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줄 사람이 있다고?그게 과연 누굴까?그가 다가가서 물어보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부소경이었다.구경민은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임산부와 노인을 힐끗 바라보았다. 둘은 어차피 걷는 속도가 느리고 그들을 따라가 봐야 고윤희의 반감만 살 것이 분명했기에 옆에 있던 경호원에게 손짓했다.“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만 잘 지켜봐. 너무 바짝 따라가다가 들키지 말고.”경호원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그 뒤로 구경민은 전화를 받았다.“소경아, 무슨 일이야?”수화기 너머로 부소경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경민아, 너 윤희 씨랑….”친우의 목소리를 들은 구경민은 한숨만 내쉬었다.후회와 절망이 섞인 한숨이었다.“무슨 일이야?”부소경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묻더니 죄책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세희랑 유리가 갑자기 먹자 거리의 해물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사러 갔다 오는 길이야. 거기 떡볶이 국물이 일품인데 줄을 서서 사야 하거든. 아침에 깨자마자 차 끌고 거기 다녀오느라 좀 늦었어.”딸과 아내를 향한 사랑이 듬뿍 담긴 친우의 목소리를 듣자 구경민은 가슴이 찢기는 것 같았다.부소경이 물었다.“집에 오자마자 세희한테 들었는데 고윤희 씨를 찾았다면서? 그런데 네 말을 안 믿는다고 해서 세희가 잘 얘기해 줬다고 들었어. 이제 윤희 씨랑 같이 돌아오는 거야?”구경민은 상처 입은 동물의 목소리로 대답했다.“소경아, 누구는 잘못을 해도 뉘우치고 사과하면 되는데 잘못을 하면 안 되는 경우도 있대. 그 잘못 한번으로 우린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부소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물었다.“고윤희 씨가… 네가 후회하고 뉘우친다는 걸 알고도… 네가 그렇게 찾아다닌 걸 다 알면서 안 돌아오겠다고 버티는 거야?”“우린 7년을 함께했어. 내가 아는 그 여자는 항상 부드럽고 배려심 많은 여자였어. 억지를 부린 적도 없고. 그런데 이번에는….”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그래. 처음에 윤희를 옆에 두
“이제 나도 배 속의 아이한테는 기대가 별로 없어.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하면 유리를 양녀로 삼을 거야. 지금 내가 걱정하는 건 고윤희야. 이대로 밖에서 고생만 하다가 정말 큰일 날 것 같다고.”“난 삼촌 같은 양부는 필요 없거든?”수화기 너머로 앳되지만 고집스러운 신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리야? 아가?”“누가 아가라는 거야? 삼촌 미워!”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아이는 울며 구경민을 비난했다.“윤희 이모는 내가 봤던 중에 가장 좋은 이모였단 말이야! 그렇게 좋은 사람을 왜 쫓아냈어? 삼촌은 한 번 잘못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모한테는 돈도 없었단 말이야. 최여진 그 여자한테 죽을 뻔했어! 다 삼촌 때문이야! 난 윤희 이모가 평생 삼촌이랑 돌아오지 말았으면 좋겠어! 삼촌 미워!”“미안해, 유리야.”신유리는 그제야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내 양엄마는 윤희 이모뿐이야! 삼촌 같은 양부는 싫어! 미워!”구경민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아이는 벌써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저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만 나왔다.주광수가 다가와서 그를 불렀다.“대표님.”구경민은 고개를 돌리고 힘없이 그에게 물었다.“시키는 거 다 처리했어?”주광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 처리했어요. 가장 어린 여자는 대표님이 놓아주라고 해서 그냥 보냈어요.”“그래.”주변을 둘러본 주광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대표님, 사모님은요…?”조금 전까지 여기 있던 사람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을까?구경민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사람을 보내서 따라가고 있어. 아마 멀리 가지는 않았을 거야. 우리도 가자.”주광수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누굴… 따라가요?”구경민은 질문에 대답 대신 이런 질문을 했다.“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야?”주광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대표님은 한 번도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한 적은 없지요. 중동 전쟁에 나갔을 때 길을 지나가다가 밥도 못 먹을 지경이 된 가정
