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민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얼마 남지 않았어.”주광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그에게 물었다.“대표님, 설마 사모님을….”그는 구경민이 분노를 못 이기고 고윤희를 죽일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구경민은 그런 그를 곱지 않게 흘기며 대꾸했다.“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구경민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일단 돌아가자. 가서 주대규 연락처부터 알아내.”주광수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차로 갔다. 가면서도 구경민은 주대규의 별장을 힐끔거렸다.고윤희와 노모는 이미 주대규와 함께 별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지금 주대규의 별장에는 오늘 오전에 구경민이 살려준 그 소녀밖에 없었다.하유권의 다섯 애인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였다.고윤희를 본 소녀가 짜증스럽게 그녀에게 화를 냈다.“고윤희, 당신이 왜 여기 있어?”고윤희는 여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이 어린 여자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여자는 주대규에게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주 사장님, 어떻게 저런 거지 같은 여자를 집으로 들였어요? 저 여자 또 화만 잔뜩 불러올 거라고요! 사실 저 여자 서울 구경민 대표보다 더 악랄한 인간이에요!”“하유권 집에서 제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한 번도 구 대표님 앞에서 좋은 얘기를 안 해줬어요. 그래도 구 대표님이 사리분별을 하시는 분이라 저를 살려준 거죠. 주 사장님, 저 여자를 이곳에 들이면 안 돼요. 그럼 저는 갈 거예요.”소녀는 말을 하다 말고 울음까지 터뜨렸다.“주 사장님께서 제가 싫으시고 저랑 같이 있는 게 불편하시면 제가 떠날게요!”고윤희는 멍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이 소녀가 이렇게까지 뒤끝이 있는 애인 줄은 몰랐다.비록 직접 그녀를 살려주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구경민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게다가 그때는 고윤희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어떻게 남을 대신해
그 여자가 스스로 자신을 찾아오게 만드는 방법. 이건 고윤희가 병약한 노파를 부축해서 그를 떠나던 순간 내린 결정이었다.그 순간 구경민은 어떤 말로 설득해도 고윤희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았다.남은 평생 그는 더 이상 다른 여자에게 호감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오래 고민했어. 평생 고윤희 아니면 다른 여자는 나에게 의미 없어. 그 여자와 생사를 함께할 거야!”구경민이 쓸쓸한 말투로 말했다.“대표님….”주광수는 의아했다. 상사가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보통 이런 말은 여자가 자주 쓰는 말 아닌가?이제 설득이 안 통하니 목숨을 걸고 협박이라도 하려는 걸까?주광수는 갑자기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안전을 고려해 억지로 참아냈다.구경민의 표정이 많이 지치고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고윤희가 떠난 지금의 구경민은 다시 냉철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그는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주광수에게 말했다.“광수야, 일단 호텔로 가자. 제대로 좀 씻어야 겠어. 일주일이나 씻지 못해서 몸에서 쉰내가 나.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내 여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겠어.”주광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상사를 바라보았다.어디 아픈 거 아닌가?“나 멀쩡하고 아주 정상이야. 그러니까 빨리 호텔부터 찾자. 이제부터 또 시작이야.”구경민은 주광수의 의혹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네, 대표님.”그날 오후, 그들은 백해시에서 가장 비싼 호텔에 투숙했다.구경민은 말했던 것처럼 씻고 밥까지 챙겨 먹었다.그러고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푹 자고 일어난 뒤, 그는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대표님, 백해시 상황은 대략적인 조사를 마쳤습니다. 지시만 내리시면 바로 움직일 수 있어요.”“대표님, 이건 하유권 소유의 자산인데 불법적인 경로로 재물을 획득한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대표님, 백해시에서 주대규의 인맥과 운영하는 클럽, 사우나 모두 조사를 마쳤습니다. 언제 움직일 건가요?”구경민은 담담한 말투로 그들
