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때 고현성이 연씨 가문을 이어받을 적임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가 나에게 돌려주니 속수무책으로 어쩔 수 없이 연씨 가문이라는 성가신 물건을 이어받았다.그래, 나에겐 아주 성가신 것이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치료받으러 가려고요.”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나는 호기심에 물었다.“언제 따라왔어요?”그러자 고현성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네가 날 신경 쓰지 않은 거야.”“...”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 돌아섰는데 갑자기 뒤에서 그가 나를 안아 들었고 놀란 내가 무의식적으로 팔로 그의 목을 감싸자 이런 나를 보고 그가 웃었다.“겁이 참 많아.”조금 전 내 비서에게 했던 말이라 나는 눈을 흘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내려줘요.”고현성은 요즘 나를 아무 때나 껴안고 뽀뽀하는 등 제멋대로 대하고 있었다.요 며칠만 해도 여러 번 키스했는데 그와의 키스는 반경우와 사뭇 느낌이 달랐다.하나는 아무런 잡생각이 들지 않고 다른 하나는 뜨겁고 격정적이었다.그를 원망한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키스할 때도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나는 한숨을 쉬며 이런 내가 너무 미웠다.두 형제에게 깊이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꼴이란.고현성은 내 말을 무시했고 나는 한층 더 단호하게 말했다.“내려달라고요!”이번에 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싫어.”“계속 이러며 소리 질러요?”번화한 도심이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기에 그가 이렇게 나를 안고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 만했고 선남선녀인 우리가 다소 사무적인 차림을 하고 있으니 내가 크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주위에는 어느 정도 사람이 몰려들었다.그런데 고현성은 겁도 없이 도발했다.“질러봐.”차라리 나쁜 짓을 하면 모를까 짓궂게 나오니 어쩔 수 없이 나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말했다.“빨리 가요.”그는 웃고 있는지 가슴에서 움직임이 전해졌다.고현성은 나를 안고 차가 주차된 곳까지 50미터 남짓 걸어가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나를 태운 다음 발목을 잡고 진흙이 묻은 하이힐
“연수아, 뭐로 날 거절할래?”그래, 난 그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입술을 깨물며 내가 말했다.“당신은 날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현성은 이 말을 무시했다.차가 산까지 올라가는 동안 고현성은 다시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 눈치 없이 구는 내 말에 할 말을 잃은 걸 수도 있지만 어차피 나도 그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나는 고개를 기울여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고 희미한 구름 속에 숨어 있는 구불구불한 산들이 아른거리는 착각을 일으켰다. 시선을 돌려 고현성을 바라보자 그의 잘생긴 옆태와 멀리 보이는 산들이 조화를 이루어 사람 마음을 홀렸다.이 순간 나는 과거의 모든 원망을 잊고 모든 것이 3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나는 그와 결혼할 날만 고대하고 있었다.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나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는데 비록 그가 극도로 꺼리긴 했어도 나는 그날 내 꿈이 현실이 된다고 생각했다.꿈이 현실이 되다니... 그것은 모두 환상이었다.나는 시선을 거두어 휴대폰을 꺼내 SNS를 확인했고 나와 반경우의 스캔들 열기는 사그라들었다.어제의 그 영상은 어디에도 없었다.하루도 안 돼서 영상이 사라졌다는 건 누군가 손을 썼다는 뜻이고... 지금 옆에 있는 남자가 유력했다.나는 망설이다가 고현성에게 묻지 않고 비서에게 문자를 보냈다.[인터넷에 있는 내 스캔들 누가 해결했어요?]비서는 답장을 보냈다.[바로 알아볼게요.]휴대폰을 도로 넣은 나는 눈을 감았다. 어제 너무 늦게 잔 탓에 지금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잠이 들었고 깨어났을 때 차 안에는 고현성이 보이지 않았다.순간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더니 차창 밖에 반듯한 체격의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고 그를 보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고현성은 정장 재킷을 벗은 채 흰 셔츠만 입고 있었고 그의 정장은 지금 내 몸 위에 있었다.산속의 바람이 거세서 그의 셔츠가 부풀어 올랐고 나는
