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원망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조씨 가문을 상대하기 위해 내가 이어받고 다시 연씨 가문을 저격하는 게 아니면 난 지금 운성으로 돌아오지도 않았을 거다.연씨 가문을 이어받는 것만으로 아주 성가시고 시간 낭비인데 그와 함께 서로 괴롭히면서 살자고?내가 미쳤다고 그러겠나.나는 우습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며 조롱했다.“나한테 왜 그렇게 집착해요? 난 이제 당신이 너무 낯설어요. 이러면 당신이 날 못 잊은 거라고 내가 오해해요.”고현성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기억을 잃기 전엔 날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설마 우리 사이 일을 다 잊어버리고 나에 대한 사랑만 남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죠? 허, 내가 그걸 믿겠어요?”화가 난 고현성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뻗어 내 목을 잡아 나를 품에 끌어당겼고 나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봐야 했지만 굴하지 않고 웃으며 물었다.“내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요?”고현성은 갑자기 고개를 숙여 내 입술을 짓누르더니 키스가 아니라 깊이 공격해 오며 내 입술을 세게 물었다.그러다 나를 확 놓으며 멀리 밀어버리자 중심을 잡지 못한 내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운성의 바닥은 축축했고 나는 바닥에 앉았을 때 한기가 느껴졌지만 바로 일어설 수 없었다.넘어지면서 삐끗한 발목이 너무 아팠지만 나는 앓는 소리도 내지 않고 바닥에 앉아 조롱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지금 나와 자꾸만 얽히려는 그가 참 우스꽝스러웠다.그도 이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한참 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 말했다.“연수야, 넌 참 겁도 없어.”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겁이 없겠나.그저 내 마음에 이미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뿐이다.나는 침묵했고 고현성은 화를 내며 돌아서다가 다시 내 앞에 돌아와 쭈그리고 앉더니 독한 말을 퍼부었다.“넘어져도 싸! 하루 종일 문제만 만들잖아. 동성에 가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키스하는 영상까지 인터넷에 올라오더
“방금 한 말 사실이야?”툭 튀어나온 그의 질문에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뭐요?”고현성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고정재한테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말 진심이야?”나는 힘없이 말했다.“방금 대답했잖아요.”그는 웬일로 화를 내지 않고 말했다.“네가 말해주길 바랐어... 그 말이 진짜라고 기대했거든.”“...”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투던 우리는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가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나를 위해 자신을 낮추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고현성은 최선을 다해 화를 참고 있었다.그는 내게서 차 키를 빼앗아 운전석 문을 열며 멋대로 말했다.“내가 집에 데려다줄게.”거절하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운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뒷좌석에 있었다.연씨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차를 몰고 차고로 들어간 고현성은 내게 묻지도 않고 익숙한 자세로 나를 안아 연씨 별장에 데려다주었다.솔직히 마음이 불편했다.우리가 이렇게 친밀한 행동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았다.엘리베이터를 나선 고현성이 내 안방 비밀번호 1227을 누르고 나를 안은 채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말했다.“집에 데려다줘서 고마워요.”비록 내가 넘어지고 발을 삐끗한 게 고현성 때문이지만 예의는 차려야 했다.내가 자주 서 있던 통유리창 앞에 서서 아래층을 내려다보던 고현성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문득 나에게 물었다.“이런 큰 집에서 살면 안 외로워?”“괜찮아요, 익숙해요.”고현성은 다시 시선을 돌려 항암제를 비롯한 수많은 약이 놓여 있는 화장대를 바라보았다.“항암 치료받는 거야?”잔뜩 굳어진 그의 목소리에 나는 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그가 갑자기 내 상태에 관해 물어봐서 놀랐다.“왜 갑자기 나에 관해 물어봐요?”그러자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쳐다보더니 다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전에도 충분히 생각해 줬잖아?”나는 고개를
