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경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무슨 일인데?” 엄선우가 앞에 서 있던 신세희를 힐끗 보더니 부소경에게 귓속말했다. “임씨 집안과 관련된 일입니다.” 부소경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엄선우가 재빨리 설명했다. “몇십 명의 부하들이 그 집안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그 집 식구들이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랍니다. 허영과 임서아는 창피해서 그렇다 치고, 임지강은 회사에서 업무를 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후 내내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답니다. 의문을 품은 부하 한명이 그 집안에 들어가 봤더니 세 사람 모두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답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감쪽같이 사라지다니.”이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고용인들에게 물어보니 입을 모아 세 식구가 여행을 갔다고 말했답니다.”엄선우의 말에 부소경이 냉소했다. “여행은 얼어 죽을, 잘도 도망갔군.” 엄선우도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부터 저렇게 빠릿빠릿했다고... 죽는 건 무서웠나 봅니다.”부소경은 말없이 두 모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만약 임씨 집안 사람들이 정말로 도망간 거라면 부소경은 신세희와 함께 그녀의 고향으로 갈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이곳에 남아 임씨 집안의 일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최단 시간 내에 그 집안 식구들을 다시 잡아들여 없애버릴 심산이었다. 서씨 집안 어르신과의 사이가 아무리 돈독하다 한들 임씨 집안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신세희.”부소경이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돌아봤다. “왜 그래요, 소경 씨? 혹시 회사에 일이 생긴 거예요?”눈치도 빠르고 배려심도 넘쳤던 신세희는 엄선우가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부소경에게 사실을 전달하던 것까지 전부 눈여겨보았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아니라면 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의 부하가 전화를 걸어 올 리 없었다. 부소경은 F그룹을 책임져야 했으니 그가 자리를 비우면 처치 곤란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부소경이 입을 열
신세희와 부소경은 할 말을 잃었다. 드넓은 공항은 오가는 사람들로 무척 번잡했다. 다들 부소경을 알아봤지만 감히 사진을 찍거나 인사를 건넬 용기는 없었다. 그런데 끔찍한 소문을 몰고 다니는 그 사람이 공항 한복판에서 제 아내랑 가위바위보를 한다니. 엄선우는 제 웃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얼른 자신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는 다시 한번 공주님에게 감탄했다. 공주님은 제 아빠를 괴롭히는 것에 도가 튼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남성의 권력자로 군림하는 남자는 세상에 둘도 없는 딸바보였다. 가위바위보.잘나가는 F그룹의 대표는 드넓은 공항 한복판에서 제 아내와 가위바위보를 했다. 더구나 그는 편법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는 비록 가위바위보를 하게 했지만, 내심 제 엄마를 따라가고 싶을 것이다. 망할 꼬맹이. 아이는 자나 깨나 제 엄마 생각뿐이었고 제 엄마의 호위를 자처했다. 눈길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우리 딸, 당분간 아빠랑 지내야겠네?”부소경이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휴, 알겠어.”이윽고 신유리가 신세희를 돌아보았다. “엄마, 조심해서 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전화하는 거 잊지 말고. 아빠가 연락이 안 되면 나를 찾아도 돼.”아이는 애늙은이처럼 제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 알겠어요, 작은엄마.”그러자 신유리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얼른 가봐요. 난 일단 탑승수속을 마칠게요.” 아이의 뺨에 가볍게 입 맞춤을 한 신세희는 그제야 그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비행기는 45분 뒤에야 출발했다. 신세희는 자리에 앉아 두 눈을 꼭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그녀는 문득 두려워졌다. 15년이나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그녀는 이 여정이 조금 망설여졌다. 과연 그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은 있을까? 집은 어떻게 됐을까? 이웃들을 모두 이사 갔나?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던 신세희에게 이 모든 건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2
