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진서준이 작은 마을의 다리 없는 백수였다면 그는 무척 따분한 나날을 보낼 것이다. 단순히 먹고 사는 걸로 현실을 버틸 수 없고 최희연은 항상 속으로 고상한 것들을 바라왔으니까.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바꾸는 것뿐이다.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말이다.하지만 인생은 쉬운 게 없었다.진서준과 헤어지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니 아래층에서 비서가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유지영도 자리에 있었고 내가 다가가자 비서가 설명했다.“대표님, 이쪽에 사인해 주세요.”내가 받아 사인을 하자 비서가 계약서 사본 하나를 유지영에게 주었고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당신은 고현성 못 뺏어.”그 말에 나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누가 뺏는다고 했어요?”유지영은 여전히 콧방귀만 뀌면서 아무 말 없이 오만하기 그지없는 못난 표정을 지었다.나는 웃으며 물었다.“그쪽 유서정 씨가 그 사람 좋아해요?”유지영은 콧방귀를 뀌며 뒤돌아 가버렸고 나는 한숨을 쉬며 비서에게 말했다.“저런 여자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어요? 주제도 모르고 사람 미움이나 사는 저런 사람은 정말 상대하기 싫어요.”비서가 웃으면서 말했다.“아까는 질문하시던데요.”나는 저도 모르게 설명했다.“고현성을 좋아하는 게 저 여자인지 유서정인지 궁금하잖아요.”말이 나오자마자 내 뒤에서 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강해온 씨, 먼저 회사로 돌아가세요.”비서가 뒤돌며 고 대표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먼저 가서 유씨 가문과의 뒷일을 처리해요.”그 말에 비서는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났고 내 차까지 끌고 가자 나는 어이없다는 듯 한 마디했다.“겁이 참 많아.”고현성이 내게 다가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린 채 물었다.“연수아, 질투해?”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뭐라고요?”그가 담담하게 대꾸했다.“누가 날 좋아하는지 궁금해했잖아.”“...”맹세코 그냥 해본 말이었다.나는 그를 상대
난 한때 고현성이 연씨 가문을 이어받을 적임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가 나에게 돌려주니 속수무책으로 어쩔 수 없이 연씨 가문이라는 성가신 물건을 이어받았다.그래, 나에겐 아주 성가신 것이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치료받으러 가려고요.”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나는 호기심에 물었다.“언제 따라왔어요?”그러자 고현성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네가 날 신경 쓰지 않은 거야.”“...”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 돌아섰는데 갑자기 뒤에서 그가 나를 안아 들었고 놀란 내가 무의식적으로 팔로 그의 목을 감싸자 이런 나를 보고 그가 웃었다.“겁이 참 많아.”조금 전 내 비서에게 했던 말이라 나는 눈을 흘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내려줘요.”고현성은 요즘 나를 아무 때나 껴안고 뽀뽀하는 등 제멋대로 대하고 있었다.요 며칠만 해도 여러 번 키스했는데 그와의 키스는 반경우와 사뭇 느낌이 달랐다.하나는 아무런 잡생각이 들지 않고 다른 하나는 뜨겁고 격정적이었다.그를 원망한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키스할 때도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나는 한숨을 쉬며 이런 내가 너무 미웠다.두 형제에게 깊이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꼴이란.고현성은 내 말을 무시했고 나는 한층 더 단호하게 말했다.“내려달라고요!”이번에 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싫어.”“계속 이러며 소리 질러요?”번화한 도심이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기에 그가 이렇게 나를 안고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 만했고 선남선녀인 우리가 다소 사무적인 차림을 하고 있으니 내가 크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주위에는 어느 정도 사람이 몰려들었다.그런데 고현성은 겁도 없이 도발했다.“질러봐.”차라리 나쁜 짓을 하면 모를까 짓궂게 나오니 어쩔 수 없이 나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말했다.“빨리 가요.”그는 웃고 있는지 가슴에서 움직임이 전해졌다.고현성은 나를 안고 차가 주차된 곳까지 50미터 남짓 걸어가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나를 태운 다음 발목을 잡고 진흙이 묻은 하이힐
