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흐트러진 침대에서 부소경은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잠에 든 모습은 깨어 있을 때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잠든 모습이 더 보기 좋았다, 얼굴은 신이 깎아 낸 듯 보기 좋게 각져 있었고 피부도 오랜 세월 무술을 익혀 온 덕에 탱탱했었다.건강한 구릿빛이 배어 있어 섹시하면서도 거칠었다.이 구릿빛 거칠고 탱탱한 피부 위에, 뜻밖에도 긴 자국이 하나 있었다.다름 아닌 세희가 자면서 흘린 침이었다.부끄러워!입으로는 천박하게 굴지 말라고 다짐을 했다, 설령 부소경이 못살게 괴롭힌다고 해도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존엄을 지키라고 수차례 다짐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의 팔뚝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을 뿐 아니라 가슴에도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신세희는 너무 수치스러워 개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다른 여자들처럼 히죽 웃어대며 넘길 성격이 아니었다, 세희는 줄곧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고 사람과 일을 뚫어보는 통찰력도 있었다.어릴 때부터 신세희는 장난을 치지 않았고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 신세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불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녀의 기척에 부소경은 잠에서 깨었다.졸린 눈으로 세희의 몸부림을 보면서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신세희는 절대 이런 행동을 할 사람 같지 않았다.부소경은 팔을 들어 그녀의 목을 껴안고 한 손으로 턱을 들어 올리며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밤새 내 팔을 베고도 모자란 건가? 아침부터 또 내 품에 안기고 싶어?”세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그녀는 어떻게 이 상황을 해명해야 할지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부소경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고 세희는 그럴수록 시선을 내리깔았다.부소경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진지한 어조로 바꾸어 그녀에게 “도대체 왜 그래!”라고 물었다.부소경은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어 달란 말을 돌려 하는 건가 싶었다.“아침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늦으면 안 돼, 저녁
신세희가 여전히 이불 속에서 움츠리고 나오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부소경은 그녀를 이불에서 빼낸 뒤 위아래로 훑어보고 나서야 말했다. “오늘 침대에서 내려오지 말고 푹 쉬어. 식사는 메이드가 가져다줄 거야.”세희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소경은 다시 한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명령 같았다.세희가 자신의 명령에 반박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알, 알겠어요.” 어차피 부소경은 마음대로 할 테니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신세희는 그가 일찍 이 침실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야만 자신이 옷을 챙겨 입고 신유리를 보러 갈수 있으니.밤새 유리를 보지 못했고 유리가 어떻게 잔 건지 알 길이 없었다.무섭지는 않았는지, 울지는 않았는지,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에 한 번도 엄마를 떠난 적이 없었다.세희의 이런 생각들이 그녀의 표정에 드러났는지 소경은 한마디 했다.“깜박했군, 어제 당신 딸이랑 못 만난걸.”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 옷장에서 흰 셔츠를 꺼내 그녀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강제로 입힌 다음 그녀를 옆으로 껴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문을 열고 나서자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모, 우리 엄마 어디 있는지 알아요?”“공주님, 자, 한입만 더 드세요.”라고 자상하게 말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우리 엄마 어디 있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신유리는 울음을 참으려고 애쓰면서 말했다.“엄마와 아빠는 아직 깨어나시지 않았어요. 공주님은 동생 갖고 싶지 않아요?”라고 가정부가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동생 생기면 좋겠어요, 근데 엄마는 저만 있으면 된다고 했어요. 이모가 저 대신 동생 데리고 오면 안 돼요? 난 여동생이 조금 더 좋아요.”가정부는 웃으면서 말했다.“공주님은 정말 귀여우세요. 제가 도울 순 없지만 공주님의 엄마와 아빠는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요. 지금도 동생을 만들려고 노력 중인걸요.”“저 악당이 정말 우리 아빠
