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선의는 믿기지 않는듯한 말투로 물었다."이걸 들었는데도 날 무시하지 않는다고요?"엄선우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넌 참 귀여운 바보 아가씨구나. 내가 왜 널 무시해? 반대로 난 네가 똑똑하다고 생각되는걸."염선의는 할 말을 잃었다."..."한참 지나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왜 날 무시하지 않는 거예요?"엄선우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몇 년 전에 너보다 생활이 더 어려운 여자아이를 만났었거든. 그녀는 아이까지 데리고 있는 몸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어. 하지만 학력이 없던 탓에 계속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지. 그러다가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어 학력을 위조하여 일자리를 찾아 지금까지 그 일하고 있어. 대학교 학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으로 되었어."염선의가 물었다."정, 정말이에요?"엄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지."그는 응원하는 말투로 말했다."사실 한 사람에게 있어 학력은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않아.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능력과 실속으로 이루어낸 성적이지. 안 그래?"염선의는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난 오빠 친구분처럼 성공하지 못했는걸요."엄선우는 의아했다."그건 무슨 말이야?""중학교 학력밖에 가지지 못한 내가 대학교 졸업이라는 거짓 학력으로 입사에는 성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들켜버렸거든요. 이윽고 회사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했어요. 다들 몰래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벌레 취급하며 피하더라고요. 회사 사람들 대부분이 내 흉만 보고 다녔어요. 나도 내가 잘못한 걸 알아서 차마... 반박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장님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저를 해고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사장님께선 내 일을 기반으로 글쎄, 전 회사직원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진행했다니까요?"엄선우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염선의를 바라보았다."그게 뭐라고 전 회사직원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그럴 필요까
"게다가 회사 직원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얘기했어요. 그 뒤로 회사에서 개 취급당하며 살았다고 하면 믿을 수 있어요, 선우 오빠? 그런데 내가 또 무슨 자격으로 반박하겠어요? 난 가짜 학력을 이용해 가져선 안 될 직업을 가졌어요. 허영심으로 따지면 진짜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제가 가진 직업으로 우리 엄마는 시집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거든요. 다들 천박하고 중학교 졸업생인 저는 대학생인 자식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잖아요? 봐요, 난 더 이상 대도시 회사 사무실에서 직원으로 살 수도 없어요. 자존심 상한다고요!"엄선우는 할 말을 잃었다."..."그는 순간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염선의가 이런 과거를 겪을 때 그는 자리에 없었다. 만약 그때 그가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사장님의 부정 발언과 염선의의 허영심 때문에 그녀를 혐오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 그 일이 있은 뒤 엄선우는 염선의의 얘기를 듣고 그녀가 사실 솔직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적어도 지금 그녀는 자신이 저질렀던 유치한 일을 뉘우치고 있다.그녀는 지금 예전에 비해 많이 솔직해졌다.게다가 엄선우도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인간 삶의 어려움을 깨닫게 되었다.아저씨와 숙모가 겪었던 과거까지 포함해 엄선우는 사람이 살면서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사람만 해치지 않으면 된다.도리에 어긋나는 일만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아무리 허영심이 많고 숨기는 게 많아도 그건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지금의 염선의는 태어날 때부터 허영심이 많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과 가족이 그녀에게 뿌리 깊은 관념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주로는 어머니가 그녀를 인정하지 않고 지켜주지 않았기에 친척들이 그녀에게 편견을 가지게 된 것이다.이런 이유로 인해 그녀는 허영심을 품게 되었다. 사실 그녀는 단지 친척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엄선우는 마음속으로 염선의를 매우 안타깝게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염선의는 그의 생명의
염선의는 다시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아니에요. 난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선우 오빠. 난 불건전해요. 난 철부지예요. 선우 오빠, 난 내가 한 짓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있어요. 그거 알아요? 사람마다 불쌍한 처지에 이르게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래요. 내가 제일 불쌍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요? 내 거짓 학력을 들킨 순간이 아니에요. 전 회사 직원들 앞에서 조롱당했던 순간도 아니에요. 바로... 바로 내가 내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족들과 친척들 앞에서 하찮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나를 싫어하고 경멸하는 사장님을 찾아가 돈을 빌리던 순간이에요. 그런데 결과가 어땠는지 알아요? 사장님은 또 한 번 회사 직원들 앞에서 나를 조롱했어요. 회사 직원들 앞에서 나는 허영심에 찌든 사람이라고 얘기했어요. 나는 현실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내가 그때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요? 오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예요. 그 순간 나는 내가 죄인이라도 된 것 같았어요. 나 자신이 최악이었어요. 어떻게 이 정도로 부질없고 하찮을 수 있는지... 나는 회사에서 청소를 도맡아 하는 청소부보다 못하다고 느꼈어요. 게다가 웃긴 건 내 성의를 표시하기 위해, 전 회사 직원들에게 내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해선 안 되는 말을 꺼냈어요. 나는 회사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어 죄송하다고 얘기했어요. 비록 평범한 사무실 직원이지만 청소부보다 덜됐다고 얘기했어요. 이 말 때문에 나는 전 회사 직원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내가 무슨 자격으로 청소부를 입에 올리냐면서요. 청소부가 왜? 사장님도 청소부를 무시하지 않는데 천박한 네가 무슨 자격으로 청소부를 입에 올리냐며 구박했어요. 사무실 직원이 될 자격도 없다고 했어요. 네가 학력을 위조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냐!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려 무슨 짓을 하는지 모
