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리는 눈썰미가 꽤 좋은 편이었다.서시언은 정신이 없는 상태였기에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는데 신유리는 날카롭게 그 눈빛을 캐치해 냈다.악랄하고 독기가 가득 서린 눈빛이었다.놀란 신유리가 움찔 몸을 떨었다.“유리 왜 그래?”뭔가 이상함을 느낀 서시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신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뭘 잘못 봤나 봐. 착각인가?”그 눈빛은 스쳐가는 듯이 사라져서 신유리가 다시 자세히 보려고 했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착각?”서시언은 피식 웃었다.“고작 여섯 살 주제에 아는 것도 많아!”신유리는 씩씩거리며 서시언을 흘겼다.“흥! 나도 알 건 다 알 거든?”아이는 자신을 너무 어린애로만 대하는 삼촌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분명 이제 여섯 살이고 내년이면 학교도 들어가는데!요즘 가족들이 바쁘게 지내면서 일손이 부족하니 아이는 숙모에게 간단한 아침이라도 해줄까 고민하고 있었다.신유리는 자신이 아주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으스댔지만 서시언 눈에는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그는 요즘 성유미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조카에게 신경 쓸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게 서시언은 조금 미안했다. 신유리를 집으로 데려간 서시언은 정색하며 말했다.“오늘 숙제 내줄 건데 영어 단어 각 세 번씩 써! 두 시간 뒤에 네가 잘 썼나 게으름 부렸나 검사할 거야! 게으름 부리면 알지?”“알았어! 삼촌 나빠!”신유리는 입이 뿌루퉁해서 소리쳤다.하지만 아이는 삼촌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서시언은 평소에는 아이의 말을 무조건 들어주는 편이지만 학업에 관해서는 아주 엄격했다.이제 고작 여섯 살인데….서시언이 돌아간 뒤, 신유리는 얌전하게 거실에서 숙제를 시작했다.서시언이 남긴 숙제를 완성한 뒤, 아이는 삼촌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서시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분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다들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신유리는 다 완성한 숙제를 삼촌에게 보여준 뒤, 시무룩한 얼굴로
“응!”신유리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침대에 누운 아이는 많이 흥분했는지 잠이 오지 않았다.“엄마, 윤희 이모는 아기 낳았어?”“아직.”“아기가 왜 아직도 안 나와?”신세희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설마 경민 삼촌 기다려서 낳으려고 참고 있는 거 아니야? 지금 애기 낳으면 경민 삼촌은 애기 낳을 때 어땠는지 상황을 전혀 모르잖아. 사실 아기 낳는 거 엄청 힘든 거지?”신세희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눈물이 눈시울을 적셨다.정말 어린 나이에 아이는 벌써 엄마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 것 같았다.그녀가 신유리를 낳을 때는 아이 아빠가 옆에 없는 건 물론이고 혹시라도 누가 쫓아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선다.“윤희 이모는 강하니까 경민 삼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낳으려나 봐. 그래야 아기 낳는 게 얼마나 힘든지 경민 삼촌도 알지.”“그럼 경민 삼촌은 언제 와?”아이는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더니 말했다.“윤희 이모가 너무 오래 기다리는 건 싫어. 너무 아프잖아.”신세희가 말했다.“내일 아침에 도착할 것 같아. 유리가 자고 깨면 경민 삼촌은 병원에 도착해 있을 거야.”“정말?”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정말이야.”“정말 잘됐네.”아이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웃었다.“이제 자자.”신세희는 부드럽게 아이를 달랬다.“응.”신유리는 작은 손을 엄마의 부푼 배에 올려놓고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잠에 들었다.하지만 신세희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병실에 혼자 있는 성유미도 걱정되고 고윤희의 상황도 걱정되었다.아직 서시언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그렇다는 건 아직 아이가 나오지 않을 터.구경민은 언제면 남성에 도착할까?하필이면 그가 잠시 남성을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신세희는 제발 고윤희 모녀가 무사하기를 속으로 기도했다.그녀가 거실에서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움찔하며
