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지? 이름만 들어도 별로야. 얼굴 믿고 까부는 거지. 그 여자 멀리 쫓아버려. 더러워. 돌아가서 내가 직접 혼내줄 거야!”그때 최여진은 의기양양하게 생각했다.어차피 곧 귀국할 거고 돌아가면 신민지라는 여자부터 족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인기 좀 있다고 감히 구경민을 유혹하려 들어? 주제도 모르고!’하지만 몇 해가 지나고 놀다가 지친 최여진은 구자현으로부터 구경민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사실은 그 집 가정부로 일하는 고윤희라는 말을 전해 듣고 신민지라는 이름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당연히 가장 위협적인 존재부터 제거해야 했다.신민지는 어차피 지금쯤 어느 시골 구석에서 청춘을 허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잊고 있었던 여자인데 이번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2주 전, 최여진은 다시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정보원에게 이렇게 물었다.“이 신민지라는 여자, 혹시 서울에서 한때 이름을 알렸던 그 연예인이야?”정보원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여자 맞아요. 듣기로는 서울에서 꽤 잘나갔다고 했는데 높으신 분을 잘못 건드려서 매장당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연예계로 복귀할 수 없으니 지방에서 늙은이 정부나 하면서 돈을 빨아먹겠죠.”최여진은 냉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이용해 먹기 딱 좋은 케이스네.”그녀는 정보원에게 돈을 지불한 뒤, 바로 신민지를 찾았다.“나 구경민 씨 약혼녀야.”최여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겁에 질린 신민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사… 사모님, 저… 저는 구 대표님 때문에 연예계에 얼굴을 못 내민지 몇 년이나 됐어요. 그 뒤로 다시는… 구 대표님 주변에 가지도 않았어요.”최여진은 신민지의 턱을 잡고 차갑게 말했다.“겁먹지 마. 너를 도우러 온 거니까.”“고윤희 기억해?”최여진이 물었다.고윤희 얘기가 나오자 신민지는 마음 속에 오랫동안 억눌렀던 분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그때 그녀는 구경민을 유혹하려고 여러 배역을 거절하면서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고수했다
신민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사모님, 혹시 한진수에게….”최여진은 짜증스럽게 호통쳤다.“난 그런 거칠고 투박한 남자한테 흥미 없어! 그냥 고윤희가 고통스러워하는 꼴을 보고 싶을 뿐이야. 신민지, 명심해! 고윤희를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목숨은 살려둬. 그리고 한진수는….”한진수 얘기가 나오자 최여진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녀는 신민지에게 한진수를 어떻게 처리할지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민지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공손한 말투로 최여진에게 말했다.“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시키는 대로 할게요.”“악랄한 방법일수록 좋아. 하지만 죽이지는 마!”최여진이 말했다.“네, 사모님!”신민지는 최여진 앞에서 개처럼 꼬리를 흔들었다.“그리고 네가 잘하면 내가 경민 씨한테 잘 얘기해서 서울이나 남성으로 돌아가서 연예계에 복귀시킬 수도 있어.”최여진은 거드름을 피우며 신민지에게 말했다.“저…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왜? 내 능력 못 믿어?”최여진이 반문했다.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말을 이었다.“경민 씨는 그렇다 쳐도 우리 가문도 서울에서 꽤 잘나가는 의사 가문이야. 우리 시댁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서울에서 내 말 한마디면 못 이룰 게 없어. 알겠어?”“그리고 우리 남편은 남성에도 꽤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남성 부소경 대표랑 내 남편은 생사를 같이한 친구니까.”“연예계로 돌아갈 거면 경제가 더 발달한 남성이 낫지. 앞으로 남성에서 잘하면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도 있어!”최여진의 당당함에 신민지는 큰 충격을 받았다.남성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그건 어떤 느낌일까?그렇게만 된다면 그녀는 이런 지방 촌구석에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되고 58세나 먹은 늙은 영감의 정부로 살지 않아도 된다. 영감은 매일 그녀의 몸 이곳저곳에 멍자국을 남겼지만 실질적으로 그녀를 만족시킨 적은 없었다.그녀는 지금 욕망에 목말랐다.“남성에 가서 내가 보내준 남자의 수발
