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미쳤어요?”내가 아는 임지혜는 비록 3년 전에 잠시 운성시를 떠나긴 했지만 절대 쉽게 포기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포기했더라면 3년 후에 다시 운성시로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나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내가 아무 말이 없자 임지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현성이 진짜 수아 씨를 사랑해요.”내가 직설적으로 물었다.“나중을 위해서 지금 잠시 물러서는 건가요? 내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척하다가 또 현성 씨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내가 못되게 굴었다고 일러바칠 건가요? 지혜 씨는 항상 연약한 척하면서 위로해주길 바라는 캐릭터잖아요.”임지혜가 버럭 화를 냈다.“당신...”비가 내려서 그런지 임지혜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 보였다. 내가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지혜 씨는 참 눈치가 없어요. 그러니까 몇 달 전에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민수 오빠한테 굴욕을 당했죠.”나는 멈칫하다가 다시 수정했다.“아, 잘못 얘기했어요. 지혜 씨는 예전에 현성 씨를 믿고 함부로 했던 거죠. 근데 이젠 현성 씨가 싫다고 하니까 나한테 와서 화풀이하는 거고... 지혜 씨 속셈을 내가 모를 것 같아요? 어디 보자. 지금 주변에 나랑 지혜 씨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찍는 사람이 숨어 있는 거 아니에요? 드라마 보면 그런 거 많던데.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척하면서 내가 지혜 씨를 때리면 인터넷에 올리려고 그러죠?”‘내가 진짜 멍청이인 줄 아나. 가만히 있었다고 함부로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해? 난 원한 같은 건 반드시 갚는 사람이라고.’속셈을 나에게 들켜서 그런지 임지혜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대놓고 욕설을 퍼부었다.“연수아 씨, 헛된 망상 따위 하지 말아요.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으면서. 현성이는 영원히 수아 씨를 좋아하지 않아요. 아, 고정재도 마찬가지고요. 당신은 평생 아무한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멍청한 여자예요.”나는 계단을 내려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내가 고정재
고정재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계속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임지혜는 나에게 심한 괴롭힘이라도 당한 것처럼 계속 바닥에 앉아 있었다. 참으로 역겹기 그지없었다.결국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나타난 순간 임지혜는 내가 이렇게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무척이나 놀란 얼굴이었다. 다행히 두 경찰의 설득 끝에 겨우 자리를 떠났다.나는 약을 먹은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경찰서로 오라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그 이유는 당연히 임지혜 때문이었다.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나는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경찰서로 향했다.저녁에 비를 맞은 탓인지 머리가 조금 무거웠다. 포르쉐를 타고 경찰서로 갔을 때 고현성도 그 자리에 있었다.그는 여전히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경찰서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를 본 고현성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싸늘하게 물었다.“연수아, 지혜가 널 건드렸어?”나는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왜요? 대신 복수라도 해주게요?”아무런 의미도 없는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임지혜가 무슨 사고를 치든 항상 고현성이 나서서 해결해줬으니까.비가 내린 뒤라 그런지 날씨가 유난히 쌀쌀했다. 고현성과 쓸데없는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아 코트를 여미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현성이 묵묵히 나의 뒤를 따랐다.임지혜는 나의 뒤에 있는 고현성을 보더니 무척이나 흥분했다가 이내 가여운 척했다.“현성아, 일부러 수아 씨 화나게 한 게 아니야. 그냥 네 얘기 좀 하려고 찾아갔을 뿐인데. 경찰에 신고해서 날 잡아가게 할 줄은 정말 몰랐어. 게다가 날 밀어서 바닥에 넘어지기까지 했어... 이것 봐, 몸에 상처가 가득해. 다 수아 씨가 이런 거야.”임지혜가 콕 집에서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손톱에 긁힌 자국조차 발견하지 못 할 뻔했다. 그녀의 모습에 나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참 자기한테도 독한 여자야.’고현성은 임지혜의
