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빨리 일어나 잠옷을 입고 침대 옆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남자 앞에 섰다. 이렇게 뻔뻔한 사람은 고현성뿐이었다. 고정재는 절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고현성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내가 온 게 싫어?”당연하다는 듯한 그의 말투에 나는 불쾌함을 참으면서 되물었다.“날 잊었다면서 우리 집 비밀번호를 기억해요?”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걸어왔다. 나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선을 그었다.“본론만 얘기해요.”고현성이 가만히 서서 말했다.“난 숫자에 예민해. 머릿속에 들어온 숫자는 잊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 그리고 내가 잊은 건 너지, 너희 집 비밀번호가 아니야. 게다가 1227은 정재 형 생일인 것 같은데.”아무렇지 않게 고정재 얘기를 꺼내자 내가 불쾌함을 드러냈다.“함부로 추측하지 말아요. 고정재 씨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그러자 그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다시 물었다.“관계가 없다고?”나는 침착하게 되물었다.“무슨 관계이길 바라는데요?”고현성이 어두운 얼굴로 나의 손목을 잡고 차갑게 말했다.“둘이 무슨 관계든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든 넌 앞으로 내 사람이야. 아무도 널 빼앗아가지 못해.”“허.”내가 코웃음을 쳤다.“어디서 잘난 척이에요? 고현성 씨, 우린 아무 사이 아니에요. 무슨 사이라고 해도 당신은 날 단속할 자격이 없어요. 차라리 가서 임지혜 씨나 단속하지, 그래요?”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았다.방안의 불빛이 어두웠다. 고현성이 나를 벽에 힘껏 밀어버린 바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남녀 사이의 힘 차이를 제대로 느꼈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난 진심으로 널 사랑해.”운성시로 돌아와서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나는 비아냥거리며 웃었다.“날 잊었다면서요.”고현성의 숨결이 나의 얼굴에 고스란히 닿아 간질거렸다. 그는 나의 입술을 깨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응, 잊었어. 근데 널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고승철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의 말대로 3년 동안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은 고현성이었고 고현성은 내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이제 두 남자 모두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꼬마 아가씨라고 부르던 그 추억을 가슴속에 묻고 다시는 꺼내지도, 기대하지도 않겠다고 마음먹었다.나는 갑자기 운성시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운성시로 돌아오고 나서 나를 더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기만 했을 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기분이 우울해져 두 눈을 꼭 감았다.‘왜 이렇게 뒤죽박죽이 됐지? 고정재를 좋아하는 상황에서 왜 머릿속에는 고현성만 떠오르냐고...’나는 입술을 깨물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운성시에 한시도 있을 수가 없었다.‘일단 나가서 피해있자.’이튿날 아침 나는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갔다. 상주시로 간 게 아니라 어머니의 고향인 동성시로 갔다.동성은 운성의 옆 도시라 날씨가 비슷했다. 오늘도 구름이 많은 흐린 날씨였다. 나는 호텔을 잡고 반경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반경우는 나의 친구였는데 너무 친한 사이는 아니어도 그래도 나름 가까웠다. 예전에 나에게 동성으로 오면 연락하라고 했었다.나의 전화를 받은 그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동성에 왔어?”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응. 그래서 연락했어.”반경우도 나처럼 팔자가 별로 좋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항공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어머니도 그때 그 비행기에 탑승해 있었다...우리 둘은 그해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 후 몇 번 만났었다.“잠깐만 기다려. 데리러 갈게.”“아니야. 먼저 둘러보고 있다가 저녁에 찾으러 갈게.”나는 전화를 끊은 다음 코트를 챙기고 근처 오래된 마을로 향했다. 아침에 비가 내려서 마을 전체에 안개비가 자욱했다. 그런데 금운의 오래된 마을보다 예쁘진 않았다.금운의 오래된 마을은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예뻤다. 그곳은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예를 들어 눈사람도 그곳에서 만들었고 고현성의 따뜻함도 그곳에서 느꼈