한편 부소경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가운데 자리한 부소경의 옆에는 임시로 놓아둔 소파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린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맞은편의 기다란 타원형 회의 책상에는 서른 명 남짓한 부소경의 심복들이 앉아 있었다. 다소 긴장된 회의 분위기 속에 신세희가 전화를 걸어오자 부소경은 부하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내고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호텔은 무사히 도착했어?”신세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곳에서 제일 큰 호텔이에요. 침대는 우리 집 침대만큼 넓은데 내 곁에 당신과 유리가 없어서 조금 허전할 뿐이죠.”신세희는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익숙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부소경과 신유리와 거의 떨어져 있지 않았더니 잠깐의 헤어짐에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신은 아마 부소경을 떠나서 살 수 없을 듯했다. 어느 순간 그녀는 애교를 부릴 줄도 알게 되었다. “음... 소경씨. 나한테 뽀뽀해주면 안 돼요?” 그녀는 임씨 집안 식구들이 몰래 도망친 것도, 부소경이 밤새 회의를 지속하며 이 일을 처리하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울려 퍼졌고 마찬가지로 회의실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부소경이 스피커 모드로 전환한 건 아니었지만 고요한 밤 모두가 숨죽인 회의실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퍼질 수밖에 없었다. 말 없는 부소경을 향해 신세희가 또다시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유리가 아직 깨어있는 거예요?”자신의 옆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힐끔 쳐다본 부소경이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지금 자고 있어.” “근데 왜 뽀뽀 안 해줘요? 난 또 유리가 곁에 있어서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았지.”신세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오늘 거침없었다. 그와 얼굴을 마주할 때면 가끔 기가 죽었는데 막상 눈앞에 그가 없으니 어쩐지 그리워졌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으니 부끄러운 감정은 제쳐두고 대담하게 할 말을 내뱉었다.“혹시 부끄러워요? 그럼 내가 할까요? 내가 뽀뽀해줄 테니
“좋아요. 그럼 벌주지 않겠어. 그렇지만 빨리 유리를 데리고 내 곁으로 와야 할 거예요.” 신세희가 달콤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럴게.” 부소경도 부드럽게 대답했다.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들어 30명의 심복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뱉지 못했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 부소경이 사실은 애처가라는 걸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내의 말에 고분고분 대답하는 부소경이라니. 그 소문은 정말 사실이었다. “잘 자요. 소경 씨.”드디어 신세희가 통화를 끝낼 심산인 듯 싶었다. 그녀는 행여 자신이 부소경의 휴식을 방해한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조심해. 호텔에서 당신 고향 집으로 내려갈 때 하루에 40만 원씩 주겠다고 하고 택시를 대절하도록 해.”부소경이 말했다.“알겠어요.”그제야 신세희가 전화를 끊었다. 부소경은 가슴이 쓰렸다. 신세희는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어딜 가나 자신을 잘 보살필 수 있었지만, 그는 역시나 그녀가 15년이나 돌아가지 않았던 고향으로 홀로 내려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다. 통화를 마친 그가 현장에 있는 심복들을 바라보며 여상하게 입을 열었다. “계속해.”한 사람이 제 의견을 말했다. “서씨 집안 어르신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 집안 사람들이 쉽게 도망칠 수 있었던 걸 겁니다.”다른 사람도 동의했다. “맞습니다. 어르신이 손을 쓴 게 틀림없습니다.”바로 세 번째 사람이 발언했다. “저희 세력과 맞서며 섬 쪽을 지원하려는 걸까요?”“대표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침묵을 고수하던 부소경은 심복의 물음에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 양반이 도와준 게 확실할 거야. 아니라면, 그렇게 쥐새끼처럼 도망갈 리가 없지.” “절대 이대로 어르신을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몇 년 전 대표님을 한번 도와준 걸 빌미로 대체 그 쓸모없는 제 손녀딸을 몇 번이고 두둔하는 겁니까? 제 손녀딸을 위해서라면 못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절대