“연수아, 뭐로 날 거절할래?”그래, 난 그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입술을 깨물며 내가 말했다.“당신은 날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현성은 이 말을 무시했다.차가 산까지 올라가는 동안 고현성은 다시 말을 걸지 않았다. 아마 눈치 없이 구는 내 말에 할 말을 잃은 걸 수도 있지만 어차피 나도 그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나는 고개를 기울여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고 희미한 구름 속에 숨어 있는 구불구불한 산들이 아른거리는 착각을 일으켰다. 시선을 돌려 고현성을 바라보자 그의 잘생긴 옆태와 멀리 보이는 산들이 조화를 이루어 사람 마음을 홀렸다.이 순간 나는 과거의 모든 원망을 잊고 모든 것이 3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나는 그와 결혼할 날만 고대하고 있었다.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나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는데 비록 그가 극도로 꺼리긴 했어도 나는 그날 내 꿈이 현실이 된다고 생각했다.꿈이 현실이 되다니... 그것은 모두 환상이었다.나는 시선을 거두어 휴대폰을 꺼내 SNS를 확인했고 나와 반경우의 스캔들 열기는 사그라들었다.어제의 그 영상은 어디에도 없었다.하루도 안 돼서 영상이 사라졌다는 건 누군가 손을 썼다는 뜻이고... 지금 옆에 있는 남자가 유력했다.나는 망설이다가 고현성에게 묻지 않고 비서에게 문자를 보냈다.[인터넷에 있는 내 스캔들 누가 해결했어요?]비서는 답장을 보냈다.[바로 알아볼게요.]휴대폰을 도로 넣은 나는 눈을 감았다. 어제 너무 늦게 잔 탓에 지금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잠이 들었고 깨어났을 때 차 안에는 고현성이 보이지 않았다.순간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더니 차창 밖에 반듯한 체격의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고 그를 보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고현성은 정장 재킷을 벗은 채 흰 셔츠만 입고 있었고 그의 정장은 지금 내 몸 위에 있었다.산속의 바람이 거세서 그의 셔츠가 부풀어 올랐고 나는
“그래, 그럼 조금 쉬었다가 내가 요리해 줄게.” 멈칫하던 고현성이 부드러운 어투로 물었다.“뭐 먹고 싶어?”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요리할 줄 알아요?”질문이 입 밖에 나오고 나서야 불필요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전에도 그가 나를 위해 요리해 준 적이 있었으니까.임지혜가 좋아하는 굴비 요리였지만.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못 먹어봤어?”“먹어봤죠. 그냥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에요.”“뭐 좋아해, 굴비?”고현성은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전에 네가 굴비 요리 자주 해주던 게 생각나네. 제일 좋아하는 거지? 이따가 한 마리 구워줄게.”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물었다.“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생선을 구해요?”“있어. 비서가 전에 가져왔어.”짧게 대꾸한 나는 굴비를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았다.이제 와서 정정하기도 싫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그런데 무척 신기했다. 나와 고현성은 지금 아주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나도 무차별적으로 그에게 쏘아붙이지 않았다.바로 그때 비서가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고현성이 보는 앞에서 전화를 들고 그의 설명을 들었다.“대표님, 인터넷에 떠도는 그 기사는 고 대표님께서 막았어요. 영상도 지우는데 큰돈을 들인 것 같아요.”나는 고현성을 힐끗 쳐다보았고 그는 덤덤한 표정이었다.대꾸한 나는 문득 진서준이 떠올랐고 유씨 가문과의 계약을 잃고 진씨 가문에서 분명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잠시 고민하던 내가 말했다.“연씨 가문에 요즘 어떤 계약이 있지?”비서가 의아하게 물었다.“무슨 뜻이에요, 대표님?”“진씨 가문에 큰 계약 두 개를 골라서 진서준에게 맡겨요. 이건 강 비서가 알아서 하고 나 대신 그 사람 챙겨줘요.”전화를 끊자 고현성이 의아한 어투로 물었다.“진서준한테 잘해주네. 전에 알던 사이야?”나는 대답하지 않고 호기심에 물었다.“그런데 왜 진씨 가문을 도와준 거예요? 단지 연씨 가문과 맞서기 위해서?”그가 단호하게 대답했