[난 더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이 문자를 보낸 후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더는 복잡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고 과거로 자신을 가두지 않기로 했다. 나는 다른 남자를 만나 짧은 연애를 하고 싶었다.설령 나를 가여워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날 예뻐해 준다면, 사랑을 받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게만 해준다면 다 괜찮았다.나는 휴대전화를 넣고 오래된 마을에 저녁까지 있었다. 외곽이라 그런지 저녁이 되니 칠흑같이 어두웠고 거리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여자 혼자서 다니려고 하니까 조금 무섭기도 했다.나는 재빨리 택시를 잡았고 가는 길에 반경우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자기야, 어디야?”평소 반경우와 연락을 자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여자 마음을 참 잘 달래주었다. 그는 나와 함께 있을 때면 항상 나의 기분을 생각해주었다. 이 또한 내가 동성에 오자마자 그에게 가장 먼저 연락한 이유였다. 반경우는 나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고 마침 나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도 사랑이었다.어차피 살날이 제한되어 있으니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나는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대답했다.“택시 안이야.”“그래? 위치 보내봐봐.”반경우는 할 얘기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때 최희연이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어디야? 오늘 운성에 왔거든. 만나자.]나는 바로 답장했다.[나 지금 동성이야.]나는 택시 운전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후 돈을 낸 다음 길옆에서 반경우를 기다렸다.동성의 날씨가 조금 쌀쌀하여 코트를 입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최희연이 캐물었다.[동성 어딘데?]나는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물었다.[자세한 위치는 알아서 뭐 하려고?][너 혼자 있는 게 걱정돼서 그러지.]최희연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호텔 주소를 그녀에게 보냈다.잠시 후 반경우가 도착했다. 검은색 벤틀리를 타고 왔는데 라이트 때문에 눈이 다 부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차에서 내린 반경우가 나의 어깨를 잡고 장난쳤다.“내
반경우가 차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차에 올라탄 후 그에게 물었다.“어디 가?”그가 입꼬리를 씩 올렸다.“알아맞혀 봐.”나는 두 손을 펼쳐 보였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맞혀?”반경우는 차 문을 닫고 운전석에 탔다. 가까이 다가와 안전벨트를 해준 후에는 또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아버지가 얼마 전에 또 내가 만나던 여자를 도망가게 했어.”나는 사실을 콕 집어 말했다.“도망가지 않아도 그 여자랑 결혼하지 않을 거면서.”반경우는 옆에 여자가 없었던 적이 없었고 심지어 누구에게도 다 친절했다. 그런데 가장 매정하고 잔인한 사람이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사이였더라도 결혼 얘기만 나오면 바로 가차 없이 차버렸다.반경우가 나에게 물었다.“결혼이 재미있어?”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가정을 이루는 게 재미있긴 해...”반경우는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너처럼 이렇게 이혼해도?”나는 말을 잇지 못했고 더는 반경우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나를 동성시의 유명한 유흥가로 데리고 왔다.불빛이 번쩍이는 게 아주 번화했다. 반경우는 나의 손을 잡고 어느 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무대 위에 춤을 추는 젊은 남녀들이 가득했다.종업원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자리를 안내했고 반경우는 술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간 후 반경우가 웃으며 물었다.“연수아, 이런 데 처음 와보지?”나는 궁금해하며 물었다.“어떻게 알았어?”평소 늘 정직하게 살았고 선양 그룹을 물려받은 후에는 집, 회사, 식당뿐이었다. 고현성과 결혼한 후에는 고현성과 회사만 신경 쓰느라 이런 곳에 발도 디딘 적이 없었다.“너 엄청 궁금한 게 많은 것처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잖아.”반경우가 웃으면서 나를 놀렸다.“긴장해 하지 마. 내가 여기 있으니까 마음껏 놀면 돼.”그때 종업원이 술을 가져왔다. 반경우가 술을 건네자 나는 손을 내저으며 거절했다.“안 돼. 맨날 약 먹어서 의사 선생님이 술 마시지 말라고 했어. 술은 네가 마셔. 난 보기만 하면 되니까.”반경우는