“그래, 그럼 조금 쉬었다가 내가 요리해 줄게.” 멈칫하던 고현성이 부드러운 어투로 물었다.“뭐 먹고 싶어?”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요리할 줄 알아요?”질문이 입 밖에 나오고 나서야 불필요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전에도 그가 나를 위해 요리해 준 적이 있었으니까.임지혜가 좋아하는 굴비 요리였지만.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못 먹어봤어?”“먹어봤죠. 그냥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에요.”“뭐 좋아해, 굴비?”고현성은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전에 네가 굴비 요리 자주 해주던 게 생각나네. 제일 좋아하는 거지? 이따가 한 마리 구워줄게.”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물었다.“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생선을 구해요?”“있어. 비서가 전에 가져왔어.”짧게 대꾸한 나는 굴비를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았다.이제 와서 정정하기도 싫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그런데 무척 신기했다. 나와 고현성은 지금 아주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도 무차별적으로 그에게 쏘아붙이지 않았다.바로 그때 비서가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고현성이 보는 앞에서 전화를 들고 그의 설명을 들었다.“대표님, 인터넷에 떠도는 그 기사는 고 대표님께서 막았어요. 영상도 지우는데 큰돈을 들인 것 같아요.”나는 고현성을 힐끗 쳐다보았고 그는 덤덤한 표정이었다.대꾸한 나는 문득 진서준이 떠올랐고 유씨 가문과의 계약을 잃고 진씨 가문에서 분명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잠시 고민하던 내가 말했다.“연씨 가문에 요즘 어떤 계약이 있지?”비서가 의아하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 대표님?”“진씨 가문에 큰 계약 두 개를 골라서 진서준에게 맡겨요. 이건 강 비서가 알아서 하고 나 대신 그 사람 챙겨줘요.”전화를 끊자 고현성이 의아한 어투로 물었다.“진서준한테 잘해주네. 전에 알던 사이야?”나는 대답하지 않고 호기심에 물었다.“그런데 왜 진씨 가문을 도와준 거예요? 단지 연씨 가문과 맞서기 위해서?”그가 단호하게 대답했
다들 내가 엉뚱한 사람을 사랑해서 연씨 가문을 고현성에게 준 거고 원래는 고정재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3개월 전 연씨 가문을 고현성에게 줬을 때 그는 나와 이혼하고 싶어 했고 나는 그를 뼛속까지 이가 갈릴 정도로 미워했지만 그래도 연씨 가문을 넘겨줬다.그를 사랑한다는 것 말고도 그가 제일 적절한 사람이었으니까.그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고 진화그룹을 작은 기술 회사에서 이렇게 큰 규모로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뜻인데 야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연씨 가문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고정재였다면 난 아마 연씨 가문을 주지 않았을 거다.그는 예술가였고 재계는 뜻이 없었기에 내가 아무리 그를 사랑해도 연씨 가문이 우선이었다.그러니 고현성이 어부지리로 가진 건 절대 아니었고 상황이 이렇게 된 지금도 나는 연씨 가문을 그에게 넘겨주고 싶었다.이런 오해가 마음속에 남아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해명했다.“고현성 씨, 어부지리 아니에요. 내가 생각이 있어서 그 쪽한테 넘겨준 거예요. 주위를 둘러봐도 운성에 제일 능력 있고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니까.”그는 3년 동안 연씨 가문과 대적했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고현성은 잠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가 내 팔을 잡고 물었다.“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해?”“오빠가 나보고 상주로 오라고 재촉하고 있어요.”“연씨 가문을 내게 준다는 거야?”“네. 나는 먹고 살 걱정 없고 자식도 없는데 남은 시간도 장담 못하니까 연씨 가문에만 매달리고 싶지 않아요. 현성 씨가 제일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여전히 연씨 가문을 넘기고 싶어요.”“나를 원망하지 않아?”그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하죠. 예전에 나한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는데.”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원망할만해.”“연씨 가문은 원하면 언제든 가져가요.”“그럼 고정재는?”나는 인상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그 사람 얘기를...”그는 무
나는 머리를 말린 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가지고 놀았고 우리 둘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고요한 분위기도 결국 깨져버렸고 적막을 깬 건 윤다은의 전화였다.왜 나한테 전화했을까... 나는 의아했다.내가 받을지 말지 망설이고 있을 때 고현성이 고개를 내밀며 위에 뜨는 이름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한 듯 말했다.“다은이 눈에는 고정재밖에 없어.”고현성은 고정재를 형이라고 부른 적이 거의 없었고 두 사람은 가까워 보이지 않았다.고현성이 옆에 있어서 전화를 받지 않자 윤다은은 아예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걸었다.짜증이 난 고현성이 내 손에서 전화기를 빼앗아 통화버튼을 누르고 물었다.