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까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최여진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부소경, 내가 다시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 못했나 봐? 게다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서 말이야.”구경민에게 쫓겨나서 도망다니다가 부성웅과 진문옥의 도움을 받고 도주했던 그녀였다. 반호영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주장하며 반호영을 찾아갔지만 반호영 역시 그녀를 반 병신으로 만들었다.그때 최여진이 다급하게 살려달라고 어딘가에 연락했던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그래서 사람들은 최여진이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런 최여진이 멀쩡하게 살아서 귀국했다.“어떻게 돌아온 거지?”부소경이 담담하게 물었다.최여진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그러더니 시선을 돌려 신유리를 빤히 바라보았다.일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이는 전보다 많이 의젓해 보였다.6살 아이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부소경을 꼭 닮은 모습이었다.“최여진 씨? 나 아줌마 누군지 알아!”신유리가 차갑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최여진은 등골이 오싹했다.“아… 저기….”최여진이 말을 더듬었다.“아줌마 정말 대단하네.”신유리가 말했다.최여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말투나 분위기가 전혀 어린애 같지 않았다.그녀는 아이가 혼자의 힘으로 반호영의 손에서 도망쳐 걸어서 집까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그렇게 힘겹게 돌아왔는데 엄마가 아이를 구출하러 호랑이 소굴로 다시 들어갔다는 것도. 그러다가 지금은 해상에서 조폭에게 잡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여섯 살 아이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원래도 담대하고 세심하던 아이는 더 냉철하고 더 침착하게 변했다.“호영 삼촌 손에 잡혔다가 탈출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탈출한 거야?”신유리가 물었다.최여진은 아이의 독기 어린 눈빛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여섯 살 꼬마 아닌가?그녀는 목청을 가다듬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내가 누군데?”“나 해외에 있을 때 보고 들은
최여진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부소경과 신유리 앞에서 그런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신유리가 말했다.“참 모략이 뛰어난 아줌마네.”“당연하지!”“그러니까 호영 삼촌이 날 납치하고 우리 엄마를 납치한 그 악랄한 계획이 아줌마 입에서 나온 거라는 거지?”신유리가 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최여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꼬마 주제에 이렇게 눈치가 빠르다고?“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나 반호영 증오해! 그런데 내가 왜 그런 인간한테 도움을 주겠어?”정곡이 찔린 최여진이 다급히 말했지만 신유리는 냉소를 머금을 뿐이었다.아이는 부소경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부소경은 집요한 눈빛으로 진문옥을 응시하고 있었다.아이는 이 장례식장에서 완전한 아군은 자신과 아빠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구경민도 그들의 편에 서기는 했지만 그들은 문상객일 뿐이고 그들의 옆을 오래 지켜줄 수는 없었다.그래서 아이는 어떻게든 아빠와 합심해서 모든 적을 상대해야 했다.부소경은 진문옥을 노려보고 있었다.신유리는 최여진은 자신이 담당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나이가 어리다고 얕잡아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신유리는 냉소를 지으며 소리쳤다.“최여진! 당신이 할머니 옆에 서지만 않았어도 의심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하필이면 할머니의 옆을 택했지! 그렇다는 건 사전에 할머니랑 연락이 있었다는 증거야!”“만약 당신이 호영 삼촌이랑 화해하지 않았으면 호영 삼촌이 당신을 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접근하도록 허락했을까?”신유리는 신랄하게 최여진을 비난했다.“최여진! 호영 삼촌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밉지도 않아?”최여진은 할 말을 잃었다.신유리는 계속해서 상대를 다그쳤다.“호영 삼촌이 당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내가 알지. 삼촌 성격에 당신이 먼저 다가가지 않았으면 받아주지도 않았을 거야! 당신이 그 악랄한 계획을 호영 삼촌에게 알려줬으니 가능했던 거지!”최여진은 점점 이 아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아이는 전혀 어린