“그리고 그 남자 아직 솔로야.”그러자 조금 전 질문했던 여자가 피식 비웃음을 터뜨렸다.“아는 건 참 많네. 그런데 너한테 자격이 있을까? 그 사람이 얼마나 눈이 높은지 몰라? 너 내놓을만한 학력은 있어? 너 외국어는 구사할 줄 알아? 옆도시에서 별로 잘나가지도 않는다는 거로 아는데? 큰소리 치고 나갔다가 주점에서 손님이나 받는다면서? 그렇게 구르다 온 몸으로 감히 구 대표님을 넘봐? 꿈 깨!”“너!”두 여자는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로 서로에게 으르렁거렸다.그리고 그들의 옆에는 임신한 몸으로 탁자를 닦고 있는 고윤희도 있었다.주대규는 그럭저럭 그녀에게 잘해주었다.있을 곳을 주고 어머니가 쉴 곳도 마련해 주었다.게다가 그녀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저 다방에서 허드렛일 좀 하고 매월 100만원의 월급을 주기로 약속했다.그것만으로도 고윤희 입장에서는 감지덕지였다.이대로 주대규 옆에서 평생 허드렛일을 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두 여자가 고윤희를 지나치며 까칠하게 말했다.“지나가게 좀 비켜!”“비키라고!”이미 감정의 곬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두 여자는 임신한 몸으로 탁자를 닦는 고윤희에게 분풀이를 했다.“죄송합니다.”“죄송하다면 다야? 너 때문에 원피스가 더러워졌잖아! 알바생 주제에 이거 얼만지 알기나 해? 갚을 수는 있어?”고윤희에게는 그걸 갚아줄 돈이 없었다.그래서 여자가 하는 욕설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어쨌든 상관없었다.그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있었다. 사는 게 원래 힘들지만 죽었다 살아난 사람에게 이 정도는 약과였다.고윤희는 조용히 뒤돌아섰다.비키라고 했으니 비키면 된다.“거기 서!”여자가 뒤에서 분노한 목소리로 고윤희를 불러세웠지만 고윤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그녀가 직원 휴게실로 들어가는데 주대규의 아홉 번째 애인이 안으로 들어왔다.구경민이 살려준 유일한 생존자였다.소녀는 지금 주대규의 아홉 번째 애인이 되면서 진주아라는 이름까지 받았다.그녀는 자기가 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고윤희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싸며 그녀에게 물었다.“왜… 때리고 그러세요?”진주아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그래서 뭐? 네가 자꾸 이상한 짓하니까 때리는 거지! 주 사장님이 그렇게 싫다고 했는데 네가 끝까지 들러붙었잖아! 뻔뻔하기는. 여기서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기생하고 있는 주제에! 하긴… 너 같은 배불뚝이를 누가 데려가겠니?”고윤희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어차피 반항해 봐야 돌아오는 건 매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문밖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한진수의 어머니는 문밖에서 그 모습을 보며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딸, 엄마가 죽으면 네가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넌 정이 너무 많은 아이야. 우리 셋이 다 같이 죽을 수는 없잖아?”“아니지. 셋이 아니고 네 명이지. 어쨌든 넷이 다 같이 죽을 수는 없어. 엄마를 위하는 네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엄마는 먼저 진수의 옆으로 가야겠어. 잘 살아야 한다. 아이가 크면 네 삶도 좀 더 괜찮아질 거야.”혼자 중얼거리던 노인은 묵묵히 자리를 떴다.제대로 걷지도 못했지만 노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노인이 고윤희를 따라 주대규의 집에 온지도 열흘이 지났다. 주대규는 매일 먹을 것을 제공해 주고 보살피는 사람도 붙여 주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주대규는 고윤희를 학대하지 않았다.그런데 주대규 신변의 여자들이 틈만 나면 고윤희의 뺨을 때리고 걷어찼다.그 여자들은 전부 고윤희를 싫어했다.모두가 고윤희를 식충이로만 보며 괴롭히고 학대했다. 고윤희는 주대규의 집에서 살면서 먹을 걱정, 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노인은 이게 다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고윤희를 멀리 떠나기로 결심하고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잠시 후, 노인은 비틀거리며 바닷가에 도착했다.노인은 바닷물은 엄청 짤 거라고 생각했다.바다를 따라가다 보면 죽은 아들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순식
