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그리고 사람 아껴줄 줄도 아는 것 같아.”서시언의 목소리가 계속 성유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유미야….”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였다.두 사람은 오늘 오전까지 자신들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도 잊고 서로의 온기를 마음껏 느꼈다.서시언은 이 순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갈증을 느꼈다.그는 손을 들어 탈의실 문을 잠궜다. 눈앞의 여자가 너무 아름다웠다. 그가 항상 찾던 그런 여자였다.“유미야, 혹시 두려워?”그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성유미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시언아, 난 좀 두려워. 밖에 사람도 있는데….”“걱정하지 마. 나 믿고 나한테 맡겨.”남자가 부드럽게 말했다.“그래.”성유미는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볼 것 같아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자신의 모든 걸 서시언에게 주고 싶었다.어차피 자주 볼 사람들도 아니라고 생각하니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그렇게 비좁은 VIP 탈의실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둘 다 만족스러운 결합이었다.그는 그녀를 안고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유미야, 내가… 비록 불임이지만 아직 자기한테 즐거움을 줄 수는 있어. 내 여자 만족시켜줄 수 있다고! 나… 괜찮았어?”“그래, 시언아. 넌 최고였어. 넌 진짜 남자야!”성유미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일을 마치고 보니 그녀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서시언의 품에서 고개를 들려 하지 않았다.“우리… 이제 어떻게 나가?”성유미는 난장판이 된 탈의실을 보며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시언이 웃으며 말했다.“40대가 됐으면 부끄러움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쑥스러워하는 성유미의 모습은 마치 어린 소녀 같았다.서시언은 성유미에게 옷을 입혀주고 자신의 옷매무새도 점검했다.옷을 다 입은 뒤, 성유미는 탈의실을 깔끔하게 치웠다.두 사람이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탈의실은 아까 들어왔을 때와 똑같이 정돈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보고 수군거리지 않았다.“대표님, 사모님, 조심히 들어가세
그 말을 들은 신세희 모녀는 동시에 얼어붙었다.“오빠….”신세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시언을 바라보았다.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였다.신유리는 기쁜 얼굴로 삼촌을 한참 바라보다가 웃으며 물었다.“삼촌, 사실이야?”서시언이 말했다.“당연하지! 이제 네가 좋아하는 유미 이모가 네 숙모가 되었어.”“삼촌, 설마… 나 때문에 숙모랑 결혼하기로 결심한 거야?”신유리의 입에서 숙모라는 호칭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사실 속으로는 몇 번이나 불러봤던 호칭이었다.서시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 내가 우리 유리를 위해서 숙모랑 결혼했어! 네가 이겼어, 녀석!”옆에 있던 성유미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유리야, 네 삼촌은 네가 제일 소중하대.”신유리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신세희의 생각은 신유리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서시언을 바라보며 물었다.“오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난….”그녀는 성유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유미 씨, 죄송해요. 유미 씨한테 편견을 가진 건 아니에요. 저는 유미 씨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결혼은 장난이 아니지 않나요? 두 사람 나이도 있는데… 게다가 우리 오빠는….”“알아, 세희야.”서시언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신세희를 바라보았다. 신세희가 뭘 걱정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세희야, 오빠 지쳤어. 마음이 너무 지쳤어.”“사실 7년 전부터 지쳤던 것 같아. 그때는 매일 의찬이랑 여자 만나기에 바빴지. 참 쓰레기 같았어. 나중에 너를 만나고 네가 어떻게 진흙탕에서 발버둥치면서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지 봤거든. 그리고 네가 목숨을 내걸고 소경이를 구하던 순간도 봤어.”“그때부터 난 사실 괴로웠어. 남성에서 도망칠 때 오히려 홀가분했던 것 같아. 난 7년 동안 네 도움을 받으며 구원을 받았어. 다시 되돌아왔을 때 느꼈어. 난 정상적인 연애는 할 수 없겠구나 하고 말이야.”“가희는 나한테 너무 순결하고 고귀한 꽃 같은