신유리는 직설적이지만 그녀의 의도를 꼭 집어서 말했다.그리고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그녀의 목적은 부소경이었다.꼬신 게 아니라 그녀는 진문옥의 초대를 받고 이 자리에 왔다. 남성에 온지 며칠 사이에 부태성 어르신이 돌아갈 줄은 몰랐지만.신유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말이 없네? 그렇다는 건 인정한다는 거네.”“너!”여자의 얼굴에 분노가 스쳤지만 그렇다고 버럭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진문옥을 바라보며 물었다.“사모님, 이 아이가 사모님의 손녀인가요?”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부소경을 바라보며 물었다.“부 대표님한테 이렇게 큰 아이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신유리는 고개를 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부소경이 신유리에게 말했다.“유리야, 어른한테 무례하는 거 아니야.”신유리가 물었다.“아빠가 아는 사람이야? 둘이 언제부터 사이가 그렇게 좋았어?”아이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예상이 맞다고 말한다면 여기서 크게 울어제낄 생각이었다.아니지! 울기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부터 물어뜯을 것이다.그리고 최여진도!엄마를 제거하려는 모두를 물어뜯을 것이다.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아빠 혼자 살라지!이런 생각을 한 신유리는 또 눈시울을 붉혔다.“솔직히 유리야.”김미정은 담담한 표정으로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 당차고 똘똘한 아이는 처음 보네. 숙녀 같아. 유리 아가씨라고 불러줘야 하나?”신유리가 말했다.“당연하지! 난 유리 아가씨가 맞으니까! 그러니까 아줌마도 자기소개 좀 해!”신유리는 작은 몸으로 아빠의 앞을 가로막고 김미정을 빤히 쳐다보았다.아이는 어떻게든 김미정에게 지지 않으려고 발꿈치까지 들었다.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김미정의 무릎까지 밖에 닿지 않았다.짜증이 치밀었다.김미정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만나서 반가워. 난 김미정이라고 해. 서울에서는 귀족 가문이라고 불려. 부씨 가문도 남성에서 귀족 가문이라고 불린다면서? 너희 아빠는 남성에서 부동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 하지
김미정은 전혀 화내지 않았다.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 말은, 난 아직도 귀족이라는 뜻이야.”“서울 구씨 집안보다도, 남성 부씨 집안보다도 더 잘나가는 귀족이라고.”그녀의 말에 유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그니까 네 신분이 우리 집보다, 구씨 삼촌보다 더 높다는 거잖아? 너희 집안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집안이라는 거지? 김씨네 집안. 맞지?”김미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그러니까 꼬맹아, 나한테는 꼭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말해야 해. 너네 할아버지 할머니도 우리 아버지랑 내 앞에서는 공손하게 예의를 차리거든.”김미정의 말에 유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너한테 예의를 차린다고? 그렇게 고귀하신 분이 왜 우리 엄마 자리를 넘보는 건데? 우리 아빠한테 꼬리 칠 생각이나 하고! 김미정! 명심해! 우리 아빠 이미 결혼했어. 우리 엄마가 바로 우리 아빠 와이프고.”“그렇게 고귀하신 분이 우리 아빠 첩이나 하려고?”유리의 여자를 무섭게 쏘아붙였다.여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너! 신유리!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김미정은 호통을 쳤다. “내가 언제 너네 아빠한테 꼬리 치러 왔다고 말한 적 있어? 너네 아빠 첩이나 하러 왔다고 말한 적 있어? 자꾸 첩이라느니, 꼬리 친다느니 그런 말 하지 마!”말을 끝낸 후, 김미정은 고개를 돌려 진문옥을 쳐다보았다. 진문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모님…”진문옥은 줄곧 두 눈으로 부소경을 쳐다보았다.부소경은 들어올 때부터 진문옥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한이 느껴질 정도였다.진문옥도 부소경과 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녀는 그들의 표정을 읽어보고 싶었다. 부소경과 유리가 자기를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고 싶었다.결국 그녀는 심장이 차갑게 식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고, 김미정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도 미처 듣지 못했다.“사모님.” 김미정은 또 한 번 그녀를 불렀다.진문옥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
