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수는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사모님, 길게 말할 시간이 없어요. 고윤희 씨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아요. 우리 대표님은 빨리 고윤희 씨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하시는데 고윤희 씨가 말을 듣지 않아요. 제발 좀 설득해 주세요.”“고윤희 씨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그렇다는 건 알아요. 그러니 사모님께서 고윤희 씨를 좀 설득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제 임신 5개월이나 된 임산부가 거리 생활을 하는 건 무리예요….”다급하고 간절한 말투였다.설명하는데 불과 1분도 초과하지 않았지만 신세희는 단번에 상황을 알아들었다.그녀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했다.“일단 알았어요. 바로 구경민 씨한테 전화할게요.”전화를 끊은 그녀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구경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지난 4개월 동안 구경민은 고윤희를 찾는 일에 모든 정력과 시간을 매진했다. 그의 죄책감, 그리고 간절한 마음을 신세희도 옆에서 보아서 알고 있었다. 그녀도 고윤희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고 싶었으나 고윤희가 진짜 사랑을 찾았다고 해서 말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고윤희를 설득해서 데려오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윤희가 울먹이자 신세희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언니….”고윤희가 울며 말했다.“세희 씨, 정말 미안해요. 며칠 전까지는 돈이 있었는데… 그래서 세희 씨한테 빌린 돈 꼭 갚고 싶었거든요. 조금만 수입이 안정되고 식당도 자리를 잡으면 기쁜 소식을 전하고 돈도 돌려주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신세희는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언니, 많이 힘든 것 같아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 믿고 말해줘요. 무슨 일이 있든 저는 항상 언니 편이고 언니를 도울 거예요!”고윤희는 그 말을 듣고 구슬피 울었다.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천신만고 끝에 부모님을 다시 만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그녀는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았고 아무 감정 없는 목각 인형처럼 굴지 않았다.그녀는 구슬픈 목소리로 신세희에게 말했다.“세희 씨,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어요.”신세희는 순
구경민은 그제야 안도감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연하지. 윤희야.”그는 첫사랑을 처음 만난 스무 살 소년처럼 해맑게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사실 구경민은 3일이나 양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이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윤희야, 나랑 집에 가자. 당신 벌써 임신 5개월이야. 앞으로 몸은 점점 무거워질 텐데 집으로 돌아가면 왕처럼 모실게. 앞으로 내가 당신을 보살필 거야.”구경민은 아주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고윤희를 바라보았다.그는 주대규가 그녀에게 어떻게 했는지도 묻지 않았다.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고윤희의 몸이 더럽혀졌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는 자신의 질문이 그녀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낼까 봐 두려웠다.구경민은 양팔을 벌려 고윤희를 품에 안았다. 여자의 부풀어 오른 배가 느껴지자 구경민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그의 아이.앞으로 그도 친우인 부소경처럼 아빠가 되는 것이다.유리처럼 영리하면서도 까칠한 말괄량이 소녀가 되어 아빠를 괴롭힐까?구경민은 행복에 취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윤희야, 이제 돌아가자.”하지만 고윤희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를 밀쳐냈다.구경민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윤희야….”고윤희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우리 어머니는?”구경민이 웃으며 말했다.“이미 사람을 보내서 한진수 씨 어머니를 찾고 있어. 찾기만 하면 가장 괜찮은 요양시설에 보내드리고 평생 그분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할 거야.”고윤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랬구나….”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다시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나를 죽이려고 열심히 찾아다닌 게 아니야? 나를 노리개처럼 부리려고 쫓아온 게 아니라 세희 씨가 말한 것처럼 나를 데려다가 보살피려고 그런 거야?”“윤희야, 나도 사람이야. 우린 7년을 함께했어. 내가 언제 무고한 사람한테 해코지하는 거 봤어? 나랑 상관없는 사람한테도 하지 않았던 잔인한 짓을 내 옆을 7년이나 지킨 당신한테 한다는
