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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그것 또한 대답이지만 나는 그 대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 둘은 십 분 넘게 걸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걸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침내 그의 뒤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고 그의 뒷모습만 바라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힘겹지만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미래가 없어요.”

이 말에 그는 내 손을 꽉 잡고 고개를 기울여 살짝 어두워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다른 손을 들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너만 나와 함께하겠다면 성가신 문제는 내가 다 해결할게.”

나는 그의 손바닥에 비비적거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건 해결할 수 없어요.”

“날 믿어, 연수아.”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가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정재 씨, 나 이제 그쪽 안 좋아해요.”

나는 이 한마디로 그를 거절했고 그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결국 침묵했다.

내 손바닥을 잡고 있던 그가 갑자기 팔을 뻗어 나를 품에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꼬마 아가씨.”

내가 턱을 그의 어깨에 대고 시선을 들자 윤다은과 그와 똑같게 생긴 남자가 보였고 그 남자는 지금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왜 사과해요?”

“내가 너무 늦게 나타나서 널 많이 힘들게 했어. 이번에는 내가 널 기다릴게.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꺼이 기다릴게. 이번엔 내가 같은 자리에서 평생 널 기다리면 될까?”

고정재는 평생 나를 기다리겠단다.

내 9년과 그의 평생을 맞바꿨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두 사람의 귓가에 박혔고 윤다은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현성은 여전히 싸늘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태산 같은 굳건함을 유지했고 위기 속에서도 침착했다. 지금 날 안고 있는 사람이 그의 형인데도 말이다.

고정재는 나를 놓아주고 몸을 돌려 고현성 일행을 발견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나와 작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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