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저기 저 못난이가 또 왔어요.”바로 그때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신유리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달려온 사람은 다름 아닌 임서아였다.아직도 머리에 흰 테이프를 칭칭 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못난이였다. 게다가 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삐쩍 마른 데다가 얼굴에는 핏기라곤 없어 그야말로 처녀 귀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임서아는 신유리가 못난이라고 하든 처녀 귀신이라고 하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확인하고 싶은 건 단지 부소경이 정말로 그녀를 죽이지 않고 남성까지 무사하게 보내줄 것인지였다.이건 조금 전에 외할아버지가 전화로 알려준 것이었다.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부소경을 외할아버지가 해결했다는 사실에 임서아는 속으로 무척이나 뿌듯했다. 그녀는 신유리의 비웃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우쭐거리며 부소경을 쳐다보았다.부소경이 고개를 들고 임서아를 힐끗 보더니 밖에 서 있는 용병에게 덤덤하게 말했다.“이 여자 당장 내쫓아. 한 번 더 내 눈앞에 나타났다간 사지를 찢어버릴 줄 알아!”임서아가 이를 갈았다.“소경 오빠...”“서씨 집안 어르신이랑 너희 식구를 산 채로 남성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팔다리를 무사하게 남겨두겠다고는 약속하지 않았어.”“꺼질게요... 당장 꺼지겠습니다...”임서아는 겁에 질린 나머지 엉엉 울며 허둥지둥 달려 나갔다.“하하하... 저러다 바지에 지리겠어요.”신유리의 웃음에 반명선도 몰래 웃었다. 가뜩이나 납작한 콧구멍이 더 크게 벌어졌다. 반명선이 신유리를 보며 활짝 웃자 신유리도 웃음으로 답했다.반명선이 입을 열었다.“꼬마야, 언니 콧구멍 신기하고 귀엽지?”반명선은 학교에서도 두려운 게 없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방법을 대놓고 비웃었다. 어차피 곧 죽겠는데 뭐가 두렵겠는가!신유리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응, 언니 콧구멍이 크고 예뻐. 만약 콧구멍 양쪽에 코 피어싱하면 더 이쁠 것 같아.”“언니랑 같은 생각 했네!”반명선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잠깐
하지만 하씨 집안은 동의하지 않았다.그렇게 이익의 충돌이 심해진 데다가 하씨 집안의 세력까지 미미한 바람에 결국 몽땅 내쫓기고 말았다. 이렇듯 비즈니스계에서 서로 물고 뜯기는 현상은 늘 있는 일이었다.그리고 20년 후, 하씨 집안의 딸은 부씨 집안 남자의 첩이 되었다. 이게 바로 남성의 부씨 집안과 가성섬 하씨 집안 사이의 원한이다.하씨 집안의 외손자이자 부씨 집안의 손자인 부소경은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세상을 떠난 사람은 이미 떠났고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섬에서 외갓집을 다시 보수하여 그들을 모시는 것이었다.그리고 부씨 집안에 대한 하씨 집안의 원한은 부소경이 부씨 집안 사람을 거의 다 멸하여 지금 남은 사람은 그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딸밖에 없다. 이젠 더 멸하려 해도 멸할 사람이 없다.“내 어머니를 알고 있어?”부소경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반호석이 고개를 들고 생각했다.“하씨 집안의 가장 어린 공주님 말씀입니까?”부소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반호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사실 그는 하숙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때 당시 부씨 집안의 부성웅의 세력이 엄청난 바람에 그와 같은 우두머리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대표님 어머님께서 그때 부성웅 대표님을 무척이나 사랑하셨어요. 두 분이 서로 사랑한다는데 우리도...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게다가 그때 저는 열몇 살밖에 되지 않았고요.”반호석이 말했다.“너 그때 몇 살이었어?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 어머니가 어떤 비밀과 아쉬움을 갖고 이 가성섬에 남았는지 모른단 뜻이야?”부소경이 묻자 반호석이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전 정말 몰라요. 정말이에요!”부소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서씨 집안 어르신밖에 없는 듯싶다.“나가!”부소경이 말했다.“대... 대표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반호석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부소경을 쳐다보았다.“나가라고!”부소경이 같은 말을 다시 반복했다.“그... 그럼 저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을