“당신은 그런 나를 다시 받아줄 거야?”구경민은 그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고윤희가 웃으며 말했다.“사실 용서라고 할 것도 없어. 우린 그냥 헤어진 순간 이미 끝났어. 당신이 악마였다면 그래서 나한테 당신에게 반항할 힘이 없었다면 당연히 당신과 함께 돌아갔을 거야.”“하지만 당신이 그랬잖아. 당신은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당신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있었을 뿐이라고. 그럼 이제 말해줄게. 우린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영원히 못 돌아가. 난 정말 힘들었어. 피곤해.”“나 이제 서른 다섯이야. 스무 살 소녀가 아니라고. 나는 다시는 그 어떤 풍파도 겪고 싶지 않아. 살아서 아이를 낳고 늙은 어머니를 보살피며 평생 밥을 빌어먹으면서 살아가더라도 그런 생활이 더 행복할 거야.”“나는 처음부터 당신과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잖아. 당신 가족들, 그리고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당신까지 아무도 우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이제야 알았어. 난 처음부터 불행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 거야.”“서울 구 대표님, 서울을 쥐락펴락하는 남자… 그런 사람이랑 나는 어울리지 않아.”“그러니 돌아가, 경민 씨. 당신을 용서했어. 앞으로 미워하지 않을게. 하지만 당신과 돌아가지는 않을 거야.”말을 마친 고윤희는 천천히 별장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느리고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였다.그녀는 여전히 초라한 옷차림으로 조심스럽게 배를 감싸고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구경민은 울고만 싶어졌다.그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윤희야, 나한테 한 번의 기회도 줄 수 없는 거야? 사람이 살면서 잘못할 수도 있는 거잖아. 실수 한번 했다고 이대로 나를 버리는 거야?”“잘못?”고윤희는 고개를 돌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구경민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마음을 비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 7년의 정을 비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우린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여느 연인들처럼 뜨겁게 서로를 안았어. 나와 당신이 함께한
받아줄 사람이 있다고?그게 과연 누굴까?그가 다가가서 물어보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부소경이었다.구경민은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임산부와 노인을 힐끗 바라보았다. 둘은 어차피 걷는 속도가 느리고 그들을 따라가 봐야 고윤희의 반감만 살 것이 분명했기에 옆에 있던 경호원에게 손짓했다.“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만 잘 지켜봐. 너무 바짝 따라가다가 들키지 말고.”경호원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그 뒤로 구경민은 전화를 받았다.“소경아, 무슨 일이야?”수화기 너머로 부소경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경민아, 너 윤희 씨랑….”친우의 목소리를 들은 구경민은 한숨만 내쉬었다.후회와 절망이 섞인 한숨이었다.“무슨 일이야?”부소경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묻더니 죄책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세희랑 유리가 갑자기 먹자 거리의 해물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사러 갔다 오는 길이야. 거기 떡볶이 국물이 일품인데 줄을 서서 사야 하거든. 아침에 깨자마자 차 끌고 거기 다녀오느라 좀 늦었어.”딸과 아내를 향한 사랑이 듬뿍 담긴 친우의 목소리를 듣자 구경민은 가슴이 찢기는 것 같았다.부소경이 물었다.“집에 오자마자 세희한테 들었는데 고윤희 씨를 찾았다면서? 그런데 네 말을 안 믿는다고 해서 세희가 잘 얘기해 줬다고 들었어. 이제 윤희 씨랑 같이 돌아오는 거야?”구경민은 상처 입은 동물의 목소리로 대답했다.“소경아, 누구는 잘못을 해도 뉘우치고 사과하면 되는데 잘못을 하면 안 되는 경우도 있대. 그 잘못 한번으로 우린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부소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물었다.“고윤희 씨가… 네가 후회하고 뉘우친다는 걸 알고도… 네가 그렇게 찾아다닌 걸 다 알면서 안 돌아오겠다고 버티는 거야?”“우린 7년을 함께했어. 내가 아는 그 여자는 항상 부드럽고 배려심 많은 여자였어. 억지를 부린 적도 없고. 그런데 이번에는….”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그래. 처음에 윤희를 옆에 두