지금의 고현성은 많이 착해져서 내가 아무리 차갑게 말해도 너그럽게 넘어갔다.지금처럼 내가 비꼬면서 조롱해도 그는 멍하니 물을 뿐이었다.“해외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를 찾아줄까?”“...”나는 침묵했고 그는 싸늘한 내 반응이 더 말하지 않고 잠시만 머물렀다가 떠났다.오래도록 이곳에 억지로 남아있으려 하지는 않았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통유리창으로 갔고 유리창 너머로 별장 앞 가로등 아래 서 있는 고현성이 보였는데 불빛이 그의 실루엣을 길게 끌어당겨 다소 외롭고 슬퍼 보였다.왜 고현성의 모습이 슬퍼 보인다는 착각이 들까.창문에 이마를 살짝 기댄 채 아래층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이 들었다. 내가 왜 고정재를 거절했는지도 모르겠다.나는 분명 그를 좋아하는데 결국 거절했다. 그리고 거절한 이유도 무척 우스웠다. 정말 좋아했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았고 이러한 이유로 그를 거절했다.그 생각에 심장이 무척 아팠다.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는 고현성을 보았고 불을 붙인 그가 부드럽게 연기를 내뿜어내자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때 코트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데 깊게 찡그린 채 불쾌한 표정을 짓는 걸 보아 또 누가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았다.전화를 끊고 다시 담배를 비벼 끄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고현성의 비서가 그를 데리러 왔다.비서는 그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고 그는 차에 타는 순간 고개를 돌려 내 방을 힐끗 바라보았다.나는 훔쳐본 걸 들키기라도 할까 봐 문득 마음에 찔렸지만 밤에 이 유리창은 그저 검은 가림판이라는 게 떠올랐다.고현성이 차를 타고 떠나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 상황이 무척 우스웠다. 할 일이 없어서 미쳐가는 것 같았다.일어나서 욕실로 가 샤워를 마치고 따뜻한 물에 약을 먹은 뒤 침대에 눕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윤다은이 보낸 메시지였다.[수아 언니, 왜 오빠 거절했어요?]윤다은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기에 굳이 해명할 필요는
나는 윤다은의 메시지에 다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새벽까지 밤을 설치자 운성에는 또다시 비가 왔다. 마르지 않는 이 습한 도시는 한 번도 건조한 적이 없이 우울했지만 나는 이런 곳이 좋았다.이곳은 부모님이 머문 곳이자 연씨 가문이 뿌리를 내린 곳이었다.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든 나는 다음날 일어났을 때 머리가 무거웠다.힘겹게 일어나 약을 먹고 어렵게 금색 시스루 원피를 입었다.최희연은 내가 언제나 레드카펫이라도 걸을 사람처럼 산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그녀가 이렇게 물었다.“수아야, 이렇게 사는 게 힘들지 않아?”힘들긴 하지만 화려하게 사는 게 익숙하다.3년 동안 고현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는 더없이 나를 가꾸면서 살았고 모든 걸 내려놨을 땐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화장대 앞에 앉기 전에 휴대폰을 꺼내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거울에 비친 볼의 희미한 흉터를 보았다. 더 지울 수가 없어서 화장으로 가려야 했다. 나는 파운데이션을 집어 들고 섬세하게 발랐다.화장을 마치자 비서의 차가 도착했고 나는 높지 않은 굽의 옅은 금색 하이힐을 신었다.어젯밤에 발을 삐끗해서 걷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견딜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운전을 할 수 없어서 특별히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오전에는 회사의 최근 업무에 대해 숙지하고 오후에는 유씨 가문과의 미팅 시간이 되었다고 비서가 알려주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서두를 거 없으니 조금 있다가 갈게요.”어젯밤 내가 늦게 도착해서 유서정이 간 건 맞지만 제시간에 도착했어도 바람맞혔을 거다.그들이 오늘 제대로 준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씨 가문을 불렀으니 분명 고씨 가문도 오겠지.우리 연씨 가문의 기를 죽이려고?하지만 난 누가 봐도 좋은 꼴 못 당하는 이런 자리에 결국 가야 한다....나와 비서는 늦게 도착했고 그가 문을 열자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와 어젯밤 무례하게 굴던 여자 유지영이 있었고 내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 말했다.“연 대표님, 늦으셨