줄곧 말이 별로 없던 부소경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이 땅은 원래 우리 외가 것이었어. 외가 쪽에서 대대로 이곳을 관리했었거든. 비록 그리 발전하진 못했어도 인심 좋고 평안히 살 수 있는 그런 곳이었어. 그런데 나중에 부씨 집안에서 이곳의 평화를 깨뜨리는 바람에 우리 외가 일가가 죽임을 당했고 어머니도 한을 머금은 채 눈을 감으셨어. 내가 성이 부씨긴 하지만 하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어. 난 이곳에 내가 원하는 걸 가지러 왔어. 그러니 어찌 주민들에게 전란의 고통을 가져다줄 수 있겠어?”그의 말에 신세희는 부소경을 꼭 끌어안았다.“여보...”부소경이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난 열몇 살에 해외에서 방랑하면서 이미 나의 계획을 시작했어. 점차 용병을 끌어모으면서 실력을 키웠고 세계 곳곳에 용병들을 배치했지. 반호경, 그 방법을 내가 굳이 말해야 알아? 그 용병들은 전부 다 산전수전을 겪고 싸움에 능한 자들이야. 내가 아무렇게나 수만 명을 움직여도 이 섬 하나쯤은 쉽게 점령할 수 있다고. 너랑 네 형 반호석은 내가 언제부터 용병들을 가성섬에 들였는지도 모르더라. 내가 6년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보냈을 것 같아?”“난 천천히 침투한 거였어. 목적은 단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싶지 않아서. 서울의 구성훈과 서씨 집안 어르신이 너희들한테 재력, 무력, 무기를 줬지만 사실 이 가성섬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 주머니 속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야. 그 사람들이 너희들한테 많이 줄수록 내가 더 많이 벌 거든. 그리고 내가 지금 이때 가성섬에 온 건 구성훈이 더는 가성섬에 무력을 제공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이젠 한계가 왔거든. 그래서 마무리하려고.”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반호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6년 전부터 부소경은 이미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다. 부소경이 직접 가성섬에 오지 않아도 가성섬은 이미 부소경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반호경과 그의 어리석은 큰형은 승산이 있는 줄 알고 끊임없이 구씨 집안에 도움을 청했고 임씨 집
“부소경! 너만 열몇 살 때 외국으로 쫓겨나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 줄 알아? 나도 쫓겨났었어.”반호경이 구슬픈 눈빛으로 부소경을 보았다.“네가 외국에 있을 때 너의 아버지는 적어도 생활비 걱정은 안 하게 했잖아. 게다가 너의 어머니는 외국에서도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건축사였지. 넌 비록 유배됐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인간관계를 만들 여윳돈까지 많았어. 하지만 나는?”부소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눈앞의 반호경이 더는 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에게 하소연하는 것만 같았다.“나는 아무것도 없었어! 나는 나의 상업적 감각과 독함으로 일어서야 했어. 지금 군주 저택의 동원에 살면서 큰형한테 큰소리 떵떵 칠 수 있는 건 큰형한테 2천억이나 되는 경비를 대줬기 때문이야. 2천억! 2천억으로 가성섬에서 공중 화원이 딸린 별장을 충분히 지을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왜 군주 저택에서 남의 도움을 받는지 알아? 큰형이 가여워 보여서 그랬어! 무능하고 큰일을 못 하는 사람이니까!”그러고는 부소경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부소경, 네가 좋아하는 여자뿐만 아니라 공주님까지도 난 다 좋아해! 난 너보다 세희한테 더 잘해줄 자신이 있다고! 넌 가성섬에 오자마자 두 모녀를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난 달라! 나 반호경이 네 손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말은 꼭 해야겠어! 난 세희를 사랑하고 유리도 사랑해!”신세희는 할 말을 잃었고 신유리가 한마디 했다.“아저씨, 무섭게 이러지 말아요...”신유리의 앙증맞은 목소리에 반호경의 표정이 바로 온화해졌다.“미안해, 미안해, 우리 공주님. 유리가 아직 어린이라는 걸 아저씨가 까먹었어. 어린이 앞에서 이런 무서운 얘기 하는 거 아닌데. 아저씨가 미안해. 무서워하지 마.”“안 무서워요!”신유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센 아빠예요. 아빠가 저랑 엄마를 지켜줘서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신유리가 계속하여 반호경에게 물었다.“아저씨, 아저씨는 제 친구 맞아요?”“당연하지!”“그럼
