.“장례식이 언제죠?”“오늘이요.”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이렇게 급하게요?”“어쨌든 진씨 가문으로 돌아온 서자이고 외부 사람들은 아직 그분의 존재를 모르고 있으니 진씨 가문에서도 조용히 진행하려는...”나는 그의 말을 가로채며 지시했다.“강해온 씨, 지금 당장 진씨 가문과 상의해서 진서준 씨를 우리에게 넘겨준다면 기꺼이 1년 동안 진씨 가문과 협업하겠다고 전해요.”비서는 재빨리 대답했다.“네.”전화를 끊고 나서도 믿지 못하고 있는데 고현성이 내 볼을 살살 건드리며 말했다.“진서준은 진씨 가문의 두 아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 눈빛이 맑고 사업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지. 전에 왜 진씨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마음속에 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 사람이 나는 아니에요.”만약 최희연이 진서준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면 무너지지 않을까?“알아, 나한테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 때 너무 행복해했고 그 여자와 꼭 결혼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어. 그 사람한테 설득당해서 진씨 가문 중에서 그 사람을 골랐고 계약을 따내지 못하더라도 진씨 가문과 협업해서 보상해 줄 생각이었어.”잠시 침묵이 흐른 뒤 고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네 마음도 얻어서 너도 연씨 가문 계약으로 도와주려 했으니 앞으로 순탄한 길을 걸을 텐데 인생이란 게 참 허무해. 결국...”고현성은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문득 최희연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번듯한 겉모습 안에 산뜻한 바람과 밝은 달 같은 영혼이 있어. 그 사람의 연약함, 감수성, 자존심과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의지를 나는 잘 알고 있어.”최희연을 위해 기꺼이 목
차 안에서 주체할 수 없이 울었던 나는 눈물을 참으며 차에서 내렸고 고현성의 부축을 받으며 연씨 가문에 들어섰다.한가운데에는 진서준의 수정관이 있었고 그 안에서 진서준은 평온하게 누워 있었는데 최희연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하지만 예상외로 최희연은 울지 않고 그저 눈가가 붉어진 채 그의 곁을 지키다가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그런 최희연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나는 최희연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고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이자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내 친구였다.우리는 서로를 잘 알았고 그녀는 9년 전 남자에 대한 내 사랑도 이해해 주었기 때문에 3개월 전에 특별히 묻기까지 했다.“수아야, 너 뭔가 슬퍼 보이는데?”그녀는 나를 껴안으며 울먹였다.“자꾸 이유 없이 울잖아. 이미 3년 전에 그 남자는 네 사람이 됐는데.”당시 최희연은 아직 진서준을 찾지 못했고 나는 남자를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사랑까지 얻지는 못했다.그녀는 나를 이해해 줬고 나도 당연히 그녀를 잘 알았다.진서준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 당시 나의 사랑 못지않았다.내가 다가가서 최희연을 살며시 안아주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는 내 품에서 소리 없이 흐느끼다가 목이 메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사라졌어... 이젠 진짜 그 사람이 없어. 수아야, 난 왜 이렇게 불행한 걸까? 힘들게... 힘들게 찾은 지 3개월도 안 됐는데 이대로 사라졌어.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마침 근처에 있던 고현성이 우리가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치껏 돌아섰고 나는 최희연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슬픔에 잠긴 그녀의 말을 들었다.“내 남은 인생에 그가 없어.”최희연은 이제 조금의 희망도 갖지 못했다.나는 한참을 최희연 곁에 있다가 나가서 비서에게 지시했다.“강해온 씨, 나 대신 사람들에게 알려요. 연씨 가문 최희연의 이름으로 운성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람들을 장례식에 초대해요. 진씨 가문에서 치러주지 않는 장례
