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말이 별로 없던 부소경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이 땅은 원래 우리 외가 것이었어. 외가 쪽에서 대대로 이곳을 관리했었거든. 비록 그리 발전하진 못했어도 인심 좋고 평안히 살 수 있는 그런 곳이었어. 그런데 나중에 부씨 집안에서 이곳의 평화를 깨뜨리는 바람에 우리 외가 일가가 죽임을 당했고 어머니도 한을 머금은 채 눈을 감으셨어. 내가 성이 부씨긴 하지만 하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어. 난 이곳에 내가 원하는 걸 가지러 왔어. 그러니 어찌 주민들에게 전란의 고통을 가져다줄 수 있겠어?”그의 말에 신세희는 부소경을 꼭 끌어안았다.“여보...”부소경이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난 열몇 살에 해외에서 방랑하면서 이미 나의 계획을 시작했어. 점차 용병을 끌어모으면서 실력을 키웠고 세계 곳곳에 용병들을 배치했지. 반호경, 그 방법을 내가 굳이 말해야 알아? 그 용병들은 전부 다 산전수전을 겪고 싸움에 능한 자들이야. 내가 아무렇게나 수만 명을 움직여도 이 섬 하나쯤은 쉽게 점령할 수 있다고. 너랑 네 형 반호석은 내가 언제부터 용병들을 가성섬에 들였는지도 모르더라. 내가 6년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보냈을 것 같아?”“난 천천히 침투한 거였어. 목적은 단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싶지 않아서. 서울의 구성훈과 서씨 집안 어르신이 너희들한테 재력, 무력, 무기를 줬지만 사실 이 가성섬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 주머니 속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야. 그 사람들이 너희들한테 많이 줄수록 내가 더 많이 벌 거든. 그리고 내가 지금 이때 가성섬에 온 건 구성훈이 더는 가성섬에 무력을 제공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이젠 한계가 왔거든. 그래서 마무리하려고.”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반호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6년 전부터 부소경은 이미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다. 부소경이 직접 가성섬에 오지 않아도 가성섬은 이미 부소경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반호경과 그의 어리석은 큰형은 승산이 있는 줄 알고 끊임없이 구씨 집안에 도움을 청했고 임씨 집
“부소경! 너만 열몇 살 때 외국으로 쫓겨나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 줄 알아? 나도 쫓겨났었어.”반호경이 구슬픈 눈빛으로 부소경을 보았다.“네가 외국에 있을 때 너의 아버지는 적어도 생활비 걱정은 안 하게 했잖아. 게다가 너의 어머니는 외국에서도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건축사였지. 넌 비록 유배됐지만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인간관계를 만들 여윳돈까지 많았어. 하지만 나는?”부소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눈앞의 반호경이 더는 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에게 하소연하는 것만 같았다.“나는 아무것도 없었어! 나는 나의 상업적 감각과 독함으로 일어서야 했어. 지금 군주 저택의 동원에 살면서 큰형한테 큰소리 떵떵 칠 수 있는 건 큰형한테 2천억이나 되는 경비를 대줬기 때문이야. 2천억! 2천억으로 가성섬에서 공중 화원이 딸린 별장을 충분히 지을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왜 군주 저택에서 남의 도움을 받는지 알아? 큰형이 가여워 보여서 그랬어! 무능하고 큰일을 못 하는 사람이니까!”그러고는 부소경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부소경, 네가 좋아하는 여자뿐만 아니라 공주님까지도 난 다 좋아해! 난 너보다 세희한테 더 잘해줄 자신이 있다고! 넌 가성섬에 오자마자 두 모녀를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난 달라! 나 반호경이 네 손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말은 꼭 해야겠어! 난 세희를 사랑하고 유리도 사랑해!”신세희는 할 말을 잃었고 신유리가 한마디 했다.“아저씨, 무섭게 이러지 말아요...”신유리의 앙증맞은 목소리에 반호경의 표정이 바로 온화해졌다.“미안해, 미안해, 우리 공주님. 유리가 아직 어린이라는 걸 아저씨가 까먹었어. 어린이 앞에서 이런 무서운 얘기 하는 거 아닌데. 아저씨가 미안해. 무서워하지 마.”“안 무서워요!”신유리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센 아빠예요. 아빠가 저랑 엄마를 지켜줘서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신유리가 계속하여 반호경에게 물었다.“아저씨, 아저씨는 제 친구 맞아요?”“당연하지!”“그럼