진문옥을 개라고 하는 부소경의 말을 듣자 유리는 터지는 웃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유리는 입을 막으며 웃었다, “아빠, 지금 할머니를 개라고 한 거야? 할머니가 얼마나 늙었는데. 분명 담도 뛰어넘지 못할 거야.”유리는 어린 아이였다.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말들의 숨은 뜻을 알지 못했다. 그저 표면적으로 이해할 뿐이었다.부소경은 유리에게 침착하게 설명했다. “개도 급하면 담을 뛰어넘는다는 말은, 할머니가 이미 우리가 자기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고 있어서 그에 대응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야.”그 말에 유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아빠! 내가 아빠랑 같이 그 마귀할멈이랑 싸워줄게!”“유리 무서워?” 부소경은 딸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의 마음은 조금 씁쓸했다.현재, 부소경은 남성의 왕이었다. 부씨 집안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그를 무서워했고, 그에게 예의를 표했다. 남성 바닥에서 감히 그에게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부씨 집안 사람들이 던진 각종 계략과 마주해야 했다.아버지.큰어머니.그리고 자신의 쌍둥이 동생까지.얼마나 씁쓸한 일인가?그들은 그의 아내를 납치하기까지 했다.게다가 이 일은 다른 사람들이 도울 수 없는 일이었다.지금도, 부씨 집안 어르신의 장례식에서도, 그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그의 6살 난 딸아이뿐이었다.부소경은 가장 빠른 속도로 아내를 구출해 낼 생각이다.그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 내야만 했다.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딸을 쳐다보았다.신유리는 근엄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빠! 나 하나도 안 무서워!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거야!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유리가 나쁜 사람들한테 잡힌다고 해도! 아빠, 유리가 도망칠 방법은 아주 많아!”며칠 전 신유리가 반호영의 손아귀에서 도망쳐 나온 게 가장 좋은 예시였다.부소경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빠랑 같이 연극 하나만 하자. 어때? 관심있어?”“엄마를 구해낼 수 있는 연극이야?”
김미정은 달랐다. 김미정은 김은국 자식 중 가장 막내였다.김미정도 자신의 오빠, 언니들처럼 어린 나이에 해외로 유학을 갔다. 하지만 늦둥이라는 이유로 김은국은 김미정을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키웠고, 해외 생활이 잘 적응이 되지 않았던 그녀는 뻑하면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그 이유로 그녀의 학업은 항상 뒷전이었다.이 상황은 대학교까지 지속되었다. 성적이 나빴던 그녀는 지잡대 밖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나중에 졸업한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취직도 안하고 해외에서 놀기만 했다.김씨 집안이 손꼽히는 귀족인 게 참 다행이었다. 덕분에 김미정은 평생 일을 안한다고 해도 부잣집 공주님의 생활 습관을 유지하며 살수 있었다. 그녀는 해외에서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다.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해외의 진정한 가문들은 성에 차지 않아 했다.김미정은 귀국을 했고, 그녀의 성에 차는 집안들이 몇 개 있었다. 첫 번째는 서울의 구씨 집안이었다.구경민과 그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꽤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하지만 구경민은 어릴 때부터 최여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최여진과 같은 남자를 두고 싸우다니… 김미정은 자신이 없었다.나중에 김씨 집안 사람들은 김미정을 부씨 집안과 엮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씨 집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김미정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았다.서씨 집안은 김미정의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서씨 집안이 부씨 집안보다 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사실 김미정이 가장 원하던 집안은 부씨 집안이었다.권력도 있고, 재력도 있고, 세력도 있었다.하지만 부씨 집안에는 그녀와 결혼할 만한 남자가 없었다.나중에 김미정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출국을 했고, 그렇게 몇 년을 떠돌았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는데도 그녀는 아직까지도 적당한 남자를 찾지 못했다.그리고 하필 이번 귀국에 최여진을 만나게 됐다.김미정은 하마터면 최여진을 몰라볼 뻔했다.그녀의 기억 속에 최여진은 상류층이라고는 말하기 힘든 신분의