아주 가벼운 키스였다.나는 놀란 두 눈으로 반경우를 쳐다보았다. 그에게 나와 연애하면서 날 예뻐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물론 나중에 다른 여자를 떠났던 것처럼 언제든지 날 떠나도 되었다.내가 물으려던 그때 반경우가 더욱 진하게 키스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잠깐 쉴 수 있는 뗏목이라도 찾은 것만 같았다.반경우는 한참이 지나서야 날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아주 매혹적인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가 웃으면서 보자 반경우가 얼굴을 어루만졌다.“술맛 어때?”나는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술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반경우는 아무 말도 없다가 나를 데리고 술집을 나왔다.세상 물정 모르는 듯한 나의 모습에 반경우가 차에 시동을 걸면서 웃었다.“순진하긴. 자기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내가 물었다.“뭔데?”그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안전벨트를 해주고는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오히려 그의 진지한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대체 뭔데?”반경우가 웃음기를 거두고 물었다.“나랑 키스한 느낌이 어땠어?”나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를 거절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동성으로 온 목적이 반경우였으니까.우리는 식사하러 한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친 후 근황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반경우는 늘 똑같은 삶을 보냈고 나에게 앞으로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당분간은 운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그곳에는 만나기 싫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가 갑자기 말했다.“조민수 연락처 알려줘.”나는 컵을 잡고 물었다.“그건 왜?”“내가 교수님을 몇 분 아는데 자궁암에 관해서 연구가 깊어. 소개해주려고.”잠시 후 반경우가 갑자기 화를 냈다.“이 세상에 너보다 더 어리석은 애도 없을 거야. 남자 하나 때문에 널 이렇게까지 망치다니. 그나저나 고정재는... 포기할 거야?”나는 내가 겪었던 일들을 반경우에게 다 말했다. 나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반경우가 여유롭게 물었다.“이유는?”“다른 사람한테 사랑받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고 싶어. 가짜여도 상관없어.”지금까지 연애하고 싶은 이유가 늘 이것이었다.가로등이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반경우는 가볍게 웃으면서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이 녀석아, 사랑받고 싶으면 그 사랑 내가 주면 되잖아. 근데 너랑 연애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난 평등한 사랑을 원하는데 네 마음속에는 내가 없잖아...”반경우가 절대 나를 거절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거절당했다. 그는 나의 이마에 키스하고는 이렇게 말했다.“난 널 예뻐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어. 그리고 남자 친구처럼 연애도 하고 결혼할 수도 있고. 근데 넌 날 사랑해?”줄곧 비혼주의자라고 했던 반경우가 나와는 결혼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진심이 느껴졌고 내가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이었다.나는 재빨리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미안. 내가 괜한 말 했어.”반경우는 시선을 늘어뜨렸고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일찍 쉬어. 내일 보자.”반경우가 떠난 후 나의 기분은 계속 복잡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을 건드린 것만 같았다. 그가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반경우에게 문자를 보냈다.[날 사랑해?]날 사랑한다면 바로 동성시를 떠날 생각이었다. 반경우가 답장을 보냈다.[아직은 아니야.]진짜인지 확인할 수 없는 답장을 보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던 그때 길가에 서 있는 검은색 벤츠를 발견했다. 차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내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물었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남자는 싸늘한 얼굴로 가로등 밑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반경우의 뒷모습을 향해 있었고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연수아, 거리를 누비면서 연애할 남자는 찾으니까 즐거워?”‘내가 즐겁냐고?’고현성이 치명적인 질문을 던졌다.나는 연애할 남자를 찾았지만 또 그 사람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게 두려웠
