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아는 심지어 그 시선이 느껴져 흠칫했다. “왜 그래 정아씨?” 신세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민정아는 웃었다. “갑자기 뭔가 서늘해서, 오늘 내가 적게 입어서 그런가봐. 예뻐 보여야 하잖아, 하하하.” 신세희는 진심으로 칭찬했다. “오늘 진짜 예뻐.” “고마워, 다 세희씨 덕이지 뭐.” 민정아는 신세희에게 매우 고마워했다. 사실 민정아는 좋은 옷들을 많이 입어봤다. 그런데 대부분 민정연이 입다가 버린 거거나, 민정연이 원래 안 좋아해서 그녀에게 기부한 거였다. 민정연은 절대 신세희처럼 그녀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좋아하는 옷을 사주지 않았을 테다. 민정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신세희처럼 이렇게 친구를 생각하는 사람한테, 당시에 자신이 왜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시비를 걸었던 걸까? 이 세상에서 어떤 여자가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 돈을 아끼지 않고 차 한 트렁크만큼의 옷을 사줄 수 있을까? 민정아가 봤을 때 그 옷들은 거의 몇 천만원 어치였다. 게다가 모든 옷들이 다 민정아가 좋아하는 디자인이었다. 비록 가격은 엄청 비싸지 않았었고, 거의 몇 십 만원에 한 벌이거나, 신발도 5-6 만원짜리였지만 민정아는 너무 좋아했다. 그녀는 오늘도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일 잘 해 보이는 깔끔한 오피스룩으로 입었다. 신세희만 그녀를 칭찬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엄선희와 회사에 있는 다른 동료들도 민정아를 칭찬했다. 민정아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그 사람… 정아씨한테 잘해줘?” 신세희가 물었다. 그녀는 경험자였기에 이쪽 방면에서는 민정아보다 경험이 많았다. 민정아는 얼굴이 살짝 빨개졌고 겸손하게 말했다. “세희씨, 만약 내가 예전 같은 성격이었으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서준 도련님을 갖으려고 했을 거야. 하지만 난 지금… 나랑 도련님은 아무것도 없어.” “재벌 집에 들어가기 싫은 거야?” 신세희가 물었다. 민정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싫어.” 그녀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토요일에
계산하려고 줄을 서고 있을 때, 민정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은 어제 신세희가 민정아에게 사준 거였다. 지금 민정아의 핸드폰이 울리는 걸 보고 신세희는 민정아를 놀렸다. “분명 구씨 도련님 전화겠네. 정아씨 어제 막 새로 번호 만들었는데, 도련님 아니면 누구겠어? 그 지에 시집가기 싫다더니, 그쪽에서 정아씨한테 빠진 거 같은데, 아마 저녁에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하려는 거 아닐까?” 민정아는 웃으며 전화 온 걸 보고 발신인을 확인한 뒤 웃지 못 했다. 엄마의 전화였다. 어제 신세희가 막 민정아에게 핸드폰을 사줬을 때, 민정아는 그걸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매우 부모님과 화해하고 싶었다. 어쨌든 부모님은 자신의 부모였고, 게다가 민정아가 계속 엄선희 집에서 먹고 자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어제 부모님은 그녀의 전화를 받자마자 욕을 퍼부었다. “네 이 죽일년! 이제 와서 왜 전화를 하는 거야? 네 언니 놀리려고 그러는 거야? 넌 네 언니가 어디까지 망가질지 보고 싶은 거야? 양심도 없는 것! 언니가 어렸을 때부터 널 얼마나 도와줬는데, 넌 양심을 개한테 줬구나. 넌 그냥 검은 머리 짐승이랴, 우린 네가 차에 치어서 죽으라고 저주할 거야!” 이건 민정아 엄마가 어제 전화로 민정아에게 한 말이었다. 민정아는 혼자 이불 속에 숨어서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세희가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여전히 일어나서 잘 살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열심히 일을 하면서, 그런 부정적인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걸 보고 민정아도 더욱 강해졌다. 그녀는 심지어 엄선희에게도 자신이 어제 엄마한테 비참할 정도로 욕 먹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민정아는 열심히 업무를 처리하고,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어제 자신이 엄마에게 욕을 먹은 사실이 업무중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민정아는 이 순간 엄마한테 자발적으로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그녀는 스피커를 막고 사실대로 신세희
