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민이 이 시간에 전화온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낮에 그가 먼저 일 때문에 여쭤볼 것이 있다고 주광수에게 연락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구경민에게서 직접 연락이 오자 여전히 긴장되고 손발이 떨렸다.두려운 건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주 사장, 무슨 일로 나를 찾았지?”구경민의 질문에 주대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그게 대표님, 백해시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저와 대표님이 접촉한 적 있다는 사실도 알고요 대표님이 백해시에 시찰을 오셨다고 생각하고 있나 봐요.”“본론만 얘기해!”구경민이 짜증스럽게 말했다.“그게… 백해시에서 좀 잘 나간다 하는 사람들이 대표님을 꼭 뵙고 싶어하셔서요. 제 다방에서 만남이라도 가지시는 게 어떨까요? 사실 다방이라고는 하지만 환경도 괜찮고 정상적인 가게거든요.”“커피랑 디저트도 맛있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구경민이 말이 없자 주대규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사실… 안 오셔도 괜찮아요. 그냥 저는 이야기만 전해드린 것뿐입니다. 대표님이 귀찮으시다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주대규는 양쪽으로 난감했다.구경민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입지를 더 단단히 하고 싶지만 구경민이라는 존재가 너무 두려웠다.조금이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집이고 뭐고 다 날아갈 것 같았다.그런데 구경민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한번 고민해 보지.”“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주대규는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었다.구경민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주대규는 그제야 문밖에 있는 고윤희가 떠올랐다.밖에서도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가 보니 고윤희는 이미 울다가 쓰러진 상태였다. 주대규는 바로 고용인을 시켜 그녀를 방으로 데려가게 하고 의술을 약간 안다는 고용인을 시켜 그녀의 인중을 마사지하게 했다.잠시 후, 고윤희가 다시 정신을 차리더니 또 울음을 터뜨렸다.“어머니….”다른 고용인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사실 두 사람은 고용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어머니는 비록 일손에 보탬은 안
“윤희 씨, 느껴졌어요?”고윤희도 당연히 그걸 느꼈다.발로 배를 차는 선명한 느낌이었다.그녀는 원래 마른 체형이었기에 피하지방이 얇아서 아이의 작은 발모양까지 똑똑히 보았다.그녀는 부드럽게 배를 어루만졌다.텔레파시가 통한 건지, 그녀의 손이 배에 닿자 아이는 또 한번 발길질을 했다.고윤희는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내 아이. 아가… 내 아이가 나한테 응답하는 걸까요?”그녀는 울며 사람들에게 물었고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윤희 씨.”“어머니는 윤희 씨 편하라고 떠났잖아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음 강하게 먹어야죠.”사실 이집 고용인들은 고윤희와 별로 접점이 없었다.하지만 모두가 사회 빈곤층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 측은지심이 있었다.고윤희는 사람들의 걱정과 관심, 그리고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 준 아이까지 생각하자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그래, 내가 이기적이었어.내 아이를 위해 살 거야.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어머니, 미안해요. 진수 오빠, 정말 미안해요. 아이가 크면 꼭 두 분 찾아가서 묘비라도 만들어 드릴게요.”이때 주대규도 안으로 들어와서 그녀를 위로했다.“윤희야, 아이 낳으면 내가 네 아이를 키워줄게. 아이를 내 호적에 올리면 아무도 너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고윤희는 감격한 얼굴로 주대규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감사합니다, 주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그날 밤, 고윤희는 착잡한 마음으로 밤을 새웠다.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다음 날은 여전히 나가서 일을 해야 했다.다방 일은 진주아가 그녀를 지명한 것이었다.진주아는 고윤희가 당시 자신을 구해주지 않은 것에 큰 앙심을 품고 있었다.그래서 다방에서 가장 힘든 일을 고윤희에게 시켰다.마침 구경민이 다방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진주아는 구경민 앞에서 고윤희를 어떻게 망신줄지 궁리했다.고윤희도 오늘 백해시 실세들이 다방으로 구경민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알고 진주아에게 사정했다.“사모님, 오늘만… 휴가를 주시면 안 될까
불과 10일 사이에 고윤희의 배는 많이 부풀어 있었다.사실 그동안 구경민이 백해시에서 크게 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한가할 때면 서울이나 본토 의사들에게 임산부에 관해 알아보고 스스로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았다.그래서 요즘 구경민은 임산부에 대해 아주 많이 알게 되었다.임신 기간이 나중으로 갈수록 아이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10일을 안 본 사이에 그녀의 몸에는 아니나 다를까 큰 변화가 찾아왔다.하지만 고윤희는 여전히 얼굴이 핼쑥하고 초췌했다.얼굴은 여전히 창백하고 핏기 하나 없었고 옷도 여전히 초라했으며 배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 상태였다.그런 그녀가 차포트로 손님들에게 차를 따라주고 있었다.백해시 재벌들만 모인 자리에서 그녀의 존재는 그렇듯 이질적이었다.사실 그녀는 구경민과 살짝 부딪치기까지 했다.동부 지구 최북단에 위치한 백해시는 겨울이 매우 추운 지방이었다. 그래서 신체가 건장한 구경민마저 정장 밖에 코트까지 챙겨 입었다.하지만 두꺼운 차림도 그의 몸에서 풍기는 귀티를 막을 수는 없었다.그는 오늘 긴 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성숙하고 강인한 남자의 인상을 주었다.두 사람 사이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다행인 건, 고윤희가 이제 이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지금 고윤희는 그냥 구경민과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지내고 싶었다.하지만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남자가 좁은 복도에서 조용히 여자를 응시하고 있었다.배가 불룩 나온 여자는 차포트를 들고 남자의 옆을 지나가야 했다.그녀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죄송한데… 조금만 비켜주세요.”구경민은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조용히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고윤희도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표정은 차가웠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고윤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옆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앙칼진 여자의 목소리였다.“야, 배불뚝이! 넌 눈이 없어? 서울에서 온 귀한 손님이 여기 있는데 알바 주제에 어디에 낀다
