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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Author: 동과
결혼식이 앞당겨졌다. 임지혜의 요구대로 섣달그믐날에 올리기로 했다. 고씨 가문에 새해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임지혜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안방에서 신랑이 데리러 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정작 신랑은 우울한 표정으로 서재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결혼식 날이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마치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이 그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무슨 사명을 완성하듯 무감각했다.

고현성은 결혼반지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연수아와 결혼할 때 그녀가 직접 끼워준 반지라는 게 문득 떠올랐다. 연수아 생각에 그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연수아만 그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그는 연수아에게 전화하고 싶었다. 휴대전화를 들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연수아였다.

그 이름을 본 순간 고현성은 잠깐 멍해졌다.

‘왜 갑자기 나한테 전화했지?’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수아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목놓아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현성 씨, 수아가 집에서 숨을 거뒀어요...”

고현성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숨을 거두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집에서 숨을 거두다니?’

휴대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고현성은 큰일이 났다는 예감이 밀려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아가... 세상을 떠났어요.”

휴대전화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고현성이 연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여자 한 명이 있었는데 그도 아는 연수아의 절친 최희연이었다.

‘연수아는?’

연수아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생기라곤 없는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안색이 매우 창백했고 볼에 옅은 흉터가 있었다.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을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앳됐고 아무 근심 걱정 없는 꼬마 아가씨 같았다.

사실 연수아도 어린데...

고현성은 부들부들 떨면서 그녀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는 품에 끌어안았다. 마치 소중한 뭔가를 잃은 것처럼 두려움이 밀려왔다.

마침 그때 임지혜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고현성은 온몸을 떨면서 연수아를 안고 있었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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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한 일이에요. 얼른 넘겨줘요.”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석지훈에게 건넸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먼저 유진이랑 함께 에르크로 돌아가 있어.”곧이어 뒤따라오던 차도 멈춰 섰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조용히 차 문을 열고 내렸다.뒤차로 향하려던 순간 석지훈이 나를 불렀다.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아가.”나는 허리를 숙여 차 안의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엔 걱정이 가득했다.“무슨 일이에요?”그는 미안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집까지 데려다주지 못해서.”집...에르크에 있는 그곳.석지훈에게는 그곳이 진짜 집이었다.운성시에 정착한 것이 어쩌면 그에게는 큰 희생이었을지도 모른다.예유진이 나를 에르크로 데려가는 동안, 나는 줄곧 말이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정착해야 되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더 이상 그와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하지만 국내에는 내가 결코 놓을 수 없는 석씨 가문이 있었다.고정재가 말했듯, 나는 그것을 반드시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더 이상 과거처럼 무관심한 태도로 있다가 모든 걸 빼앗길 수는 없었다.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들은 담현아가 물었다.“언니, 뭔 일 있어요?”“아니, 그냥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나는 깊은 고민에 빠진 채 예유진에게 물었다.“유진 씨, 둘째 오빠랑 민수 씨가 떠난 이유가 뭐예요? 혹시 위험한 일이에요?”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자세한 건 저도 말해줄 수 없어요. 아직 형수님이랑 결혼한 사이도 아니다 보니 사업적으로나 사적으로도 공유할 수 없는 일이에요.”나는 늘 우리가 부부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왔다. 자연스럽게 함께했고 이미 충분히 깊은 관계라고 여겼다.당연히 법적으로 그의 아내가 된다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하지만 지금,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16화