자세히 들어보면 말투에 나약함이 묻어있었고 지금 마주한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예전에 이 말을 들었더라면 나는 좋아서 펄쩍 뛰었을 것이다.나는 두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고현성이 나를 내려놓고 덤덤하게 물었다.“방 번호가 몇 호야?”나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냥 방 하나 더 잡아요.”고현성은 내 말을 무시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 앞에 한참 동안 서 있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다음 곧장 룸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을 연 순간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내 방 번호까지 알았어요?”‘이건 희연이한테 얘기하지 않았는데?’고현성은 넥타이를 풀면서 차갑게 말했다.“네가 든 이 호텔이 우리 그룹 거거든. 그리고 하나 더. 최희연 씨는 나랑 연락한 적이 없어.”나는 놀란 두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그러니까 이 호텔에 체크인했을 때부터 내가 동성에 있다는 걸 알았단 말이에요? 언제 왔어요? 밖에서 얼마나 기다렸는데요?”분명 고현성을 떠나고 싶어서 운성을 떠났는데 바보처럼 그의 영역에 제 발로 걸어들어왔다.고현성은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을 냈었는데.나는 답답한 마음에 캐리어를 꺼내 짐을 챙겼다. 고현성은 말리지 않고 내가 다 정리하고 나서야 덤덤하게 말했다.“넌 도망가지 못해. 네가 어딜 가든 다 찾을 수 있어. 아무튼 남는 게 시간이니까.”내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예요?”우리 둘은 절대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계속 엮였다. 그리고 나의 문제가 아니라 뻔뻔스럽게 매달리는 고현성 때문이었다.기억을 잃은 고현성은 나에게 심하게 집착했다.“나랑 재결합하자. 내 아내가 되어줘.”나는 생각하지도 않고 거절했다.“싫어요.”평생 다시는 그의 아내로 살고 싶지 않았다.내가 단칼에 거절하자 고현성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나의 얼굴을 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덤덤하게 웃었다.“무슨 근거로 내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고현성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강을 쳐다보면서 매력적인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넌 연애하고 싶다고 했고 사랑받고 싶다고 했어. 그건 내가 다 줄 수 있어. 그리고 난 기억을 되찾고 싶고. 딱 어울리잖아. 수아야, 우리 서로한테 기회를 주자.”내가 원하는 연애와 사랑을 전부 나에게 줄 수 있다고 했다...전에 나에게 준 적이 있었지만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나의 세상에서 떠나버렸다. 그 후 다시 만났을 땐 내 친구를 감옥에 보냈을 때였다. 내가 아무리 빌어도 전혀 끄떡없던 그였다. 내가 아이로 간절하게 부탁해도 말이다.“현성 씨, 2년 전에 당신 때문에 아이를 잃었을 때도 난 뭐라 하지 않았어요. 의사가 나한테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해도 가만히 있었고요. 나한테서 엄마가 될 자격을 빼앗은 거로 희연이 한 번 봐달라는데 그것도 안 돼요?”그때 고현성은 임지혜를 끔찍이도 아꼈고 나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잔인했다. 비교하니 내가 너무 가여워 보였다. 아무튼 그때의 고현성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사랑이 없는 남자가 무엇을 하든 다 이해가 되긴 했지만 용서는 안 되었다. 어쨌거나 내가 그의 아내였을 때도 이러했으니까.고현성은 아내인 나를 존중한 적이라곤 없었다.내가 고현성의 옆으로 다가가 깍지를 끼자 그가 화들짝 놀랐다. 나는 깍지를 들어 보이면서 덤덤하게 물었다.“왜 나한테 부족한 게 당신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죠?”고현성은 아무 말이 없었다.나는 절대 고씨 가문 형제와 연애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물었다.“우리 사이에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했죠?”고현성이 손을 어찌나 꽉 잡았는지 손바닥이 다 하얘졌다. 나는 애써 차분한 척하며 웃었다.“9년 전 내가 한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남자를 나의 신념이라 생각하고 맨날 쫓아다녔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세상에서 사라졌죠. 그러다가 6년 후에 우리 아빠가 나한테 고씨 가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