“그래, 세희야.”“네, 언니! 결혼식은 언제 올려요?”신세희의 질문에 성유미는 얼굴만 붉혔다.결혼식?사실 참 기대됐다.40년이나 살면서 아이도 낳고 그 아이가 이제 연애할 나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결혼식을 올린 적 없고 웨딩드레스도 입어보지 못했다.하지만 이 나이에 그런 걸 따져도 되는 걸까?결혼식이 꼭 필요할까?딸이 벌써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그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결혼식은 생략하고 싶네요.”“그건 아니죠, 언니.”신세희가 말했다.“언니, 사실 저도… 결혼식을 못 올렸어요. 계속 올리려고 계획은 하고 있는데 사건이 계속 터져서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이제 임신까지 해서 둘째를 낳아야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서 그 전에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어요.”신세희는 서시언에게 물었다.“오빠, 결혼식은 어디서 할 거야?”“그건….”아직 결정된 건 하나도 없었다.아직 알려야 할 사람도 많았다. 부모님에게도 허락을 받아야 했다.“결혼식은 우리가 준비해 줄게.”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린 신세희는 퇴근하고 들어오는 부소경을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서시언이 갑자기 성유미와 결혼한 것에 대해 전혀 의아해하지 않았다.솔직히 속으로는 그들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애를 낳았던 과거도 마찬가지였다.인성만 좋으면 그게 전부였다.둘 다 천신만고를 겪은 사람들이었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온기를 나눠주며 평생 의지하고 살겠다는데 더 문제될 게 뭐가 있을까?아주 완벽한 조합이고 분명 행복할 것이다!그래서 부소경은 두 사람에게 성대한 결혼식을 선물하려고 마음먹었다.비록 많은 걸 겪고 여기까지 온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에게도 결혼식은 처음이었다.결혼식은 2주 뒤의 주말에 올리기로 했다.신세희는 임신 6개월, 고윤희는 임신 8개월에 접어들었다.출산이 임박한 두 임산부가 결혼식 현장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고 있었다.그 모습조차 새롭고 따뜻해 보였다.그리고 민정아와 엄
서시언의 앞에 선 이 여자는 단아하고 우아한 기품이 흘러 넘쳤으며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성숙하고 섹시한 매력이 느껴졌지만 40세 여자 같지는 않았고 정확히 말하면 금방 20살의 풋풋함을 벗어난 차분하고 부드러운 아름다움이었다.우수에 찬 두 눈은 온화하면서도 강인한 느낌을 주었다. 디자이너는 그녀가 가진 이미지에 꼭 어울리는 심플하면서도 땅에 끌리는 화려한 롱드레스를 제작했다.하얗고 긴 드레스가 신부의 우아함과 온화한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드레스는 화려한 보석을 하나도 박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순수하고 심플한 느낌을 주었다.드레스 최상단의 가슴 골 부분에만 푸른색 다이아로 포인트를 주었다.이 드레스는 신세희가 유명 디자이너 친구에게 부탁해서 밤새 고심하고 디자인했으며 친구가 직접 재단하고 제작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드레스였다. 신세희는 임신 때문에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대신 부소경이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했다.이 일로 최근 F그룹의 크고 작은 업무는 비서실장이 대신 처리했다.신세희와 서시언은 사실 상 피를 나눈 남매는 아니었다.신세희는 자신이 도망다닐 때 만약 서시언이 없었더라면 신세희 모녀는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서시언은 신세희와 신유리의 생명의 은인이었고 정신적인 지주였다.부소경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서시언을 친동생처럼 아끼고 있었다.서시언의 결혼식은 전부 부소경이 직접 섭외하고 진행했다.이렇게 드넓은 정원에서 야외 결혼식을 올린다는 건 일반인은 물론이고 아무리 부소경일지라도 장소 섭외가 만만치 않았다.그러니 서시언과 성유미에게는 큰 영광이었다.성유미를 본 서시언은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이 사람이 정말 내 아내이자 내 신부인가?서시언보다 나이는 여덟 살 많기에 이 정도로 예쁘고 눈부실 거라 예상하지도 못했다. 그는 단순하게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려고 성유미를 선택한 것뿐이었다.최근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이 그와 그녀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두 사람은 마치