‘아... 고정재... 9년 전의 고정재를 말하는 건가?’나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오래 걸렸다.“네.”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최희연의 말이 맞았다. 3년 동안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은 고현성이었고 나와 3년을 투덕거린 사람도 고현성이었다.그러나 9년 전의 고정재는 그저 내가 어릴 적에 혼자 짝사랑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팠다. 나는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고 울먹거렸다.“맞아요. 난 그 사람 좋아해요. 그 사람은 내가 어렸을 적에 쫓아다녔던 유일한 빛이에요.”그런데 그 빛이 전남편의 형이었다. 속상함이 지나친 나머지 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난 항상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그 사람 뒤를 몰래 쫓아다녔어요. 그 사람이 나를 어떤 태도로 대하든 예전에 나한테 줬던 따뜻함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위로했죠. 근데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내가 그때 좋아했던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잘못 봤다고. 이보다 더 우스운 일이 있을까요?”몸이 아픈 탓인지 나는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까먹었다. 결국 그가 오늘 나에게 여러 번 물었던 질문에 대답했다.차 안에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훌쩍이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피곤한 바람에 참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땐 이미 이튿날 아침이었다.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눈을 비볐다. 그제야 나의 익숙한 방이 아니라는 걸 발견했다.이불을 들어보니 옷도 다 벗은 상태였다. 나는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집었다.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고현성이 컵과 약을 들고 서 있었다.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내가 왜 여기 있어요?”고현성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어젯밤에 내 차에서 잠들었어.”“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잖아요.”고현성이 여유롭게 눈썹을 치켜세웠다.“너희 집 키가 없어.”나는 그제야 키를 차에 뒀다는 게 생각
‘설마 지금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이러는 거야?’나는 고현성의 손을 밀어내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조민수가 보낸 카톡이었다.[도와줄까?]아무래도 내가 경찰서에 갔다는 걸 안 모양이었다. 나는 빠르게 답장했다.[괜찮아.]임지혜를 해결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그때 휴대전화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봤는데 메이크업이 다 지워진 상태였다. 얼굴이 창백했고 흉터가 그대로 드러났다.나는 난감해하며 물었다.“현성 씨가 메이크업 지워줬어요?”고현성은 내 옆에 앉더니 나와 깍지를 끼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응. 잘 때 불편할까 봐.”깍지를 켜서 불쾌했던 나는 재빨리 손을 빼고 경고를 날렸다.“나는 누가 내 화장 건드리는 거 진짜 싫어해요. 특히 현성 씨가 건드리는 건 더더욱 싫고요. 왜냐하면 이 흉터도 현성 씨 때문에 생긴 거니까.”고현성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미안해. 예전에 일들은... 다 내가 잘못했어.”진심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사과에 나는 더욱 화가 나 일어나서 호통쳤다.“지금 어디서 가식을 떨어요? 고현성 씨, 내가 지금 이 꼴이 된 게 다 현성 씨 탓이라고요. 특히 이 빌어먹을 암. 고작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내가 용서할 것 같아요? 꿈 깨요,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재결합?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나 생각해보는 게 어때요? 내가 귀한 시간을 현성 씨한테 낭비할 것 같아요?”섣달그믐날 전, 거의 죽어가던 그때 나는 고현성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어쨌거나 날 사랑하게 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죽을 때가 돼서 그런지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결국에는 탓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9년 동안 짝사랑한 남자라 생각했기 때문에.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고현성에게 끌려다닐 필요도 없었고 용서할 이유도 더더욱 없었다.고현성은 나와 말이 통하지 않자 바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가 방을 나간 후 나도 재빨리 그 집에서 나왔다.나는 먼저 경찰서로 가서 차를 챙겼다. 그런