    석지훈이 곧 전 세계였다.그는 다른 이들의 전부이기도 했다.그리고 나에게도, 그는 전부였다.“그래요. 오빠가 있으면 그게 곧 전 세계죠.”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석지훈은 슬며시 내 손을 잡고 한민수 일행을 뒤따라갔다.앞서가던 한민수는 계속 담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아마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겠지만 그 역시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었다.마치 한씨 가문에서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고 물러난 것처럼 이번에도 과감히 포기했다.예유진도 마찬가지였다.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문의 혈통이라는 거대한 산에 짓눌려 있었다.마치 과거에 내 아버지에게 발각된 석지훈처럼...아버지는 갖은 술수를 동원해 석지훈의 손에서 석씨 가문을 빼앗아 내게 넘겼다.몇십 년 동안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었고 늘 곁에 두고 가르친 사람이었지만 결국엔 나라는 낯선 존재가 더 중요했다.정해진 현실 속에서 운명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한민수는 자신이 너무 오래 담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예유진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유진아, 넌 어떤 순간에 여자한테 가장 설레?”그는 걸음을 멈추고 무언가를 떠올리며 다소 아련하게 말했다.“내 셔츠를 입고 있을 때.”한민수는 흥미를 느낀 듯 되물었다.“사모님도 네 셔츠를 입은 적 있어?”그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나는 곁눈질로 석지훈을 바라보았더니 그의 귓불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문득, 내가 그의 셔츠를 입고 발코니에 서 있던 게 떠올랐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그때 그의 마음은 크게 요동쳤을 것이다. 그저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 나왔다.한민수는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왜 혼자 웃어요?”나는 입술을 오므리며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재밌는 거 있으면 좀 공유해줘요.”나는 웃기만 했고 그는 시시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공항 밖으로 나와 그들은 한차에 탔고 나는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15화

    “지훈 오빠도 핀란드에 있어요. 언니도 나랑 같이 가요.”담현아의 제안은 꽤나 솔깃했다.하지만 아직 귀국하지 않은 석윤민이 마음에 걸렸다.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석지훈이 너무도 그리웠기 때문이다.그와 떨어진 지 고작 이틀이었지만 그 시간이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다.우리는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가지 않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하면 한민수와 예유진이 마중을 나올 예정이었기에 우리 둘만 비행기를 타고 핀란드로 향하기로 했다.나는 한참을 설득한 끝에 경호원들을 돌려보냈다. 어쩌면 그들에게도 짧은 휴가를 주는 셈이었다.우리는 오후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비행기를 타기 전, 담현아는 고정재에게 짧은 문자를 남겼다.[저 당분간 핀란드에 다녀올게요.]나는 그녀의 핸드폰 화면을 보며 물었다.“이게 다야?”그러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뭐가 더 있어야 해요?”나는 그녀의 핸드폰을 받아 들고 잠시 생각한 후 타자하기 시작했다.[일 때문에 가는 거예요.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그때쯤이면 정재 씨도 막 일어났겠죠. 잘 자요, 정재 씨.”담현아는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황급히 말했다.“나, 한 번도 그 사람을 정재 씨라고 불러본 적 없어요!”나는 웃으며 핸드폰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잘 자요, 정재 씨를 잘 자요, 아저씨로 바꿨고,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 추가했다.“보고 싶을 거예요.”나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오, 꽤나 달콤한데?”그러자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럼요. 다만 입 밖에 쉽게 내뱉지 못할 뿐이에요.”그녀는 핸드폰을 넣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했다.“현아야, 여자한테 애교는 곧 무기야!”나는 석지훈에게 애교 부리는 걸 좋아했다.특히 내가 잘못했을 때.그러자 담현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도 알아요. 근데 유독 아저씨 앞에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그런 혼란스러움이야말로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증거였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14화