세 사람이 얼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있던 그때 머리 위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소경! 일은 절대 뜻대로 되지 않아. 네가 진작 가성섬 전체를 꽉 잡고 있었다는 건 모르고 있었지만 군주 저택으로 들어온 그 날부터 난 나의 퇴로를 남겨두었어. 이 길은 해저 터널로 연결된 비밀 통로고 나밖에 몰라. 이건 나 자신을 위해 준비해둔 탈출구야! 난 절대 너한테 무릎 꿇지 않아! 영원히!”반호경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결국 사라졌다.부소경은 용병들에게 비밀 통로를 조사하라고 명을 내렸다. 잠시 후 그들은 비밀 통로를 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십여 명의 용병들이 자책하며 부소경에게 말했다.“대표님, 이건 저희 잘못입니다. 저택에 그렇게나 오랜 시간 잠입했는데도 반호경이 이런 비밀 통로를 만들었다는 걸 몰랐다니... 6년 동안 이 장치에 한 번도 손대지 않더라고요.”부소경이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그냥 도망가게 내버려 둬.”사실 그는 반씨 집안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부소경이 원한은 반드시 갚는 사람이긴 하지만 무고한 사람은 해치지 않았다.설령 사오십 년 전에 부씨, 반씨, 하씨 집안의 원한이 깊다고 하더라도 그건 한 세대 앞선 어른들의 일이고 게다가 모두 숨을 거두었다. 반씨 집안의 사형제 중에 이미 둘이나 죽었고 나머지 두 형제는 부소경과 신세희, 그리고 신유리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기에 부소경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반호경이 굴복하지 않고 도망가는 모습에 부소경은 마치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도 전에는 독한 사람이었고 절대 남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지금 반호경도 그처럼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았다.그 순간 부소경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 반호경에게 뭔가 유대감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넋이 나간 표정의 신세희와 신유리를 보았다.“무서워하지 마.”부소경이 신유리를 번쩍 안아 들었다.“저 아저씨가 좋아?”그러자 신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저 아저씨는 나쁜 아저씨가 아니에요.
그녀는 줄곧 자신의 남편이 사람을 삼대 베듯 죽이고 살인할 때도 눈도 깜빡이지 않는 줄로만 알았지, 이런 면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그 어떤 병력도 동원하지 않고 아무런 사상자 없이 가성섬을 점령했다. 보기에는 참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몇 년 동안 조금씩 준비하면서 이룬 성과였다.그 후 부소경은 군주 저택과 하씨 집안의 예전 저택을 보수했다.그는 군주 저택을 50년 전 하씨 집안에서 관리하던 모습으로 보수하게 했고 외가 쪽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하기 위해 하씨 집안 선조들을 이곳에 모시기로 했다.이 모든 과정이 결정을 내려서부터 단 일주일 내에 전부 진행되었다.일주일 동안 임씨 집안과 반씨 집안 사람들은 한 작은 저택에 감금되었다. 이젠 반호석도 더는 임씨 집안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엄격한 통제를 받는 임씨 집안 사람과 달리 반명선은 자유롭게 저택을 드나들었다. 그 바람에 일주일 동안 임서아를 찾아가 여간 귀찮게 군 게 아니었다.그 사이 임서아의 얼굴에 시퍼런 멍이 몇 군데 더 생겼다.일주일 후, 부소경은 신세희와 신유리와 함께 작은 저택으로 왔다. 임서아의 얼굴에 생긴 멍을 본 신유리가 배꼽 빠져라 웃더니 반명선에게 말했다.“언니, 언니 작품이야?”반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쟤네 세 식구가 우리 집에 있는 몇 달 동안 쟤한테 얼마나 괴롭힘당했다고. 넷째 작은아버지가 쟤를 얼마나 역겨워하는지도 모르고 넷째 작은아버지한테 시집가겠다고 했다니까. 난 지금 넷째 작은아버지 대신 복수를 해주는 거야!”말을 마친 반명선은 또 다짜고짜 임서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임서아는 반항도 하지 못했다.“으악...”부소경이 없는 지금 그녀는 신음조차 감히 내질 못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저 하루빨리 남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빨리 남성으로 돌아가고 싶어.’남성은 그녀의 고향이자 20여 년 동안 살아온 곳이다. 얼마 후면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임서아뿐만 아니라 임지강과 허영도 간절한 눈빛으로