“이제 나도 배 속의 아이한테는 기대가 별로 없어.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하면 유리를 양녀로 삼을 거야. 지금 내가 걱정하는 건 고윤희야. 이대로 밖에서 고생만 하다가 정말 큰일 날 것 같다고.”“난 삼촌 같은 양부는 필요 없거든?”수화기 너머로 앳되지만 고집스러운 신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리야? 아가?”“누가 아가라는 거야? 삼촌 미워!”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아이는 울며 구경민을 비난했다.“윤희 이모는 내가 봤던 중에 가장 좋은 이모였단 말이야! 그렇게 좋은 사람을 왜 쫓아냈어? 삼촌은 한 번 잘못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모한테는 돈도 없었단 말이야. 최여진 그 여자한테 죽을 뻔했어! 다 삼촌 때문이야! 난 윤희 이모가 평생 삼촌이랑 돌아오지 말았으면 좋겠어! 삼촌 미워!”“미안해, 유리야.”신유리는 그제야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내 양엄마는 윤희 이모뿐이야! 삼촌 같은 양부는 싫어! 미워!”구경민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아이는 벌써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저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만 나왔다.주광수가 다가와서 그를 불렀다.“대표님.”구경민은 고개를 돌리고 힘없이 그에게 물었다.“시키는 거 다 처리했어?”주광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 처리했어요. 가장 어린 여자는 대표님이 놓아주라고 해서 그냥 보냈어요.”“그래.”주변을 둘러본 주광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대표님, 사모님은요…?”조금 전까지 여기 있던 사람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을까?구경민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사람을 보내서 따라가고 있어. 아마 멀리 가지는 않았을 거야. 우리도 가자.”주광수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누굴… 따라가요?”구경민은 질문에 대답 대신 이런 질문을 했다.“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야?”주광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대표님은 한 번도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한 적은 없지요. 중동 전쟁에 나갔을 때 길을 지나가다가 밥도 못 먹을 지경이 된 가정
주대규!네 시간 전에 하유권의 집 앞에서 구경민과 충돌했던 늙은 영감이었다.칠순이나 넘은 영감이 고윤희를 자신의 여자라고 박박 우겼다.그런데 고윤희가 스스로 주대규를 찾아오다니?구경민은 정말이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다가갔다.“대표님!”주광수가 다급히 그를 뒤에서 불렀다.요즘 고윤희를 찾아다니기 시작하면서 구경민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그는 충동적이고 예민하게 변했으며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불과 세 시간 전에 고윤희가 같이 안 돌아가겠다고 못을 박았는데 지금 가면 그녀의 심기만 더 건드리는 게 아닐까?주광수는 이러다가 그가 또 매몰차게 거절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주광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그런데 그렇게 앞으로 다가가던 구경민이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저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듣고 싶어. 너무 멀어서 잘 안 들려.”말을 마친 그는 고윤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대문 가까이로 간 주광수와 구경민은 관목 아래에 몸을 숨겼다.이때, 마침 노인이 고윤희에게 말했다.“윤희야, 난 여기까지만 동행할게. 네가 무사히 살 곳을 찾은 것 같아서 안심했어. 혼자라도 괜찮다면 너는 여기서 살아. 난 이만 가볼게.”노인의 말투에는 힘이 없었다.고윤희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머니도 저를 버리시는 건가요?”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우리 딸… 이 어미는 이제 늙었어. 아들은 심산 속에서 총을 맞아 죽고… 난 그냥 진수 따라 가고 싶은 마음뿐이야.”“죄송해요,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고윤희는 자책의 눈물을 흘렸다.“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진수 오빠도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제가 어머니를 보살피게 해주세요. 우린 살아야 해요. 아이는 출산하면 다른 집에 입양 보내고 어머니 따라 저도 죽을 거예요. 그때가 되면 산으로 들어가서 진수 오빠를 찾으러 가요. 만약 시신이 아직 거기 있다면 그 옆에서 같이 생을 마감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훌륭하고 착한 여자는 더 이상 구경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그들이 한숨을 쉬는 사이, 별장 대문이 열렸다.주대규가 문을 열고 나왔다.그는 노인을 부축하고 서 있는 고윤희를 보자 놀란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너… 구 대표님이랑 간 거….”고윤희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주 사장님….”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호흡을 가다듬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에게 잡혀왔을 때 그때 알았어요. 사실 주 사장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것을요. 저에게도 참 잘해주셨죠. 하유권처럼 저를 학대하지도 않으셨잖아요.”“제가… 임신한 몸이지만 그래도 잠은 같이 잘 수 있어요. 명분도 필요 없고 돈도 싫어요.”“그냥 저와 제 어머니에게 먹을 것과 있을 곳만 주시면 돼요….”“그래도 될까요, 주 사장님?”고윤희는 간절한 표정으로 주대규를 바라보았다.주대규는 한참 말이 없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야, 임산부! 너 내가 조금 전에 무덤까지 갔다가 간신히 도망친 거 알아?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나도 하유권처럼 땅에 묻혔어.”“아직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고.”