신세희도 이제 임신 7개월차를 넘어서고 있었다.부소경은 그녀의 건강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자신은 냉수욕을 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 쉽게 그녀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그런데 신세희는 요즘 따라 감수성이 풍부해졌는지 계속 몸을 밀착하고 애교를 부리는 행동이 많아졌다. 정말 힘들 때는 부소경도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어주었다.이번에도 신세희가 먼저 그를 도발했다.그런데 오늘은 평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신세희의 얼굴을 만지다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왜 그래?”그의 아내는 누구보다 강하고 침착한 여자였기에 평소에는 거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요즘 임신하고 조금 감수성이 풍부해지기는 했지만.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기분이 안 좋아?”신세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윤희 언니 분만실 들어갔어요.”“알아. 집에 오기 전에 병원에 한번 갔었어. 선희 씨랑 정아 씨도 다 거기 있어. 의사 만나봤는데 첫 출산이고 노산이라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대. 거기 최고의 의료진들이 대기하고 있잖아. 아무 일 없을 거야.”처음에 부소경은 신세희가 고윤희를 걱정해서 기분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신세희는 위로를 받으면서도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구슬픈 눈으로 부소경을 바라보며 물었다.“나 왜 이러는 걸까요? 기뻐해야 맞는 건데… 기분이 이상해요. 오빠도 평생 의지할 사람을 만났고 아이도 생겼는데 기뻐해야 맞잖아요. 그리고 선희 씨랑 정아 씨도 약혼했고. 외할아버지처럼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도 선희 씨를 받아줬고 정아 씨 같은 경우도 그 댁 어른들이 반대가 심할 줄 알았는데 어쨌든 약혼까지 했잖아요.”“그리고 윤희 언니도요. 그렇게 힘든 일을 겪고 드디어 출산까지 왔는데 분명 기뻐해야 하는데… 사실 나 어릴 때부터 친구도 별로 없었잖아요. 최근에 시언 오빠를 만나고 선희 씨, 정아 씨, 윤희 언니, 그리고 유미언니까지 정말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생긴 것 같아요.
그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면 구석에 가서 손 들고 벌서고 있을까?”신세희는 그제야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남편의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그런 건 싫어요. 당신도 일하느라 피곤했을 테니까. 그런 거 말고….”그녀는 남자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당신 이제 7개월 넘었어. 이러면 안 돼.”남자가 말했다.“싫어요! 하고 싶어요!”부소경은 자제력이 굉장히 강한 편이었다. 다른 남자였다면 지금쯤 분명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임신한 여자에게서는 오히려 더 진한 여성스러운 매력이 풍겼다. 평소에 애교도 잘 부리지 않던 그녀가 어린애처럼 그에게 애교를 부릴 때는 정말 자제력이 다 날아가는 순간이었다.남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얌전히 있어!”“싫어요!”그녀가 눈시울을 촉촉하게 붉히며 대꾸했다.남자는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그럼 조금만… 갈증 가시는 정도만 어때?”신세희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그의 가슴에 파묻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그녀의 상체를 편하게 고정시킨 뒤,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부드럽게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다. 부소경에게는 오히려 고문인 시간이었다.하지만 그녀가 만족하고 여기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한 시간 정도 지난 뒤, 여자는 드디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잠에 들었다.옷가지는 바닥에 여기저기 널브러졌고 이불도 구깃구깃한 상태로 옆에 버려져 있었는데 퉁퉁하게 부은 그녀의 발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남자는 깊게 잠든 임산부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의 하얀 발을 손으로 잡았다.여자는 순간 움찔하더니 잠꼬대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소경 씨….”“그래.”남자가 대답했다.“사랑해요.”부소경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그녀는 여전히 비몽사몽한 상태로 중얼거리고 있었다.“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당신을 짝사랑했죠.”“그런데 자신이 없었어
