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민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힘껏 걷어찼다.구경민이었다.전해민은 비틀거리며 현관 벽에 등을 부딪쳤다.이때, 마침 하유권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전해민은 그의 몸으로 쓰러졌고 하유권도 그녀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반평생 집에서 왕노릇을 하고 살아온 하유권은 몸을 일으키며 욕설을 퍼부었다.“누가 지금 내 집에서 난동을 부리는 거야? 죽고 싶어?”그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현관에 긴 코트를 입고 찬바람을 풀풀 풍기며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남자는 날카로운 맹수의 눈빛을 하고 하유권을 노려보고 있었다.놀란 하유권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을 더듬었다.“구 대표님… 언제 오셨어요? 오시기 전에 연락 좀 주시고 오시지 그랬어요…. 그럼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을 텐데요…. 아, 아니구나. 백해시에는 공항이 없었지….”말을 마친 하유권은 구경민의 등 뒤에 서 있는 신민지를 바라보았다.신민지는 이미 겁에 질려서 입술은 파랗게 질리고 온몸을 떨고 있었다.그녀는 두려운 눈빛으로 구경민과 주광수를 번갈아보고 있었다.주광수가 고윤희의 앞에 달려가더니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사모님!”현장에 있던 모두가 당황했다.구경민에게 발로 차여서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던 전해민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녀의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그녀의 하얀색 드레스에 떨어졌다.하지만 전해민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이 당황한 목소리로 주광수에게 물었다.“저년을… 아니 저 여자를 지금 뭐라고 불렀어요?”“열쇠 가져와!”주광수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인 고윤희를 바닥에 앉히고는 하유권에게 다가가서 그의 불룩한 배를 발로 밟으며 다그쳤다.“열쇠 어딨어!”“열쇠라니요? 뭘… 말씀하시는 거죠?”“사모님 손발을 묶고 있는 쇠고랑 열쇠 말이야!”주광수는 분노한 목소리로 다그쳤다.“열쇠요?”하유권의 이마에서 진땀이 흘렀다.열쇠는 그에게 없었다.그가 주대규의 손에서 고윤희를 데려올 수 있었던 건 그가 방심한 틈을
부하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하유권에게 발길질을 해대는 남자와 그의 뒤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카키색 코트를 입은 남자에게서 지옥에서 온 냄새가 났다.남자가 개처럼 버려진 여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그는 큰 손으로 쇠고랑을 찬 더러운 그녀의 손을 만졌다.“어때? 경민 씨? 이제 좀… 만족해?”고윤희는 그의 손길을 피하며 그에게 물었다.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눈에서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그녀는 멍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이 말했다.“아마 당신은 이런 문명사회에서 사람이 이런 취급을 받을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야.”“하지만 난 이미 적응했어. 어릴 때, 언니 오빠들과 다른 동생들은 다 자기 침대가 있고 방이 있었지만 난 복도에서 잠을 자야 했어.”“가끔 그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따분해지면 나를 밧줄로 묶어서 개처럼 끌고 다녔었지.”“그때는 애들이 어려서 그렇다고 생각했어. 성인이 된 후로도 누군가가 나한테 개목줄을 채우고 끌고 다닐 줄은 몰랐어.”“이게 당신이 보고 싶었던 모습이야?”“난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당신이 나한테 이러는지 모르겠어.”고윤희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구경민을 바라보았다.“윤희야….”구경민은 잔뜩 갈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미안해, 윤희야.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너무 늦게 왔어.”말을 마친 그는 고윤희를 품에 안았다.남자는 아무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에 쇠사슬을 두른 여자를 껴안았다.남자의 고급진 코트와 여자의 더럽고 남루한 옷차림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지만 그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를 품에 안은 순간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윤희야, 난 살면서 한 번도 지금처럼 두려웠던 적이 없어. 전장에 나가서 싸워도 보고 더 잔인한 장면도 목격했지만 두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런데 지난 보름 동안 정말 두려웠어.”“당신을 영원히 못 만날 것 같아서 두려웠어. 살아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지금이 꿈