“다은아, 무슨 일이야?”짜증스러운 고현성의 목소리와 윤다은도 그가 받을 줄 몰라 잠시 당황하며 말했다.“작은오빠, 수아 언니는?”“네 새언니는 왜 찾는데?”그는 뻔뻔하게도 윤다은에게 새언니라고 부른 것을 요구했고 윤다은도 제꺽 반응하며 물었다.“새언니는?”고현성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뭐 때문에 찾는 건데?”라고 물었다.“나 또 경찰서에 갇혔어.”“...”윤다은은 애처롭게 설명했다.“큰오빠를 찾을 엄두는 안 나고 오빠도 날 욕할 것 같아서 수아 언니한테 연락했어.”고현성이 차갑게 말했다.“쌤통이다.”“...”“작은오빠, 나 좀 구해줘.”“알아서 해.”고현성은 잔인하게 거절하고 바로 통화를 끊었고 나는 망설이며 말했다.“이러면 안 되지 않나요?”고현성은 나에게 휴대폰을 다시 건네며 말했다.“사고 칠 땐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 안 한대? 하루 동안 가둬서 혼 좀 내야 해. 내일 시간 나면 데리러 가야지.”고현성은 잠시 망설이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다은이도 좀 불쌍해. 너 못지않게 고정재를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고정재랑 같이 자랐으니 몇십년은 됐네.”그는 자주 고정재를 언급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았다.나는 짜증스럽게 물었다.“고정재 씨 얘기 그만
고현성이 샤워 가운을 당기는 순간 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더욱 화가 났다.나는 서둘러 이불을 집어 내 몸에 감고 고현성에게 매섭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의 노골적인 눈빛이 내 몸에 향하는 걸 보았다.나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죽은 듯이 누워있는데 그 남자는 여전히 침대 반대편에 가만히 있었고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특히 지금은 내가 고양이 앞에 선 쥐가 된 기분이었다.나는 감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손으로 이불 모서리를 단단히 잡았다.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보고 고현성은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경멸하듯 말했다.“한심하긴.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겠어?”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현성이 갑자기 내 몸을 덮쳐왔고 나는 애써 침착한 척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내려가요.”허, 뻔뻔한 남자!지금 내 마음은 그에게 향해 있지 않았고 그를 사랑하지도 않았다.게다가 이런 상황은 한번 일어나면 두 번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운성을 떠나지 않는 한 그는 늘 갖은 방법을 동원해 나를 침대로 끌어들일 것이다.나는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싫어요.”나는 몸부림쳤고 고현성은 어두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뻗는 순간 내 몸에서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미안, 참을 수가 없었어.”나는 말없이 가운을 주워 입었고 방은 유난히 조용했다.고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나는 곧 통유리창 너머로 그가 수영장으로 건너가는 모습을 보았다.이 방은 마침 별장 대문의 풍경을 담고 있었는데 그는 수영장 라운지에 앉아 옆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몇 모금 피우고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담배를 껐다.유난히 작아 보이는 그의 등이 어젯밤과 겹쳐 보였다.나는 다시 뒤돌아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눈을 감고 뒤척이다가 갑자기 비서가 나에게 걸었던 전화가 생각났고 그는 고현성이 많은 돈을 써서 검색어를 삭제했다고 말했다. 사실 나를 도와줄 필요가 없는데 그는 여전히 그렇게 했다.게다가 갖은 수단을 써서 연씨 가문을 상대한 것
“아, 뒷마당에 어떤 물고기를 키워요?”지루한 질문이었지만 고현성과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고 다행히 그가 참을성 있게 내 말에 대꾸했다.“다 조기야.”조기...임지혜를 위해서 키우는 건가?여기 임지혜를 자주 데려오나?나는 실망한 내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고 짧게 대꾸하며 무심하게 말했다.“임지혜 씨가 전에 굴비 좋아한다고 나한테 말한 적 있어요.”고양이를 쓰다듬던 고현성의 손이 멈췄고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여기 데려온 적 없어. 걔를 위해 키우는 것도 아니고.”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럼 누구를 위해 키우는 거예요?”고현성의 눈빛이 나를 향했고 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나를 위한 거라고 하지 마요. 난 굴비 싫어해요.”고현성은 당황했다.“뭐?”나는 태연하게 말했다.“난 굴비 싫어해요. 비린내가 심하고 가시도 많은데 임지혜 씨 말로는 당신이 좋아한다길래 결혼하고 당신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매번 요리했죠. 비록 결혼생활 동안 당신은 내가 한 요리를 한 번도 먹지 않았지만.”3년간의 결혼 생활에 난 모든 걸 바쳐 헌신했고 그때의 나는 참 한심했다.