주대규!네 시간 전에 하유권의 집 앞에서 구경민과 충돌했던 늙은 영감이었다.칠순이나 넘은 영감이 고윤희를 자신의 여자라고 박박 우겼다.그런데 고윤희가 스스로 주대규를 찾아오다니?구경민은 정말이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다가갔다.“대표님!”주광수가 다급히 그를 뒤에서 불렀다.요즘 고윤희를 찾아다니기 시작하면서 구경민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그는 충동적이고 예민하게 변했으며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불과 세 시간 전에 고윤희가 같이 안 돌아가겠다고 못을 박았는데 지금 가면 그녀의 심기만 더 건드리는 게 아닐까?주광수는 이러다가 그가 또 매몰차게 거절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주광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그런데 그렇게 앞으로 다가가던 구경민이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저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듣고 싶어. 너무 멀어서 잘 안 들려.”말을 마친 그는 고윤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대문 가까이로 간 주광수와 구경민은 관목 아래에 몸을 숨겼다.이때, 마침 노인이 고윤희에게 말했다.“윤희야, 난 여기까지만 동행할게. 네가 무사히 살 곳을 찾은 것 같아서 안심했어. 혼자라도 괜찮다면 너는 여기서 살아. 난 이만 가볼게.”노인의 말투에는 힘이 없었다.고윤희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머니도 저를 버리시는 건가요?”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우리 딸… 이 어미는 이제 늙었어. 아들은 심산 속에서 총을 맞아 죽고… 난 그냥 진수 따라 가고 싶은 마음뿐이야.”“죄송해요,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고윤희는 자책의 눈물을 흘렸다.“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진수 오빠도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제가 어머니를 보살피게 해주세요. 우린 살아야 해요. 아이는 출산하면 다른 집에 입양 보내고 어머니 따라 저도 죽을 거예요. 그때가 되면 산으로 들어가서 진수 오빠를 찾으러 가요. 만약 시신이 아직 거기 있다면 그 옆에서 같이 생을 마감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훌륭하고 착한 여자는 더 이상 구경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그들이 한숨을 쉬는 사이, 별장 대문이 열렸다.주대규가 문을 열고 나왔다.그는 노인을 부축하고 서 있는 고윤희를 보자 놀란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너… 구 대표님이랑 간 거….”고윤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주 사장님….”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호흡을 가다듬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에게 잡혀왔을 때 그때 알았어요. 사실 주 사장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것을요. 저에게도 참 잘해주셨죠. 하유권처럼 저를 학대하지도 않으셨잖아요.”“제가… 임신한 몸이지만 그래도 잠은 같이 잘 수 있어요. 명분도 필요 없고 돈도 싫어요.”“그냥 저와 제 어머니에게 먹을 것과 있을 곳만 주시면 돼요….”“그래도 될까요, 주 사장님?”고윤희는 간절한 표정으로 주대규를 바라보았다.주대규는 한참 말이 없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야, 임산부! 너 내가 조금 전에 무덤까지 갔다가 간신히 도망친 거 알아?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나도 하유권처럼 땅에 묻혔어.”“아직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고.”주대규는 말을 하면서도 수시로 식은땀을 훔쳤다.많이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고윤희가 여기 오기 전에 이미 그는 하유권이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들어서 알고 있었다.서울에서 왔다는 구경민은 무고한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그리고 자신이 뱉은 말은 무조건 실행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주대규를 놓아주었다는 건 그의 목숨을 취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게다가 주대규는 특별히 선을 넘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몇 년 전에 돈 좀 벌었다고 백해시에서 왕노릇을 했던 게 전부였다.위법 행위나 인간성을 저버린 짓은 하지도 않았다.그래서 구경민도 그에게 응징을 가하지 않은 것이다.하지만 주대규는 이번 사건으로 고윤희에게 흥미가 떨어졌다.이 여자를 받아주었다가 시끄러운 일에 너무 많이 휘말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서울 구경민과 엮인 여자를 누가