“두 달 전 대표님 장례식 날이에요.”운성시로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고현성에게서 뭔가를 빼앗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일부러 선양 그룹을 이용하여 대성 그룹을 공격하고 있었다...그는 내가 선양 그룹과 대성 그룹이 싸우는 걸 가만히 볼 수가 없어 선양 그룹을 되찾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심지어 아직도 주식 양도 계약서를 가지지 않았다. 선양 그룹을 나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해 이러는 것 같았다.고씨 가문이 선양 그룹을 원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런데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버렸다.고현성이 이렇게 하는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키를 챙기고 차에서 내린 다음 별장으로 들어갔다. 거실 소파에 엊저녁에 놓아뒀던 베이지색 목도리가 그대로 놓여있었다.몇 개월 전 눈이 내리던 밤, 그는 하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서 나에게 해주었다. 그때 그의 모습은 정말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집까지 데려다준 후 목도리를 나에게 주고 떠났다.나는 재빨리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아래층의 그를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아래 그의 표정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눈빛이 조금 차가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속상했던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고작 10m도 되지 않았지만 엄청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그때의 나는 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이 다가가질 못했다. 그리고 그때의 그가 바로 내가 계속 잊지 못했던 고정재였다.나는 목도리를 품에 끌어안았다. 눈사람에게 해줬던 그 목도리가 고정재의 손에 들어갔다가 다시 수많은 고난을 겪고 나에게로 돌아왔다.고개를 숙여 냄새를 맡으니 상쾌한 냄새가 풍겨왔다. 고정재만이 가지고 있었던 매력이었다.나는 천천히 웃으면서 그의 이름을 가볍게 불렀다.“고정재.”이 이름이 아직은 낯설기만 했다.낮에 나는 계속 집에서 잠만 잤다. 저녁에 일어나 약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윤다은의 전화를 받았다.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나는 맥없는 목소리로
나는 현관 앞에서 하얀색 캐주얼 신발을 갈아신은 후 차고에서 검은색 스포츠카를 골라 회사로 갔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강해온이 회사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손에 든 차 키를 그에게 건네며 물었다.“임지혜 씨 일은 해결했어요?”강해온이 차 키를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경찰서 그 일은 이미 해결했어요. 근데 여론이... 대표님, 지금 인터넷에 돌고 있는 이 영상 좀 보셔야겠어요.”강해온이 휴대전화를 건네자 나는 대충 보고 다시 돌려주었다. 내가 하찮아하며 말했다.“임지혜 씨가 할 줄 아는 수작이라곤 이런 것밖에 없어요.”어젯밤에 내가 임지혜의 팔을 잡던 그 영상이었다. 내가 그녀의 팔을 내려놓자 스스로 바닥에 넘어졌는데 촬영 각도에서 보면 내가 때린 것처럼 보였다.내가 했던 추측 그대로였다. 역시나 누가 뒤에서 몰래 찍고 있었다. 이젠 그녀의 수단 따위는 그냥 척 보면 알았다.강해온이 설명했다.“조잡한 수단이긴 하지만 지금 리트윗 횟수가 백만이 넘었고 밑에 댓글도 정말 가관이에요. 다들 대표님의 해명을 요구하고 있어요. 게다가 선양 그룹의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고요.”나는 갑자기 그를 불렀다.“해온 씨.”강해온이 깍듯하게 물었다.“시키실 일 있으십니까?”“회사 사이트로 대응합시다.”강해온이 물었다.“어떤 내용을 올릴까요?”“때린 게 사실인데 이유가 필요해요?”그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이 세상에는 자기 주제를 모르고 이런 조잡한 수단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나에게 타격을 줘서 선양 그룹의 주가가 내려가고 또 날 협박할 수 있을 거라고 천진난만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내가 여론의 영향을 받아 임지혜에게 사과할 거라고 여겼다.‘허. 임지혜, 꿈은 야무져, 아주.’임지혜는 항상 대놓고 물어뜯거나 공격하는 게 아니라 옆에서 사람을 성가시게 만들었다.나는 가만히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알겠습니다, 대표님.”회사로 돌아온 나는 선양 그룹이 대