주대규는 말을 하면서도 수시로 식은땀을 훔쳤다.많이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고윤희가 여기 오기 전에 이미 그는 하유권이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들어서 알고 있었다.서울에서 왔다는 구경민은 무고한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다.그리고 자신이 뱉은 말은 무조건 실행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주대규를 놓아주었다는 건 그의 목숨을 취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게다가 주대규는 특별히 선을 넘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몇 년 전에 돈 좀 벌었다고 백해시에서 왕노릇을 했던 게 전부였다.위법 행위나 인간성을 저버린 짓은 하지도 않았다.그래서 구경민도 그에게 응징을 가하지 않은 것이다.하지만 주대규는 이번 사건으로 고윤희에게 흥미가 떨어졌다.이 여자를 받아주었다가 시끄러운 일에 너무 많이 휘말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서울 구경민과 엮인 여자를 누가
구경민은 아버지뻘 되는 영감에게 무릎 꿇고 받아달라고 사정하면서까지 그의 손길을 거부하는 고윤희를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자존심도 상하고 그녀의 단호한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거대한 좌절감이 몰려오고 분노마저 치솟았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여전히 조용하게 주대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고윤희를 바라보았다.주대규도 너무 냉철한 인간은 아니었는지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말했다.“야, 임산부! 난 말이야. 네가 임신했다고 싫은 게 아니야. 죽은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부양하려는 마음은 갸륵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난 널 받아줄 수는 없어. 넌 서울 구경민 대표의 여자잖아.”그러자 고윤희는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주 사장님, 제 모습을 봐봐요. 서울 구 대표가 정말 저를 사랑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럼 그 사람이 멍청한 거죠. 어떤 남자가 저 같은 것을 원하겠어요?”“걱정하지 마세요. 구경민… 구 대표는 저를 버렸어요. 그 사람이 저를 원했다면 어머니를 모시고 제가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고요.”주대규는 말문이 막혔다.솔직히 며칠 전에 보였던 고윤희의 행동에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고 그냥 보내자니 불쌍했다.다시 생각해 보면 얼굴도 꽤 예쁘고 분위기가 있었다. 행색은 정말 초라해도 귀티 나는 분위기는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것이었다.역시 대도시에서 살다 와서 그런가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아이만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잘하면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잠깐 고민을 마친 주대규가 말했다.“그럼 앞으로 내 말만 따르겠다고 약속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약속할 수 있어?”고윤희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시키는 건 뭐든 다 할게요!”“그럼 만약에 말이야….”주대규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그는 사전에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일을 시키는 악덕 사장은 아니었다.“사실 내 생각은 이래. 난 너를 정부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네. 그건 저도
눈 깜빡할 사이에 신유리는 어느덧 18살이 되었다.벌써 대학교에 다닐 나이었다.그녀의 남편 부소경은 곧 쉰 살을 앞둔 사람이라 구레나룻이 하얗게 변해버렸다.그녀와 부소경 두 사람이 함께 파란만장을 겪은 시간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갔다.너무 빨랐다."영감."신세희가 그를 불렀다.부소경은 고개를 돌려 신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신세희는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영감 아니에요? 당신은 곧 50대이고 나는 이제 겨우 40대인데, 난 할멈이 아니지만 당신은 그냥 토종 영감이잖아요! 봐봐요, 당신 지금 구레나룻도 하얗게 변해버렸잖아요. 결혼식 날에 염색 좀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싫어! 난 남들이 나를 와이프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얘기하길 바란단 말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가꿔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부소경은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와이프에게 말했다.하늘도 무심하지!신세희는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늙지 않았다!40대에 들어선 사람이 어찌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부소경은 자신의 젊은 와이프를 보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와이프와 결혼식을 올릴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그리고 마침내 그날은 경치가 예쁘고 날씨가 맑게 갰으며 딱 좋은 기온에 바람도 없었다.