신세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붉어졌고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허리를 반쯤 숙여 신유리에게말했다.“아가야, 엄마한테 말해봐. 어젯밤에 잘 잤어? 무서운 꿈은 안 꿨고?”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뿌듯한 얼굴로 신세희의 손을 잡아당겨 앉히고, 신세희의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악당의 침대가 너무 편해요. 공주님 요람에서 자는 것처럼 너무 잘 잤어요.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엄마, 유리는 용감해요. 엄마는 어젯밤에 잘 잤어요? 안 무서웠어요?” 신유리의 침대는 부소경이 특별히 유리를 위해 주문 제작한 고급 침대다, 침대 옆은 달이 휘감겨 있고 침대 주변은 모두 조화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동화책의 주인공이 쓰는 침대 같았다. 신유리는 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무척 마음에 들었다.다만 어제 부소경에게 화가 나서 내색하지 않고 잠을 잔 것이다. 지금은 부소경에 대한 화가 가라앉았고 두려움도 사라졌다.하지만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엄마가 부소경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지금 엄마의 모습을 보니 아직도 저 악당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신세희는 미소를 머금고 신유리를 바라보았다.“유리가 편안하게 잘 자서 엄마가 마음이 놓이네. 엄마는 어제…” 세희는 어떻게 유리에게 어젯밤 부소경과 함께 잤다고 말할 것인지 망설여졌다. “엄마, 악당이 엄마한테도 침대를 마련해 줬어요? 어젯밤 엄마를 못살게 굴진 않았어요?”옆에 있던 가정부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신유리가 악당이라고 부르는 부소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침대를 마련해 주지 않아서 네 엄마는 나랑 잤어. 밤새도록 내가 안아줬어!”신세희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고 창피하여 고개를 떨구었다.그러자 신유리는 “엄마가 어린애도 아닌데 왜 악당이 엄마를 안아줘요!”라고 순진한 목소리로 물었다.“네 엄마는 어린애가 아니었지만 혼자 자면 무서워해. 곡현에 살 땐 네가 엄마를 안고 잤겠지만 지금은 내가 안고 자지.” 부소경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아.”신유리는
유리는 더 이상 악당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신세희는 침실로 안겨들어가면서 낮게 말했다. “당신 침실 안에 탐색 장치랑 암호 기계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랬지.”“그럼, 나…” 세희는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잘못 움직여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가봐.“이 방은 사람을 인식해, 당신 몸에는 내 체취가 가득해, 특히 가장 깊은 곳까지. 그러니까 당신은 내 방에서 안전해.”부소경의 말에 신세희는 얼굴을 붉혔다.그녀는 자신이 정말 한심했다. 걸핏하면 얼굴이 붉어지니까, 부소경에게 자신을 들킬 때마다얼굴이 붉어졌다.그녀를 다시 이불 속에 집어넣고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이 씨 아주머니, 구스다운 이불 좀 주세요.”이불은 아주 빨리 도착했고 부소경은 신세희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세희는 이불 속에서 부소경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가 방에 있다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녀의 앞에서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부소경의 몸매는 정말 좋았다.옷을 입으면 훤칠해 보이고 벗으면 탄탄한 몸매였다.특히 정장을 입은 그의 모습은 인기 있는 남자 영화배우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신세희는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머릿속에는 온통 구릿빛 피부와 근육질 몸매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젯밤 자신은 그의 품에 안겨있던 장면까지 떠올랐다. 생각에 너무 잠긴 나머지 소경이 나가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사모님.” 밖에서 가정부가 외쳤다.적응 안 되는 호칭이었다.신세희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사모님, 죄송하지만 제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세요, 방안의 탐지 장치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들어오세요.”라고 세희가 명료하게 말했다.가정부가 들어와 식판을 손에 들고 웃으며 신세희에게 다가왔다. “사모님, 아침 드세요. 이건 대표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신 영양 죽입니다. 자, 사모님, 아 하세요.”다정하게 챙겨주는 가정부는 나이가 쉰도 안 되는 모습
