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는 무고하니까.“아저씨, 대체 어쩔 생각이세요? 설마 이 여자랑 아이를 부씨 집안에 들여서 나중에 절 부씨 집안에서 쫓아내려고요?”진문옥이 이를 악물고 묻자 서씨 집안 어르신이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여자는 네가 마음대로 부려 먹고 아이는 영원히 F그룹의 재산을 물려받지 못 하게 하면 되잖아.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열몇 살이 되면 대충 쥐여줘서 엄마랑 같이 외국으로 보내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면 너의 걱정을 덜 수 있겠어?”진문옥은 아무 말 없이 부성웅을 돌아보았다. 부성웅은 그저 한숨만 내쉴 뿐 찍소리도 하질 못했고 진문옥이 다시 서씨 집안 어르신에게 말했다.“아저씨, 그럼 저랑 약속해요!”서씨 집안 어르신이 말했다.“그래!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난 무조건 네 편이야.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아저씨가 각서라도 써줘?”아이를 지키기 위해 서씨 집안 어르신은 각서까지 쓰겠다고 했다. 진문옥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서글프게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아저씨 말대로 할게요. 아저씨가 제 편에만 서주신다면요.”그러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떠나버렸다. 한참을 걷다가 그녀는 부성웅을 덥석 잡고 고통스럽게 말했다.“부성웅! 돌아보지 마!”부성웅은 아무 말이 없었다.“안 그러면 네가 보는 앞에서 확 죽어버릴 거야! 그럼 나중에 나의 세 아들이 나 대신 복수하겠지! 부성웅, 난 어릴 적부터 너랑 함께한 와이프야! 내가 너한테 시집올 때 가져온 예물만으로도 부씨 집안의 절반 재산 가까이 되겠어. 내가 14살 되던 해에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널 구하고 다리가 부러진 널 종일 보살폈어. 그런 내가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진문옥의 말에 부성웅이 바로 대답했다.“문옥아, 가자. 아이 안 볼게.”그러고는 진문옥을 안고 미련 없이 병원을 나섰다.그 시각 병실 안, 하숙민은 태어난 두 아이를 안은 채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녀를 보러 온 건 당연히 서씨 집안 어르신뿐이었다.“아저씨, 뭐 하나만... 부탁해도 돼
서씨 집안 어르신은 여전히 그녀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숙민아, 갑자기 반씨 집안은 왜...”하숙민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반씨 집안이나 저나 다 가성섬 사람이잖아요. 하씨 집안은 가성섬에서 백 년 넘게 살았는데 저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젠 저마저도 생사를 예견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의 아이 한 명을 반씨 집안에 주려고요. 하지만 반씨 집안에서는 저랑 성웅 씨의 아이를 키우려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아저씨가 반씨 집안에 말씀 좀 잘해주시겠어요? 저의 둘째 아들을 데려가서 키우는 건 어떤지...”서씨 집안 어르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아이를 살린다면 우리 하씨 집안의 핏줄이 그래도 남아있게 되잖아요. 우리 세 모자가 남성에 가서 죽을진 모르겠지만 안 죽는다고 해도 1kg밖에 안 되는 애가 어찌 버틸 수 있겠어요. 혹시 남성에 갔다가 진문옥 씨가 우리 셋을 죽여버리면 하씨 집안은 정말로 자손이 끊겨요. 아저씨, 제발 이 불쌍한 아이들을 봐서라도 살길을 찾아주세요, 네?”하숙민은 진작 눈물범벅이 되었고 서씨 집안 어르신도 눈물을 흘렸다. 그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숙민아, 네 말이 맞아! 그러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겠어. 나중에 아이가 커서 문옥이랑 재산 싸움을 한다고 해도 혼자 몫이 될 거야. 다른 한 아이는 반씨 집안에 있으니까.”하숙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절대 진문옥 씨랑 재산 싸움을 하지 않아요. 그건 약속해요.”“그래!”서씨 집안 어르신이 흔쾌히 말했다.“이 일은 나한테 맡겨! 하지만 숙민아, 너도 나랑 약속해.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이 아이를 반씨 집안에 주면 앞으로 너랑은 영원히 남남이야.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부씨 집안에 귀찮은 일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거야. 너의 아버지가 예전에 나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줬지만 나도 그때 너의 부모님과 형제를 구했었어. 그러니 지금 내가 널 돕는다고 해도 성웅네랑 공평하게 해줘야 해. 