신세희와 고윤희는 불룩한 배를 손으로 감싸면서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그렇게 뒤돌아서는데 멀리서 서시언과 성유미가 키스하는 모습이 보였다.고윤희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부러운 말투로 신세희에게 말했다.“세희 씨, 시언 씨랑 언니는 참 행복해 보이네요. 우린 6년 7년을 고생해도 아직 결혼식도 못 올렸는데 말이죠.”“오빠도 많은 걸 겪었어요. 다리를 다쳤어서 불임 판정까지 받았죠. 하지만 행운아기도 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까요. 서로 안쓰럽게 생각하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사람이니까요.”“정말 좋네요.”“오빠랑 언니의 결혼식을 보고 있자니 내가 이 결혼식의 신부가 된 기분이에요.”“나도 그렇게 생각되네요.”고윤희도 웃으며 말했다.“그냥 우리 결혼식이라고 생각하고 즐기죠.”두 임산부가 환하게 웃는 모습조차 이 성대한 결혼식의 피날레처럼 느껴졌다.이곳에 온 하객들은 서시언의 상황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리에 모여앉아 각자의 소감을 말했다.“좋은 징조네요. 결혼식장에 임산부가 두 명이나 있잖아요. 오늘 신랑신부도 곧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네요.”“당연하죠! 서시언 대표는 나이도 어리고 한창 때인데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생길 수도 있죠.”“이따가 미리 축하해 줘야겠어요. 그리고 좋은 기운도 받아가고.”“당연하죠.”“신부가 참 예쁘네요.”“그런데 못 보던 얼굴인데 누구일까요?”“남성이 넓기도 하니까 모든 사람의 얼굴을 알 수는 없죠.”“서시언 대표가 많이 변한 것 같네요. 지금은 아주 침착하고 성숙해졌어요. 20대 때랑은 정말 다르네요.”“동생이 신세희 씨잖아요. 세희 씨랑 가깝게 지낸 사람들은 예전에 그 조의찬 씨도 지금은 아주 책임감 있게 변했어요.”이때, 조의찬과 반명선 두 사람도 키스를 나누는 서시언과 신부를 발견했다.줄곧 침착함을 유지하던 조의찬은 반명선의 손을 잡고 그들에게 다가갔다.반명선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의찬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둘만의
모두가 신랑과 신부에게만 정신이 팔려 아무도 그 사람을 보지 못했다.최가희는 입구에서 그들을 빤히 바라보았다.자신의 엄마가 이렇게 예쁠 거라 생각지 못했다.그녀가 성인이 된 뒤로 엄마가 매번 찾아올 때마다 최가희는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동원해서 엄마를 비난했다.그래서 매번 봤던 엄마의 얼굴은 우울하고 고독해 보였다.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최가희는 항상 허름한 복장을 입은 엄마의 모습이 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엄마가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에게 엄마는 항상 죄인이었고 행복을 가질 자격도, 제대로 옷을 갖춰 입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다.최가희가 기억하는 엄마는 그녀가 아무리 욕하고 모욕해도 항상 애틋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그게 엄마도 자기 죄를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어린 나이에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의 죄책감이라고 생각했다.엄마는 남편도 있으면서 외간남자를 만나다가 아빠한테 발각되었다.최가희는 불륜녀는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서 항상 엄마를 죽으라고 저주했는데 엄마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오늘 본 엄마의 모습은 예쁘고 자신감 넘쳤으며 우아한 기품이 흘렀다. 최가희는 지금 저 사람이 자신의 엄마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그리고 그 남자.그는 여전히 성숙하고 묵직한 모습이었고 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존귀해 보였다.그는 엄마한테 모든 걸 다해 줄 것 같았다.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다니.남성에 사는 여자 재벌도 이 정도 규모의 결혼식을 올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리고 엄마가 입고 있는 저 웨딩드레스.아마 어림 짐작해도 몇 억은 넘을 것이다.최가희는 아픔과 증오가 뒤섞여 속이 혼란스러웠다.이 순간 그녀는 죽고만 싶었고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의 목을 물어뜯고 싶었다!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뻔뻔한 엄마가 있을까? 그녀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이기적일까?그녀는 유령처럼 스적스적 안 쪽으로 걸어갔다.한편, 서시