구경민은 아버지뻘 되는 영감에게 무릎 꿇고 받아달라고 사정하면서까지 그의 손길을 거부하는 고윤희를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자존심도 상하고 그녀의 단호한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거대한 좌절감이 몰려오고 분노마저 치솟았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여전히 조용하게 주대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고윤희를 바라보았다.주대규도 너무 냉철한 인간은 아니었는지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말했다.“야, 임산부! 난 말이야. 네가 임신했다고 싫은 게 아니야. 죽은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부양하려는 마음은 갸륵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난 널 받아줄 수는 없어. 넌 서울 구경민 대표의 여자잖아.”그러자 고윤희는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주 사장님, 제 모습을 봐봐요. 서울 구 대표가 정말 저를 사랑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럼 그 사람이 멍청한 거죠. 어떤 남자가 저 같은 것을 원하겠어요?”“걱정하지 마세요. 구경민… 구 대표는 저를 버렸어요. 그 사람이 저를 원했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제가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고요.”주대규는 말문이 막혔다.솔직히 며칠 전에 보였던 고윤희의 행동에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고 그냥 보내자니 불쌍했다.다시 생각해 보면 얼굴도 꽤 예쁘고 분위기가 있었다. 행색은 정말 초라해도 귀티 나는 분위기는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것이었다.역시 대도시에서 살다 와서 그런가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아이만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잘하면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잠깐 고민을 마친 주대규가 말했다.“그럼 앞으로 내 말만 따르겠다고 약속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약속할 수 있어?”고윤희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시키는 건 뭐든 다 할게요!”“그럼 만약에 말이야….”주대규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그는 사전에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일을 시키는 악덕 사장은 아니었다.“사실 내 생각은 이래. 난 너를 정부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네. 그건 저도
구경민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얼마 남지 않았어.”주광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그에게 물었다.“대표님, 설마 사모님을….”그는 구경민이 분노를 못 이기고 고윤희를 죽일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구경민은 그런 그를 곱지 않게 흘기며 대꾸했다.“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구경민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일단 돌아가자. 가서 주대규 연락처부터 알아내.”주광수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차로 갔다. 가면서도 구경민은 주대규의 별장을 힐끔거렸다.고윤희와 노모는 이미 주대규와 함께 별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지금 주대규의 별장에는 오늘 오전에 구경민이 살려준 그 소녀밖에 없었다.하유권의 다섯 애인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였다.고윤희를 본 소녀가 짜증스럽게 그녀에게 화를 냈다.“고윤희, 당신이 왜 여기 있어?”고윤희는 여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이 어린 여자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여자는 주대규에게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주 사장님, 어떻게 저런 거지 같은 여자를 집으로 들였어요? 저 여자 또 화만 잔뜩 불러올 거라고요! 사실 저 여자 서울 구경민 대표보다 더 악랄한 인간이에요!”“하유권 집에서 제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한 번도 구 대표님 앞에서 좋은 얘기를 안 해줬어요. 그래도 구 대표님이 사리분별을 하시는 분이라 저를 살려준 거죠. 주 사장님, 저 여자를 이곳에 들이면 안 돼요. 그럼 저는 갈 거예요.”소녀는 말을 하다 말고 울음까지 터뜨렸다.“주 사장님께서 제가 싫으시고 저랑 같이 있는 게 불편하시면 제가 떠날게요!”고윤희는 멍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이 소녀가 이렇게까지 뒤끝이 있는 애인 줄은 몰랐다.비록 직접 그녀를 살려주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구경민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게다가 그때는 고윤희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어떻게 남을 대신해