이점은 네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하숙민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부성웅이 가성섬을 떠나면서 모든 건축 시설과 공장 등을 전부 남성으로 철수하려 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성웅은 가성섬을 망가뜨릴 생각은 없었고 게다가 반영훈과 완전히 갈라설 생각도 없었다.어쩌면 앞으로 다른 프로젝트를 함께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부성웅도 바보가 아닌 이상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았다.서씨 집안 어르신이 이미 계산이 선 얼굴로 반영훈을 쳐다보았다. 반영훈만 허락한다면 하숙민의 두 아이를 모두 살릴 수 있게 된다.“알았어요!”반영훈이 흔쾌히 허락하자 서씨 집안 어르신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반영훈 아내의 병실에서 나온 서씨 집안 어르신은 곧장 하숙민의 병실로 향했다.“숙민아, 얘기 잘 끝났어. 앞으로 네 아이는 반씨 집안에서 자라게 될 거야.”하숙민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주기로 했으면 마음 독하게 먹어. 앞으론 절대 볼 생각 따위 하지 말고.”서씨 집안 어르신이 다시 한번 당부하자 하숙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약속 꼭 지킬게요!”“그럼 우리 각서 쓰자. 이 일은 너랑 나, 그리고 반씨 집안만 아는 거야. 셋 중에 누구 하나라도 이 비밀을 발설해선 안 돼. 만약 발설했다간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해!”“네!”하숙민이 흐느끼며 대답했다. 각서 작성을 마친 후 그녀는 1kg 조금 넘는 작은 아들을 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녀는 아이에게 계속 사과했다.“미안해, 아가야. 엄마가 일부러 널 버린 거 아니야. 앞으로 엄마랑 네 형한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확신할 수 없어서 그래. 엄마는 널 살리고 싶은 생각뿐이야. 네가 살아만 있다면 평생 널 보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아. 네가 사는 게 엄마의 소원이야. 미안해, 아가야...”그녀는 아이를 서씨 집안 어르신에게 주었고 서씨 집안 어르신이 또 아이를 반영훈 부부에게 건넸다. 하숙민은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그녀는 한 아이만을 데리고 퇴원한 후 부성웅과 함께 머물던 집으로 돌아왔다. 부성웅과 서씨 집안 어르신, 그리고
진문옥이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쌤통이야!”부성웅의 얼굴에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이상 하숙민이 가성섬에서 아이를 낳은 전부 과정이다. 하숙민은 부성웅과 함께하고 싶었고 그를 무척이나 사랑했었다. 하지만 진문옥이 버티고 있는 한 두 사람은 절대 불가능했다. 진문옥은 가까운 곳에서 하숙민을 감시하기 위하여 하숙민도 남성으로 데려왔지만 부씨 저택에는 머물게 하지 못했다.부씨 집안에는 하숙민의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부성웅과 진문옥은 하숙민과 그녀의 아이를 영원히 인정하지 않았다. 부소경이 부씨 성을 따를 수 있었던 것도 서씨 집안 어르신이 직접 나서서 얘기한 덕이었다.이렇게 한 남자와 두 여자의 풍파가 서씨 집안 어르신의 강제적인 진압 끝에 드디어 조용해졌다. 남성으로 돌아온 후 서씨 집안 어르신은 하숙민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하숙민은 서씨 집안 어르신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했고 심지어 아버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그녀는 약속대로 아들과 함께 남성에서 사는 십여 년 동안 부씨 저택에 단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부성웅을 사랑했지만 되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아들 부소경은 그 어떤 상속권도 갖질 못했다. 부소경이 열몇 살이 된 후 하숙민은 아들과 함께 해외로 나가 다신 돌아올 수 없었다.해외로 나가는 순간까지 하숙민은 그 누구에게도 또 다른 아들이 가성섬에 남아있다는 걸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얘기하지 않은 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하여.하숙민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작은아들을 그리워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녀는 아무리 속상하고 슬퍼도 그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가 없었다. 설령 아들에게도 말이다.사실 서씨 집안 어르신은 전부 눈에 새겨두고 있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일은 숨기고 숨겨 하숙민이 중병으로 앓아누울 때까지 감춰졌다.부소경은 어머니가 부씨 본가로 가고 싶어 하고 부씨 집안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슬픔과 그리