고현성은 중얼거렸다.“그랬구나...”나는 의아하게 물었다.“뭐라고요?”고현성은 고개를 저으며 나를 보면서 말했다.“일찍 자. 내일 내려가자. 난 경찰서에 다은이 데리러 가야 해.”짧게 대꾸한 나는 창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었다.요즘 불면증이 심해서 눈을 뜬 채 주황빛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고 밝은 빛이 오동나무에 드리우며 얼룩져갔다. 그리고 고현성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러 다시 수영장으로 가는 모습도 보였다.고현성은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 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나는 급히 눈을 감고 자는 척하다가 멀어지는 발소리에 눈을 떴고 이윽고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옷을 챙겨입고 나가자 고현성이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화장할래? 여기 화장품 있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고현성의 곁에 내가 연적으로 생각했던 여자는 딱 한 명만 나
안전벨트를 매주던 고현성의 움직임이 멈췄고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비서는 한숨을 쉬며 설명해 주었다.“진서준 씨가 어젯밤 호수에 빠졌는데 제때 구하지 못했어요. 진씨 가문에서 지금 장례식을 준비 중이고 대표님을 초대했어요.”나는 중얼거리며 물었다.“장례식이 언제죠?”“오늘이요.”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이렇게 급하게요?”“어쨌든 진씨 가문으로 돌아온 서자이고 외부 사람들은 아직 그분의 존재를 모르고 있으니 진씨 가문에서도 조용히 진행하려는...”나는 그의 말을 가로채며 지시했다.“강해온 씨, 지금 당장 진씨 가문과 상의해서 진서준 씨를 우리에게 넘겨준다면 기꺼이 1년 동안 진씨 가문과 협업하겠다고 전해요.”비서는 재빨리 대답했다.“네.”전화를 끊고 나서도 믿지 못하고 있는데 고현성이 내 볼을 살살 건드리며 말했다.“진서준은 진씨 가문의 두 아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 눈빛이 맑고 사업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지. 전에 왜 진씨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마음속에 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 사람이 나는 아니에요.”만약 최희연이 진서준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면 무너지지 않을까?“알아, 나한테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 때 너무 행복해했고 그 여자와 꼭 결혼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어. 그 사람한테 설득당해서 진씨 가문 중에서 그 사람을 골랐고 계약을 따내지 못하더라도 진씨 가문과 협업해서 보상해 줄 생각이었어.”잠시 침묵이 흐른 뒤 고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네 마음도 얻어서 너도 연씨 가문 계약으로 도와주려 했으니 앞으로 순탄한 길을 걸을 텐데 인생이란 게 참 허무해. 결국...”고현성은 말을 이어가지 않았고 문득 최희연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번듯한 겉모습 안에 산뜻한 바람과 밝은 달 같은 영혼이 있어. 그 사람의 연약함, 감수성, 자존심과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의지를 나는 잘 알고 있어.”최희연을 위해 기꺼이 목
담현아는 오두막으로 올라가 달빛 아래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나는 낮은 목소리로 석나은에게 물었다.“나은 씨, 전화한 이유가 단지 이런 얘기 때문은 아니겠죠?”“수아 씨,”그녀의 쉰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그이는 항상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수아 씨를 약혼녀라고 발표했잖아요. 게다가 결혼 날짜까지 약속했어요.”그녀는 말을 이어갔다.“나는 수아 씨가 너무 부러워요. 당신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잖아요. 나는 뭐가 부족했던 걸까요? 당신보다 훨씬 일찍 그의 삶에 나타났고 석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는데. 수아 씨는 어떻게 내 자리를 빼앗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나는 그이를 사랑해요. 만약 지훈 씨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예요. 어릴 때부터 나는 오직 그를 위한 아내가 되기 위해 교육받았으니까요. 그를 잃으면, 나는 도대체 뭔가요?”그녀의 울적한 한탄은 이어졌지만 석지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도 불쌍한 사람이다.석씨 가문에서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주입받으며 살아온 여자일 뿐이니까.나는 고개를 들어 멀리서 다가오는 석만호를 발견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석나은을 달래듯 말했다.“나은 씨의 가치는 지훈 오빠로 증명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사랑은 먼저 나타났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죠. 솔직히 지훈 오빠가 왜 나를 선택했는지 나도 몰라요. 하지만 지훈 오빠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해요. 우리는 평생 함께할 거예요.”“나은 씨는 아직 젊고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니 때가 되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예요. 가끔은 손을 놓을 줄 알아야 더 나은 미래가 찾아올 수 있어요.”내 말을 들은 석나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수아 씨, 지훈 씨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언제요?”“방금 전에요. 두 분의 약혼 소식에 충격을 받아서...