그날 두 신인은 남성 최고급 호텔에서 더블 결혼식을 올렸다.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남성 및 글로벌 인사들이었다.신세희와 부소경, 엄선희와 서준명은 모두 친척이 적었지만 네 명의 친척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덕이 남성 호텔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두 신인 커플이 사람들의 시야에 나타났다. 비록 젊은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웠다.엄선희의 부모는 기쁜 마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의 엄선희가 또다시 돌아왔다.2년 동안 여러 번 수정을 마친 덕에 엄선희는 원래 모습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돌아왔다.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이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이번 결혼식의 모든 주최와 비용은 신세희와 부소경이 부담했다.엄
엄선희는 자신의 아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감격과 억울함 때문에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이윽고 엄씨 어르신도 두 모녀를 꼭 끌어안았다. 한 가족이 성공적으로 상봉했다.아니, 이제는 다섯 명이고, 서준명까지 더하면 총 여섯 명이었다.여섯 가족은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참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마구 흘렸다.간호사도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한참 지나서야 엄씨 어르신과 엄씨 부인은 엄선희를 놓아주었다."됐어, 얘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 우리 집으로!"나금희는 고개를 들어 엄선희를 바라보았다. 비록 원래 얼굴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녀의 아이가 맞았다. 사오 년 전에 실종됐던 아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그동안 엄선희는 희귀병을 앓게 되었지만 우연히 받은 치료 때문에 성공적으로 완치되었고 이로 인해 피와 혈액형이 바뀌게 되었다.엄선희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가짜 엄선희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아무튼 그녀의 딸 엄선희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행운아였다.4,5년 동안 겪은 고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파란만장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그 고난이 아이의 재산으로 될 이고 앞으로 아이는 이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아낄 줄 알며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아주 좋았다.엄선희의 복귀에 엄씨 가문은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온 남성 사람들이 서준명의 아내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윽고 전해진 소식은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명과 엄선희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었다."이 일은 이미 남성 전체에 퍼졌어요. 결혼식은 대체 언제 할 것 같아요?"여유시간에 신세희가 장난식으로 엄선희에게 물었다.엄선희는 옆에 앉아있는 반명선을 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명선 씨가 내 얼굴을 다시 원상 복구시켜 주겠대요. 하지만 천천히 되돌리려면 2년은 걸린대요. 난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서준명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왜 그래, 아들?"서씨 부인은 이미 세 아들을 잃었고 남은 아들이라곤 서준명 한 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어머니, 그냥 운명이 장난치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군요, 모든 게 다 하늘의 뜻이었어요!"서준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서씨 부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러니, 얘야?"서준명은 울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이제야 알겠어요. 하늘이 왜 엄선희 씨한테 사오 년 동안 이런 수고를 겪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하늘은 비록 그녀에게 잔인한 고문을 내렸지만 마지막엔 결국 해피엔딩을 선물했잖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진짜 죽은 사람은 우리 엄선희 씨 아니겠어요? 나의 엄선희를 살렸잖아요."아들의 말에 서씨 부인은 감격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래, 결국 마지막에 행운을 맞이한 사람은 바로 우리 엄선희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하느님도 아껴주시는 엄선희. 준명아, 빨리 선희를 데려와, 그동안 그 애가 얼마나 수고가 많았겠니."서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몸을 돌리자마자 그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아빠, 우리 엄마를 데려오려는 거예요?"