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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박주혁이 나를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을까 봐 겁났다. 박주혁은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달콤한 말로 나를 현혹했다.

“바보야, 난 당신 남편인데 당연히 당신을 사랑하지.”

나는 간신히 미소를 지으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골수 이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조현서는 회복에 전념했다. 나는 아이를 지키지 못했고 외로운 영혼이 되어 이 세상을 떠돌았다. 아이는 아직 사람 모양조차 나타나지 않았을 정도로 작아서 영혼으로 남아 내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박주혁을 만난 순간에 운을 다 써버려서 아직 이 세상을 한 눈도 보지 못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고 허망하게 수술대에서 숨을 거두었다.

내 뱃속에 사랑스러운 아이가 잠들어 있었지만 양심 없는 의사가 골수 이식 수술을 하기 위해 진실을 숨겼고 나와 내 아이를 죽였다. 박주혁은 조금 전까지 나한테 사랑한다고 해놓고 뒤돌아서 조현서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분명 죽었는데도 그 모습을 보고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이때 시어머니 이영화가 달려오더니 문을 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나와 박주혁의 결혼식 날에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것도 결국 거짓말이었다.

“현서는 그 술집 여자랑 다르게 마음도 예쁘고 착해. 볼수록 우리 주혁이랑 잘 어울리는구나.”

시어머니는 내가 박주혁을 위해 술집에서 일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간호사가 의사한테 사실을 알려주라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 의사는 나를 수술해 준 의사가 아닌 것 같았다. 이때 의사가 입을 열었다.

“박주혁 씨, 심은하 씨는...”

의사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박주혁이 말을 끊었다.

“얼마면 되죠?”

시어머니는 어깨를 으쓱했고 의사한테 얼마를 주든지 관심 없었다.

“왜 그 여자 얘기를 꺼내는 거죠? 지금 분위기도 좋았는데, 평소에 눈치가 없는 편인가 봐요?”

의사는 내가 생전에 박주혁의 이름만 부르던 것이 생각나서 말했다.

“심은하 씨는 숨을 거두기 전까지 박주혁 씨만 찾았어요.”

박주혁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목청을 높였다.

“이제는 하다 하다 죽은 연기까지 하겠다던가요? 원하는 건 다 주겠으니 그만하라고 전하세요.”

“주혁 오빠, 은하 언니가 나 죽이려고 작정한 건 아니겠지? 다 내 잘못이야, 차라리 내가 죽을게!”

조현서는 박주혁의 품에서 흐느꼈고 박주혁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 위해 꽉 끌어안았다.

박주혁은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안아주었고 의사한테 말했다.

“또 한 번 죽은 척 연기한다면 다시 집에 돌아올 생각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골수 이식 수술이 뭐 큰 일이라고...”

내가 목숨 바쳐서 남편 첫사랑을 살린 일이 큰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박주혁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박주혁은 내가 이 수술만 받으면 더 사랑해 준다고 했지만 아이를 지키지 못한 채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두고 다른 여자를 품에 안았다.

조현서가 퇴원하는 날, 시어머니는 삼계탕을 끓여왔고 향긋한 냄새가 병실 안에 퍼졌다. 박주혁과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시어머니가 해주는 밥 한번 먹어보지 못했다.

박주혁은 시어머니가 홀로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했으니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참고 배려하고 이해해 준 결과가 죽음이라니, 이보다 더 허무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의사는 나의 시체가 놓인 침대를 밀어서 화장터로 향했고 그 모습을 본 박주혁은 조현서를 품에 안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현서 오늘 퇴원하는 날인데 이런 재수 없는 걸 보면 안 되니까 저리 치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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