원태웅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고 문득 낮에 받은 협박 문자가 떠올랐다.그 여자가 정말로 그런 엄청난 용기를 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석지훈이 약혼 소식을 발표한 후, 그의 어머니는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황급히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어둡고, 짙은 안개에 갇힌 듯했다.원태웅은 눈가가 붉어진 채 말했다.“사모님이 석씨 가문 본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대.”석지훈은 곧바로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향했고 나도 그의 뒤를 따라 서둘러 내려갔다.그는 별장을 나와 검은 벤틀리에 올랐다. 원태웅과 한민수도 그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나는 문가에 서서 불안한 마음으로 석지훈을 불렀다.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눈에 핏줄이 섞여 있었다.“집에서 기다리고 있어.”그의 말은 단호했다.비록 친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석지훈에게 그녀는 여전히 애정을 주었던 존재였다.나도 곁에서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는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나는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알겠어요. 집에서 기다릴게요.”한민수가 옆에서 거들었다.“지훈아, 수아 씨도 이제 네 약혼녀야.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마주해야지. 수아 씨도 본가로 가는 게 맞아.”한민수는 그들 중 가장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석지훈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원태웅에게 말했다.“네가 운전해. 최대한 빨리 본가로 돌아가자.”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담현아가 다가와 위로했다.“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예요.”사실 나는 석지훈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를 싫어했으니 말이다.그리고 우리의 약혼 소식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으로 석지훈에게 큰 압박을 남겼다.그리고 그녀의 목적은 성공했다.나와 석지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명의 어머니가 있었다. 문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누구였을까?내가 혼란에 빠져
석지훈은 그 반지를 간직했고 오늘 밤 나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로 끼워주었다.그는 고개를 숙여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고 나는 그의 몸을 꼭 안은 채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다.“윤아야, 시간이 되면 너와 함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일부러 나를 데려가려는 걸 보면 분명 중요한 사람이겠지.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좋아요. 누구예요?”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나를 살아있게 한 사람.”그는 그렇게 말하고 내 허리를 감싸안으며 발코니로 나갔다.아래에서는 한민수와 원태웅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담현아는 오동나무 위의 작은 오두막에 올라가 엎드려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감회에 젖어 석지훈에게 말했다.“매일 집이 이렇게 시끌벅적하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담현아도...놀기 좋아하지만 사실 굉장히 조용한 사람이잖아요.”석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아이는 외로워.”나는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담현아가 외롭다고요?”“그녀는 어릴 때부터 똑똑했어. 똑똑한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기 마련이지. 그래서 제대로 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북적이는 걸 더 좋아하게 되지.”