단이가 서준명에게 물었다.서준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미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엄마 안 데려오면 내가... 진짜 아빠 때릴 거예요!"미미는 점점 박력 넘치는 모습으로 컸다.게다가 오빠도 그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서씨 가문 마당에서 고양이랑 다투든 강아지랑 다투든 그녀는 줄곧 이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미미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다.서준명은 웃으며 미미를 품에 껴안았다."아빠는 맞는 거 무서워해. 그러니까 미미가 아빠 때리면 아빠는 아파서 울 거야. 그래서 아빠가 미미 말에 따를거야. 오늘 당장 엄마 데려올게, 어때?"두 아이는 엄마를 데려온다는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엄마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
죽기 직전까지도 가짜 엄선희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두 눈을 똑똑히 뜬 상태로 자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이대로 틀어질 줄 미처 몰랐다. 결혼식만 마치면 진짜 엄선희를 대신해 남성에서 상류사회를 누리는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총살당하고 말았다.과연 누구일까?그녀는 이유를 알기도 전에, 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아쉬움은 결국 그녀의 몸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얼마나 억울했으면 심장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감지 못한 걸까?서준명도 깜짝 놀랐다.그는 원래 미란다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계획이었기에 오늘 경찰들도 이들을 죄다 잡아갈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타이밍에 미란다가 암살당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범인은 대체 누구일까?서준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들은 오늘 이곳에서 범인들을 완벽히 체포하려던 계획이었기에 츄리닝으로 무장한 경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든 경찰도 많았다. 모두 미란다를 잡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었다. 하지만 미란다 대신 미란다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차 안에 있던 구릿빛 피부 뚱보는 엄선희를 사살하려던 자신의 치밀했던 계획을 뚫고 이토록 많은 경찰들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그는 작전도구를 숨기기도 전에 경찰에게 그만 체포당하고 말았다.정말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미란다가 엄선희 얼굴로 성형하여 그녀의 신분을 도용한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초라하게 마무리되었다.경찰은 구릿빛 피부 뚱보를 잡고 취조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해외에 있는 서준명의 세 형님이 엄선희를 죽이라고 보낸 사격수였다.이 남자는 남성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씨 가문을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내내 엄선희를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다가 어렵게 엄선희가 나타나 기회를 잡고 죽이게 되었으나 손쉽게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서준
두 여직원은 봉쇄형 유리차를 끌고 나왔다. 유리차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있었다.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뚫고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가짜 엄선희는 홀린 듯이 반지를 바라보았다.주얼리샵 맞은편에 주차하여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구릿빛 피부 뚱보도 덩달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구릿빛 피부 뚱보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세상에! 저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저토록 비싼 반지를 선물하는 거야! 저 여자는 죽어 마땅해! 죽어 마땅하다고!"한편 주얼리 샵안, 서준명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바라보았다."내가 선물한 반지는 어때, 마음에 들어?"가짜 엄선희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좋아, 여보 너무 좋아! 너무 마음에 들어!""이 반지는 원래 4년 전에 선물하려던 건데, 아쉽게 됐네, 그때는...""괜찮아, 여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비록 4년정도 늦게 선물 받았지만 결국 내 손에 끼워줬잖아. 이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가짜 엄선희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빨리 껴봐, 보여줘!"서준명이 제촉하며 말했다."하하. 알겠어!"말을 마친 서준명은 반지를 꺼내 정중하게 가짜 엄선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그순간 가짜 엄선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렸다.