나는 고개를 돌렸다가 그 남자의 두 눈과 마주쳤다. 자세히 보니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었다.고현성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모두 차갑고 무뚝뚝한 남자들이었다.내가 고개를 끄덕였다.“대충 먹으러 왔어.”윤다은이 웃으며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먹는 건데.”나는 입술을 깨물고 설명했다.“방금 회사에서 일 보고 나왔어. 진짜 일부러 약속 거절한 게 아니야.”사실은 일부러 거절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딱 마주치니 정말 민망했다. 나도 거절하고 싶진 않았다. 다만 고정재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라서 거절했을 뿐이었다.그때 윤다은이 나의 팔을 잡고 칭찬했다.“수아 언니 너무 예뻐요. 눈 밑에 반짝이를 그리니까 엄청 어려 보여요. 언니 올해 몇 살이에요?”윤다은의 칭찬에 나는 조용히 서 있는 고정재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는 나를 다정하게 보면서 말했다.“수아 씨 96년생이야.”내가 태어난 연도까지 알고 있었다. 나의 마음속에 삽시간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거렸다.윤다은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96년생? 그럼 나보다 더 어린데요?”내가 피식 웃자 윤다은이 입을 삐죽거렸다.“그럼 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겠네요?”사실 언니라고 불러도 되었다. 예전에 새언니였으니까.나는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응. 근데 항렬로 따지면 내가 전에 새언니였어.”새언니라는 말을 듣고도 고정재의 표정이 아무런 흔들림이 없자 나는 실망감을 애써 감췄다.“다은 씨 오빠 고현성의 전처였어.”윤다은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끼고 있던 팔짱까지 풀었다.나는 웃으면서 말했다.“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 다음에 내가 식사 대접할게요.”식당을 나선 나는 고개를 들어 눈꽃을 바라보았다. 순간 슬픔이 밀려와 멈칫했다가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눈꽃이 내 몸에 떨어지려던 그때 누군가 검은 우산을 씌워주었다.나는 놀란 얼굴로 돌아서서 그에게 물었다.“왜 따라 나왔어요?”그의 중저음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집에 데려다줄게.”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차 가지고 왔어요.”
백미러로 고정재의 외로운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나의 건강이 좋지 않아도 당신은 날 가여워할 자격이 없다고요.”다른 사람은 날 가여워해도 고정재와 고현성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연씨 별장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늦은 밤이었다. 나는 씻은 후 침대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선양 그룹에서 올린 영상이 맨 위에 있었고 이런 댓글이 눈에 띄었다.[때린 게 사실인데 이유가 필요해요?]처음으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정면으로 맞섰다. 게다가 아주 강경한 태도로 말이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대성 그룹에서도 묵묵히 리트윗하고 있었고 같은 문구를 덧붙였다. 그리고 작은 기업들에서도 리트윗했다.선양 그룹과 대성 그룹에서 입장을 밝혔으니 다른 기업들도 우리에게 잘 보이려면 줄을 잘 서야 했다.그들은 전부 상업계에서 능구렁이 같은 사람들이라 머릿속엔 이익뿐이지 진실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았다.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야말로 옳다고 생각했다.강해온에게 댓글을 쓰라고 할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다만 대성 그룹이 이 일의 성공에 박차를 가했을 뿐.여론이 한순간에 기울기 시작했다. 이젠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이 영상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기업들이 다 선양 그룹의 편을 들고 있어요. 영상 속 이 여자 연기한 거 아니겠죠?]의심의 목소리가 한 번 나타나자 뒤이어서 봇물 터지듯 터졌다. 임지혜는 아무런 이득도 보질 못했다. 그리고 놀라운 건 고현성이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그렇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현성은 한 번도 임지혜를 위해 나서지 않았고 어젯밤에도 경찰서에서 나만 데리고 나갔다.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한가지 가설이 있긴 했는데 바로 고현성이 날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만약 이 가설이 성립된다면 고현성이 이젠 임지혜를 싫어하게 되었고 나를 사랑한다는 뜻이었다.섣달그믐날 전에 고현성이 날 찾아와 재결합하자고 했었다. 임지혜가 자살 소동만 벌이지 않았더라면 임지혜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하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