진서준의 등장은 의외였다.이런 상황에서 그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진서준이... 진씨 가문 출신인가?진서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저희 진씨 가문에서 이번 계약을 원하는데 양보하실 건가요, 연 대표님?”진서준은 이번 계약이 특별히 중요한 듯 목소리가 다소 불안정하게 떨리며 양보라는 단어를 썼다.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유서정에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이미 계약을 파기해 놓고 왜 또 우리와 얘기하려는 거죠?”유서정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유지영이 말꼬리를 잡았다.“그쪽 비서가 우리한테 먼저 연락했어요.”나는 시끄럽다는 듯 여자를 흘겨보았다. 이 나이 먹도록 사람 대하는 방법도 못 배웠나, 아니면 날 경멸해서 일부러 도발하는 건가?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런데 유씨 가문서는 동의했죠. 동의한 이유가 뭐예요?”이번에도 유지영이 서둘러 끼어들며 무모하게 말했다.“그쪽이 발버둥 치는 모습 보고 싶으니까.”저런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도 신기했다.나는 싸늘한 얼굴과 아무 동요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연씨 가문과는 계약 안 하겠네요?”잠시 멈칫하던 내가 말을 이어갔다.“사업에서 경쟁은 흔히 있는 일이고 누가 맞고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쪽 어르신에 비하면 참 덜떨어지네요. 최소한의 도리도 안 지키는 게.”유지영이 다시 말하려 하자 유서정이 급히 손을 내밀어 말리면서 말했다.“대표님, 이익이 우선 아닌가요?”나는 웃으며 물었다.“그럼 가장 많은 혜택을 주는 사람과 일한다는 건가요?”유서정은 아무 말 없이 웃었고 나는 그녀의 이런 가식적인 표정이 싫었다. 자기가 모두 손에 쥐고 있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나와 연씨 가문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았다.누가 날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손을 대지 않는 성격이지만 지금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며 적어도 유씨 가문에게 두려움을 심어줘야 한다는 건 알기에 난 덤덤하게 물었다.“유서정 씨, 연씨 가문이 만만하세요?”그녀는 부드럽
“연수아 씨, 너무 잘난척하는 거 아닌가요?”유지영이 발끈했고 나도 지금까지 사업하면서 이런 이상한 사람은 처음 봤기에 다소 놀라웠다.게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하는 회사도 처음이었다.그들이 계속해서 날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나는 유지영을 경멸하는 태도로 무시하며 유서정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운성 연씨 가문, 동성 반씨 가문, 상주 조씨 가문까지 어느 도시에 손을 뻗어도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당신네 유씨 가문은 그 어떤 성과도 낼 수 없을 거예요. 고씨 가문이 도와준다고 해도... 고현성은 사업가라서 어떤 흐름에 따라가야 할지 정확하게 짚어내죠.”유서정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물었다.“조씨, 반씨 가문과 가까운 사이에요?”나는 태연하게 말했다.“적어도 그쪽이랑은 가깝지 않잖아요.”분명한 협박이었다. 유서정은 유지영처럼 어리석지 않았기에 분명 이득을 따져볼 것이다. 룸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고 유서정의 머뭇거리는 시선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의 얼굴이 다소 굳은 표정이었는데 아마도 이 계약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았다.그 순간 밖에서 문이 열렸고 나는 고개를 들어 고현성을 바라보고는 살짝 놀랐다.습관적으로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는 들어와서 내 곁에 앉았고 마침 서 있는 나를 위로 올려다보며 태연하게 말했다.“왜 앉아서 얘기하지 않고.”나는 이대로 가려다가 그가 갑자기 개입하니 입술을 깨물며 다시 그의 곁에 앉았다.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내 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연 대표님 사람 협박하는 능력이 대단하시네. 이렇게 하지. 하루 동안 나와 같이 보내면 오늘 이 일에 난 끼어들지 않는 걸로.”나는 그를 무시했고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개를 들자 마침 유서정의 눈동자가 보였고 늘 차분하고 침착하던 그녀의 얼굴이 이 순간 균열이 생겼다.나는 곧바로 그녀가 고현성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 이혼한 남자도 이렇게 환영받나?나는 굳이 들추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그건