“그러니까 누가 남의 남자를 건드리래?”“내가 구경민 씨랑 만날 때 두 사람은 이미 헤어진 상태였잖아!”“헤어져도 그 사람은 내 남자야! 나랑 헤어졌어도 다른 여자랑 같이 있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너 같이 비천한 년은 더 안 돼!”최여진은 자신의 이기적인 소유욕을 남김없이 드러냈다.그녀는 악의 가득한 눈빛으로 고윤희를 쏘아보며 말했다.“넌 그냥 내 남편의 애완견에 불과했어! 그것도 아주 멍청하고 주제도 모르는 개 말이야!”“그 사람이 나랑 헤어졌어도 나를 10년이나 기다린 걸 알아? 내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널 내쫓았잖아!”“뻔뻔한 년! 내 남편의 집에서 쫓겨난 주제에 아직도 그 남자가 널 구해주러 올 거라고 생각해?”“전남편 같은 소리하고 있네. 구경민 씨가 언제 너랑 결혼했어? 결혼식 올렸어?”“구씨 가문에서 널 며느리라고 인정한 적 있어? 아무것도 없으면서 여기서 내 남자의 이름을 팔아?”최여진은 한발한발 위협적인 표정으로 고윤희에게 다가갔다.고윤희는 절망한 얼굴로 뒤로 뒷걸음질 쳤다.그녀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고윤희가 말이 없자 옆에 있던 신민지까지 합세해서 비아냥거렸다.“고윤희, 난 그때 네가 구 대표님 애인인 줄 알았지. 사모님께서 얘기해 주지 않았으면 네가 이 정도로 쓰레기일 줄은 몰랐어.”“어차피 싸구려인 몸, 어제 내 친구들이 왔을 때는 왜 그렇게 비싸게 굴었어? 감히 누구한테 사기 쳐?”“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해놓고 여기서 식당을 차려? 너한테 질병이라도 옮으면 어쩌려고! 너 피해자들한테 배상해 줄 돈은 있어?”고윤희는 한없이 뒷걸음질 치다가 어머니의 옆까지 갔다.늙은 어머니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아 주었다.노인은 더 이상 울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고윤희에게 말했다.“윤희야, 떨지 마. 이럴 때일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우리 같이 문제를 해결하자. 조급해하지 마.”어머니의 따뜻한 위로에 고윤희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침착한 목소리로 신민지에게 말했다.“내가 무슨 일을 하다 왔든 네
고윤희가 뒤돌아서자 최여진은 20억이 든 카드를 그녀의 코앞에 대고 흔들거렸다.“내가 말했잖아. 내 남편이 너한테 장난친 거라고. 바보 같이 이번에도 속았어?”고윤희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최여진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나한테 한번 속았으면 좀 경각심을 챙겨야지 두 번이나 속아? 멍청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알면서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건지….”말을 마친 최여진은 카드를 가지고 뒤돌아섰다.“안 돼….”고윤희는 절망한 얼굴로 울음을 터뜨렸다.“그 카드는 내 아이의 양육비야. 돈 돌려줘. 내 아이의 양육비란 말이야….”카드 안에는 정확한 액수가 들어 있었다. 카드를 받은 날 고윤희는 한진수와 함께 은행으로 가서 금액을 확인했다. 비밀번호는 고윤희의 생일이었다.돈을 확인한 뒤, 고윤희는 구경민이 생각처럼 매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감사함을 느꼈다.그리고 구경민과 최여진이 다시 화해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그녀는 그게 서로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런 결과일 줄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20억 카드를 최여진이 이렇게 쉽게 가져간다고?그래도 잠시나마 감사하다고 생각했고 세상의 따뜻함을 느꼈었는데 이것 역시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나는 결국엔 저들의 노리개였던 거야?’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내 아이 양육비 돌려줘. 이건 내 아이가 응당 받아야 할 돈이라고!”하지만 최여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버렸다.‘임신하면 멍청해진다더니 그 말 틀린 게 하나도 없네!’여기로 오기 전, 최여진은 사람을 고용해 고윤희의 방에서 카드를 훔쳤다.하지만 비밀번호를 풀 방법이 없었다.‘구경민 나쁜 자식, 고윤희한테 이렇게까지 하다니! 통도 크게 20억이나 줘?’최여진은 짐작가는 비밀번호를 죄다 시도했지만 돈을 출금하는데 실패했다.사실 고윤희가 앞에서 카드 한번 흔들어 줬다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건 예상 밖이었다.‘하! 재밌네!’최여진은 우아한 자태를
그의 손목에서는 피가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진수 오빠, 어떻게 된 거예요?”고윤희는 다급히 달려가서 한진수를 부축하며 물었다.아들이 다친 걸 본 한진수의 어머니도 울며 달려왔다.“진수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누구한테 맞았어?”한진수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니! 우리가 함정에 당했어요. 윤희 데리고 빨리 도망가요. 멀리 갈수록 좋아요!”“안 돼….”고윤희가 울며 물었다.“도대체 누가 이렇게 잔인한 짓을 벌인 거예요?”한진수는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우리는 저 사람들 상대가 안 돼. 오빠는 괜찮으니까 어머니 모시고 멀리 도망가. 앞으로 다시는 구경민이랑 엮이지 말고 그 사람 믿지 마. 내 말 들어. 어머니 모시고 도망가. 빨리!”“안 돼요….”고윤희는 울며 절규했다.밖에서 사람들이 안으로 쳐들어오더니 가게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그리고 어딘가에서 약봉지를 찾아냈다.하얀색 분말이 든 봉지였다.어제의 느끼남이 한진수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한진수! 역시 너희들 문제였어! 증거까지 나왔는데 이제 어떻게 발뺌할 거야? 당장 우리랑 같이 경찰서로 가자!”한진수가 몸부림치며 소리쳤다.“경찰서는 내가 알아서 갈 거야!”“네 마음대로는 안 될 거야!”느끼남이 코웃음치며 말했다.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람들이 달려와서 한진수를 억지로 끌고 밴에 태웠다.“진수 오빠!”고윤희는 미친듯이 소리쳤다.그녀는 노모를 부축해서 문밖까지 그들을 따라갔다.하지만 가게 밖에는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조차 없었다.자신의 차로 다가간 최여진은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고윤희에게 말했다.“고윤희! 내 남편의 세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남성은 몰라도 이 일대에서 그 사람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어!”최여진은 요즘 자신이 황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윤희는 절망한 눈으로 최여진을 힐끗 보고는 다시 애타는 눈으로 한진수를 바라보았다.이제 최여진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따질 여유는 없었다.그녀는 자