진문옥은 차갑게 웃었다. “왜? 안돼?”“…”아버지 장례식만 아니었어도… 부성웅은 정말이지 이 미친 할망구를 죽여버리고 싶었다!다 진문옥 때문이다!진문옥의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그는 악독한 눈빛으로 진문옥을 노려보았다. 그는 옆에 최여진이 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아챘다. “양 아빠.” 최여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부성웅을 불렀다.“여진아!” 부성웅은 이 상황이 귀찮은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넌 여기서 손님 맞이할 자격 없어! 당장 네 방으로 돌아가!”“알았어, 양 아빠.”최여진은 화를 내며 방으로 돌아갔다.진문옥과 부성웅 두 사람만이 문 앞에 남아있었다.아직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의 조문객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마침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부성웅은 거침없이 진문옥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미친 할망구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제는 유리도 날 인정해 주질 않잖아!”“지금 유리한테는 친할아버지에 대한 미움만 남아있을 뿐이야!”부성웅은 약이 바싹 올랐는지 악독한 눈빛으로 진문옥을 쳐다보았다.다들 젊은 날의 부부는 노년의 동반자라고 하던데…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면 이제는 노부부나 다름이 없는데… 이제는 서로 챙겨줘야 할 때이다.하지만 부성웅은 어떨까?부성웅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하지만 마음 아프게도 그는 자신의 삶이 이 미친 할망구의 손에 망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부성웅도 예전에는 하늘을 군림하던 남자였다.50년 전만 해도 F그룹은 지금처럼 잘나가지 않았다.심지어 한동안은 부태성의 경영 실수 때문에 그룹이 망할 뻔하기까지 했었다.하지만, 부성웅이 회사를 이어받은 후부터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멱살 잡고 회사를 다시 끌어올렸다.그해 F그룹은 이미 남성에서 꽤 위협한 존재로 거듭났다.하지만 이 여자가!이 진문옥이라는 여자가 자신의 여장부 같은 성격을 보여주겠다면서 그에게 가성섬 사업을 시작하라고 부추겼다.결국 3년 동안 아무 이득도 보지 못했으며, 부성웅이 힘들게 일으켜 세운 F그
이게 끝이 아니었다!지금 그에게 남은 두 아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쌍둥이면서, 같은 뱃속에서 나왔으면서… 그들은 진문옥의 이간질 때문에 앙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부성웅이 어떻게 진문옥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아픈 일들이 떠오르자 부성웅은 그만 참지 못하고 험악하게 진문옥의 뺨을 내리쳤다. “못된 년! 왜 네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건데! 넌 그냥 나가 죽어야 해!”그의 행동에 진문옥은 순식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나 때린 거야?”부성웅의 눈동자는 여전히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때렸다! 왜!”“감히 아버님 장례식장에서, 그것도 손님 맞이하는 자리에서 대놓고 날 때려?” 진문옥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부성웅! 감히 날 괴롭혀?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지? 기댈 친정도 없고, 내 편 들어 줄 아들도 없다고 무시하는 거지? 그래서 이제는 너까지 날 괴롭히려는 거지?”“내가 그동안 이 집안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내 아들 목숨까지 여기에 바쳤어!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재산도 다 너랑 네 첩년 아들한테 줬다고!”“그 결과 이거야? 감히 네가 날 때려?” 말을 하면 할수록 진문옥은 점점 더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더 서글퍼졌다.감정이 격해질수록 점점 더 많은 일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부성웅! 여자들이랑 놀아난 건 너야! 그때 내가 먼저 하숙민을 꼬시라고 한 건 맞아! 하지만 나도 방법이 없었어! 궁지에 몰렸다고! 다른 방법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내 남편을 다른 여자한테 보냈겠어?”“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나한테, 적어도 우리 자식들한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었다면 이렇게 됐을까? 하숙민이 임신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을까?”“당신이 좋다고 즐기다가 피임 못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래서 우리 아들들이 죽는 일이 일어난 거야! 그래서 나 같은 외로운 할망구가 생긴 거라고! 당신도 똑같아! 당신 아들이 당신한테 존경심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을 것 같아?”“부소경이 당신을 아버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