부소경은 이 세상에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병실에 있던 서씨 집안 어르신은 하숙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서씨 집안 어르신은 그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고 했었다. 그는 직접 가성섬으로 가 하숙민이 그 섬에 남기고 간 아이를 확인했다. 그 아이가 바로 반가의 넷째 도련님으로 꽤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부소경과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던 그 아이에게 은근히 부성웅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오히려 하숙민을 더 많이 닮은 듯 닮지 않아 보였다. 한참을 생각하던 서씨 집안 어르신은 그 아이가 풍기는 분위기가 하숙민과 아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아이 역시 하숙민처럼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딘지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 조용히, 하숙민에게 그 아이가 잘 있노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귀띔해 준 적이 있었다. 서씨 집안 어르신은 또 하숙민에게 인제 그만 그 아이는 잊고 다시는 거론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래서 하숙민이 죽는 그날까지, 서씨 집안 어르신은 하숙민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끝내 그걸 숨겼다. 그 사실이 밝혀지기만 하면, 남성과 가성섬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씨 집안 어르신은 부소경이 앞으로 할 일을 자기 힘으로 막을 수 없고, 그가 해외에서의 세력이 얼마나 큰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부소경이 가성섬에 가리고 결정을 내린 것도, 서씨 집안 어르신의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 뒤로는 서씨 집안 어르신의 모든 정신이 임시아에게 쏠렸고 그는 점점 공정성을 잃어갔다. 아마도 연세가 많아진 탓인 듯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약속을 지켰고 한 번도 그 비밀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무덤까지 가지고 들어갔을 비밀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외손녀를 지키기 위해, 결국 자신의 원칙을 저버렸다. 그는 부소경이 손쉽게 가성섬을 장악하고, 또 가성섬 최강의 적을 바다 밑 터널로 몰
서씨 집안 어르신이 부소경에게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임서아네 가족은 그 앞에서 계속 듣고 있었는데, 세 사람의 표정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 서씨 집안 어르신이 특별한 비밀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있을 때 세 사람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특히 임서아가 그랬다. 그녀는 부소경이 힘들이지 않고 가성섬을 그의 수중에 들이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의 능력과 세력은, 임서아의 외할아버지와 구성훈이 힘을 합쳐도 상대도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만약 부소경이 그녀의 외할아버지 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다면, 그녀의 집은 부소경의 손에 박살이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씨 집안 어르신이 전해주는 하씨 집안, 반씨 집안과 부씨 집안의 지난 이야기를 절반쯤 들었을 때부터 주름졌던 미간이 점점 펴졌다. 그들은 서씨 집안 어르신의 손에 비장의 카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부소경이 분명 서씨 집안 어르신을 보아서라도 이제는 자기 식구들에게 손님 대접을 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서씨 집안 어르신이 모든 과거를 다 털어놓고 나서야 임서아는 자기 외할아버지가 부소경과 그의 어머니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서아는 한 가지 사실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부소경이 절대 서씨 집안 어르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른신이 자기 집안을 위해 나서주기만 한다면, 부소경은 절대 자신을 해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임서아가 그 어떤 도를 지나치는 일을 벌이더라도, 부소경은 절대 임서아의 목숨을 위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 만으로도 기분이 붕 뜨는 것 같았다. 임서아는 신세희에게 도발하는 눈빛을 보내며 그녀에게 명령적인 어조로 말했다. “신세희, 나한테 빨리 사과 안 해?”자기 남편과 시어머니의 지난 일을 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신세희 역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차분한 태도로 서씨 집안 어르신을 보