“네!”병실을 나온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어르신은 이미 고비를 넘겼습니다.”“알았어. 그쪽 일은 그만하고 돌아와.”구경민이 말했다.그는 직접 나서지 않았다.노인이 그의 얼굴을 알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광수를 보내 노인을 위로해 드렸다.주광수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대표님.”잠시 후, 주광수는 구경민의 거처로 돌아왔다. 구경민이 그에게 말했다.“사모님 어쩌고 있는지 가서 살펴봐. 절대 들키지는 말고.”주광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지시를 받은 주광수는 바로 주대규의 별장으로 향했다.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하루 일과를 마친 고윤희는 자전거를 타고 주대규의 거처로 돌아왔다.그녀와 노인은 다른 고용인들과 같이 1층 고용인 방을 썼다.주대규네 다방에서 일하는 10일동안 고윤희가 퇴근할 시간이면 어머니는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고윤희도 어머니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맞아서 퉁퉁 부은 얼굴을 보이면 어머니가 또 가슴 아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자전거를 끌고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밖에서 찬물로 얼굴을 찜질하고 다시 방으로 갔다.그런데 방은 텅 비어 있었다.어머니는 어디로 간 걸까?고윤희는 집안 곳곳을 뒤지고 다녔다.평소 어머니는 한가할 때 옆방 고용인들과 담소를 나누고는 했다.하지만 고용인 방을 다 뒤졌는데도 어머니를 찾지 못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2층은 주대규의 거실이었다.한창 주대규의 품에 안겨 있던 진주아가 고윤희를 보더니 오히려 도발적인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낮에 뺨 맞고 우리 주 사장님한테 고자질하러 왔어?”고윤희는 진주아의 도발을 무시하고 당황한 얼굴로 주대규에게 물었다.“주 사장님, 혹시… 우리 어머니 못 보셨나요?”주대규도 크게 놀라며 물었다.“어머니가 사라졌어?”고윤희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다리도 불편하신 분이라
구경민이 이 시간에 전화온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낮에 그가 먼저 일 때문에 여쭤볼 것이 있다고 주광수에게 연락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구경민에게서 직접 연락이 오자 여전히 긴장되고 손발이 떨렸다.두려운 건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주 사장, 무슨 일로 나를 찾았지?”구경민의 질문에 주대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그게 대표님, 백해시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저와 대표님이 접촉한 적 있다는 사실도 알고요 대표님이 백해시에 시찰을 오셨다고 생각하고 있나 봐요.”“본론만 얘기해!”구경민이 짜증스럽게 말했다.“그게… 백해시에서 좀 잘 나간다 하는 사람들이 대표님을 꼭 뵙고 싶어하셔서요. 제 다방에서 만남이라도 가지시는 게 어떨까요? 사실 다방이라고는 하지만 환경도 괜찮고 정상적인 가게거든요.”“커피랑 디저트도 맛있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구경민이 말이 없자 주대규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사실… 안 오셔도 괜찮아요. 그냥 저는 이야기만 전해드린 것뿐입니다. 대표님이 귀찮으시다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주대규는 양쪽으로 난감했다.구경민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입지를 더 단단히 하고 싶지만 구경민이라는 존재가 너무 두려웠다.조금이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집이고 뭐고 다 날아갈 것 같았다.그런데 구경민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한번 고민해 보지.”“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주대규는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었다.구경민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주대규는 그제야 문밖에 있는 고윤희가 떠올랐다.밖에서도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가 보니 고윤희는 이미 울다가 쓰러진 상태였다. 주대규는 바로 고용인을 시켜 그녀를 방으로 데려가게 하고 의술을 약간 안다는 고용인을 시켜 그녀의 인중을 마사지하게 했다.잠시 후, 고윤희가 다시 정신을 차리더니 또 울음을 터뜨렸다.“어머니….”다른 고용인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사실 두 사람은 고용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어머니는 비록 일손에 보탬은 안