진주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과거 하유권과 같이 있을 때 그녀는 서열 다섯번 째였고 미녀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안 띄는 존재였다.그런데 운이 좋게 구경민을 만나 극적으로 구원되고 다른 여자들은 전부 죽었다.주대규한테 온 건 어떻게든 굶어 죽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는데 주대규 덕분에 구경민이라는 거물과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어쩌면 주대규는 그녀의 복덩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진주아는 구경민이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이번에 백해시를 방문하면서 하유권을 비롯한 많은 인간을 숙청했지만 유독 진주아에게는 관대했다.열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다 보니 측은지심이 생겼던 걸까?하지만 눈앞의 임산부를 보면 가소롭기도 하고 짜증만 났다.서른 살 넘은 늙은 여자 주제에!그때 날 구해주지 않은 벌을 지금 받는 거야! 오늘이 네 제삿날이야!“구 대표님,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제가 오늘 대표님 대신 이 여자를 혼 좀 낼게요. 어차피 이런 여자한테 손 대는 건 대표님 손이나 더럽히는 거잖아요.”진주아는 애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구경민에게 말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신속히 손을 들어 고윤희의 귀뺨을 때렸다.“주제도 모르는 파렴치한 년! 주방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라고 불렀더니 설거지는 안 하고 감히 밖에 나와 서빙을 해?”“구 대표님이 오늘 귀빈으로 오시는 거 알고 그랬지? 그래서 일부러 구 대표님 앞에 나타나서 심기를 건드린 거지?”“당장 안 꺼져?”나이가 너무 어려서일까? 진주아는 눈치가 없었다.아마 그녀는 구경민이 자신을 살려준 건 자신에게 호감이 있어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 눈에 봬는 게 없었다.현장에 있던 모두가 아연실색했다.구경민에게 매달리려던 여자들은 질투와 시기의 눈빛으로 이 열여덟 살 소녀를 바라보았다.심지어 구경민이 이로써 진주아를 옆에 거둘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여자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평소에 저 여자를 괴롭히거나 한 적은 없었나?현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구경민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람들은 당황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고윤희는 고저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평생 주 사장님 옆을 지키기로 했어. 죽어서도 여길 떠나지는 않을 거야.”“하지만 당신 지금 여기서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잖아.”구경민이 말했다.고윤희는 여전히 담담한 말투로 되물었다.“그래서 그게 뭐 어때서?”“과거에 친부모한테 학대를 당하고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시댁 지하실에서 갇혀 지낼 때도 괜찮았어. 당신과 살다가 내쫓길 때도, 당신 약혼녀가 나를 죽이려고 할 때는 더 힘들었어. 이제 겨우 안정적인 삶을 찾은 거야. 그러니 난 만족해.”“하지만….”구경민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하지만 당신은 부족하겠지.”고윤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포기를 못한 거지?”“당신은 항상 나한테 명령을 하는 존재였고 나는 말을 따르는 존재였으니까.”“나한테 꺼지라고 해서 난 아무 말도 없이 꺼져줬어. 그래서 당신이 다시 돌아오라고 하면 감지덕지하며 돌아갈 줄 알았겠지.”“당신은 지금 내가 당신 말을 안 듣는 게 불만인 거야! 내가 당신의 통제를 벗어나서 좌절감이 들고 억울한 거라고. 아니야?”고윤희는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구경민을 바라보았다.구경민은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녀가 행복하다면, 한진수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절대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구경민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과연 있을까?그는 그제야 자신에게 그럴 자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결국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다.“돌아가자, 윤희야! 예전처럼 지내는 거야. 아이를 출산하면 당신은 서울 여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결혼식을 가지게 될 거야!”고윤희는 고개만 흔들었다.“사실 당신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당신은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오래 쓰던 건 잘 안 버리잖아.”“이