임서아의 볼에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너...”신유리가 고개를 젖혀 가며 웃어댔다. “히히, 임서아,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지금 더 예뻐졌잖아. 아까는 삐쩍 마른 해골 같아서 진짜 진짜 못생겼었는데, 나한테 맞고 나니까 아까보다는 나아졌어. 어때, 고맙지?”“신... 신유리 너 내가 죽여...”임서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세희가 신유리를 끌어와 품에 안았다. 곧이어 부소경이 신세희의 품에 있는 신유리를 자기 쪽으로 데려갔다. 임서아는 손을 들어 허공에 띄운 채로 감히 내려치지는 못하고 서있었다. 부소경이 자기 외할아버지로 인해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는 여전히 신유리의 몸에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 임서아와 다르게 서씨 집안 어르신은 부소경을 보며 버럭 화를 냈다. “소경아. 네가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유리는 네 아이야. 바르게 키우려면 어렸을 때부터 잘 가르쳐야지! 저리도 독한 어미를 닮은 것도 모자라, 네 아이 앞길을 네가 망치려는 작정이야?”진심으로 부소경을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부소경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고 생각했다. 부소경은 당장이라도 임서아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서씨 집안 어르신의 말씀이 그의 가슴에 쿡 박혔다. 부씨 집안을 놓고 말하든, 하씨 집안을 놓고 말하든, 어쨌든 이번 생에는 서씨 집안 어르신을 공경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세희가 모욕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할아버님, 제가 할아버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할아버님께서는 공정하신 분이기 때문이에요. 전...”부소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세희가 부소경의 손을 잡더니 그의 말을 자르고 자신이 말을 이었다. “어르신, 제가 무덤까지 가져가려고 묻어뒀던 얘기가 있어요. 하지만 오늘 일에 제 남편까지 개입되었고, 또 제 남편이 어르신
“헛소리 지껄이지 마!”신세희의 말을 들은 허영이 벌떡 일어나며 신세희를 노려보았다. 임지강 역시 신세희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찌르기라도 할 듯 삿대질하며 말을 이었다. “이 염치도 없는 년이, 어디 부끄러운 줄 모르고...”“슥-”부소경은 어느샌가 짧지만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 들고 서 있었다. 4, 5센티미터에 불과한 단도는 한없이 시린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듯했고, 위에는 한 방울의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신세희를 가리키고 있던 임지강의 손가락은 툭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부소경의 동작이 어찌나 빠르고 깔끔했는지, 손가락을 잘린 당사자가 미처 그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임지강이 알아차렸을 때 부소경은 이미 신유리의 귀를 손으로 막고 아이를 품에 가둬 신유리가 그 잔인한 장면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도록 한 뒤 신유리를 안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때 임지강의 처절한 울부짖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내 손가락, 내 손가락이 잘렸어...”부소경은 이미 방을 벗어난 뒤였다. 그는 품에 안긴 신유리를 밖에서 지키고 있던 엄선우에게 맡겼다. 그에 엄선우가 긴장하며 물었다. “대표님, 무슨 일입니까?”부소경이 제법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별거 아니야.”그는 이제 6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두려워할까, 그것이 걱정 될 뿐이었다. 부소경은 자기 딸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부소경은 꼬마 숙녀인 신유리가 이미, 이런 장면에 퍽 익숙해져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엄마를 따라 도망치던 5년 동안, 아이는 큰 세상은 보지 못했지만, 엄마를 지키기 위해 꽤 자주 다른 사람과 싸움에 휘말리곤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에서도, 신유리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신유리는 오히려 해맑은 태도로 부소경에게 말했다. “아빠, 잘 때렸어요! 그 망할 임씨 영감탱이, 내가 진작에 때려버리고 싶었는데. 이번엔 준비가 잘되지 않았으니까, 다음엔 내가 갈고리를 두 개 가져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