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었다.서준명!남성 두 번째 재벌이자 남성 귀공자인 서준명이 드디어 그녀에게 값비싼 반지를 선물한다고?와! 그녀는 너무 행복했다!…그 순간 가짜 엄선희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그녀는 행복에 젖어 서준명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듣지 못한 게 아니었다.그녀 자신을 엄선희라 생각하고 다닌 탓에 서준명이 그녀의 본명을 외칠 때에도 눈치채지 못했다.서준명이 또다시 물었다."미란다 씨, 행복해?""응? 당신..은..?"가짜 엄선희는 그제서야 서준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홀 안 세 테이블에 빽빽이 앉아있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들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왜 엄선희가 가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 걸까?사람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닐까?"아니에요, 형사님, 저희는... 남성 서씨 가문 도련님 서준명 씨의 친구들입니다. 서준명 씨 아내를 구해준 보답으로 집 두 채를 선물한다고 했는데, 혹시 잘못 찾아오신 건 아닌가요?"바로 그때 진미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경찰들에게 물었다.아무도 진미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몇몇 경찰들이 나서서 그들의 휴대폰을 몽땅 수거했다.한 명도 빠짐없이.진미리는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서준명 씨의 친구예요.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서준명 씨가 알면..."한 경찰이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희가 잡으러 온 것은 바로 서준명 씨 친구들인 당신들입니다!""네? 왜요?"진미리는 의아했다.사실 그녀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여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자신의 동생은 서준명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로 성형했고 서준명도 동생을 아내로 받아들였는데 이를 사기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돈도 한 푼 뺏지 않았는데?게다가 살인 방화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신분만 도용했을 뿐인데, 아니, 서준명이 가짜 엄선희를 아내로 인정했으니 신분 도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신분 도용도 아니었다.때문에 지금 진미리와 그녀의 공범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경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미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당신도 모르나요?"진미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우리는 서준명 씨의 친구들이에요. 게다가 서준명 씨는 남성에서 유명한 사람이고요. 서준명 씨도 당신들이 우리를 잡으러 왔다는 사실을 아나요?""알죠, 서준명 씨가 신고했으니까!"진미리와 그녀의 동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하나같이 동상처럼 굳
"2천억이라니! 서씨 가문 형제들과 완전히 등 돌리려는 셈 아닌가! 서준명이 엄선희를 저토록 사랑하다니! 저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반드시 죽일 거란 말이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공손한 태도로 서준명의 큰형에게 물었다."사장님, 명령만 내리세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까요! 지금 당장 없애버릴까요!""안돼!"서준명의 큰형이 다급히 말렸다."지금은 죽일 타이밍이 아니야. 보는 눈이 많아서 자리를 피하기 어려울 거야. 나한테 충성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데 너까지 잃을 수는 없어. 밖에서 처리하고 발 빼기 쉬운 곳으로 골라. 지금은 아니야!"구릿빛 피부 뚱보가 곧바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를게요. 그럼 시끌벅적한 장소를 골라 저 여자를 죽여버릴게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뒤 구릿빛 피부 뚱보는 은밀히 홀 안의 상황을 관찰했다.한편 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함께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모두에게 물었다.모두 전에 가짜 엄선희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었다.서준명은 전에 이 사람들에 대해 전부 조사를 마쳤었다. 사기조작단과 마찬가지였다!총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가짜 엄선희의 가족들이었다.오빠와 언니, 형수와 형부, 그리고 고모 일곱 명과 이모 여덟 명.남은 건 그녀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부하들이었다.서준명은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정말 비겁하기도 하지!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억울한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가짜 엄선희가 계획한 사기단에 가담한 공범들이다.그들이 엄선희에게 입힌 피해는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그들은 그의 두 아이까지 해치려고 했다!서준명이 어찌 그들을 또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술을 한 바퀴 권하자마자 서준명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떠내 연락을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