세 사람이 얼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있던 그때 머리 위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소경! 일은 절대 뜻대로 되지 않아. 네가 진작 가성섬 전체를 꽉 잡고 있었다는 건 모르고 있었지만 군주 저택으로 들어온 그 날부터 난 나의 퇴로를 남겨두었어. 이 길은 해저 터널로 연결된 비밀 통로고 나밖에 몰라. 이건 나 자신을 위해 준비해둔 탈출구야! 난 절대 너한테 무릎 꿇지 않아! 영원히!”반호경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결국 사라졌다.부소경은 용병들에게 비밀 통로를 조사하라고 명을 내렸다. 잠시 후 그들은 비밀 통로를 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다.십여 명의 용병들이 자책하며 부소경에게 말했다.“대표님, 이건 저희 잘못입니다. 저택에 그렇게나 오랜 시간 잠입했는데도 반호경이 이런 비밀 통로를 만들었다는 걸 몰랐다니... 6년 동안 이 장치에 한 번도 손대지 않더라고요.”부소경이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그냥 도망가게 내버려 둬.”사실 그는 반씨 집안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부소경이 원한은 반드시 갚는 사람이긴 하지만 무고한 사람은 해치지 않았다.설령 사오십 년 전에 부씨, 반씨, 하씨 집안의 원한이 깊다고 하더라도 그건 한 세대 앞선 어른들의 일이고 게다가 모두 숨을 거두었다. 반씨 집안의 사형제 중에 이미 둘이나 죽었고 나머지 두 형제는 부소경과 신세희, 그리고 신유리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기에 부소경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반호경이 굴복하지 않고 도망가는 모습에 부소경은 마치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도 전에는 독한 사람이었고 절대 남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지금 반호경도 그처럼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았다.그 순간 부소경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 반호경에게 뭔가 유대감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넋이 나간 표정의 신세희와 신유리를 보았다.“무서워하지 마.”부소경이 신유리를 번쩍 안아 들었다.“저 아저씨가 좋아?”그러자 신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 저 아저씨는 나쁜 아저씨가 아니에요.
그녀는 줄곧 자신의 남편이 사람을 삼대 베듯 죽이고 살인할 때도 눈도 깜빡이지 않는 줄로만 알았지, 이런 면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그 어떤 병력도 동원하지 않고 아무런 사상자 없이 가성섬을 점령했다. 보기에는 참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몇 년 동안 조금씩 준비하면서 이룬 성과였다.그 후 부소경은 군주 저택과 하씨 집안의 예전 저택을 보수했다.그는 군주 저택을 50년 전 하씨 집안에서 관리하던 모습으로 보수하게 했고 외가 쪽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하기 위해 하씨 집안 선조들을 이곳에 모시기로 했다.이 모든 과정이 결정을 내려서부터 단 일주일 내에 전부 진행되었다.일주일 동안 임씨 집안과 반씨 집안 사람들은 한 작은 저택에 감금되었다. 이젠 반호석도 더는 임씨 집안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엄격한 통제를 받는 임씨 집안 사람과 달리 반명선은 자유롭게 저택을 드나들었다. 그 바람에 일주일 동안 임서아를 찾아가 여간 귀찮게 군 게 아니었다.그 사이 임서아의 얼굴에 시퍼런 멍이 몇 군데 더 생겼다.일주일 후, 부소경은 신세희와 신유리와 함께 작은 저택으로 왔다. 임서아의 얼굴에 생긴 멍을 본 신유리가 배꼽 빠져라 웃더니 반명선에게 말했다.“언니, 언니 작품이야?”반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쟤네 세 식구가 우리 집에 있는 몇 달 동안 쟤한테 얼마나 괴롭힘당했다고. 넷째 작은아버지가 쟤를 얼마나 역겨워하는지도 모르고 넷째 작은아버지한테 시집가겠다고 했다니까. 난 지금 넷째 작은아버지 대신 복수를 해주는 거야!”말을 마친 반명선은 또 다짜고짜 임서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임서아는 반항도 하지 못했다.“으악...”부소경이 없는 지금 그녀는 신음조차 감히 내질 못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저 하루빨리 남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빨리 남성으로 돌아가고 싶어.’남성은 그녀의 고향이자 20여 년 동안 살아온 곳이다. 얼마 후면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임서아뿐만 아니라 임지강과 허영도 간절한 눈빛으로