나는 서둘러 방을 나섰고 어느새 별장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왔다.모두 검은색 정장이나 검은색 드레스를 맞춰 입고 고인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있었다.내가 찾아갔을 때 최희연은 뒷마당에 있는 그네에 앉아 있었고 단정한 검은 치마에 머리를 질끈 올려 묶은 채 머리에는 흰색 리본을 달고 있었는데 지금 그녀는 막 피어난 나무 앞 복숭아꽃을 바라보고 있었다.산들바람이 불어오면서 꽃잎이 그녀의 몸에 떨어졌는데 그 색이 너무 선명해서 눈이 부셨다.그녀의 몸에 붙은 꽃잎을 떼어주러 다가간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고 어떤 말도 부질없는 것 같았다. 평생 사랑했던 남자가 관에 누워있다.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최희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장례는 네가 직접 치러야 해. 무엇보다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르게 해야지. 최희연, 진씨 가문에게 그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보여줘.”최희연은 의아해했다.“진씨 가문?”나는 진서준이 진씨 가문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하나하나 설명했고 이 말을 듣자마자 최희연은 바로 추측했다.“서준이는 절대 사고로 호수에 빠져 죽은 게 아니야. 내가 조심스러운 사람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아. 절대 자기를 위험한 상황에 두지 않아. 너 가족 음모론이라고 알아?”최희연이 말하는 가족 음모론을 연씨 가문 외동딸인 나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집안 자식들이 재산 경쟁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물었다.“진씨 가문 사람들을 의심하는 거야?”최희연은 눈이 붉어진 채 극도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난 지금 누구든 의심스러워. 절대 사고로 죽을 사람이 아닌데 증거를 찾을 수가 없어. 일단 장례식부터 마치고 반드시 진실을 밝혀낼 거야.”나는 최희연의 어깨를 끌어안아 진정시키며 말했다.“그래, 네가 꼭 진실을 알아내.”최희연은 눈을 감았다.“그 사람 보러 갈래.”나는 떠나는 최희연을 바라보았다. 가녀린 그녀의 등이 비틀거렸다. 아름다운 그녀는 줄곧 순수한 사랑을 했고 전에 진
어젯밤 진서준은 분명 연씨 가문의 주목을 받았고 그 전에 고현성도 진서준을 도와줬으니 다른 진씨 가문 사람들 눈에 그는 고씨, 연씨 두 집안의 힘을 업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이에 진씨 가문에서 누군가 진서준에게 살기를 품었을 거라는 대담한 짐작을 했지만 그건 내 추측일 뿐 증거는 없었다.나는 비서에게 진씨 가문 사람들을 다 조사한 뒤 시간이 지난 후 최희연에게 넘기라고 말했고 잠시 고민하다가 덧붙여 지시했다.“앞으로 진희연은 나와 똑같아요. 희연이가 도와달라고 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세요. 강해온 씨, 저한테는 특히 중요한 가족이에요.”“네, 대표님.”비서는 끝없이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이하러 나갔고 이 사람들을 보며 몇 달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다만 내가 관속에 누워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조문하러 왔었다.고현성이 방금 말했다.“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몰라. 소중히 여겨.”나한테 뭘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한숨을 쉬고 방으로 돌아갔더니 고현성은 더 이상 없었지만 침대 옆에 작은 쪽지가 남아 있었다.“일이 생겼어. 어머니가 아주 편찮으시대. 이따가 비행기 타고 금운으로 가.”나는 쪽지를 옆에 두고 신발을 벗은 뒤 침대로 올라갔다.어제 밤새도록 잠을 설친 나는 베개를 베자마자 잠이 들었다.다시 일어나 보니 밤이 되었고 배가 고파서 아플 지경인 나는 일어나서 옷을 챙겨입고 내려갔다. 거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진서준을 추모하는 하얀 화환과 추도사가 가득했다.최희연은 고개를 숙인 채 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그녀의 대각선 맞은편에는 차가운 얼굴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유난히 잘 생겼고 반듯한 검은 정장을 입어 더욱 훤칠해 보이는 데다 온몸에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손목에 비싼 롤렉스를 차고 있는 걸 보아 신분이 높은 사람임이 분명했다.나는 중얼거리듯 물었다.“누구지?”그 남자도 나를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 홀을 나섰다. 그가 이곳을 나갈 때까지 내 시선은 줄곧 그를 쫓았고 그의 발걸음은