서준명의 말에 진미리는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휴, 어떻게 매번마다 서준명 씨한테 신세를 지겠어요, 아무... 아무것도 아니에요.""어머, 언니, 어려운 일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 하세요. 제 남편은 남성에서 두 번째로 능력 있는 남편이에요. 못 하는 게 없다니까요."가짜 엄선희는 고개를 들어 애교 섞인 말투로 서준명에게 말했다."내 말이 맞지, 여보?"서준명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가짜 엄선희를 보며 말했다."자기 생각은 어때? 당신이 선택한 남편인데 틀릴 리가 있을까?""당연히 없지!"가짜 엄선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준명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를 품에 안자 순간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이 가짜 엄선희는 확실히 진짜 엄선희와 아주 닮았다. 만약 이 엄선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한 상태로 있었다면 서준명은 당연히 그녀를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짜 엄선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짜 엄선희라면 그에게 이런 요구를 건네진 않았을 것이다.엄선희는 태어날 때부터 공주님처럼 자라 고생한 적이 없지만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엄선희는 돈에 아무런 개념도 없는 여자였다.게다가 사치품도 사지 않는 사람이었다.심지어 그녀는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가격의 사치품에 손대지 않았다.서씨 가문에 시집와서도 그에게 이것저것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자신의 남편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는 짓도 절대 하지 않았다. 남편의 자금을 외부에 흘러 나가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난감한 일까지 시키다니!엄선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가짜 엄선희는 탐욕스럽기 그지 없었다!그럴수록 너무 괘씸했다!하지만 이럴수록 서준명은 더더욱 표정을 가다듬고 가짜 엄선희를 보듬어 주었다."여보, 이 사람들을 사심 없이 도와주는 걸로 봐서 전에 당신한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맞지? 그럼 나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이분들이 없었다면 평생 내 아내를 보지 못하고 살 뻔했으니까
가짜 엄선희는 자연스럽게 동의했다.3일 후, 그들은 남성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엄선희의 은인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외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남성 현지인도 있었다. 서준명이 사람들을 대충 살펴보자, 익숙한 중년 여성이 있음을 발견했다.그 중년 여성은 미루나와 같은 집에 살며 미루니에게 DNA 검사를 제안한 여자였다.서준명은 가짜 엄선희와 손을 잡고 그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저를 아직 기억하십니까?”가짜 엄선희는 즉시 그 중년 여성을 소개했다."여보, 여긴 나한테 많은 도움을 준 언니 중 한 명이야. 이름은 진미리. 이 언니는 내가 유산했을 때를 포함해 항상 날 보살펴 줬어. 내 생각에는 이 언니에게 집 두 채는 드려야 할 것 같아!” 그러자 진미리라는 중년 여성이 즉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선희 씨를 돌봐주었던 것도 제 공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절대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진미리는 말을 하며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 씨, 사실 저는 오랫동안 미루나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나는 그 여자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 엄선희 씨는 일이 있어 남성에 오지 않았기에 준명 씨와 미루나가 마주치는 걸 정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DNA 검사를 하라고 권한 거고요. 요즘은 DNA가 가장 정확하잖아요? 그러니 DNA 검사를 하고 나니 미루나가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잖습니까.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겉모습도 전혀 다르고,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억지로 남의 아내인 척하는 건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준명 씨와 선희 씨의 부모님 모두 현명하셔서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미루나에게 정말로 당할 뻔했습니다. 그럼 선희 씨도 힘들어서 울다 지쳐 쓰려졌겠지요…” 진미리의 말을 들은 서준명은 침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집을 두 채 드리면 될까요?” 서준명은 이미 사람을 보내 확인을 마친 상태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