유지영은 유씨 가문에서도 아무 발언권이 없는 애송이였기에 그녀의 말은 완전히 무시하면 그만이었다.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무시했고 유서정이 꾸짖자 그녀도 더 말을 꺼내지 못했다.유씨 가문이 연씨 가문과 계약을 맺었다가 파기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아했다.내가 유씨 가문으로 찾아오도록 일부러 유도한 것일까?이런 생각을 하면서 고현성을 바라보았다.그는 내가 도전적인 기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 일부러 유씨 가문이라는 먹잇감을 내 앞에 놓아 냄새를 맡게 한 다음 다시 빼앗아 간 걸 보면 나에 대해 적잖이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았다.그것도 단지 나와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참 무모하고 변덕스러운 남자다.진서준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낙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고 나는 비서에게 남아서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말한 뒤 서둘러 그를 쫓아가려는데 문 앞에 다다르기 직전 유서정이 나를 부르더니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대표님, 그렇게 서둘러 계약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그쪽이 이미 한번 약속을 어겼잖아요.”그들을 믿지 못한다는 내 말에 유서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했다.“원하시는 대로 하죠.”고현성의 넓은 등이 우리를 뒤로한 채 앉아 있었고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그는 내가 찾아올 줄 알았는지 로비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다가가서 말했다.“얘기 좀 해요.”진서준과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오직 최희연뿐이었다.밖은 번화한 거리였고 진서준이 다소 불편해 보이자 나는 고민 끝에 그를 한적한 곳으로 데려갔고 도착한 뒤 그는 보기 드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곳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네요.”나는 휠체어 손잡이를 놓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다 아는 사람끼리.”최희연의 애인이니 나도 그를 존중해야 했다.잠시 망설이던 내가 물었다.“왜 떠난 거예요?”지금 비가 내리는 건 아니지만 땅은 온통 젖어 있고 내 하이힐 굽은 진흙에 뒤덮여 었다. 나는
만약 진서준이 작은 마을의 다리 없는 백수였다면 그는 무척 따분한 나날을 보낼 것이다. 단순히 먹고 사는 걸로 현실을 버틸 수 없고 최희연은 항상 속으로 고상한 것들을 바라왔으니까.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바꾸는 것뿐이다.그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말이다.하지만 인생은 쉬운 게 없었다.진서준과 헤어지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니 아래층에서 비서가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유지영도 자리에 있었고 내가 다가가자 비서가 설명했다.“대표님, 이쪽에 사인해 주세요.”내가 받아 사인을 하자 비서가 계약서 사본 하나를 유지영에게 주었고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당신은 고현성 못 뺏어.”그 말에 나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누가 뺏는다고 했어요?”유지영은 여전히 콧방귀만 뀌면서 아무 말 없이 오만하기 그지없는 못난 표정을 지었다.나는 웃으며 물었다.“그쪽 유서정 씨가 그 사람 좋아해요?”유지영은 콧방귀를 뀌며 뒤돌아 가버렸고 나는 한숨을 쉬며 비서에게 말했다.“저런 여자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어요? 주제도 모르고 사람 미움이나 사는 저런 사람은 정말 상대하기 싫어요.”비서가 웃으면서 말했다.“아까는 질문하시던데요.”나는 저도 모르게 설명했다.“고현성을 좋아하는 게 저 여자인지 유서정인지 궁금하잖아요.”말이 나오자마자 내 뒤에서 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강해온 씨, 먼저 회사로 돌아가세요.”비서가 뒤돌며 고 대표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먼저 가서 유씨 가문과의 뒷일을 처리해요.”그 말에 비서는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났고 내 차까지 끌고 가자 나는 어이없다는 듯 한 마디했다.“겁이 참 많아.”고현성이 내게 다가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린 채 물었다.“연수아, 질투해?”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뭐라고요?”그가 담담하게 대꾸했다.“누가 날 좋아하는지 궁금해했잖아.”“...”맹세코 그냥 해본 말이었다.나는 그를 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