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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박주혁이 재수 없다고 한 건 바로 나와 뱃속에 있는 아이였다.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영혼으로 떠도는 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박주혁 앞을 막아서고 화장 비용을 지불하라고 하자 시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이 양심 없는 병원 같으니라고, 의사 마음대로 돈을 받는 병원이 어딨어요!”

박주혁은 인상을 찌푸렸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주혁은 지금 시어머니가 창피했고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박주혁은 돈을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주혁 씨, 심은하 씨는...”

박주혁은 또다시 의사의 말을 끊었다.

“그 여자 연기에 맞춰줄 생각 없으니까 적당히 하라고 전하세요.”

박주혁은 시체 손에 끼워진 반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것은 우리가 결혼할 때 박주혁이 나에게 준 40만도 안 되는 반지였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지켜보았고 박주혁이 그 반지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정말 구려.”

그 말 한마디에 나의 심장은 찢기는 듯 아팠다.

박주혁이 창립한 박성 그룹은 두 번째 재무 위기를 겪었다. 첫 번째는 나의 아버지가 일으킨 것이었다. 조현서한테 차인 박주혁을 위해 나는 기꺼이 술집에서 일했고 분노한 아버지는 매체에 박성 그룹의 약점을 폭로했다. 그로 인해 고부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시어머니는 내가 박주혁의 앞날을 막은 재앙 같은 여자라고 했다. 그때 박주혁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회사가 손해 볼 일도 없었어! 심은하, 당신을 사랑한 게 너무 후회돼.”

하지만 박주혁은 내가 목숨으로 월급쟁이 아버지를 협박해서 얻은 몇천만을 사업 자금에 보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조현서가 울먹이면서 사무실로 들어갔고 박주혁이 도시락을 던지자 깜짝 놀랐다.

“이런 것도 밥이라고 가져와? 예전에 먹던 그 식당에 연락해!”

김 비서는 쭈뼛거리면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박주혁은 오래전에 위병에 걸렸고 나는 박주혁을 위해 위에 무리가 가지 않는 식단을 연구했다. 박주혁의 마음을 얻지 못했으면서 요리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게 우스웠다.

“주혁 오빠, 내가 요리해 줄 테니까 화내지 마.”

조현서는 울먹이면서 말했고 박주혁의 품에 안겨있었다. 박주혁은 조현서의 손을 매만지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라고 널 데려온 거 아니야.”

그 모습을 본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도 태어날 때부터 요리를 잘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회사 일로 바빴던 박주혁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겨우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들어가자 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내가 죽기 전에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꽃, 내가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 내가 냉장고에 넣어둔 박주혁만을 위한 반찬...

하지만 박주혁은 내가 한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차린 밥은 꼭 김 비서를 통해서 건네받았다. 몇 년 동안 박주혁이 날 사랑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심은하, 그만 숨고 이제는 나와. 당신이 고집부릴 때가 아니야.”

박주혁의 목소리가 빈집에 울려 퍼졌고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나는 박주혁 집에 얹혀사는 사용인 같은 존재였기에 평소에 박주혁의 말에 재빨리 대답하고 움직였었다.

나의 대답을 듣지 못한 박주혁은 나와 연관된 모든 물건을 깨부쉈고 내가 심은 꽃을 뿌리째로 뽑아서 던졌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는 바닥에 내팽개쳤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쓰레기통에 쏟아버렸다.

씩씩거리던 박주혁은 나한테 전화를 걸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시 한번 기회 줄 테니까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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