신세희는 수줍어하면서도 이 씨 아주머니의 뜻에 따랐다. 그녀는 주치 간호사가 맞았다, 전문적인 데다 신세희를 잘 간호해 줬다. 사람 자체도 이해심이 많고 따듯했다.오히려 신세희가 난감해했다.이 씨 아주머니는 “사모님 제 눈치 보지 마세요, 사모님이 남들처럼 뻔뻔하게 안구시니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이리 좋아하시나 봅니다.”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세희가 아무 말 없이 있자 “사모님.”라며 이 씨 아주머니가 다시 한번 말했다.“네.” 비록 신세희는 자신이 사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씨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공주님께서도 동생을 바라는 눈치인데 저희 대표님의 재력으로 절대 아이 한 명만 원하지 않을 겁니다. 추후에 아이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건강부터 신경을 써야 합니다. 사모님 움직이지 마세요, 약을 넣겠습니다.” 신세희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이 씨 아주머니는 신세희에게 “사모님, 적어도 한 시간은 침대에 누워 계셔야 합니다.”라고 세심하게 당부했다.신세희는 이불로 머리를 가린 채 “그럴게요.”라고 중얼거렸다.더 이상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이 씨 아주머니는 조용히 물러났다.신세희는 주인 없는 침실 안의 큰 침대에서 혼자 잠이 들었다. 뜻밖에도 평온하게 잠들었고, 아주 잘 잤다.신세희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사모님.” 이 씨 아주머니가 밖에서 외쳤다.“네.” 잠에서 깬 신세희는 몸이 많이 좋아진 것을 느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이 씨 아주머니의 솜씨는 부드러웠고 약효도 좋았다. 신세희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믈었다.“무슨 일이에요? 이 씨 아주머니?”“사모님, 대표님께서 옷을 보내오셨는데 나와서 한번 입어 보시겠어요?” 이 씨 아주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옷?당장 가야 한다!자신에게 입을 만한 옷이 단 한 벌도 없었고 옷을 입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었다. 무조건 입어야 했다.절실하게 필요했다!부소경이 보내왔다니?신세희의 마음속에는 따뜻한 감정이 피어올랐다.급하
신세희가 입은 옷들은 세희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차가워 보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났다.하지만 임서아는 온몸을 보석들로 치장을 했다.임서아는 6년 전보다 더욱 빛나고 아름다워졌다, 그녀는 6년 전보다 더욱 대담해졌다. 전처럼 가만히 숨어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숨길 것이 없이 당당하게 행동했다.신세희는 마음이 씁쓸했다.부소경 집안의 가정부가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불렀다.만약 그녀가 부소경의 부인이라면, 임서아는 또 뭐지?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신세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임서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임서아, 난 여기서 살 뿐만 아니라 부소경과 한 침대를 쓰고 있어, 우리는 사실혼 사이야, 사실혼이 뭔지 알겠지? 부소경은 지금 나를 매우 사랑해.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은 부소경이 보내온 거야. 어때, 서아야?” 서아는 분노에 차서 하마터면 자신의 이를 깨물 뻔했다.잠시 말을 잇지 못한 임서아는 독살스럽게 말했다.“신세희! 너 왜 이렇게 뻔뻔해! 야! 너 정말 뻔뻔해! 내 약혼자가 널 남성으로 데려온 이유가 뭔지 알아?”신세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알아, 날 가지고 노는 거. 잠자리를 하게 하기 위해서인 거. 근데 그게 왜?”“알고 있다고, 근데 왜 이렇게 당당해?” 임서아가 비꼬며 되물었다.신세희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왜 당당하면 안되는 거야? 난 원래 이런 애야. 6년 전 남성의 상류층들도 다 알고 있었어, 6년 전, 당신들 눈에는 난 그저 뻔뻔하게 상류층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로 보았잖아. 임서아, 넌 6년이 지나서야 내가 이렇게 뻔뻔하다는 걸 알았어?”임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세희의 냉소도 매서운 웃음으로 바뀌었다. “임서아! 6년 전 내가 너 대신 감옥에 가고, 네 아버지 임지강이 날 속여 부소경에게 보냈을 때도 난 당신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았어. 근데 내 뱃속의 아이는 날 속인 너 때문에 부성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았어. 임서아, 난 그때부터 당신 가문을 뼛속까지 미워했어. 기왕 내가 여기로 다시 돌아
