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경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어머니."서진희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소경아, 너도... 내가 평생...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족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어렸을적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커서 결혼했더니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그 뒤 주머니 하나 들고 떠돌이 삶을 살았어. 내가 세희의 외할아버지를 인정하지 않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내가 마음속으로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아니? 바로 가족이야! 난 평생 가족을 원했어, 이건 내가 살면서 빈 소원 중에 가장 큰 소원이야. 사실 그저 서씨 가문에 당당히 들어서 인정받는 것이었어."서 씨 저택에서 사는 건 서진희의 가장 큰 소원이였다.하지만 그럴수록 서진희는 서 씨 집안 어르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럴수록 서진희는 서 씨 저택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서 씨 집안 어르신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갑자기 가족을 잃게 되었다. 비록 어르신은 생전에 서진희를 예뻐하지 않았지만 어르신이 세상을 뜨자 서진희는 마음이 텅텅 빈 것만 같았다. 적어도 그자는 인생의 마지막 7, 8년 동안 내내 후회하고 되갚아 주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오빠와 형수까지. 그들은 그녀를 진심으로 아꼈다. 특히 서준명, 서준명은 그녀가 고모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전부터 그녀를 극진히 모셨다. 서진희는 이 모습을 모두 알았기 때문에 이 상황을 절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오빠와 형수, 그리고 조카와 어렵게 상봉하여 서씨 저택에서 서로 도우며 살았다. 그리고 이젠 나이도 있다. 그녀는 그저 아무 다툼없이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세 조카가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조카들은 파렴치하고 사람을 괴롭힐 줄밖에 몰랐다. 보통이라면 서진희는 이 세 조카를 용서하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인정사정없이 죽여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서준명은? 오빠와 형수는? 그녀는 난감했다. 살면서 가장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한때 남편과 친아버지에게
부소경은 아주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신세희, 너희 어머님께서 수고가 많으시네.”신세희가 대답했다."나도 엄마가 평생 힘들게 살아왔단 거 알아요, 당신보다 더 잘 알아요!""난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위해 해준 일이 없어. 줄곧 회사 업무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 어머니를 돌봐준 사람도 서준명이었지, 사위인 내가 해준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도 반은 아들인 데다 당신도 외동딸이니 어머님을 돌보는 게 당연하지. 우리는 어머님께 해준 일이 아무것도 없어. 알겠어, 신세희?"신세희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부소경이 어머니를 위해 해준 일 때문에 감동한 것이었다.그녀는 단지 마음이 복잡했던 것뿐이다. 납치당한 건 그녀의 세 아이였기 때문이다.그녀는 부소경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소경 씨, 사랑해. 소경 씨, 진짜 내가 너무 사랑해!"부소경은 신세희를 품에 안은 채 싸늘한 눈빛으로 서씨 가문 삼 형제를 바라보았다."당신들을 용서하는 것도 죄다 당신들의 고모 덕분인 줄 알아. 당신들이 내쫓고 무시했던, 내연녀가 낳은 사생아라고 비하했던 분 말이야! 한때 당신들의 할아버지 목숨을 구해준 사람도 세희의 어머니야. 지금 당신들의 목숨을 살려준 사람도 마찬가지로 세희의 어머니야. 신세희와 그녀의 어머니는 그쪽 서씨 가문의 은인이야!"서씨 가문 삼 형제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 맞아, 맞아...""그리고, 앞으로 서씨 가문의 일은 당신들의 고모와 서준명이 도맡아야 할 거야! 당신들은 빈손으로 떠나게! 더 이상 서씨 저택에 머물러 있지 말고 다시 얌전히 해외로 나가!"부소경이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이것이 강압적인 명령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그의 명령을 거역한다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삼 형제는 깜짝 놀랐다.현재 해외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서씨 집안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틈을 타 귀국했으니 마침 돌아가지 않을 심산이었다.하지만 지금 부소경이 그들을 도로 해외로 나가라고 하다니?삼 형제가