부소경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당연히 진짜지. 난 당신 남편이고 우린 가장 가까운 가족이야. 이번에 출산할 때는 꼭 옆을 지켜줄게.”신세희는 그의 품을 파고들며 감개무량해서 말했다.“나 정말 행복한 것 같아요.”“어서 자.”남자는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이번에 신세희는 시름 놓고 잠에 들었다.남자도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부소경은 아침 다섯 시에 기상했다.회사에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서씨 그룹, 그리고 구경민의 업무들.어제 신세희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부소경은 자신도 빨리 업무 처리하고 출산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그래야 예정일에 맞춰 휴가를 내고 24시간 아내의 곁을 지킬 수 있었다.그는 6시 정각에 집에서 출발해서 바로 공항으로 갔다.구경민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구경민은 길에서 그에게 업무 사항을 인계했다.“부탁 좀 할게, 소경아.”구경민은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부소경인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구경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세희 씨도 곧 출산 임박인데 네 일만 처리하려 해도 엄청 바쁘잖아.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은 마땅히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변방이랑 국가안보에 관련된 일이라 너 말고 해줄 사람도 없고.”부소경은 친구의 어깨를 다독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참, 소경아.”구경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변방 쪽에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 좀 이상하지 않아?”부소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왜?”“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계속 소란이 있던 지역이었는데 요즘은 너무 조용해. 좀 이상하지 않아?”부소경은 잠시 생각하다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거기 어딘지 알아. 우리 부모님이 거금을 주고 반호영을 위해 구매한 섬이 동쪽에 있잖아. 가성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원래는 정말 가난한 시골 섬이었다고 들었어.”부소경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엄마가
“빨리 가자!”구경민이 재촉했다.한 시간 뒤, 그들을 태운 차는 병원에 도착했다.두 남자는 급히 산부인과로 뛰어갔다. 분만실 밖에 엄선희와 민정아, 구서준, 서시언이 복도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부소경과 구경민은 그들을 깨워 밥 먹으러 가라고 보냈다. 구경민을 본 네 사람은 안심하고 자리를 떠났다.분만실에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구경민이 밖에서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의사가 다급히 안에서 나왔다.의사는 그들에게 다가와서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보호자가 누굽니까?”“제가 남편입니다.”구경민이 말했다.의사는 다급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산모 상태가 안 좋습니다. 노산이고 첫 출산이라 골반이 좀 좁아요. 난산입니다. 밤새 산모도 많이 지친 상태고요.”구경민은 긴장한 얼굴로 의사를 쳐다보았다.의사가 한숨을 쉬며 본론을 꺼냈다.“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꼭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산모를 살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이를 선택하시겠습니까?”구경민이 인상을 찌푸렸다.“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그러니까 아이와 산모 중에 누굴 선택하시겠냐고요?”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의사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둘 다 살려야죠!”의사는 한숨을 쉬며 말을 잇지 못했다.“아이… 아이부터 살려주세요. 제 아이는 살아야 해요.”분만실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그 말을 들은 구경민은 눈시울이 확 붉어졌다.그는 만류하는 의사와 간호사를 제치고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고윤희는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원래도 살이 없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배를 제외하고 모든 곳이 말랐다.“경민 씨… 아이부터 살려야 해.”고윤희가 힘없이 말했다.“안 돼!”구경민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애는 없어도 돼! 난 내 마누라부터 살려야겠어! 나한테는 마누라가 더 소중하니까!”현장에 있던 의료진들은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옆에 있던 간호사들은 뒤돌아서 눈물을 훔쳤다.그들은 평생 살면서 이런 남편을 만날 수 있다면 그 남자를 위해 죽어도 좋다