그 억울함은 그녀의 마음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었다."선우 오빠, 누군가에게 세뇌당한 기분이 어떤지 알아요?"염선의는 고개를 들어 울먹이는 시선으로 엄선우를 바라보았다.엄선우는 단번에 염선의를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말해, 사장이 누구야? 지금 그 사람 어디에 있어?"염선의는 고개를 저으며 씁쓸한 말투로 대답했다."선우 오빠, 이건 사장님을 탓할 수 없어요. 이건 모두 제 탓이에요."엄선우가 말했다."너 자신을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마, 염선의!"염선의는 굳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선우 오빠, 이 일이 지나고 나서 서서히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는 평생 정직원으로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걸요. 누군가는 평생 최하위 알바생으로 살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아요. 왜인지 알아요?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허영심이 없거든요. 맡은 바 자리에서 열심히 업무를 완성하여 얻은 성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거든요. 그녀는 멘탈도 강할뿐더러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았어요. 누군가에게 가끔 무시당해도 꾹 참고 버텼어요.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기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 선우 오빠. 나는 처음 일자리를 찾았을 때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어요. 그건 바로 내 신분을 상승시켜 줄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난 학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사무실 직원으로 될 줄도 몰랐고 따라서 좋은 성과도 따내지 못했죠. 나는 성과를 따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모험을 걸고 학력을 위조해야만 했어요. 내 성과와 거짓 학력은 맞물리지 않았어요. 이게 바로 내가 한 두 번째 실수예요. 세 번째 실수는, 사장님이 각박한 요구조건으로 나를 남겨준 건 어찌 보면 기회였으니, 마땅히 고생을 무릅쓰고 열심히 업무에 집중했어야 했어요. 비록 매달 어머니께서 보내주시는 용돈 외에 수입은 없었지만, 기본생활은 유지할 수 있었어요. 그때 원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살지 말았어야
염선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엄선우에게 물었다."선우 오빠, 만약 오빠... 친구라면, 가짜 학력을 만든 그 친구가 회사 동료들에게 물건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했대요?""그 친구."엄선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그 친구라면 이런 일은 식은 죽 먹기지. 그녀라면 자신을 그런 시선으로 본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 평소처럼 열심히 업무에 집중하고 여유시간이 생기면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증거 있냐며, 증거 있으면 경찰부터 불러오라고 따져 물을 거야. 그리고 증거 없으면 눈앞에서 꺼지라고 얘기할 친구야. 거슬리게 굴었다가 업무에 문제라도 생기면 가만히 둘 사람이 아니거든. 그 친구라면 분명 이렇게 행동할 거야."엄선우는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그는 신세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신세희가 이런 일에 부딪힌다면 분명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운 사람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신세희는 절대 가만히 있을 여자아이가 아니었다.신세희 같은 사람이 만약 고려시대에 남자로 태어났다면 아마 부소경 못지않을 것이다.이게 바로 신세희다."하지만 난 그렇게 못해요."염선의는 암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엄선우가 말했다."미안해, 선의야.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야. 난 그저 네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어. 사실 나도 알아. 여자들은 대부분 내 친구처럼 할 수 없다는 걸. 선의야, 이 세상 사람들은 각자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내가 뱀에게 물렸던 일을 예로 들자. 만약 신세희였다면 제일 먼저 목숨 걸고 날 구하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넌 다르지. 그러니까 넌 신세희보다 더 착한 여자아이야."엄선우는 신세희를 아주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사모님의 명성을 흐린 점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저도 이 아이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모님, 사모님처럼 기가 센 분을 어디서 찾겠어요? 여자 만 명을 두고도 못 찾을 거예요. 그래서
홀로 외롭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그녀를 다들 흉악하게 바라보고 있다.하지만 그녀는 그 순간 그녀가 얼마나 외롭고 처절한지 알 수 있었다.같은 시각 염선의의 얘기를 들어주던 엄선우도 알 수 있었다.그는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는 기분을 알 수 있었다."앞으로...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럴 일 없어."엄선우가 굳건한 말투로 말했다.염선의는 엄선우의 품에 안긴 채 대성통곡했다."선우 오빠, 그거 알아요? 살면서 단 한 번도 오빠처럼 내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 없었어요. 오빠는 우리 회사 직원들이 단체로 나를 도둑으로 몰아갈 때 내가 진짜 이 회사의 개가 되었다는 걸 터득했을 때 심정이 어땠는지 모를 거예요. 그 회사에서 나를 사람 취급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사는 게 죽기보다 싫었죠. 하필 그때 우리 엄마가 병으로 앓아누웠고 수술비도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그 수술비는 기초생활수급자인 우리에게 절대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어요. 우리 엄마 수술비를 위해, 친척들 앞에서 잃을 수 없는 그 쥐뿔같은 자존심 때문에 나는 회사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해도 그만둘 수 없었어요.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기분이었죠. 그런 날들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습기 그지없네요. 도대체 난 어떻게 버텼죠?"이 말을 꺼낼 때 염선의는 암울한 나머지 화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엄선우는 염선의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염선의, 말해봐. 이 일은 어떻게 해결되었어? 아직도 도둑으로 몰리고 있어?"직감이 말해주길 염선의는 분명 도둑이 아니었다.그녀가 아무리 허영심이 많은 여자라고 해도 도둑질까지 할 사람은 아니었다.염선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눈물이 시냇물처럼 얼굴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렸다. 목젖까지 흘러내리자 꿈틀거리는 그녀의 목젖이 보였다. 염선의가 애써 꾹 참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내내 드러내지 못하고 꾹 참은 억울함이었다.엄선우는 떠보듯 조심스럽게 염선의에게 물었다.