    담현아의 나이는 확실히 어렸지만 내 아이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기엔 애매했다. “그냥 작은고모라고 부르는 게 어때?”그러자 담현아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그럼 아저씨는 고모부가 되는 거예요?”나는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갑자기 정재 씨랑 친척이 된 거야?”그러다 생각이 바뀌어 말했다.“사실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정재 씨는 삼촌, 넌 작은숙모?”이 친척 관계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그래요, 언니가 아저씨랑 더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그쪽 기준으로 부르면 되겠네요. 사실 나도 작은숙모라는 호칭이 더 맘에 들어요!”고정재가 한 말이 맞았다. 우리가 아무리 가까워도, 그가 예전부터 우리의 피아노 곡을 계속 연주한다 해도 담현아는 결코 우리를 오해하지 않을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떳떳한 사이니까.“그럼 그렇게 하자! 아까 경찰이 그러던데, 너 최근 2년 동안 경찰서만 5번이라며? 핀란드에 있는 애가 어떻게 국내에서 이렇게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야?”그녀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별일 아니에요.”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해서 나도 더 묻지 않았다.집에 도착했을 땐 거의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밤새 클럽에서 놀다가 경찰서와 병원을 오가느라 그녀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소파에 털썩 눕더니 아예 꼼짝도 안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이 잠들었다. 나는 옷장에서 담요를 꺼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마침 고정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현아는 자?”그는 담현아가 내 집에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정말 모르는 게 없는 남자였다.“네, 방금 잠들었어요.”나는 침대에 기댄 채 대답했다. 곧이어 전화 너머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많이 다쳤어? 민영이가 꽤 심하다고 그러던데.”고민영이 그에게 말한 모양이었다.“병원에서 치료받았어요. 괜찮아요.”“그래. 현아 신경 써줘서 고마워.”나는 낮게 말했다.“별말씀을, 친구잖아요.”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잠을 청했다.그리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13화

    고민영이 놀라며 물었다.“형수님, 무슨 일이에요?”나는 조용히 앉아 있는 담현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이분은 민영 씨 오빠의 와이프예요. 두 사람은 이제 막 혼인 신고를 마쳤고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어요. 민영 씨가 작은형수랑 싸우면 오빠가 곤란해지지 않겠어요?”고민영은 깜짝 놀라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누구요?”나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누구겠어요? 정재 씨죠.”그 말을 듣자마자 고민영은 당황하며 담현아에게 급히 사과했다.“죄송해요, 작은 형수님. 저는 두 분이 그런 관계인지 전혀 몰랐어요... 아까 일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형수님을 알지도 못했잖아요. 저도 당연히 제 친구를 도와야 했고요. 그냥 오해였던 거예요. 우리 합의할까요?”담현아는 원래 쿨한 성격이라 작은 일로 꽁해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정재가 곤란해지는 것도 원치 않았기에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애초에 제 잘못이었어요.”고민영도 성격이 꽤 시원시원했지만 문제는 그녀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여전히 담현아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나는 그녀에게 말했다.“얼른 병원 갈까? 상처 치료해야지.”“네, 치료는 해야죠.”담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고민영의 친구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굳이 병원에 갈 필요도 없겠는데? 얼굴이 그 모양인데 흉터가 남든 말든 똑같지 않을까? 괜히 의료 자원을 낭비하지 말고.”담현아는 성질이 급한 편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대놓고 비웃으며 말했다.“수아 언니, 무식한 년이랑 말싸움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그런 년보다 몸매 좋고 예쁘고 돈 많고 남자 친구도 더 잘생기면 그만이죠. 굳이 입 아프게 싸울 필요가 없잖아요.”고민영의 친구는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벌떡 일어났지만 고민영은 급히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내 형수님이야. 좀 참아!”담현아는 그 친구를 향해 가볍게 침을 뱉고는 경찰서를 나섰다. 나는 철없는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12화

    나는 방 안에 계속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다 고정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현성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계속 널 찾고 있어. 며칠 후에 심리 상담을 받아보게 하려고 해.”나는 힘겹게 대답했다.“현성이가 절 기억하지 못해요.”그런데 어떻게 나를 찾고 있다는 거지?“계속 수아를 찾고 있어.”그는 나를 잊었으면서도 내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었다.그 말을 듣자 마음이 저려 왔다.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내가 아무 말 없이 침묵하자 고정재는 다시 말을 이었다.“그냥 현성이 정신 상태랑 내 계획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넌 부담 가질 필요 없어. 그리고 굳이 책임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어차피 지금 네 곁에는 지훈 씨가 있잖아. 현성이한테 더 이상 마음을 쏟을 이유는 없어.”고정재는 언제나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말을 했다.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저도 선은 지킬 줄 알아요.”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더 이상 고현성과 엮여서는 안 된다는 걸.그런데도...그 오만했던 남자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슴 한구석이 답답해났다.전화를 끊고 나서도 계속 방안에 틀어박힌 채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도 석지훈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그는 늘 그랬다. 밖에 있을 때면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다.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것처럼 말이다.그때 원태웅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만나서 한잔 하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하고 약을 먹고 그대로 잠들었다.한밤중, 담현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수아 언니, 나 맞았어요. 물론 나도 한 대 때리긴 했지만.”나는 반쯤 잠이 든 상태로 물었다.“누구한테?”“고민영.”나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어쩌다 싸운 거야?”“태웅 오빠랑 클럽에서 놀다가 새벽에 나가려는데 우연히 고민영이랑 부딪혔어요. 처음엔 쿨하게 괜찮다고 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끝까지 깐죽거리면서 날 모욕했어요. 그래서 나도 못 참고 한마디 했죠. 솔직히 싸울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11화