나는 그 말을 듣고 석지훈과 담현아가 비슷한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물었다.“그럼 오빠는요?”“응?”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빠도 외로워요?”“아니. 네가 내 곁에 있으니까.”석지훈은 이제 달콤한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한다.나는 일부러 그에게 물었다.“오빠는 내가 시끄럽다고 생각하죠? 시끌벅적하다는 말은 곧 말이 많다는 뜻이잖아요?”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스스로 잘 알고 있네.”“...”나는 손을 들어 그의 볼을 꼬집었지만 그의 몸이 살짝 굳는 것을 보고 웃으며 손을 거두며 말했다.“됐어요. 이번엔 봐줄게요.”나는 그의 팔을 끌어안고 아래쪽을 바라보았다.원태웅이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때 담현아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전화 왔어요!”원태
나는 석지훈과의 결혼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지금 내 가장 큰 소망은 그와 결혼해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간절히 말했다.“오빠랑 결혼하고 싶어요.”석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바보.”“너희 둘, 뭐 하고 있어?”한민수가 와인 잔을 들고 우리 대화를 방해하며 말했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 그리고 내 솔로 탈출도 좀 빌어줘.”한민수의 시선은 담현아를 향하고 있었다.하지만 담현아는 스테이크 요리를 여유롭게 먹으며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보였고 그녀는 이 요리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나는 잔을 들어 한민수와 부딪치며 말했다.“고마워요.”석지훈도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넌 평생 솔로일 거야.”한민수가 순간 멈칫하며 말했다.“지금 나를 저주하는 거야?”석지훈은 그를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억울한 표정의 한민수가 담현아에게 다가가 말했다.“쟤가 나를 괴롭혀!”담현아는 그를 흘긋 쳐다보며 태연하게 말했다.“내가 저 사람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담현아는 석지훈을 이길 수 없었고 한민수도 진심으로 복수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그저 담현아에게서 조금이라도 존재감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었다.하지만 담현아는 그런 한민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담현아의 무미건조한 반응에 실망한 한민수는 결국 식사에 흥미를 잃었다.그는 원태웅에게 물었다.“여기 노래방 기계 있어?”원태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있지. 내가 먼저 한 곡 부를게.”원태웅의 목소리는 매우 청아했고 그가 부른 두 곡 모두 훌륭했다.한민수는 마이크를 넘겨받으며 나에게 물었다.“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를 하나 말했고 한민수는 노래를 찾아 부르기 시작했다.그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었다.잘생긴 외모와 재력에 재능까지 겸비한 한민수는 정말 뛰어난 남자였다.한민수가 몇 곡을 연달아 부르는 사이 석지훈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떠났다.나는 따라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사람들이 없는
나는 놀라며 물었다.“운산이요?”혹시 석지훈이 그 별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한민수가 대답했다.“네. 원태웅 대신 유진이가 유럽에 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금 원태웅과 석지훈이 별장에서 요리하고 있어요. 덕분에 저도 석지훈 요리를 처음 맛보게 생겼네요!”나는 살짝 질투를 자극하려는 듯 말했다.“오늘 점심도 오빠가 나한테 해줬거든요.”한민수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자랑은 그만하시죠!”나는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열어 기사를 확인했다.석지훈의 게시물은 이미 ‘좋아요’가 백만 개 가까이 달렸고 내 팔로워 수는 10만을 넘어섰다.내 계정 아래에는 ‘원 대인’이라는 사용자가 댓글을 남겼다.“흑흑, 연수아 양이 제 댓글을 따라 하다니 감격이에요!”나는 낮게 웃으며 답을 남겼다.“셋째 오빠, 재밌어요?”잠시 후, 그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윤아야, 그렇게 대놓고 밝히면 어떡해!”그가 나를 ‘윤아’라고 부르는 걸 보니 이제 완전히 나를 용서한 것 같았다.나는 답장을 보냈다.“셋째 오빠, 이렇게 하면 팔로워 늘릴 수 있어요.”그는 요리하느라 바쁜 것 같았고 더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사실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다.혹시 석지훈이 오늘 나에게 프러포즈하려는 걸까?그런 사람이 대중 앞에서 화려한 프러포즈를 할 것 같진 않았다.아마도 파티를 여는 것 자체도 큰 결심이었을 테고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한 거라고 생각했다.사실 이 정도로만 해줘도 나는 이미 충분히 만족했고 그가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운산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9시였다. 그곳에서는 석만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가주님.”그는 나를 별장 정원안으로 아내한 후 다시 밖으로 나갔다.어디로 가는지는 몰랐지만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북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듯했다.별장 정원은 화려한 네온 조명으로 가득했다.네온 불빛 아래에는 하