허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신세희가 허영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허 여사님, 이 남자를 전혀 모르세요?”허영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버벅거렸다.“너... 이 사람...”“이 사람 누구예요?”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는 신세희의 표정과 허영을 부르는 남자의 호칭에 임지강이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허영을 보며 물었다.“이 사람 누구야!”“이 사람은...”“영이 누나, 누나 날 예뻐했잖아. 누나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다 했어. 난 원래 남성에서 안정된 일자리도 있고 잘살고 있었는데 누님이 같이 남성에 가자고 해서 따라온 거잖아. 인제 와서 날 모른 척하면 안 되지...”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삐쩍 마른 남자는 더는 그 무엇도 숨기지 않았다. 허영이 갑자기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빌어먹을 자식! 너 세희랑 짰지? 그래! 내가 너한테 세희를 죽이라고 했어! 하지만 그건 반씨 집안 군주의 뜻이었어. 그리고 그땐 세희랑 대표님이 가성섬 전체를 쥐고 흔드니까 우린 기선 제압을 하려고 했을 뿐이야! 인제 우린 대표님이랑 화해했어. 그러니까 넌 나랑 아무 상관이 없는 거지!”일이 이렇게 된 이상 허영은 완강히 부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허영의 해명에도 임지강은 여전히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허영을 보았다.“그게 다 사실이야?”임지강은 몇 달 전 아직 남성에 있을 때 어느 날 허영의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 적이 있었던 게 불쑥 생각났다. 지금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임서아도 나서서 허영의 편을 들었다.“아빠, 지금 우리 세 식구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엄마를 의심해서야 되겠어요? 엄마는 늘 아빠랑 저의 곁에 있었잖아요. 이건 세희 언니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세희 언니 이런 거 제일 잘하거든요.”임서아는 더는 신세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외할아버지가 부소경을 견제할 것이고 부소경도 그들 세 식구를 남성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여 그녀는 신세희
마치 옷의 단추를 잠그듯 쉬웠다.허영과 임지강, 그리고 임서아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반호석 부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들과 달리 겁이 없는 반명선은 얼이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부소경을 숭배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넷째 작은아버지도 예전에 섬을 관리할 때 엄청 과감하게 사람을 죽였었는데.”반명선이 신유리를 힐끗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껌딱지야, 네 아빠 우리 넷째 작은아버지랑 엄청 닮았어.”“언니 넷째 작은아버지가 누군데?”신유리가 물었다. 신유리는 반명선이 자신을 껌딱지라고 부르는 게 그리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자신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언니의 껌딱지가 된 걸 신유리는 영광스럽게 여겼다.“우리 넷째 작은아버지 말이야!”반명선이 신유리를 힐끗 째려보았다.“너는 친딸처럼 끔찍이도 아끼면서 나한테는 엄청 쌀쌀맞아! 널 정말 애지중지하더라고. 흥!”그러자 신유리가 활짝 웃었다.“아... 언니 넷째 작은아버지가 바로 호경 아저씨구나.”반명선은 아무 말이 없었고 신유리가 동그란 두 눈을 깜빡였다.“알았어, 알았어. 그럼 내가 보상해줄게. 나랑 남성 가서 놀래?”반명선이 말했다.“뭐... 뭐라고?”‘우리 가족은 지금 포로로 잡혀있는데? 게다가 내가 너의 엄마랑 너한테 잘한 것도 없는데 남성에 가자고?’반명선이 신유리에게 계속하여 말했다.“껌딱지야, 미... 미안해. 언니는... 갈 수가 없어.”“왜?”신유리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묻자 반명선이 대답했다.“왜냐하면... 넌 어른들의 세상을 몰라.”싸우다가 울어도 뒤끝이 없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의 세상에는 사랑과 증오, 그리고 원한이 있다.신유리가 두 눈을 번득였다.“언니는 뭐 어른이야? 호경 아저씨가 그러는데 언니도 어린애랬어. 흥!”반명선도 자신을 어린애라고 생각했지만 세 식구가 부소경의 포로가 됐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불량소녀였던 반명선은 집에서 하룻밤 사이에 포로가 되었고 가성섬 전체가 조용할 때 반명선은 문득 깨닫게