"내 외할아버지라고! 난 우리 외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외손녀란 말이야. 신세희, 나랑 우리 임씨 집안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고? 꿈도 꾸지 마.""서씨 집안 어르신? 그 사람이 네 외할아버지라고?"신세희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이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드디어 임서아가 왜 이렇게 제멋대로일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든든한 뒷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그래, 내 외할아버지."잔뜩 거들먹거리며 신세희를 바라보는 임서아의 눈빛 속에는 시커먼 질투심이 그득했다.6년 전, 부소경은 임서아와의 결혼이 취소된 후 그녀를 임씨 저택에 연금시켜 아이를 낳게 했었다. 그때 그들은 공포에 잠식되어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부소경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임서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런 아이가 태어나기라도 한다면 임씨 집안은 절대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그런데 마침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서씨 집안 어르신이 찾아온 것이었다.임서아는 아직도 서씨 집안 어르신이 찾아왔던 때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검은 세단 20대가 줄줄이 도착하더니 경호원 4명을 거느린 서씨 집안 어르신이 임씨 저택에 들어선 것이었다. 임지강과 허영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그들은 부씨 집안에서 이자를 내세워 그들을 없애버리려 하는 줄 알았다. 세 가족을 바라보던 노인이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임지강 자네에게 전처가 있었나?"혼비백산한 임지강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못했다."예, 전처가 있긴 한데... 아, 아니요, 전처는 아니구요. 저... 어르신, 차라리 무슨 일인지 제게 그냥 말씀해 주십시오.""이 여자인가?"노인은 딸의 젊은 시절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사진을 훑은 임지강은 단번에 그 여자를 알아보았다. 감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그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왜,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이 아인 내 딸이야."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던 노인은 이 순간만큼은 어쩐지 지
서씨 집안 어르신은 고개를 숙여 임서아를 바라보았다."네가 서아냐? 내 딸이 낳았다던?"임서아는 눈물 젖은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우리 엄마의 아버지셨군요. 다들 우리 엄마더러 거지라고 했었는데... 사실 우리 엄마에게 이렇게 명망이 높은 아버지가 계셨던 거였어요! 그런데 외할아버지, 왜 우리 엄마는 그때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임서아는 아버지와 그 여자 사이의 일을 꽤 많이 알고 있다.어느 날 임지강이 그 여자를 주웠고, 그 여자는 임지강만 바라보며 살았었다. 그러나 그 여자와 동거했던 임지강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작은 천 가방 속 자잘한 장신구들을 빼앗은 후 그 여자를 쫓아버렸다.그리고 나중에 임지강은 허영과 결혼했다.허영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기에 그들은 한 살짜리 임서아를 입양했다. 어린 나이에 데려왔기 때문에 그들은 임서아를 친자식처럼 여겨왔다.세 가족은 언제나 화목했다.그러나 난데없이 임지강에게 쫓겨난 그 여자가 서씨 집안 어르신의 친딸이라는 사실을 이십여 년이 지나서 알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그리고 그 여자는...세 가족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침묵했다.임서아는 기회주의적이었으며 눈치를 봐가며 온갖 달콤한 말들을 곧잘 쏟아내는 사람이었다. 현재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눈물을 흘리며 서씨 집안 어르신의 비위를 맞췄고 어머니가 자기를 낳았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줄줄이 읊어댔다.불과 몇 분 만에 서씨 집안 어르신의 눈시울도 붉어졌다.허리를 굽혀 임서아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던 찰나, 그는 그녀가 피를 흘리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바닥에... 대체 바닥에 어찌 피가 이리도 많은 게냐?"하얗게 질린 노인이 급히 물었다."헉!"피로 흥건하게 젖은 자기 모습을 본 임서아도 깜짝 놀랐다.사실 며칠 전부터 아랫배가 살살 당기며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었다.이전에 그녀는 몰래 사립병원에서 진찰한 적이 있었다. 의사는 그녀의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했다. 낙태한 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부주의로 임신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