구경민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윤희야, 너랑 장난하고 싶은 마음 없어. 처음부터 내 의사가 아니었다고. 이건 내 말을 믿어줘.”고윤희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가능한 일이야?”그녀는 고개를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구경민과 자신을 바라보았다.“당신과 나는 같은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 아니야. 조금 전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개처럼 끌려서 여기까지 왔어. 그 인간들이 당신 지시가 없이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 그런데 지금 나한테 같이 집에 가자고?”“개목줄로 부족했어? 다음엔 또 뭐로 고문할 거야? 당신 부인 최여진 씨는 어쩌고 혼자 왔어?”“사모님, 저희한테 사모님은 당신 한 명뿐입니다.”고윤희의 쇠고랑을 잘라낸 주광수가 울먹이며 말했다.고윤희는 천천히 주광수에게 시선을 돌렸고 주광수가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저 광수예요. 저 기억하시죠? 처음에 산 속에서 제가 사모님과 한진수 씨를 보내드렸잖아요. 저희 집사람이 아이를 출산했을 때 사모님이 문병도 오셨잖아요.”고윤희는 정신병동에 오래 갇혀서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멍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고윤희는 다시 시선을 구경민에게 돌렸다.주광수의 말을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경민 씨.”고윤희는 갈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고문하든 그렇게 해야 당신이나 당신 부인 마음이 풀린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무고한 사람은 건드리지 마. 내가 원하는 건 그거 하나야. 어머니는 칠순이 넘었어. 풀어주면 알아서 방랑생활을 하든 하실 거야. 제발 그렇게 해줘.”“그분은 나랑 상관없는 사람이야. 그 아들이 나를 구해주고 내가 그 아들과 같이 살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아들이 죽었어! 그러니까….”고윤희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한진수 씨는 황야에서 고독하게 죽었어. 시신조차 처리해 주지 못했다고. 어머니 혼자 힘으로 복수하고 싶어도 그럴 능력도 힘도 없어. 그러니 제발 그 불쌍한 노인을 풀어줘.”“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어떤 고문이든
“당신은 믿지 못하겠지만 20일 전에 당신의 행복을 바라고 동부지구를 떠난 건 사실이야. 당신과 한진수가 평생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어.”구경민은 또박또박 진심을 다해 그녀에게 말했다.“그거 알아? 당신과 나도 참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항상 헌신하는 쪽은 당신이었어. 당신은 항상 내 감정이나 입장을 배려해 주었지만 난 항상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지. 그래서 당신에게 미안했어. 당신이 한진수 씨 앞에서 웃고 있는 걸 보면서, 바닥에 떨어진 남은 반찬들을 주워담으면서도 웃는 당신의 얼굴을 보면서 놓아주기로 한 거야.”“그때 당신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으니까. 그래서 당신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었어. 당신에게 돈을 준 것도 일단은 당신이 있을만한 거처를 찾기를 바랐어. 돈만 주고 돌아갔던 건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였어. 난 내 업무를 모두 소경이에게 넘기고 동부지구로 돌아올 계획이었어.”“당신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평생 당신과 당신 남편, 그리고 아이를 바라만 보며 살려고 했어. 특별히 원하는 건 없었어. 그냥 당신과 아이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만 있다면 만족할 수 있었어.”고윤희는 여전히 아무 동요도 없는 표정으로 구경민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기괴한 웃음이었다.마치 목각 인형이 웃는 것 같은 기계적인 웃음소리.그 웃음소리에 옆에 있던 주광수마저 놀라서 흠칫 어깨를 떨었다.하지만 고윤희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문을 여태 받았다면 그게 누구라도 지금쯤 정상적인 반응을 보일 수 없을 것이다.고윤희는 건조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경민 씨, 이쪽으로 올 때, 산사태를 만나지 않았어?”구경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산사태 때문에 3일이나 늦어진 거야.”“차라리 거기서 죽지 그랬어?”당황한 구경민의 눈빛.