“하하, 나예요, 소경 씨.” 다시 신세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호텔 전화예요. 남성에서 일을 다 처리하고 유리랑 같이 올 때 여기로 전화하는 거 잊지 마요.”부소경은 가슴이 시큰거렸다. 신세희의 불안함이 수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평소에도 늘 침착함을 유지하는 그녀가 아무 일도 없이 전화를 반복해서 걸어 올 리가 없었다. 그가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 비행기로 유리랑 같이 그쪽으로 갈게. 북방은 여기보다 추우니까 잘 때 이불 꼭 덮어쓰고 자.”“알겠어요.”“그리고 문도 이중으로 잘 잠그고.”“네.”“그리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나한테 전화하고.”“당연하죠.” “그리고...”“소경 씨, 방금 우리 작은엄마 같았어요.”“당신한테 작은엄마가 어디 있어?”“당신 딸, 신유리요.”“......”부소경의 얼굴에는 어느덧 미미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곁에서 그걸 지켜보던 심복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부소경이 회의실을 떠나지 않았으니 감히 먼저 일어서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부소경은 열몇 살 때부터 전술을 짜는데 소질이 있었고 스무 살 때는 해외에서 용병일도 했었다. 하루아침에 F그룹을 장악했음에도 그룹이 흔들리는 일은 절대 없었다. 산처럼 견고한 그들의 대표가 저토록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니. 그들은 도련님이 날이 갈수록 부드러워진다는 엄선우의 말을 평소에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부소경은 소파에서 달게 자는 아이를 자기 슈트로 감싸 가볍게 안아 들었다. “아빠...”아이는 앳된 목소리로 제 아빠에게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쉬- 착하지, 코 자자.”그가 조용히 아이를 달랬다. 아빠 품에 안긴 아이는 이내 편안한 자세를 잡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가볍게 아이를 안아 든 부소경은 회의실을 나서면서 심복들에게도 이만 가보라고 손짓했다. 그 모
조심한다고 했지만 신유리가 잠에서 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제 아빠의 품에 안겨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서씨 집안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경아, 날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그 섬에 서아와 그 아이의 부모까지 보낸 건 바로 나다.”노인의 말에 부소경이 덤덤한 어조로 질문했다. “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차 안입니다.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했고 옆에서 자고 있던 아이가 어르신 때문에 깼습니다.”“아이도 옆에 있는 줄은 몰랐다.”“자꾸 제게 전화를 거시는 저의가 뭡니까.”노인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소경아, 너도 아이가 고작 잠에서 깬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니 내가 우리 손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도 잘 이해할 수 있겠지? 죽은 내 딸이 남긴 유일한 아이다. 20년 동안 밖에서 고생하다가 덜컥 너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네 아내에게 미움을 산 가여운 아이란 말이다. 네 성격으로는 절대 우리 서아를 가만히 놔두진 않을 테지, 그러니 내가 한발 앞서 그들을 섬으로 보냈다.”부소경의 목소리는 여전히 덤덤했다. “섬으로 보내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연로한 목소리에는 깊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다. 내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더냐. 만약 우리 서아와 결혼한다면 네가 가성섬을 차지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울 거라고. 허나 너는 서아와 결혼할 생각도 없고, 네 아내 때문에 서아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 없다. 온 힘을 다해 네가 그 섬을 차지하는 걸 저지할 수밖에.” 노인의 말은 전부 부소경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이에 대해 부소경은 이미 회의 때 심복들에게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부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길 바랍니다.”부소경의 말에 경고가 담겨 있음을 알아챈 노인이 기겁했다.“너...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 “딸아이를 재워야 하니 이만 끊겠습니다.”전화를 끊자 그의 품에 조용히 안겨있던 신유리가