    아이스랜드의 눈보라는 점점 더 매서워졌다. 최희연은 몸을 움츠리며 조용히 말했다.“전... 자격이 없어요.”눈앞에 서 있는 이 순수한 남자를, 마치 풍경화에서 걸어 나온 듯한 이 남자를...그녀는 감히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열등감이었다. 전에 그가 말했던 한마디로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희연 씨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마세요.” 게다가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복수뿐이었다.왕자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단기간에 그녀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굳이 강요하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어차피 앞으로의 시간은 많았다. 남은 시간은 수십 년이나 되지 않는가.수십 년의 세월이라니, 그는 그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설레었다.이전처럼 혼자가 아니라 그의 곁에는 아내가 있었다.그와 평생을 함께할 유일한 사람.부인.그는 이 단어를 되뇌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내일 병원에 함께 가서 흉터를 치료하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들을 초빙했습니다. 희연 씨의 얼굴을 완벽하게 회복시켜 줄 거라고 약속하더군요.”그 말을 듣자 그녀의 어두운 눈동자가 한순간 빛났다.왕자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혹시 후회하진 않나요? 그때 저와 함께 운성시를 떠나지 않았던 것, 그리고... 그분을 기다리겠다고 했던 선택을.”5년 전.왕자현은 우연히 운성시에 들렀다가 그녀를 만났다.그때 그는 심한 부상을 입은 채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고 그를 숨겨주고 돌봐준 사람이 바로 최희연이었다.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약속했다.두 달 동안 함께 지내며 최희연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진서준이 살아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왕자현이 떠나던 날,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물었다.“희연 씨, 저랑 함께 아이스랜드에서 살겠어요? 평생을 약속할게요.”그때 그녀는 어떻게 대답했었지?그녀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10화

    “미쳤거나 바보가 됐거나 아니면 사람도 귀신도 아닌 존재가 됐다고 할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근데 제가 갖지 못하는 남자가 잘되는 건 절대 못 보죠.”나는 소리쳤다.“미친년.”나는 그녀의 전화를 끊어버리고 곧바로 함승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빠르게 고현성의 행방을 찾아내 병원으로 이송시켰고 나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병실에 도착했을 때 고현성은 이미 의식을 잃었다.그리고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심지어 얼굴에는 깊게 베인 흉터까지 남아 있었다.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분노에 차서 물었다.“임지혜는?”“가주님께서 처리하시도록 잡아뒀습니다.”나는 눈이 붉어질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른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데려오세요.”그 순간, 병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고현성이 깨어났다.나는 급히 병실로 들어갔다.그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나를 보자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쳤다.낯선 환경이 불안한 듯 늘 강하던 그가 이토록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나는 화가 났다.아니, 화를 낼 기력조차 없이 가슴이 무너졌다. 그리고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그가 과거에 내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우리가 이미 끝난 사이라는 걸 생각하면 분명 난 그에게 아무런 감정을 가져선 안 된다.그런데도 이 순간만큼은 그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고현성.”그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고현성이... 누구예요?”순간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네 이름이야”그는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제가... 고현성이에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네가 기억하는 건 뭐야?”그는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불안한 눈빛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그쪽은 누구예요?”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난... 네 친구 수아야, 연수아.”그렇게 부르는 게 맞겠지.나는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살펴보려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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