다들 내가 엉뚱한 사람을 사랑해서 연씨 가문을 고현성에게 준 거고 원래는 고정재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3개월 전 연씨 가문을 고현성에게 줬을 때 그는 나와 이혼하고 싶어 했고 나는 그를 뼛속까지 이가 갈릴 정도로 미워했지만 그래도 연씨 가문을 넘겨줬다.그를 사랑한다는 것 말고도 그가 제일 적절한 사람이었으니까.그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고 진화그룹을 작은 기술 회사에서 이렇게 큰 규모로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뜻인데 야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연씨 가문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고정재였다면 난 아마 연씨 가문을 주지 않았을 거다.그는 예술가였고 재계는 뜻이 없었기에 내가 아무리 그를 사랑해도 연씨 가문이 우선이었다.그러니 고현성이 어부지리로 가진 건 절대 아니었고 상황이 이렇게 된 지금도 나는 연씨 가문을 그에게 넘겨주고 싶었다.이런 오해가 마음속에 남아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해명했다.“고현성 씨, 어부지리 아니에요. 내가 생각이 있어서 그 쪽한테 넘겨준 거예요. 주위를 둘러봐도 운성에 제일 능력 있고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니까.”그는 3년 동안 연씨 가문과 대적했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고현성은 잠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가 내 팔을 잡고 물었다.“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해?”“오빠가 나보고 상주로 오라고 재촉하고 있어요.”“연씨 가문을 내게 준다는 거야?”“네. 나는 먹고 살 걱정 없고 자식도 없는데 남은 시간도 장담 못하니까 연씨 가문에만 매달리고 싶지 않아요. 현성 씨가 제일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여전히 연씨 가문을 넘기고 싶어요.”“나를 원망하지 않아?”그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하죠. 예전에 나한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는데.”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원망할만해.”“연씨 가문은 원하면 언제든 가져가요.”“그럼 고정재는?”나는 인상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그 사람 얘기를...”그는 무
나는 머리를 말린 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가지고 놀았고 우리 둘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고요한 분위기도 결국 깨져버렸고 적막을 깬 건 윤다은의 전화였다.왜 나한테 전화했을까... 나는 의아했다.내가 받을지 말지 망설이고 있을 때 고현성이 고개를 내밀며 위에 뜨는 이름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한 듯 말했다.“다은이 눈에는 고정재밖에 없어.”고현성은 고정재를 형이라고 부른 적이 거의 없었고 두 사람은 가까워 보이지 않았다.고현성이 옆에 있어서 전화를 받지 않자 윤다은은 아예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걸었다.짜증이 난 고현성이 내 손에서 전화기를 빼앗아 통화버튼을 누르고 물었다.“다은아, 무슨 일이야?”짜증스러운 고현성의 목소리와 윤다은도 그가 받을 줄 몰라 잠시 당황하며 말했다.“작은오빠, 수아 언니는?”“네 새언니는 왜 찾는데?”그는 뻔뻔하게도 윤다은에게 새언니라고 부른 것을 요구했고 윤다은도 제꺽 반응하며 물었다.“새언니는?”고현성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뭐 때문에 찾는 건데?”라고 물었다.“나 또 경찰서에 갇혔어.”“...”윤다은은 애처롭게 설명했다.“큰오빠를 찾을 엄두는 안 나고 오빠도 날 욕할 것 같아서 수아 언니한테 연락했어.”고현성이 차갑게 말했다.“쌤통이다.”“...”“작은오빠, 나 좀 구해줘.”“알아서 해.”고현성은 잔인하게 거절하고 바로 통화를 끊었고 나는 망설이며 말했다.“이러면 안 되지 않나요?”고현성은 나에게 휴대폰을 다시 건네며 말했다.“사고 칠 땐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 안 한대? 하루 동안 가둬서 혼 좀 내야 해. 내일 시간 나면 데리러 가야지.”고현성은 잠시 망설이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다은이도 좀 불쌍해. 너 못지않게 고정재를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고정재랑 같이 자랐으니 몇십년은 됐네.”그는 자주 고정재를 언급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가라앉았다.나는 짜증스럽게 물었다.“고정재 씨 얘기 그만