“처음부터 숙모 보고 이 사람이다 싶었어! 그래서 삼촌한테 그 여자랑 헤어지고 숙모랑 만나야 한다고 얘기했지!”“그걸 삼촌이 받아들였다고?”누군가가 물었다.“당연하지!”신유리는 매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우리 삼촌은 세상에서 최고니까 숙모도 당연히 최고여야지!”아이는 오늘 한껏 들떴다.“공주님, 그럼 삼촌이랑 숙모처럼 어울리는 한쌍이 나올 수 있었던 건 다 우리 공주님 덕분이겠네?”“대단하네, 우리 공주님!”“공주님 대단해!”이때, 서시언과 성유미가 같이 아이를 품에 안고 들어올렸다.아이도 환하게 웃었다.식장 밖에서 누군가가 고배율 망원경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신유리를 보자 눈시울을 붉혔다.그리고 식장 안, 최가희가 한발 한발 엄마에게 다가가고 있었다.그녀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서시언과 성유미가 안고 있는 저 여자애는 F그룹의 대표 부소경과 신세희의 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서시언에게 여자친구인 자신과 헤어지라고 대놓고 말한 아이였다.최가희는 냉소를 머금었다.서시언은 내 거야!내 거라고!어느 엄마가 딸 남자친구를 가로채?아무리 딸이 버린 남자라고 해도 그렇지!그녀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그런데 옆에서 누군가가 최가희를 불러세웠다.“가희야! 너야?”최가희가 고개를 돌리자 어디서 봤는지 얼굴이 꽤 익숙한 노인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가희야, 거기 서!”노인이 성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최가희는 짜증스럽게 물었다.“누구신데요?”“너 어릴 때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었어. 그때 내가 사탕도 줬는데! 우리 집이랑 너희 집은 꽤 가까웠거든! 너희 엄마가 우리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했었어!”노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최가희는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지금 네 엄마의 결혼식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거야?”최가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왜요? 당신도 그 여자랑 잤어요?”“이런 미친!”노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
최가희는 저도 모르게 반박했다.“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 여자가 왜 불쌍해요?”그녀는 속으로 혹시 잘못 기억하고 계신 거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분명 아빠가 더 불쌍한데, 남자 혼자 딸을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하지만 최가희가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밖에서 장기를 두던 한 노인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너 유미 딸이구나! 네 엄마 불쌍하다고! 정말 팔자가 지지리도 안 좋은 애였어! 네 아빠 같은 인간을 만나서 고생을 너무 했지!”“그리고 너! 난 너 같은 애도 처음 봐! 자기 엄마를 그렇게 욕하다니!”소문은 이미 고향까지 퍼진 모양이었다.“아가, 너도 나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건데 그러면 안 돼!”최가희는 엄마의 결혼식장에서 당했던 것보다 더 큰 수치심을 느꼈다.그녀는 그냥 돌아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20대인 그녀는 자존심도 강하고 참을성이 없는 나이였다.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아빠가 뭘 잘못했는데요? 우리 아빠 홀로 저를 키워냈어요! 혼자 엄마 역할까지 다 했다고요! 우리 아빠는 잘못이 없어요!”“그 여자가 나가서 남자를 만나고 바람을 피웠잖아요! 우리 아빠가 뭘 잘못했는데요?”노인은 경멸에 찬 표정으로 최가희를 바라보며 되물었다.“너 여자 맞아?”“당연하죠!”최가희는 깊은 분노를 느꼈다.“왜 그런 질문을 저한테 하시는 거죠?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마을 사람 전체가 성유미 그 여자한테 홀렸나요?”그 말을 들은 노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넌 정말 벌 받을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누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어? 네 아빠라는 작자가 그러라고 했어? 그 죽어 마땅할 놈이?”최가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항상 자상한 사람이었다.그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그런데 이 망할 노인이 아버지를 저주하고 있었다.최가희는 정말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벌써 마을 주민들이 몰려와서 그녀를 포위하고 손가락질했다.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