아이는 힘차게 울어댔다.구경민은 순간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의 아이였다.30년 넘게 살면서 처음 가지게 된 아이.드디어 무사히 태어났다!엄마인 고윤희가 사력을 다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아이였다.구경민은 아이를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의사가 안고 가서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아들인지 딸인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고윤희만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지쳐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그녀에게 네 명의 의사가 달라붙었다.그들은 서둘러 응급조치를 준비했다.아무도 구경민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구경민은 아이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고윤희의 옆을 지켰다.“윤희야, 괜찮을 거야! 피를 많이 흘렸지만 내 피를 줄게! 다 줄 수 있어! 그러니까 살아줘! 꼭 살아줘!”고윤희는 힘없이 그의 말에 대답했다.“난 살 거야. 꼭 살아낼 거야. 아이까지 낳았으니 이제 내 가족이 생겼어. 나도 아이 엄마니까 강하게 살아남을 거야.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지.”“내 아이는? 아들이야? 딸이야?”힘없지만 그녀의 조급한 목소리가 분만실을 울렸다.그녀는 지쳐 잠들 때까지 아이만 찾아댔다.“윤희야….”구경민은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고 속삭였다.“꼭 강하게 살아남아야 해.”“선생님, 우리 와이프 좀 살려주세요! 내 모든 걸 드릴 테니 제발 살려만 주세요!”구경민은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포효했다.의사들은 아무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그들은 신속하게 지혈 조치를 취하고 약물을 투여했다.모두가 고윤희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 드디어 피가 멈추었다.기적이었다.한 시간 뒤, 고윤희는 천천히 의식을 되찾았다.제대로 눈뜰 힘조차 없었지만 그녀는 살아남았다.의사들도 기적이라고 했다.하지만 세상에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난다.고윤희는 힘없이 축 늘어진 목소리로 구경민을 찾았다.“경민 씨… 나 괜찮아. 애기 좀 봐줘.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해. 어서 가서 애기 얼굴 보고 나한테 알려줘.”“그
힘없는 미소였다.이때, 의사가 그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구 대표님, 사모님은 지금 기력을 다 소진한 상태라 입원치료를 하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앞으로 다른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어요.”“입원해야지! 일단 몸부터 추스르는 게 우선이죠!”“네, 대표님.”“그럼 우리 와이프는 이제 무사한 거죠?”구경민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의사가 웃으며 말했다.“기적이죠.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는데 사모님의 생존 의지가 강하셔서 살아남은 겁니다. 피가 멈추지 않을 때는 정말 아찔했어요. 이제 괜찮아요. 그런데 워낙 허약한 체질이라 안정이 필요합니다.”구경민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모든 절차가 끝나고 산모와 아이가 입원실로 내려왔을 때는 벌써 오후가 지난 시점이었다.그들이 입원실로 내려오자 분만실 밖을 지켰던 친우들이 그들을 반겨주었다.정문재와 장진혁은 내일 온다고 연락이 왔다.맨 앞에 선 신유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구경민에게 말했다.“경민 삼촌, 남동생이야, 아니면 여동생이야?”구경민이 대답을 하기 전에 뒤에 있던 민정아가 입을 열었다.“저기… 삼촌… 저랑… 서준 씨도 동생이라고 해야 하나요?”옆에 있던 구서준도 웃으며 말했다.“이제 저도 형이나 오빠가 되는 건가요? 정아 씨는 형수님이나 형님이 되겠네요?”“그게 뭐예요!”엄선희는 구서준의 어깨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그 나이에 형이라니! 저는 이모가 되겟네요? 그리고 준명 씨는 삼촌이 되는 거고요!”“그럼 정아 씨나 서준 씨는 나랑 준명 씨를 부를 때 삼촌이나 숙모로 불러야 하는 거예요?”신유리도 고개를 들고 민정아, 구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네. 그럼 유리도 서준 오빠, 정아 언니라고 불러야 해?”구서준 커플은 순식간에 할 말을 잃었다.이때 옆에 있던 서진희가 입을 열었다.“여기서 말장난 하지 말고 윤희도 애 낳느라 그 고생을 했으니 쉬어야 할 거야. 좀 조용히 하자.”말을 마친 그녀는 한가득 채워온 가방을 구경민에게 건넸다.“경민아, 이건 내가 만든 호박죽이랑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