고현성이 샤워 가운을 당기는 순간 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더욱 화가 났다.나는 서둘러 이불을 집어 내 몸에 감고 고현성에게 매섭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의 노골적인 눈빛이 내 몸에 향하는 걸 보았다.나는 숨을 크게 내쉬면서 죽은 듯이 누워있는데 그 남자는 여전히 침대 반대편에 가만히 있었고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특히 지금은 내가 고양이 앞에 선 쥐가 된 기분이었다.나는 감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손으로 이불 모서리를 단단히 잡았다.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보고 고현성은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경멸하듯 말했다.“한심하긴.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겠어?”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현성이 갑자기 내 몸을 덮쳐왔고 나는 애써 침착한 척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내려가요.”허, 뻔뻔한 남자!지금 내 마음은 그에게 향해 있지 않았고 그를 사랑하지도 않았다.게다가 이런 상황은 한번 일어나면 두 번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운성을 떠나지 않는 한 그는 늘 갖은 방법을 동원해 나를 침대로 끌어들일 것이다.나는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싫어요.”나는 몸부림쳤고 고현성은 어두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뻗는 순간 내 몸에서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미안, 참을 수가 없었어.”나는 말없이 가운을 주워 입었고 방은 유난히 조용했다.고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나는 곧 통유리창 너머로 그가 수영장으로 건너가는 모습을 보았다.이 방은 마침 별장 대문의 풍경을 담고 있었는데 그는 수영장 라운지에 앉아 옆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몇 모금 피우고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담배를 껐다.유난히 작아 보이는 그의 등이 어젯밤과 겹쳐 보였다.나는 다시 뒤돌아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눈을 감고 뒤척이다가 갑자기 비서가 나에게 걸었던 전화가 생각났고 그는 고현성이 많은 돈을 써서 검색어를 삭제했다고 말했다. 사실 나를 도와줄 필요가 없는데 그는 여전히 그렇게 했다.게다가 갖은 수단을 써서 연씨 가문을 상대한 것
“아, 뒷마당에 어떤 물고기를 키워요?”지루한 질문이었지만 고현성과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고 다행히 그가 참을성 있게 내 말에 대꾸했다.“다 조기야.”조기...임지혜를 위해서 키우는 건가?여기 임지혜를 자주 데려오나?나는 실망한 내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고 짧게 대꾸하며 무심하게 말했다.“임지혜 씨가 전에 굴비 좋아한다고 나한테 말한 적 있어요.”고양이를 쓰다듬던 고현성의 손이 멈췄고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여기 데려온 적 없어. 걔를 위해 키우는 것도 아니고.”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럼 누구를 위해 키우는 거예요?”고현성의 눈빛이 나를 향했고 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나를 위한 거라고 하지 마요. 난 굴비 싫어해요.”고현성은 당황했다.“뭐?”나는 태연하게 말했다.“난 굴비 싫어해요. 비린내가 심하고 가시도 많은데 임지혜 씨 말로는 당신이 좋아한다길래 결혼하고 당신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매번 요리했죠. 비록 결혼생활 동안 당신은 내가 한 요리를 한 번도 먹지 않았지만.”3년간의 결혼 생활에 난 모든 걸 바쳐 헌신했고 그때의 나는 참 한심했다.고현성은 중얼거렸다.“그랬구나...”나는 의아하게 물었다.“뭐라고요?”고현성은 고개를 저으며 나를 보면서 말했다.“일찍 자. 내일 내려가자. 난 경찰서에 다은이 데리러 가야 해.”짧게 대꾸한 나는 창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었다.요즘 불면증이 심해서 눈을 뜬 채 주황빛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고 밝은 빛이 오동나무에 드리우며 얼룩져갔다. 그리고 고현성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러 다시 수영장으로 가는 모습도 보였다.고현성은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 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나는 급히 눈을 감고 자는 척하다가 멀어지는 발소리에 눈을 떴고 이윽고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옷을 챙겨입고 나가자 고현성이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화장할래? 여기 화장품 있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고현성의 곁에 내가 연적으로 생각했던 여자는 딱 한 명만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