“지금 돌아가서 산사태에 깔려 죽으면 당신이 한 말이 진심이었다고 믿을게.”고윤희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구경민은 아주 담담한 말투로 말했지만 현장에 있던 인간들은 전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구 대표님….”신민지는 어떻게든 구경민의 마음을 돌리려고 사정했다.“저는 단지 사모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에요. 사모님께서 대표님의 아이를 임신했잖아요. 지금 집에서 쉬고 계신다길래 따로 연락을 안 드렸던 것뿐이에요.”신민지는 최여진이 이미 5일 전에 구성훈의 도움을 받아 해외로 떠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최근에 최여진에게 연락을 자제한 것도 최여진 몰래 구경민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최여진처럼 구경민의 옆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더라도 애인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중간에 최연진에게 경과를 보고하게 되면 최여진은 분명히 그녀와 구경민의 접촉을 방해할 거라고 생각했다.최여진은 그만큼 의심이 많은 여자였다.그래서 며칠간 최여진에게서 연락이 없자 혼자 상상하며 좋아했던 신민지였다.그녀는 최여진이 이미 도망갔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신민지는 여전히 최여진이 구경민의 아내라고 믿고 있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주광수가 그녀를 발로 걷어찼다.신민지는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바닥을 굴렀다.“이 망할 여자야! 너 때문에 우리 대표님이 무슨 고생을 했는지 알아? 대표님이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사모님 걱정을 하셨는데? 네 손에서 사모님이 견디지 못하고 나쁜 마음을 먹을까 봐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래서 가장 먼저 너와 접촉을 시도한 거야! 넌 그것도 모르고 아직도 헛소리를 지껄이다니!”주광수의 말에 신민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의 동공이 순간 크게 확장되었다.내가 뭘 놓치고 있었던 거지?“잘 들어, 이 망할 여자야! 우리 대표님한테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모님은 한 명뿐이었어! 그 사람이 고윤희 씨야! 네가 말하는 최여진이라는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제 편하게 지옥으로 보내줄게!”“잠깐!”구경민이 갑자기 주광수를 멈춰세웠다.주광수가 흠칫하며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대표님….”구경민은 신민지에게
“억울해요. 저 정말 억울해요!”“저… 저도 억울해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저도요….”“고… 고윤희 씨…. 갇혀 있는 동안 저는 당신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건드리지도 않았다고요.”하유권의 뭇 애인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여자가 고윤희에게 기어와서 사정했다.그녀는 고윤희의 팔을 붙잡고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했다.어차피 죽을 거 한 번 노력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다.“사… 사모님…. 저는 집이 가난해서 하유권의 돈을 빌렸다가… 어쩔 수 없이 팔려온 몸이에요. 그래서 다른 여자들이 당신을 괴롭힐 때 저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거 잊었어요? 이틀 전 밤에 제가 몰래 빵도 가져다드렸잖아요.”어린 여자는 조급한 마음에 고윤희의 앞에서 절까지 했다.“저 올해 겨우 열여덟 살이에요. 아직은 죽고 싶지 않다고요….”고윤희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너도 불쌍한 애구나… 하지만 난… 나에게는 너를 도와줄 힘이 없어. 나 역시도 구경민의 사냥감에 불과하니까….”소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언니… 죄송해요. 언니도 어쩔 방법이 없는 거 알면서 난감하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말을 마친 소녀는 전해민과 하유권에게 달려가서 그들을 상대로 발길질을 해댔다.“짐승보다 못한 것들! 당신들은 인간도 아니야!”“고윤희 씨랑 구 대표님 사이에 있었던 일로 당신들이 피해라도 봤어?”“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사람을 학대해! 개목줄로 사람을 묶고 끌고 다니다니! 당신들은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야! 다 죽어버려! 특히 하유권 당신! 내가 당신을 죽여버릴 거야!”그녀는 전해민, 신민지에게도 화풀이를 한 뒤, 남은 세 여자에게 다가갔다.“그리고 당신들! 당신들이 정말 고윤희 씨를 괴롭힌 적 없어? 당신들이 사람이야? 신민지한테 팔려온 임산부라고, 고윤희 씨의 전남자친구가 서울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질투해서 고윤희 씨 머리채를 마구 잡고 휘둘렀잖아!”“그런데 무슨 착한 사람 코스프레야? 다 죽
