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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나는 허공에서 박주혁을 내려다보았고 마음 한켠이 점점 아팠다. 박주혁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잠든 멍청한 여자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박주혁은 협력 상대와 자주 술자리를 가졌고 조현서의 데이트 신청을 여러 번 거절했다. 술자리에서 순순히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 박주혁을 떠보고 있었다.

“거의 10시가 되어가는데 평소에 전화하던 형수님이 잠잠하네요.”

협력 상대 중 한 명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박주혁의 협력 상대들은 내가 저녁 9시만 되면 집에 들어오라고 전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박주혁이 좋아할 리가 없었지만 내 아이의 죽음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비통했다.

술잔을 들고 있던 박주혁의 손이 살짝 떨렸고 나에 관한 말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싫어하는 내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삐쳐서 전화 안 한다네요.”

내 착각인지는 몰라도 박주혁이 피식 웃은 것 같았다. 협력 상대는 어떻게 아내를 달래야 하는지 가르쳐주었고 사업에 관한 말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박주혁은 술을 많이 마셔서 여러 번 게웠지만 갖고 간 계약서가 무색해질 만큼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그러나 박주혁은 기분이 좋아 보였고 집과 멀리 떨어졌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게의 호두과자를 사 왔다. 연애할 때 호두과자를 사러 가자고 몇 번이나 졸랐지만 박주혁은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은하야, 네가 좋아하는 호두과자 사 왔어.”

박주혁은 봉투를 들고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들어왔고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느 곳에도 나는 없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박주혁은 봉투를 바닥에 던졌고 호두과자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때 전화벨 소리가 정적을 깼다. 박주혁은 히죽 웃으면서 전화를 받았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낯선 사람의 목소리에 크게 실망한 듯싶었다.

“은하야, 은하 아니야?”

“박주혁 씨, 안녕하세요. 심은하 씨께서 박주혁 씨 전화번호를 남기셨는데 결혼 10주년 기념 파티 원래대로 진행할까요?”

내가 죽기 전에 박주혁과 결혼 10주년 기념일을 위해 준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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