“진유겸이요.”‘진씨 집안사람인가? 진씨 집안에 언제 이런 사람이 있었지?’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진서준의 묘비를 바라봤다. 그의 흑백 사진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얼마 전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저랑 희연이 사이에는 너무 큰 간극이 있어요. 이런 제가 희연이 발목을 잡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잠깐 떠난 거예요. 안정된 다음 다시 찾아가고 싶어요. 희연이가 계속 기다려준다면요.”그때 진서준은 진씨 집안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다. 한창 프로젝트에 실패해서 상황이 안 좋을 때 말이다.하지만 그는 계획이 있었다. 노력만 하면 최희연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장례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최희연도 생각보다 덤덤해 보였다. 하지만 관뚜껑을 닫는 순간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손은 있는 힘껏 묘비를 붙잡았다.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위로해 주려고 했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나 이제 어떡해? 서준이를 영원히 못 보는 거야?”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널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어. 너희들 사이의 사랑도 계속 존재해, 알지?”“근데 서준 씨를 못 보면 무슨 소용이야.”맞는 말이다. 두 사람은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나는 말을 잃었다. 최희연은 장례식이 끝난 다음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최희연은 여전히 묘비 앞에 앉아 있었다. 비서 강해온은 사람들을 마중하고 나서 패딩을 가져다줬다.3월의 저녁은 아직 추웠다. 최희연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강해온은 그녀를 부축하면서 말했다.“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으셔서 버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최희연 씨는 제가 병원에 보내드리겠습니다. 대표님께는 다른 기사를 불러드리겠습니다.”“아니에요. 나도 같이 병원에 가요.”“대표님 이만 쉬셔야 할 텐데요. 최희연 씨한테 혼자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냥... 금방 장례식에 다녀오니 기분이 이상하네.”나는 결국 건강 상태를 숨기기로 했다. 조민수는 이제야 한시름 놓았다.“괜찮으면 됐어.”“언니는? 내가 쉬는 걸 방해한 거 아니지?”“아니야, 친구랑 놀러 나갔어. 근데 고현성이 얼마 전 연락이 왔더라? 연구팀을 보낸다고 하는데 다들 암 치료 전문가래. 너 그때까지 잘 버티고 있어야 한다?”나는 잠깐 멈칫했다. 고현성이 아직 나에게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예전의 나는 기억하는 거야, 못 하는 거야.’“알았어. 조심할게.”“그래, 난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끊을게.”조민수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서 고현성을 떠올렸다.마음은 아직도 갈팡질팡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선택하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너무 어려운 문제가 아니던가? 나는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저 묘하게 고현성에게 이끌린다는 것만 알았다. 물론 고정재와 마주친 순간 그런 이끌림도 망각하게 되지만 말이다.나는 한숨을 쉬며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만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려고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또다시 고현성이 떠올랐다.고현성은 나에게 너무 다정했다. 모든 힘을 다해 나를 도우려고 하는 것도 보였다. 그날 나를 위해 억지로 참아내지도 않았는가?하지만 고정재는... 내 9년간의 집념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상 우리는 별로 엮인 적이 없다. 정적 나와 끈질기게 엮긴 건 고현성이었다.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고현성뿐이다. 하필이면 이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다소 찝찝한 기분으로 물었다.“안 잤어요? 왜 갑자기 전화해요?”“보고 싶어서.”그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다정한 말도 입만 열면 나왔다.“아... 네.”나는 심장이 크게 한 번 두근댔다. 하지만 들키기 싫어서 애써 덤덤하게 대답했다.“장례식은 잘 끝났어?”“네, 아침에요.”“희연 씨는 어때?”“많이 힘들어해요. 괜찮아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최희연은 당분간 진서준을 잊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