“방금 회의 중이었어.”부소경은 그제야 사실을 알려주었다. “뭐... 뭐라고요?”“맞아. 다들 들었어.” 부소경이 순순히 인정했다. “당신, 어떻게... 이러면 내가 너무 창피하잖아요! 앞으로 그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보라고?” 신세희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지만 부소경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대표님 아내가 귀엽다고 생각하던걸.” “......”“그리고 나도 당신 애교 섞인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거라, 더 듣고 싶기도 해. 지금은 옆에 아무도 없으니까 애교를 부리든 도발하든 어디 당신 마음대로 해봐.” 그는 이 말조차도 덤덤하게 내뱉었다. “... 당신 진짜 짜증 나요.”“방금 그것도 애교인가?”부소경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녀의 애교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매사 신중하고 냉철하고 또 무뚝뚝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사실은 응석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신세희는 부소경의 질문에 왠지 대답하기가 쑥스러워졌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부소경이 아니었다. “뽀뽀해줘.”“얄미워, 정말.”부소경이 차갑게 웃었다. “아니라면, 혼나고 싶은 거야?”“그럼... 지금 와서 혼내줄 수 있나요?”부소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불가능하겠군.”“언제 올 거예요? 일은 잘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래 회의할 줄은 몰랐어요. 유리는 잠들었어요?”신세희는 온갖 질문을 퍼부었다. 그가 힘들진 않았을지, 혹시 아이가 적응하지 못한 건 아닐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유리는 여태 한 번도 제 엄마랑 떨어져 있은 적 없었으니까. “유리는 잠들었고 일도 다 처리했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생각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부소경이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당신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고향에 내려온 것뿐인데 별일이야 있겠어요.”신세희도 시큰둥하게 말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잠이 오지 않더니 푹신한 침대에 누워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금세
신세희는 다행히 푹 잘 수 있었다. 다만 그의 팔을 베고 자지 않았던 터라 희미한 아침 햇살이 창틈으로 스며들자 바로 눈이 떠졌다. 아직 6시밖에 되지 않은 시각, 호텔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신세희는 택시 하나를 불렀다. 어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라, 15년 전 고풍스러운 분위기 대신 고층 건물들이 늘어섰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낮에 다시 관찰해보니 이곳은 도처에 공사 중이었다.이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서쪽에 위치한 그녀의 고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마 자기 집만 빼고 다들 2층짜리 건물을 새로 지었겠지? 12살에 이곳을 떠났을 때도 그 건물은 작고 볼품없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그 집은 아마 무너지고도 남았을 터였다. 택시를 잡은 신세희는 부소경의 말대로 40만 원을 바로 건네지 않고, 먼저 그 절반인 20만 원을 불렀다. 그러나 택시 기사는 그것만으로도 좋아하며 냉큼 동의했다. 기분이 좋아진 기사가 열정적으로 말을 늘어놓았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이곳 사람은 아니시죠? 큰 도시에서 오신 분인 것 같군요. 친척을 보러 오셨나요? 아니면 친구? 아니면 여행하러 오신 건가요?”기사의 질문에 신세희가 짧게 대답했다. “두루두루요.”그녀가 기사에게 질문했다. “이곳도 점점 도시 모양을 갖춰 가네요.”“그렇죠? 20년 전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작은 지방이었는데 이렇게 확장될 줄은 몰랐네요. 이 앞에는 공원처럼 지은 고급 아파트 단지도 있어요.”“그러네요, 예뻐요.”신세희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휴, 여긴 예쁜 축에 끼지도 못해요. 동쪽 호수는 가보셨어요? 그곳이야말로 절경이죠.”“동쪽 호수요...”비록 고향을 떠난 지 15년이나 지났지만, 그때는 이곳에 호수가 없었다. “인공 호수예요. 그리고 서쪽 편에도 호수를 만들 작정인가 봐요. 곧 공사를 진행할 건지 요 며칠 전부 터 철거작업을 시작했다더라고요. 동쪽과 서쪽 모두 호수가 만들어지면 우리 지방이 훨씬 더 아름다워질 거예요.”“철거요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