“너 이 미친년 내가 죽여버릴 거야! 네 얼굴 좀 보자! 너가 또 어떤 식으로 돈 많은 남자들을 꼬시려는지 내가 좀 봐야겠어! 너 이 미친년! 다 너 때문이야! 너한테 좋은 운이 다 돌아간 뒤로부터, 내가 망하기 시작했어. 내 약혼남이 날 버리고, 나중엔 부소경이 날 죽이려 했어. 그저께 넌 또 내가 부씨 가문 연회에서 망가지게 만들었지! 너 이 나쁜년, 넌 죽어도 싸! 네 얼굴을 내가 망가트리고 말 거야!” 이미 두 경비원에게 붙잡힌 민정연은 여전히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민정연의 소리를 듣고 구서준이 무섭게 소리쳤다. “너 이 미친 여자야! 정말 너무 독한 거 아니야, 염산을 동생한테 뿌릴 생각을 하다니! 아오… 아파 죽겠네!” 구서준의 옷 소매는 손바닥 크기만큼 타버렸다. 그의 팔도 5센티 정도 크기의 화상을 입었다. 구서준은 아파서 이를 꽉 깨물고 식은땀을 흘렸다. 이 순간 민정아는 놀라서 멍해졌다. “멍청한 아가씨! 119 불러요!” 구서준은 민정아를 향해 소리쳤다. “어, 네! 바로 부를게요!” 그리고 민정아는 구급차를 불렀다. 그리고 구급차가 오는 걸 기다리면서 구서준은 또 민정아에게 명령했다. “경찰 불러요!” 민정아:“......저 사람은, 제 사촌 언니예요” “저 여자가 당신 얼굴을 망가트리려 했어요!” 구서준은 바닥에 제압되어 있는 민정연을 무섭게 보았고, 그는 자신의 팔을 잡고 씩씩거리며 민정연 앞으로 와서 발로 그녀의 얼굴을 밟았다. “너 이 독한 여자야! 아주 그냥 속이 썩었구나! 방금 들었지? 넌 동생을 해치려고 했는데, 정아씨는 너를 사촌 언니라고 생각해 주고 있어. 넌 대체 뭐야? 그냥 완전 미친 여자고만!” 구서준이 여자한테 막 대할 때는 정말 한치도 봐주지 않았다. 밟혀 있는 민정연은 이를 꽉 깨물고 욕했다. “얘는 안 어울려요! 얘가 어떻게 당신 여자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절대 어울리지 않아요. 미친년은 얘잖아요. 천박하기 짝이 없는 미친년은 얘라고요
많은 걸 잃고 난 뒤의 민정아는 부끄러움이 부쩍 많아져서 구서준은 평소에 그녀의 손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이 막돼먹은 아가씨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구서준이 민정아에게 키스하려던 찰나, 서준명과 엄선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준명이 큰소리로 물었다. “구서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많이 다쳤어?”민정아가 걱정되었던 엄선희도 입을 열었다. “정아 씨, 괜찮아? 얼굴은 안 다쳤어?” 고개를 돌린 민정아는 붉어진 눈시울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상처를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를 걱정해 주는 건 금방 사귄 두 친구뿐이었고 얼굴이 망가지지 않게 구해준 것도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친구였다. 그러나 자기 부모는 아직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더구나 그녀의 어머니가 전화로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황산을 든 민정연이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서준명이 민정아 곁으로 다가오자 깜짝 놀란 민정아는 얼른 신세희의 옆에 바짝 붙었다. 서준명이 민정연의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한 민정아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기... 서 대표님.”“맞았어요?”서준명이 얼굴을 찡그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릴 때부터 줄곧 정연이에게 이런 취급을 받은 거예요?” 민정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로는 서준명의 고통을 전부 표현할 수 없었다. 서씨 집안에 마가 꼈나? 가짜 여동생을 둘이나 떠안게 되다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그는 반드시 진실을 꼭 밝히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서준명이 민정아를 위로했다. “걱정 말아요. 앞으로 누가 또 괴롭히면 나를 찾아와요.” “서준명, 너한테는 선희 씨가 있잖아.” “너는 하루 종일 네 여자친구 생각밖에 안 하냐?” “아니... 아파 죽겠다는 생각도 해.”병상에 누운 구서준이 앓는 소리를 내자 병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신세희는 오후에 집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부소경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무슨 일인데?” 엄선우가 앞에 서 있던 신세희를 힐끗 보더니 부소경에게 귓속말했다. “임씨 집안과 관련된 일입니다.” 부소경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엄선우가 재빨리 설명했다. “몇십 명의 부하들이 그 집안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그 집 식구들이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랍니다. 