진주아는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살려줘서 고마워. 다시는 나쁜 생각 하지 않을게.”“그래요. 저는 들어가서 마저 청소라도 해야겠어요.”고윤희는 주전자를 손에 쥐고 안으로 들어갔다.“윤희야!”구경민이 고윤희를 불러 세웠다.“백해 시에서 이제 볼일이 끝났어. 내일이면 이곳을 떠날 거야. 앞으로...”“그래, 우리 이제 영원히 만나지 말자. 잘 지내.”“내가 너를 잊지 못한다는 거 네가 기억했으면 좋겠어.”“네가 잊지 못하는 건 내 몸이잖아?”고윤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맞아.”구경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내 몸과 마음을 만족시키는 사람은 이제 없을 거야.”고윤희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아니, 네가 원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야. 나보다 너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아주 많으니까.”“너, 방금 한 말 후회하지 마.”“영원히 후회 안 해.”“그래!”구경민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 몸을 돌려 떠났다.그는 앞으로 천천히 걸으며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주광수에게 말했다.“광수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한 것 같아. 우리 이제 그만 서울로 돌아가자.”“네 대표님.”주광수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차에 타기 전, 그는 고윤희를 돌아보며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았다.“사모님, 사모님은 절대 대표님의 상대가 아닙니다.”아쉽게도 고윤희는 주광수를 발견하지 못하였고, 그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두 사람이 다방을 나선 후, 고윤희의 휴대폰이 울렸다.낯선 번호를 힐끗 쳐다보고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바다에 뛰어든 그녀의 어머니 시신을 찾았다는 전화일까 봐 고윤희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상대방은 바로 고윤희의 이름을 물었고 쌀쌀맞은 목소리였다.“고윤희 씨 맞으십니까?”고윤희는 휴대폰을 꼭 잡고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맞습니다. 누구시죠?”그러자 상대방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어머니 한 분 있으시죠?”“네, 맞습니다. 어머니의 시체를 찾으
구경민?다방에는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이 사람들은 구경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경민 대표라는 말도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다.여기 사람들은 구경민을 구경민 대표라고 부른다.조금 전, 구경민이 그녀와 함께 떠나자고 제안했으나 그녀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구경민이 떠난 후, 바로 후회를 한다고?하!밀당하는 기술이 너무 지나치는 건 아닐까?이 세상에, 고상하고 도도한 여자는 없다. 연기로 가득한 세상일뿐!모든 사람들은 연기를 시작한 임산부가 어떤 끝을 맞이하는지 궁금했다.고윤희가 배를 끌어안고 구경민이 떠난 곳으로 달려가자, 다방에 남은 사람들도 그녀의 뒤를 따라 좋은 구경을 하려고 했다.그녀의 뒤를 따라나서는 사람들 중 99%는 구경민이 고윤희를 쳐다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고윤희가 먼저 구경민을 버렸으니, 그녀가 다시 그를 찾으러 갈 때, 구경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흥! 두고 보자고!방금 전까지 고윤희에게 애원하던 진주아도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다방에는 주대규만 남았다.주대규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며칠간, 그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들었고, 오늘에서야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만약 이번 일을 무사히 끝마치면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하게 지내기로 결심했다.이 세상은 너무 무섭다.하마터면 서울에서 내려온 권력자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이제 겨우 70인 그는 아직 살 날이 많다고 자부했다.주대규는 유일하게 밖으로 달려나가지 않은 사람이다.그는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고윤희를 안지 않은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고윤희를 품에 안았거나 나쁜 마음을 품었다면 암매장 당했을지도 모른다.그러다 불현듯 웃음을 터뜨렸다.“고윤희가 여자로서 매력이 넘치긴 해. 서울의 거물도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그 시각, 고윤희는 이미 구경민의 차와 세네 걸음 떨어진 곳까지 달려갔다.구경민의 차가 천천히 출발하려는
“구경민...” 고윤희는 창문을 꼭 잡고 무기력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구경민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고윤희를 쳐다보기만 할 뿐.“무슨 일이야? 얼른 말해. 이곳에서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서울에 처리해야 하는 일도 많이 남았어.”“구경민, 그러니까 어머니가...”고윤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구경민이 왜 아무 이유 없이 그녀의 어머니를 구해줘야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조금 전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를 쫓아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내가... 너...”“하고 싶은 말 있으면 빨리해.”구경민이 말했다.“그러니까 너, 내가 잘한다고 했지?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잖아.”고윤희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구경민을 바라보았다.“이 세상에서 너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어. 네가 어떤 자세를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네가 절정에 닿는지 내가 제일 잘 알아.”“그러니까 경민아, 나를... 나를...” 고윤희는 자신의 입으로 정부가 되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그럴 자격이 남아 있을까?구경민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담배만 뻐금뻐금 피웠다.그의 코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가 나오고, 거만한 자세로 고윤희를 내려다보았다.표정은 매우 담담해 보이기까지 했다.“생각이 끝났어? 진짜 나와 함께 서울로 갈래?”구경민이 드디어 입을 열고 물었다.“그... 그래도 돼?”고윤희는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자발적으로 나를 따라나설 거야?”“응... 내가 원해서 너를 따라가는 거야.”“나를 사랑해?”구경민이 다시 물었다.“사랑해!”“너무 사랑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진수 오빠는 내가 잠시 기댔을 뿐이지 사랑하지 않았어.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이 순간, 고윤희의 몰골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나를 사랑하면 차에 타.”“정... 정말이야? 정말 나와 함께 돌아갈 거야?”구경민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때, 운전석에 있는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