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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두 사람의 신음이 내 귓가에 들려왔다. 그 소리는 귀를 막아도 내 영혼을 뚫고 그대로 전해졌기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나의 영혼은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고서연의 옆에서만 맴돌았다.

나는 내 목숨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던 약혼녀가 나를 죽인 범인과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역겨워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서연, 언젠가는 저 시신이 나라는 걸 알게 될 텐데... 약혼자를 죽인 살인자와 잔 것도 모자라 살인자를 도와 내 시신을 없애버렸다는 걸 알게 되면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어?’

나는 왠지 모르게 복수의 쾌감이 들었다. 그 생각에 나의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

고서연과 안성우는 나의 시신 옆에서 한 시간 넘게 역겨운 짓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고서연이 현관문을 열자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그녀는 불을 켜고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차가운 코코넛 음료수를 꺼냈다.

냉장고 안에서 야채 썩은 냄새가 풍겼다. 고서연은 코를 막고 썩은 야채를 정리했다.

그리고 우유 한 병이 있었는데 유통 기한이 하루 남았고 생산 날짜는 일주일 전이었다. 날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시신을 떠올렸다.

그녀는 시신을 보자마자 바로 일주일 전에 죽었다는 걸 알아챘다. 지금까지 썩지 않은 걸 보면 안성우가 시신을 보관하려고 꽤 많은 공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서연은 안성우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가 내 방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개지 않은 빨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옷을 개인 후 옷장 안에 넣었다. 그런데 옷을 넣다가 그만 실수로 뭔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나는 고서연에게 프러포즈하려고 준비한 반지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반지 케이스를 열어 안에 있는 반지를 본 고서연은 몇 초 동안 멍하니 넋을 놓다가 다시 싫은 티를 내면서 옷장 안에 던져버린 후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나의 영혼은 그녀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고서연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나랑 끝까지 냉전하겠다 이거지? 그럼 영원히 집에 들어오지 말고 그냥 밖에서 죽어.”

고서연은 내가 진짜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휴대전화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환경미화원이 나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고 고서연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그녀가 직접 처리했던 시신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법의관님, 시신 얼굴을 악의적으로 망가뜨렸고 지문도 다 없애버렸어요. 지금 당장은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요.”

고서연은 보조 박가희의 말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남기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일단 시신부터 옮겨. 내가 양 팀장님한테 상황 물어볼게.”

고서연은 나의 선배인 양구환에게 사망자의 신원을 물었다.

“양 팀장님, 시신이 많이 훼손돼서 시신으로부터 신원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가 있나요?”

양구환도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여기 사건 현장이 아닌 데다가 어젯밤에 비까지 내려서 아무런 증거도 못 찾았어요. 아무래도 어려운 사건이 될 것 같네요. 임태환 이 자식은 하필 이때 휴가를 내서는.”

양구환은 일부러 고서연 앞에서 내 얘기를 꺼냈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고서연의 얼굴에 분노가 살짝 스쳤다.

“태환이 법의관님한테 연락했나요?”

양구환은 그 일 때문에 내가 고서연과 냉전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도와주려 했다.

“전 이만 바빠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팀장님.”

고서연은 곧장 돌아섰다. 양구환은 고서연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어휴, 요즘 젊은이들은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상하네? 왜 계속 연락이 안 되지? 기웅아, 태환이한테 전화해봐 봐. 연락되는지.”

나의 영혼은 고서연과 멀리 떨어질 수 없었기에 그녀를 따라 국과수로 돌아왔다.

“법의관님, 엄청 잔인한 살인범 같아요. 이렇게 젊은데 벌써 죽다니.”

박가희는 해부대에 누워있는 나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고서연이 준비를 마치자 박가희는 눈치 빠르게 한발 물러서서 자리를 내주었다.

“법의관님, 피해자의 억울함을 꼭 풀어줍시다, 우리.”

해부칼을 들고 있던 고서연은 박가희의 한마디에 잠깐 흠칫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성우를 도와 나쁜 짓을 한 걸 후회하나? 만약 누워있는 이 시신이 나라는 걸 알면 무슨 생각을 할까? 기뻐하겠지? 어쨌거나 나 때문에 서연이 엄마가 죽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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