석지훈은 공적인 자리에서 애정을 과시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그의 이름으로 개설된 SNS라니.나는 태블릿을 들고 팔로워가 100명도 안 되던 그의 계정이 순식간에 20만 명으로 늘어나는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오빠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네요!”함 집사는 내 감탄하는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의 명성은 항상 높았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여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고 그의 연락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셀 수 없었죠. 하지만 그 누구도 대표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으며, 그의 연락처를 얻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SNS 계정을 개설하셨으니 팬들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하지만 곧바로 약혼 소식을 발표했으니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이겠지요.”함 집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드물게 자신의 직책을 넘어선 말을 덧붙였다.“대표님 눈에 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가주님 한 분뿐일 겁니다. 가주님, 제가 몇 년 동안 대표님과 함께 일하며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가주님께서는 평생 믿으셔도 될 사람입니다.”나는 미소를 지으며 동의했다.“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는 제가 평생을 맡길 만한 사람이에요.”나는 태블릿을 함 집사에게 건네고 휴대폰을 꺼내 계정 이름을 ‘연수아’로 변경했다.그리고 계정과 비밀번호를 함 집사에게 알려주며 인증을 부탁했다.함 집사는 빠르게 나를 석씨 가문의 대표로 인증했다.나는 이 계정으로 석지훈의 게시글을 다시 리트윗하려 했지만 인기 댓글 중 하나를 보고 놀랐다.어떤 사용자가 ‘원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댓글을 남긴 것이었다.[흑흑, 드디어 석 대표님과 연수아 씨가 인연을 맺다니 감격스러운 순간이네요! 팬으로서 축하드립니다. 두 분 행복하세요!]이 귀여운 댓글을 보니 원태웅이 떠올랐다.우리가 사이가 틀어지기 전 그는 이런 성격이었다. 게다가 오늘 낮에 우리가 화해하지 않았던가.댓글 아래에는 나와 석지훈의 사진도 많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잘생겼고, 나도 여전히 아름답
고정재도 예전에 나에게 경고했었다.함 집사는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나를 회사의 여러 부서를 둘러보도록 안내했다.석씨 가문의 산업망은 매우 광범위했으며 저녁이 되어서야 모든 부서와 핵심 부서를 둘러볼 수 있었다.석씨 가문의 핵심 부서는 굉장히 특별했다.이 부서는 석씨 가문이 전 세계적으로 가지고 있는 권력의 분포를 관리하며 세계에 대한 인식과 분석을 담당하고 있었다.또한 내가 처음 들어본 최씨 가문에 대한 정보도 이곳에 있었다.최씨 가문은 과거 정치 가문이었으며 상업적 활동은 크지 않았다.그러나 석지훈이 반년 전 쇠퇴한 이후 그들은 그의 유럽 세력을 신속히 흡수하며 부상했고 이제는 진유겸 다음가는 상업 거물이 되었다.나는 이 부서의 존재를 이제야 알게 되어 함 집사에게 물었다.“왜 전에 석씨 가문에 이런 핵심 부서가 있다는 걸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때 준 자료에도 없었잖아요.”함 집사는 침착하게 설명했다.“가주님, 석씨 가문의 핵심 부서는 수백 년간 쌓아온 석씨 가문의 권력 기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에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가주님께서 가문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석 집사님이 떠나시기 전 가주님을 점진적으로 교육하라는 지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그래도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배우실 수 있습니다.”나는 그가 숨긴 것에 대해 나무라지 않고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최씨 가문의 자료는 여기 있던데 지훈 오빠에 대한 자료는 없어요?”“아직 수집하지 못했습니다.”나는 의아하게 물었다.“최씨 가문의 자료는 그렇게 빠르게 업데이트되는데 왜 지훈 오빠 자료는 그렇지 않나요?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요?”“아닙니다. 다만 석 대표님 측의 보안이 매우 철저합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더 이상 조사할 필요 없어요.”함 집사는 놀라며 말했다.“그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나는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함 집사님, 이건 내가 그에게 줄 수 있