이연은 서씨 가문 2세대의 도우미였다.이연이 네댓 살 되던 해 그녀는 부모와 함께 서씨 가문 삼 형제를 따라 해외로 나가 그들을 돌보며 살게 되었다.이렇게 되니 한때 2세대 도우미였던 그녀는 해외에 거주 중인 검은 머리 외국인이 되어버렸다.하지만 이연은 검은 머리 외국인보다 많이 나았다.그녀는 한국어를 아주 잘했다.하나는 그녀가 해외로 나갈 때 이미 네댓 살이라 기본 언어교류가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연의 부모가 토종 한국인이라 한국어로 대화하기 때문이다.게다가 모시는 삼 형제도 해외에 나갈 때 이미 청소년이었는지라 주로 한국어로 소통했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이연의 한국어 수준은 아주 훌륭했다.외국어도 만만치 않았다.이연은 비록 서씨 가문의 2세대 도우미이고 부모님도 해외에서 도우미 일을 했지만 서 씨 가문은 이연을 아주 살뜰히 챙겨주었고, 심지어는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대학까지 다닐 수 있게 도와주었다.이로 인해 이연은 이런 착각이 들었다.그녀도 재벌 집 출신이라 여겨졌던 것이다.이연은 학교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었다. 단지 남자친구를 사귈 때만큼은 아주 까다로웠다. 보통 우등생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에 든 남자는 보통 해외에서 제일가는 재벌 집 자식들이었다.한번은 서아시아의 한 소국 왕자가 이연과 연애하고 싶다며 고백했지만 이연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왕자는 왕자지만 아주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국토 면적은 남성보다 작을 지경이었고 해마다 구제 덕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이런 왕자에게 무슨 이유로 시집을 간단 말인가?게다가 왕자의 영어 발음도 아주 구렸기에 이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왕자는 전교생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 꿇고 이연에게 고백했지만 이연은 그저 이를 우스갯거리로 여겼다.그녀는 완벽한 남편을 원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상류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 말이다. 적어도 서 씨 가문 삼 형제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연은 그녀가 바라는 남자 중에 자신을 좋아
"만약 그렇다면 싫어요.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어도 싫어요. 이미 사생아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거리낌 들어요."이연이 투덜거리자 듣고 있던 서명헌도 기분이 언짢았다.그는 이연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단지 지금은 서씨 가문 삼 형제가 이연을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그녀의 투정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이연이 부소경 얘기만 구구절절 늘어놓자 서명헌은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안돼!이 한은 반드시 풀어야만 한다!부소경!신세희!서진희!제일 괘씸한 건 바로 엄선희이다. 반드시 엄선희를 서씨 가문에서 내쫓을 계획이었다!서명헌은 얌전히 이연의 투정을 들어준 뒤 다시 입을 열었다."남성에 돌아오면 알게 될 거니 남성으로 돌아와. 당장.""알겠어요, 명헌 오빠. 지금 당장 짐 싸서 갈게요!"당장 짐 싸서 오겠다는 말에 이토록 빨리 행동할 줄은 몰랐다.서른 살 노처녀가 맞긴 맞나 보다.남편이 고픈 나머지 물불을 가리지 않다니.하루하루가 고되었겠구나.서명헌이 그녀에게 소개해 줄 남자가 남성 제일인 부소경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연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꺼리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녀는 부소경이 사생아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꺼리긴 꺼렸지만 이연은 번개처럼 재빨리 행동했다.서명헌이 이연에게 귀국하라 알린 이튿날 오전 10시에 이연은 이미 남성에 도착했다.게다가 그녀는 서명헌과 서씨 가문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녀는 직접 그의 예비 남편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자랐기에 오픈마인드를 가진 여자였다.비록 부소경이 남성 제일 재벌이라지만 반드시 그녀의 마음에 들어야만 했다.만약 대머리에 술배나 나온 느끼한 40대 남자라면 그녀는 다짜고짜 그의 뺨을 후려칠 것이다."능구렁이 주제에 날 탐내? 꿈 깨!"가는 길 내내 이 문제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이연은 이미 F그룹 건물 앞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뒤 그녀는 긴 웨이브 머리를 휘날리며 하이힐을 신고 선글라