허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신세희가 허영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허 여사님, 이 남자를 전혀 모르세요?”허영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너... 이 사람...”“이 사람 누구예요?”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는 신세희의 표정과 허영을 부르는 남자의 호칭에 임지강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허영을 보며 물었다.“이 사람 누구야!”“이 사람은...”“영이 누나, 누나 날 예뻐했잖아. 누나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다 했어. 난 원래 남성에서 안정된 일자리도 있고 잘살고 있었는데 누님이 같이 남성에 가자고 해서 따라온 거잖아. 인제 와서 날 모른 척하면 안 되지...”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삐쩍 마른 남자는 더는 그 무엇도 숨기지 않았다. 허영이 갑자기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빌어먹을 자식! 너 세희랑 짰지? 그래! 내가 너한테 세희를 죽이라고 했어! 하지만 그건 반씨 집안 군주의 뜻이었어. 그리고 그땐 세희랑 대표님이 가성섬 전체를 쥐고 흔드니까 우린 기선 제압을 하려고 했을 뿐이야! 인제 우린 대표님이랑 화해했어. 그러니까 넌 나랑 아무 상관이 없는 거지!”일이 이렇게 된 이상 허영은 완강히 부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허영의 해명에도 임지강은 여전히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허영을 보았다.“그게 다 사실이야?”임지강은 몇 달 전 아직 남성에 있을 때 어느 날 허영의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 적이 있었던 게 불쑥 생각났다. 지금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임서아도 나서서 허영의 편을 들었다.“아빠, 지금 우리 세 식구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엄마를 의심해서야 되겠어요? 엄마는 늘 아빠랑 저의 곁에 있었잖아요. 이건 세희 언니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세희 언니 이런 거 제일 잘하거든요.”임서아는 더는 신세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외할아버지가 부소경을 견제할 것이고 부소경도 그들 세 식구를 남성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여 그녀는 신세희
마치 옷의 단추를 잠그듯 쉬웠다.허영과 임지강, 그리고 임서아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반호석 부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들과 달리 겁이 없는 반명선은 얼이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부소경을 숭배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넷째 작은아버지도 예전에 섬을 관리할 때 엄청 과감하게 사람을 죽였었는데.”반명선이 신유리를 힐끗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껌딱지야, 네 아빠 우리 넷째 작은아버지랑 엄청 닮았어.”“언니 넷째 작은아버지가 누군데?”신유리가 물었다. 신유리는 반명선이 자신을 껌딱지라고 부르는 게 그리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자신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언니의 껌딱지가 된 걸 신유리는 영광스럽게 여겼다.“우리 넷째 작은아버지 말이야!”반명선이 신유리를 힐끗 째려보았다.“너는 친딸처럼 끔찍이도 아끼면서 나한테는 엄청 쌀쌀맞아! 널 정말 애지중지하더라고. 흥!”그러자 신유리가 활짝 웃었다.“아... 언니 넷째 작은아버지가 바로 호경 아저씨구나.”반명선은 아무 말이 없었고 신유리가 동그란 두 눈을 깜빡였다.“알았어, 알았어. 그럼 내가 보상해줄게. 나랑 남성 가서 놀래?”반명선이 말했다.“뭐... 뭐라고?”‘우리 가족은 지금 포로로 잡혀있는데? 게다가 내가 너의 엄마랑 너한테 잘한 것도 없는데 남성에 가자고?’반명선이 신유리에게 계속하여 말했다.“껌딱지야, 미... 미안해. 언니는... 갈 수가 없어.”“왜?”신유리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묻자 반명선이 대답했다.“왜냐하면... 넌 어른들의 세상을 몰라.”싸우다가 울어도 뒤끝이 없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의 세상에는 사랑과 증오, 그리고 원한이 있다.신유리가 두 눈을 번득였다.“언니는 뭐 어른이야? 호경 아저씨가 그러는데 언니도 어린애랬어. 흥!”반명선도 자신을 어린애라고 생각했지만 세 식구가 부소경의 포로가 됐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불량소녀였던 반명선은 집에서 하룻밤 사이에 포로가 되었고 가성섬 전체가 조용할 때 반명선은 문득 깨닫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