“윤희 씨, 느껴졌어요?”고윤희도 당연히 그걸 느꼈다.발로 배를 차는 선명한 느낌이었다.그녀는 원래 마른 체형이었기에 피하지방이 얇아서 아이의 작은 발모양까지 똑똑히 보았다.그녀는 부드럽게 배를 어루만졌다.텔레파시가 통한 건지, 그녀의 손이 배에 닿자 아이는 또 한번 발길질을 했다.고윤희는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내 아이. 아가… 내 아이가 나한테 응답하는 걸까요?”그녀는 울며 사람들에게 물었고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윤희 씨.”“어머니는 윤희 씨 편하라고 떠났잖아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음 강하게 먹어야죠.”사실 이집 고용인들은 고윤희와 별로 접점이 없었다.하지만 모두가 사회 빈곤층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 측은지심이 있었다.고윤희는 사람들의 걱정과 관심, 그리고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 준 아이까지 생각하자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그래, 내가 이기적이었어.내 아이를 위해 살 거야.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어머니, 미안해요. 진수 오빠, 정말 미안해요. 아이가 크면 꼭 두 분 찾아가서 묘비라도 만들어 드릴게요.”이때 주대규도 안으로 들어와서 그녀를 위로했다.“윤희야, 아이 낳으면 내가 네 아이를 키워줄게. 아이를 내 호적에 올리면 아무도 너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고윤희는 감격한 얼굴로 주대규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감사합니다, 주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그날 밤, 고윤희는 착잡한 마음으로 밤을 새웠다.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다음 날은 여전히 나가서 일을 해야 했다.다방 일은 진주아가 그녀를 지명한 것이었다.진주아는 고윤희가 당시 자신을 구해주지 않은 것에 큰 앙심을 품고 있었다.그래서 다방에서 가장 힘든 일을 고윤희에게 시켰다.마침 구경민이 다방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진주아는 구경민 앞에서 고윤희를 어떻게 망신줄지 궁리했다.고윤희도 오늘 백해시 실세들이 다방으로 구경민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진주아에게 사정했다.“사모님, 오늘만… 휴가를 주시면 안 될까
불과 10일 사이에 고윤희의 배는 많이 부풀어 있었다.사실 그동안 구경민이 백해시에서 크게 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한가할 때면 서울이나 본토 의사들에게 임산부에 관해 알아보고 스스로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았다.그래서 요즘 구경민은 임산부에 대해 아주 많이 알게 되었다.임신 기간이 나중으로 갈수록 아이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10일을 안 본 사이에 그녀의 몸에는 아니나 다를까 큰 변화가 찾아왔다.하지만 고윤희는 여전히 얼굴이 핼쑥하고 초췌했다.얼굴은 여전히 창백하고 핏기 하나 없었고 옷도 여전히 초라했으며 배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 상태였다.그런 그녀가 차포트로 손님들에게 차를 따라주고 있었다.백해시 재벌들만 모인 자리에서 그녀의 존재는 그렇듯 이질적이었다.사실 그녀는 구경민과 살짝 부딪치기까지 했다.동부 지구 최북단에 위치한 백해시는 겨울이 매우 추운 지방이었다. 그래서 신체가 건장한 구경민마저 정장 밖에 코트까지 챙겨 입었다.하지만 두꺼운 차림도 그의 몸에서 풍기는 귀티를 막을 수는 없었다.그는 오늘 긴 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성숙하고 강인한 남자의 인상을 주었다.두 사람 사이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다행인 건, 고윤희가 이제 이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지금 고윤희는 그냥 구경민과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지내고 싶었다.하지만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남자가 좁은 복도에서 조용히 여자를 응시하고 있었다.배가 불룩 나온 여자는 차포트를 들고 남자의 옆을 지나가야 했다.그녀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죄송한데… 조금만 비켜주세요.”구경민은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조용히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고윤희도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표정은 차가웠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고윤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옆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앙칼진 여자의 목소리였다.“야, 배불뚝이! 넌 눈이 없어? 서울에서 온 귀한 손님이 여기 있는데 알바 주제에 어디에 낀다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