“저는 몰라요. 셋째 오빠는 알고 있어요?”내 말에 전화 너머에서 원태웅이 설명했다.“나와 한민수는 지훈이 형이 감옥에 갇혀 있던 시기에 그가 석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나중에 윤 비서에게 들으니 형이 예전에 친부모를 찾으려 했었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때는 제대로 찾지 못했고 단서 몇 가지만 알았던 모양이야.”“이후 유럽 세력 재건으로 바빠서 그 일을 잠시 접어둔 것 같아. 나는 그 일에 마음이 쓰이다가 그를 대신해 조사를 했고 얼마 전 그의 친부모를 찾았어. 그런데 아주 평범한 한인 가정이더라고...”석지훈이 나웨이에서 친부모를 찾으려 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다. 그때 나는 한민수의 속임수로 나웨이에 끌려가기도 했다.그곳의 작은 나무 오두막이 바로 석지훈이 태어난 곳이었다.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둘째 오빠도 알아요?”원태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에게 차마 말할 수가 없었어.”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왜요?”“그 부부는 지훈이 형 외에 세 아들과 두 딸이 더 있어. 막내는 겨우 아홉 살이고.내가 그냥 손님 신분으로 그 집에 가봤는데 그들은 정말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조심스럽게 과거에 대해 물어봤어. 그들은 확실히 갓 태어난 아들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했어...”“내가 그 아이가 돌아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그들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 그 아이는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였고 그들에게 짐이었을 수도 있거든.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없을 거라고 했어. 아마 그들은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받는 걸 두려워할 거야.”원태웅은 석지훈이 실망할까 봐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나는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원태웅은 내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며 말했다.“과거 일은 더 이상 너와 따지지 않을게. 둘째 형이 이런 기회를 준 덕분에 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거든.”
석지훈이 나를 달래듯 말했다.“착하지.”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휴대폰을 가져왔다.원태웅의 번호를 찾아내는 동안에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나는 원태웅을 두려워했다. 그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대적이었던 사람이 바로 그였고 그는 항상 나를 냉소적으로 대했었다.용기를 내어 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통화 중이라는 알림이 떴다.그제야 그가 나를 차단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아래층으로 내려가 이 사실을 석지훈에게 알렸다.그러나 그는 생각을 굽히지 않고 대신 주머니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비밀번호는 네 생일이야.”그의 비밀번호가 내 생일이라니!놀란 마음으로 물었다.“언제 바꾼 거예요?”그는 힐끗 나를 보며 말했다.“할 일 해.”나는 근심 어린 얼굴로 다시 물었다.“꼭 내가 셋째 오빠한테 말해야 해요?”“응, 상황이 긴박해.”긴박한 상황이라 해도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만큼 급하지는 않을 텐데.나는 그의 하얗고 긴 손가락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가 일부러 나에게 원태웅에게 전화를 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사실을.그는 우리가 화해하기를 바랐던 것이다.사실 이건 오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였다. 본래 내 잘못이었고 원태웅은 나에게 오랫동안 앙금을 품고 있었다.석지훈은 우리가 화해하기를 원했고 그의 의도를 이해한 나는 곧바로 그의 휴대폰을 열고 원태웅의 번호를 찾았다.한민수는 예전에 나에게 말했었다.“원태웅이 끝내 널 용서하지 않는다 해도 네가 스스로 굽힐 필요는 없어.”하지만 그는 석지훈의 형제였고 석지훈은 나의 남자였다.나는 그가 우리 사이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게다가 지금 석지훈은 나에게 화해의 기회를 준 것이다.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원태웅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마 석지훈의 번호라서 그런지 그는 전화를 굉장히 빠르게 받았다.“형!”그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셋째 오빠.”원태웅이 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