"당신은 누구죠?"이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부소경에게 물었다.부소경은 여전히 평온한 눈빛으로 눈앞에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여자였다."여긴 어떻게 들어왔죠?"부소경이 물었다."카운터 직원이 안내해 주던데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요/ 누구시죠?"여자가 따져 물었다.부소경은 여자의 말을 무시한 채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은탁아, 이 여자 누구야?"은탁은 그의 비서들중 한 명이었다.그녀도 미팅이 끝나자마자 부소경을 따라 나왔기에 대표 사무실 앞에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은탁은 다급히 달려와 여자를 확인한 뒤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죄송하지만 아가씨,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대표사무실까지 어떻게 찾아오셨죠? 누구세요? 지금 당장 이곳에서 나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신고하겠습니다!"이연이 말했다."뭐, 뭐라고요?""당장 이곳에서 나가주세요!"은탁은 또 고개를 들어 부소경을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부 대표님. 제 실수입니다. 지금 당장 조사해 보고 책임자에 대해 추궁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은탁은 부소경과 이연을 뒤로 한 채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경비실이에요? 지금 당장 대표님 사무실에 와주셔야겠습니다. 웬 낯선 여자분이 계시는데 끌고 나가주세요!"너무 짜증 났다.F그룹은 다년간 엄격한 관리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대표사무실 앞에 요망한 여자가 서 있는 건 처음이었다.통화를 마친 뒤 은탁은 역겨운 표정으로 이연을 바라보았다.이연은 흠칫 놀랐다.이윽고 부소경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녀는 다짜고짜 부소경의 팔을 잡고 물었다."당신이 부 대표님이라고요? 그럼 당신이... 부소경 씨에요? 당신... 당신이 진짜 부소경이라고요?!"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그 순간 이연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그녀가 예고도 없이 부소경의 사무실까지 찾아온 이유는 그의 실물을 영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생아!들은 바에 의하면 부소
"음, 다들 당신이 올해 40세를 넘는다고 해서 늙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젊네요. 하나도 늙어 보이지 않네요. 당신이 3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세상에..."부소경은 할 말을 잃었다."..."너무 어처구니없었다.이미 세 아이의 아빠인 그가 와이프에게 잡혀 산다는 걸 남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 남성을 통틀어 그를 직접 찾아오는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근데 이 괴이한 여자는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단 말인가?부소경은 화가 난 나머지 어안이 벙벙했다.그가 이처럼 실태를 보이는 건 오랜만이었다.며칠 천 서씨 가문 장례식을 해결해 주면서 겪은 일로도 이처럼 평정심을 잃은 적이 없었다.이 이상한 여자에게 갖은 칭찬을 들은 부소경은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기가 찰 지경이었다."꺼져!"그는 덤덤하게 이 말을 뱉었다.그러자 이연이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부소경은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의 생사를 막론하고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가능하다면 발로 걷어차 버리고 싶었다!그가 발을 들려고 할 때 멀리서부터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부 대표님, 부소경 씨, 계세요?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부소경은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엄선희의 목소리였다."엄선희?"부소경이 물었다."네, 저예요, 부 대표님. 불편하시다면 물건은 카운터에 두고 갈게요. 편하실 때 와서 가져가세요. 미리 얘기해 드리려고 연락했어요. 원래 신세희 씨와 함께 올 생각이었는데 바쁘다더라고요. 저 혼자 와도 된다고 해서 혼자 왔어요. 그저 대표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요. 그날 저를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들어와."부소경은 다시 평온한 마음을 되찾았다.엄선희는 엄선우의 여동생이다.수년간 그녀는 서준명과 깊은 사랑을 유지해 왔고, 태도도 단정할뿐더러 고약한 심보도 없었다. 신세희와 아이들도 각별히 예뻐했다.마치 신세희의 친동생 같았다.더우기는 아이들의 이모 같았다.이러고 보니 형부가 시누이를 만난다는 게