허영과 임서아는 창피해서 그렇다 치고, 임지강은 회사에서 업무를 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후 내내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답니다. 의문을 품은 부하 한명이 그 집안에 들어가 봤더니 세 사람 모두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답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감쪽같이 사라지다니.”이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고용인들에게 물어보니 입을 모아 세 식구가 여행을 갔다고 말했답니다.”엄선우의 말에 부소경이 냉소했다. “여행은 얼어 죽을, 잘도 도망갔군.” 엄선우도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부터 저렇게 빠릿빠릿했다고... 죽는 건 무서웠나 봅니다.”부소경은 말없이 두 모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만약 임씨 집안 사람들이 정말로 도망간 거라면 부소경은 신세희와 함께 그녀의 고향으로 갈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이곳에 남아 임씨 집안의 일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최단 시간 내에 그 집안 식구들을 다시 잡아들여 없애버릴 심산이었다. 서씨 집안 어르신과의 사이가 아무리 돈독하다 한들 임씨 집안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신세희.”부소경이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돌아봤다. “왜 그래요, 소경 씨? 혹시 회사에 일이 생긴 거예요?”눈치도 빠르고 배려심도 넘쳤던 신세희는 엄선우가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부소경에게 사실을 전달하던 것까지 전부 눈여겨보았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아니라면 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의 부하가 전화를 걸어 올 리 없었다. 부소경은 F그룹을 책임져야 했으니 그가 자리를 비우면 처치 곤란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부소경이 입을 열
신세희와 부소경은 할 말을 잃었다. 드넓은 공항은 오가는 사람들로 무척 번잡했다. 다들 부소경을 알아봤지만 감히 사진을 찍거나 인사를 건넬 용기는 없었다. 그런데 끔찍한 소문을 몰고 다니는 그 사람이 공항 한복판에서 제 아내랑 가위바위보를 한다니. 엄선우는 제 웃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얼른 자신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그는 다시 한번 공주님에게 감탄했다. 공주님은 제 아빠를 괴롭히는 것에 도가 튼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남성의 권력자로 군림하는 남자는 세상에 둘도 없는 딸바보였다. 가위바위보.잘나가는 F그룹의 대표는 드넓은 공항 한복판에서 제 아내와 가위바위보를 했다. 더구나 그는 편법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는 비록 가위바위보를 하게 했지만, 내심 제 엄마를 따라가고 싶을 것이다. 망할 꼬맹이. 아이는 자나 깨나 제 엄마 생각뿐이었고 제 엄마의 호위를 자처했다. 눈길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우리 딸, 당분간 아빠랑 지내야겠네?”부소경이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휴, 알겠어.”이윽고 신유리가 신세희를 돌아보았다. “엄마, 조심해서 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전화하는 거 잊지 말고. 아빠가 연락이 안 되면 나를 찾아도 돼.”아이는 애늙은이처럼 제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 알겠어요, 작은엄마.”그러자 신유리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얼른 가봐요. 난 일단 탑승수속을 마칠게요.” 아이의 뺨에 가볍게 입 맞춤을 한 신세희는 그제야 그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비행기는 45분 뒤에야 출발했다. 신세희는 자리에 앉아 두 눈을 꼭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그녀는 문득 두려워졌다. 15년이나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그녀는 이 여정이 조금 망설여졌다. 과연 그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은 있을까? 집은 어떻게 됐을까? 이웃들을 모두 이사 갔나?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던 신세희에게 이 모든 건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2