한 경호원이 달려들어오며 말했다.“나이가 좀 든 영감인데 당장 사모님을 내놓지 않으면 이곳을 쓸어버리겠다고 하네요.”구경민은 할 말을 잃고 고윤희를 바라보았다.고윤희는 약간 움찔하는가 싶더니 가만히 있었다.끌려가던 하유권, 신민지, 전해민 3인방이 앞다투어 소리쳤다.“대표님,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주세요!”“대표님, 저 주대규라는 사람 알아요!”“대표님, 제가 주대규 애인이에요. 제가 대표님을 도와 주대규를 처리해 드릴게요.”구경민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다가 귀찮은 듯이 손을 흔들었다.“저것들은 거실에 가두고 내가 직접 나가보지! 하유권이랑 비슷한 쓰레기면 같이 묻어버리면 돼! 어차피 그러려고 여기 온 거니까!”말을 마친 구경민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고윤희의 어깨에 걸쳐준 뒤, 그녀를 품에 안고 밖으로 향했다.고윤희는 여전히 목각인형처럼 멍한 표정으로 피하지도 몸부림치지도 않았다.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체념한 것 같았다.구경민은 고윤희를 안고 별장 밖으로 나갔다. 하유권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영감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안을 노려보고 있었다.그는 고윤희를 안고 나온 구경민을 보자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어디서 온 양아치야? 그 곱상한 얼굴에 흠집 한번 내줄까?”구경민이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너 누구야!”“내 여자를 이리 내!”영감이 말했다.이때 고윤희가 갑자기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대규를 향해 소리쳤다.“주대규 씨, 빨리 도망가요! 이 일에 휘말리지 말아요. 이 사람 서울에서 왔어요. 당신은 이 사람 상대가 될 수 없어요. 뼈도 못 추리고 땅에 파묻혀서 죽을 거라고요! 빨리 도망가요!”구경민은 고윤희를 바닥에 내려놓고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저 사람이 당신을 도와줬어?”고윤희는 구경민의 말을 무시하고 주대규만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주대규 씨, 빨리 가라니까요? 저랑 같이 죽을 필요는 없잖아요. 저 때문에 또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건 싫다고요!”주대규
타이어와 지면이 마찰하는 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렸다.하지만 구경민은 사람을 보내 그를 쫓지 않았다.이곳에서 조금만 세력을 갖췄다 하는 사람들이면 고윤희를 죽도록 괴롭혔다. 조금 전에 그 어린 열여덟 살짜리 소녀도 그렇게 애원했지만 고윤희는 그녀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그런데 오히려 고윤희는 늙은 주대규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권고했다.그렇다는 건 주대규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다는 것을 설명했다.구경민은 담담한 눈빛으로 고윤희를 바라보다가 그녀를 품에 안으며 물었다.“저 사람은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나 봐?”고윤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구경민 씨, 백해시에서 나한테 잘해준 사람은 없어. 조금 전 그 여자애가 몰래 나한테 빵을 가져다준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들이 먹다 남은 말라 비틀어진 빵이었지. 이상한 생각하지 마. 아무도 나한테 잘해주지 않았어. 어차피 죽을 거 무고한 사람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한결 평온해진 말투로 말했다.“당신이 나를 학대했던 인간들을 산에 묻어버리려 한다는 거 들었어. 하지만 난 왜 그러는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 어차피 나도 죽을 텐데 이유라도 좀 알고 죽으면 안 될까?”그녀는 자조적인 미소를 짓더니 계속해서 말했다.“됐어. 이제 와서 이런 얘기가 무슨 소용이라고. 어차피 내가 이렇게 말해도 당신은 들어주지 않을 거잖아. 당신 마음대로 해.”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구경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구경민은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윤희야, 어떻게 해야 내 말을 믿어줄 거야? 20일 전에 해만현을 떠날 때, 당신과 한진수 씨를 축복하겠다는 말은 진심이었어.”“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경이에게 맡기고 평생 너희 가족들 주변을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했어. 최여진이 당신에게 그런 짓을 할 줄은 나도 몰랐어.”“다 내가 소홀해서 벌어진 일이야. 이건 내 실수야. 이 실수 때문에 난 죄책감에 매일 밤 시달렸어. 내가 경솔해서 당신이 그 고생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