“네?”반명선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옆에 있던 신세희가 말을 보탰다.“대학교 가면 무슨 과를 배우고 싶어? 알아야 대학교를 알아봐 주지.”신세희는 누구보다 자신의 남편을 잘 알고 있었다. 딸바보인 부소경은 신유리가 납작코인 반명선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반명선이 자유분방하긴 해도 마음만은 정직했다. 만약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다면 나중에 훌륭한 인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에게 친구가 한 명 더 생기니까 나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명선을 남성으로 데려가면 반호석 부부도 더는 다른 꿍꿍이를 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반명선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저... 저... 대표님, 저... 정말 남성에 가서 공부해도 돼요? 남성에는 좋은 대학교가 엄청 많아요. 세계에서 발전한 도시에 있는 대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예요. 남성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건 제가 늘 꿈꾸던 거예요. 전... 의학을 전공하고 싶어요.”반명선의 꿈은 의학을 배우는 것이었고 뛰어난 의술로 아픈 환자를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반명선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꿈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반명선과 같은 불량소녀가 그런 꿈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지금 이 순간 반명선은 오래 간직해왔던 자신의 꿈을 얘기했다. 반명선은 더 좋은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부랴부랴 부소경에게 설명했다.“대표님, 저 이제 더는 불량소녀로 살고 싶지 않아요. 사실 매주 일요일 수업이 없을 때 아빠의 담당 의사한테 의학을 배웠거든요. 그래서 의학 지식을 꽤 많이 알고 있어요. 저 나중에 정말 의사가 되고 싶어요. 저 남성에서 가장 좋은 의과대학교에 다녀도 돼요?”반명선은 자신이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다. 포로 주제에 요구도 참 높지...“그게 사실이라면 마침 환자 한 명을 같이 데려갈 거거든. 돌아가는 길에 네가 좀 보살펴줘.”부소경의 말에 반명선이 화들짝 놀랐다.“정... 정말이에요?”“하나 더.”부소경은 아무런 표정 없이 덤덤하
시스템을 방어하는 조직과 관리하는 조직, 그리고 민간의 자발 조직도 있었다.신세희가 부소경에게 웃어 보였다.“소경 씨, 봐봐요. 하씨 집안이 가성섬에서 사라진 지 50년이 거의 되어가는데도 아직도 하씨 집안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요. 행복하죠?”부소경이 덤덤한 웃음을 지었다.행복이란 무엇인가?그의 사업과 원대한 계획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건 그의 아내와 딸이었다.사람을 죽일 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과감한 부소경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그녀를 확 끌어안더니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는 다정하게 말했다.“그만 비행기 타러 가자.”신세희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이 남자 애정행각을 점점 서슴없이 하네.’아무래도 가성섬에 잘 온 것 같다. 반호경이라는 남자가 부소경에게 꽤 많은 걸 가르쳤나 보다. 공항 같은 이런 공공장소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다니.신세희는 그들을 배웅하러 온 사람들을 힐끗 보았다. 두 사람의 애정행각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사람들이 아직 정신을 차리기 전에 부소경은 한 손에는 신유리를, 다른 한 손에는 신세희를 안고 비행기에 탑승했다.기내가 작진 않았지만 전용기라 탑승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부소경네 세 식구와 엄선우, 엄선우가 엄선한 용병 네 명, 임서아네 세 식구와 반명선, 그리고 환자 조의찬뿐이었다.부소경과 신세희가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허영이 뻔뻔스럽게 물었다.“저기... 대표님, 그... 그... 남자는...”“죽였어요!”부소경의 단답에 허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다행이고요.”그러고는 냉소를 흘리며 임서아와 임지강 옆에 앉았다.전용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또 다른 기내에서는 반명선이 상처가 방금 아문 조의찬을 챙기고 있었다. 열몇 살밖에 안 된 소녀지만 환자를 돌보는 건 그래도 그럴듯했다. 그렇게 비행기가 착륙하기도 전에 조의찬은 반명선과 꽤 친해졌다.“고마워, 동생.”반명선이 활짝 웃었다.“고맙긴요, 당연히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