한편 부소경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가운데 자리한 부소경의 옆에는 임시로 놓아둔 소파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린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맞은편의 기다란 타원형 회의 책상에는 서른 명 남짓한 부소경의 심복들이 앉아 있었다. 다소 긴장된 회의 분위기 속에 신세희가 전화를 걸어오자 부소경은 부하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내고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호텔은 무사히 도착했어?”신세희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곳에서 제일 큰 호텔이에요. 침대는 우리 집 침대만큼 넓은데 내 곁에 당신과 유리가 없어서 조금 허전할 뿐이죠.”신세희는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익숙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부소경과 신유리와 거의 떨어져 있지 않았더니 잠깐의 헤어짐에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신은 아마 부소경을 떠나서 살 수 없을 듯했다. 어느 순간 그녀는 애교를 부릴 줄도 알게 되었다. “음... 소경씨. 나한테 뽀뽀해주면 안 돼요?” 그녀는 임씨 집안 식구들이 몰래 도망친 것도, 부소경이 밤새 회의를 지속하며 이 일을 처리하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울려 퍼졌고 마찬가지로 회의실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부소경이 스피커 모드로 전환한 건 아니었지만 고요한 밤 모두가 숨죽인 회의실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퍼질 수밖에 없었다. 말 없는 부소경을 향해 신세희가 또다시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유리가 아직 깨어있는 거예요?”자신의 옆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힐끔 쳐다본 부소경이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지금 자고 있어.” “근데 왜 뽀뽀 안 해줘요? 난 또 유리가 곁에 있어서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았지.”신세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오늘 거침없었다. 그와 얼굴을 마주할 때면 가끔 기가 죽었는데 막상 눈앞에 그가 없으니 어쩐지 그리워졌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으니 부끄러운 감정은 제쳐두고 대담하게 할 말을 내뱉었다.“혹시 부끄러워요? 그럼 내가 할까요? 내가 뽀뽀해줄 테니
“좋아요. 그럼 벌주지 않겠어. 그렇지만 빨리 유리를 데리고 내 곁으로 와야 할 거예요.” 신세희가 달콤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럴게.” 부소경도 부드럽게 대답했다.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들어 30명의 심복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뱉지 못했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 부소경이 사실은 애처가라는 걸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아내의 말에 고분고분 대답하는 부소경이라니. 그 소문은 정말 사실이었다. “잘 자요. 소경 씨.”드디어 신세희가 통화를 끝낼 심산인 듯 싶었다. 그녀는 행여 자신이 부소경의 휴식을 방해한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조심해. 호텔에서 당신 고향 집으로 내려갈 때 하루에 40만 원씩 주겠다고 하고 택시를 대절하도록 해.”부소경이 말했다.“알겠어요.”그제야 신세희가 전화를 끊었다. 부소경은 가슴이 쓰렸다. 신세희는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어딜 가나 자신을 잘 보살필 수 있었지만, 그는 역시나 그녀가 15년이나 돌아가지 않았던 고향으로 홀로 내려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다. 통화를 마친 그가 현장에 있는 심복들을 바라보며 여상하게 입을 열었다. “계속해.”한 사람이 제 의견을 말했다. “서씨 집안 어르신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 집안 사람들이 쉽게 도망칠 수 있었던 걸 겁니다.”다른 사람도 동의했다. “맞습니다. 어르신이 손을 쓴 게 틀림없습니다.”바로 세 번째 사람이 발언했다. “저희 세력과 맞서며 섬 쪽을 지원하려는 걸까요?”“대표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침묵을 고수하던 부소경은 심복의 물음에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 양반이 도와준 게 확실할 거야. 아니라면, 그렇게 쥐새끼처럼 도망갈 리가 없지.” “절대 이대로 어르신을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몇 년 전 대표님을 한번 도와준 걸 빌미로 대체 그 쓸모없는 제 손녀딸을 몇 번이고 두둔하는 겁니까? 제 손녀딸을 위해서라면 못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