엄선희는 눈앞의 여자에게 뺨을 맞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설마 그녀가 사람을 잘못 알아본 건가?이연이 서 씨 가문의 도우미가 아니란 말인가?하지만 서 씨 가문에서는 도우미들을 대대로 기록하고 있기에 정확하다 생각했다. 심지어 서 씨 가문에서 40년 가까이 종사한 도우미도 이연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이연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서 씨 가문 도우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휴, 어르신께서 살아계실 때는 몰랐는데 돌아가시니까 좀 해방된 것 같네. 사실 어르신 사람은 아주 괜찮았는데, 단점은 있어도 항상 정직한 분이셨잖아. 어르신이 살면서 고집불통이었던 건 맞아. 하지만 우리 도우미들을 가족처럼 아껴주셨지 절대 함부로 부려 먹지 않았어. 어르신이 돌아가신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보고 싶네. 아마 도우미를 하대하지 않고 챙겨주는 분은 다시 못 만날 것 같아.""나도 마찬가지야. 6살 때부터 서씨 가문에 들어와서 일했어. 부모도 없이 거리를 떠돌던 나를 받아준 게 바로 어르신이셨어. 달마다 월급도 꼬박꼬박 챙겨주셨고 학교에서 공부도 할 수 있게끔 도와주셨어. 대학까지 가려고 했는데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결국 포기했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서씨 가문에서 도우미 밀에 전념하게 되었어.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월급도 많았어. 이젠 내 자식도 대학에 입학했고 앞날이 창창해. 서씨 가문처럼 좋은 가문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몰라.""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르신 참 정직하고 괜찮으신 분이시잖아. 그렇지 않으면 F그룹 대표가 직접 장례식을 주도해 줬겠어? 이게 다 우리 어르신이 부 대표와 그의 어머니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기 때문이야. 들은 바에 의하면 부 대표의 어머니가 부 대표의 큰어머니 때문에 벼랑 끝까지 몰린 적 있다고 했어. 어르신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아마 부 대표의 어머니의 부 대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맞아. 어르신은 부 대표는 물론 지금 서씨 가문 사모님 가족들도 아주 잘 챙겨주셨어. 그리고 어
평생을 고생했어. 그래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진희는 여기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위해 기도 해줬어. 근데 우리가 도와줬던 사람들은? 고가영은? 고소정은?그리고 이연은? 아무리 해외에 있다고 해도,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 이연과 이연의 부모는 조문하러 오지도 않았어. 참 잔인하지.”감회에 젖어 말하는 어머니에게 서준명은 위로했다. “어머니, 그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어요. 이연이 해외로 나갈 때 나이가 겨우 네 다섯 살이었어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나이에요. 그렇게 어릴 때 서씨 가문을 떠난 사람들이 무슨 감정이 남아 있겠어요? 이연의 부모님, 걔네 아버지는 류머티즘을 앓고 있어요. 걔네 어머니는 그걸 돌봐야 하고요. 세 식구가 해외에서 생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형들이 돌아왔을 때 말했잖아요. 그들도 사실 돌아오고 싶었다고요. 어르신 조문하러 오고 싶었다고요. 어머니랑 아버지도 보러 올 겸 말이에요. 그 사람들도 아버지를 모셨었고, 아버지가 보고 싶을 거예요. 근데 돌아올 수가 없는데 어떡해요.”서준명의 말에 그들은 마음이 조금 풀렸다. 특히 서명훈는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나도 보고싶구나. 살아생전에 다시 만날 수는 있을런지. 이연이라도 돌아오면 좋을 텐데. 그 계집애도 지금쯤이면 한 서른 정도 되었겠지?”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사진 보여드릴게요.”서준명은 말하며 핸드폰을 열어 이연의 사진을 보여줬다.엄선희도 앞으로 나서 이연의 사진을 보았다.아름답운 미모의 이국적인 스타일이 눈에 띄었다.엄선희는 시부모님과 서준명을 쳐다보며 말했다.“아버님, 어머님, 좋게 말하면 제 시누이나 다름 없어요. 서씨 가문 가풍이 무너지면 안 되잖아요. 도우미들한테 여전히 가족처럼 대해야 해요. 편견 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 대해줘야 해요. 하는 일이 다른 것뿐이잖아요. 이연이도 훌륭하게 잘 큰 거 같잖아요. 진짜 돌아오면 저희가 더 열등감이 생길지도 몰라요. 그렇지, 여보?”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