그 여자가 스스로 자신을 찾아오게 만드는 방법. 이건 고윤희가 병약한 노파를 부축해서 그를 떠나던 순간 내린 결정이었다.그 순간 구경민은 어떤 말로 설득해도 고윤희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았다.남은 평생 그는 더 이상 다른 여자에게 호감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오래 고민했어. 평생 고윤희 아니면 다른 여자는 나에게 의미 없어. 그 여자와 생사를 함께할 거야!”구경민이 쓸쓸한 말투로 말했다.“대표님….”주광수는 의아했다. 상사가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보통 이런 말은 여자가 자주 쓰는 말 아닌가?이제 설득이 안 통하니 목숨을 걸고 협박이라도 하려는 걸까?주광수는 갑자기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안전을 고려해 억지로 참아냈다.구경민의 표정이 많이 지치고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고윤희가 떠난 지금의 구경민은 다시 냉철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그는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주광수에게 말했다.“광수야, 일단 호텔로 가자. 제대로 좀 씻어야 겠어. 일주일이나 씻지 못해서 몸에서 쉰내가 나.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내 여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겠어.”주광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상사를 바라보았다.어디 아픈 거 아닌가?“나 멀쩡하고 아주 정상이야. 그러니까 빨리 호텔부터 찾자. 이제부터 또 시작이야.”구경민은 주광수의 의혹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네, 대표님.”그날 오후, 그들은 백해시에서 가장 비싼 호텔에 투숙했다.구경민은 말했던 것처럼 씻고 밥까지 챙겨 먹었다.그러고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푹 자고 일어난 뒤, 그는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대표님, 백해시 상황은 대략적인 조사를 마쳤습니다. 지시만 내리시면 바로 움직일 수 있어요.”“대표님, 이건 하유권 소유의 자산인데 불법적인 경로로 재물을 획득한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대표님, 백해시에서 주대규의 인맥과 운영하는 클럽, 사우나 모두 조사를 마쳤습니다. 언제 움직일 건가요?”구경민은 담담한 말투로 그들
“그리고 그 남자 아직 솔로야.”그러자 조금 전 질문했던 여자가 피식 비웃음을 터뜨렸다.“아는 건 참 많네. 그런데 너한테 자격이 있을까? 그 사람이 얼마나 눈이 높은지 몰라? 너 내놓을만한 학력은 있어? 너 외국어는 구사할 줄 알아? 옆도시에서 별로 잘나가지도 않는다는 거로 아는데? 큰소리 치고 나갔다가 주점에서 손님이나 받는다면서? 그렇게 구르다 온 몸으로 감히 구 대표님을 넘봐? 꿈 깨!”“너!”두 여자는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로 서로에게 으르렁거렸다.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임신한 몸으로 탁자를 닦고 있는 고윤희도 있었다.주대규는 그럭저럭 그녀에게 잘해주었다.있을 곳을 주고 어머니가 쉴 곳도 마련해 주었다.게다가 그녀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저 다방에서 허드렛일 좀 하고 매월 100만원의 월급을 주기로 약속했다.그것만으로도 고윤희 입장에서는 감지덕지였다.이대로 주대규 옆에서 평생 허드렛일을 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두 여자가 고윤희를 지나치며 까칠하게 말했다.“지나가게 좀 비켜!”“비키라고!”이미 감정의 곬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두 여자는 임신한 몸으로 탁자를 닦는 고윤희에게 분풀이를 했다.“죄송합니다.”“죄송하다면 다야? 너 때문에 원피스가 더러워졌잖아! 알바생 주제에 이거 얼만지 알기나 해? 갚을 수는 있어?”고윤희에게는 그걸 갚아줄 돈이 없었다.그래서 여자가 하는 욕설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어쨌든 상관없었다.그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있었다. 사는 게 원래 힘들지만 죽었다 살아난 사람에게 이 정도는 약과였다.고윤희는 조용히 뒤돌아섰다.비키라고 했으니 비키면 된다.“거기 서!”여자가 뒤에서 분노한 목소리로 고윤희를 불러세웠지만 고윤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그녀가 직원 휴게실로 들어가는데 주대규의 아홉 번째 애인이 안으로 들어왔다.구경민이 살려준 유일한 생존자였다.소녀는 지금 주대규의 아홉 번째 애인이 되면서 진주아라는 이름까지 받았다.그녀는 자기가 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