엄선우는 이해가 되지 않는듯한 표정으로 염선의에게 물었다."진실이 밝혀졌는데도 널 탓을 해?"염선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어디 탓하기만 하는 줄 알아요? 나한테 사과해도 모자랄망정 되레 나를 구박하더라고요."엄선우가 말했다."젠장!"한참 울고 난 염선의는 마음이 진정되어 느긋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회사에서 사라진 물건은 외국 고객이 회사에 선물한 에펠 철탑 기념품이거든요. 원래 쭉 사모님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는데 그날 아침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이 일로 회사 사람들과 맞서게 된 이튿날, 마친 그 고객분이 우리 신제품 출시 때문에 방문하기로 했거든요. 사장님과 회사 아줌마가 열쇠를 가지고 전시회 문을 열었어요. 문이 열린 순간 사장님과 아주머니는 동시에 전시회 탁자 위에 에펠 철탑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죠. 웃긴 상황이었죠. 사장님은 즉시 기념품을 들고 내려왔어요. 그러고는 에펠 철탑 기념품을 전시장에서 찾았다고 얘기했죠. 나는 사장님께서 기념품을 들고 전시장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어요. 솔직히 제 입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울음소리가 아주 처절했거든요. 나라 잃은 사람처럼 사무실 직원들한테 사과하라고 요구했어요. 사장님은 나한테 근무시간에 미쳤냐며 호통쳤어요. 그러고는 이대로 일하기 싫으면 곧바로 사표 내고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사장님의 말에 나는 단번에 눈물을 그쳤죠. 그러고는 잔뜩 풀이 죽어 내 자리로 돌아갔어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겠더라고요. 그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 억울한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입 밖으로 얘기할 수는 없었죠. 왜냐하면 일자리와 돈이 아주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동료들은 내가 풀이 죽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죠. 다들 왜 하필 나를 범인으로 의심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 거냐? 회사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들 왜 하필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겠냐? 분명 내가 죄지은 게 있어서 그런 거다, 내 인성에 문제가 있으니까 의심하는 거다, 문제는 나한테 있으니 다
염선의는 어깨를 으쓱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선우 오빠, 혹시 개구리 현상에 대해 알아요?"엄선우는 곧바로 염선의의 말속에 숨은 뜻을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히 알지."염선의가 느긋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개구리는 뛰는 것에 예민한 동물이에요. 만약 처음부터 냄비 속 물이 끓는 물이었다면 개구리는 단번에 뛰어나와 도망쳤을 거예요. 그리고 화상을 입는 일도 없었을 테고요. 하지만 만약 찬물인 상태에서 개구리를 넣어 서서히 가열한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적응하게 돼요. 그러다가 물이 끓게 되어도 별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리죠. 내가 바로 그 개구리예요. 처음에는 버틸 만해서 꾹 참고 있다가 그게 결국 습관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이젠 완벽히 적응했어요. 나는 허영심, 가짜 학력, 주위 사람들과의 충돌 외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회사에서 나는 그저 불쌍한 벌레와 마찬가지예요. 선우 오빠, 몰랐죠? 많은 연애소설 속 여주인공은 시골 신데렐라든 큰 도시에서 분투하다가 추락한 공주님이든 모두 사람들의 동정심, 사랑과 보호심을 불러일으키는 설정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소설과 반대죠. 현실은 나처럼 시골에서 올라온 무식한 사람은 허영심에 찌들어 거짓말을 한다면 들키는 순간 성격 더럽고 자존감 낮은 왕따가 될 거예요. 나는 줏대 없는 나 자신이 미워요. 왜 나는 도둑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꾹 참고 회사에 남아 내 자존심을 유지하려고 했던 걸까요? 사실 그 이유가 모두 엄마 때문이 아닌 건 맞아요. 중요한 건 결국 내 허영심 때문이었어요. 나는 사무실 직원으로 사는 데 익숙해졌고 내 처지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나를 지켜보는 게 좋았고 친척들이 나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걸 즐겼던 거예요. 그래서 계속 비난당하는 한이 있어도 회사에 남는 나약한 선택을 한 거예요. 그리고 그때는 그게 모욕이라는 걸 느끼지 못한 탓도 있어요. 그 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줄곧 그들의 비난 속에서 살았고 사무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