“진수 오빠, 저 사람들 도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고윤희는 임신한 몸으로 한진수에게 달려갔지만 누군가가 그녀를 가로막았다.이때, 최여진도 현장에 도착했다.그녀는 한진수와 고윤희의 사이를 가로막고 서서 악마 같은 얼굴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진수,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데 원하면 원한다고 대답해.”한진수도 겁에 질려 다리를 떨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한진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원하죠! 당연히 원해요! 최여진 씨, 목숨만 살려주면 평생 서울 근처에는 가지도 않을게요. 구 대표님에게도 연락하지 않을게요. 그러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최여진이 웃으며 말했다.“살려줄 수는 있지. 기회를 준다고 했잖아? 내 말만 잘 들으면 당신 살려주고 서울에 가는 걸 허락해 줄 수도 있어. 내가 기분 좋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 수도 있어.”한진수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말만 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할게요. 개처럼 바닥을 기며 짖으라고 해도 그렇게 할게요.”지금 이 순간, 한진수는 모든 존엄을 내려놓았다.목숨에 비교하면 존엄이나 자존심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다.그에게는 보살핌이 필요한 노모가 있었다.그리고 임신한 몸으로 그와 생사를 함께할 아내도 있었다.그러니 죽을 수 없었다.죽고 싶지 않았다!그는 살게만 해주면 개 시늉이 아니라 똥을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었다.한진수는 간절한 눈빛으로 최여진을 바라보았다.최여진은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좋아! 그 태도 좋아! 여긴 깊은 산중이라 아무도 당신이 뭘 하는지 볼 사람 없어. 당연히 증거도 안 나올 거고. 이곳에서 저 임신한 여자 옷을 벗기고 나무에 묶어. 그리고 여기 저 남자들이 저 여자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있어.”“당신은 지켜만 보고 있어. 저 사람들이 일을 마치면 당신이 직접 발로 저 여자 배 속의 아이를 죽여.”“난 이미 방안을 제시했어. 이게 구경민 씨의 뜻이야. 내 말 따르지 않으면 우리 구경민 씨가 기분이 매우 안
“못 들었어? 최여진이 원하는 사람은 네가 아니야. 저 여자는 날 죽이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살아서 도망가서 나를 구해줘. 배속의 아이 무조건 지키고, 어머니도 부탁해.”“어서 가!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나가야지!”“어머니! 아들이 못나서 죄송해요. 너무 가슴 아파하지는 마세요. 이게 우리들의 운명인 걸 어쩌겠어요. 도망가요, 어머니….”생사가 오가는 순간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한진수의 모친이었다.70세가 넘은 노인이 어떻게 눈 뜨고 아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본단 말인가?하지만 나이를 먹은만큼 노인은 이 세상의 잔인함을 잘 알았다. 노인이 담담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엄마는 너랑 같이 죽을 거야. 그러니 엄마 혼자 두지 마.”“윤희야, 어머니 모시고 여길 떠나!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그렇게 해줘!”한진수가 분노한 목소리로 목 놓아 소리쳤다.결국 고윤희는 노모를 부축해서 차에 올랐다.구경민의 옆에서 시중을 들며 그녀는 상당한 운전기술을 연마했다.그녀는 목 놓아 우는 노모를 애써 무시하고 미친듯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신고, 신고해야 해! 빨리 신고하러 가야 해!”하지만 차가 백 미터를 못 가서 고윤희는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를 들었다.고윤희에게는 낯설지 않은 소리였다.구경민은 종종 그녀를 데리고 실내 사격훈련장으로 갔다. 그리고 지금 들은 소리는 그 소리와 너무도 비슷했다.그녀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고윤희는 눈물도 말라버린 듯했다.뒤에 타고 있던 노모도 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잠시 후, 노쇠한 노인의 통곡소리가 산속을 울렸다.“내 아들….”“진수야….”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고윤희는 차에서 내려 미친듯이 한진수에게 달려갔다. 몇 미터 밖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진수 오빠….”그녀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윤희는 달려가서 눈을 감은 채 쓰러진 한진수를 끌어안고 절망한 눈물을 흘렸다.“진수 오빠, 진수 오빠….”“우리 오빠 어떡해….”“오빠….”
고윤희가 내렸던 차 주변을 이미 다섯 명의 사람이 둘러싸고 있었다.신민지가 그들의 중심에 서 있었다.네 사람은 이미 실신한 노인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안 돼… 어머니… 우리 어머니한테 손 대지 마!”고윤희는 미친듯이 차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그녀는 뛰어가면서 소리쳤다.“너희들은 이미 그분의 아들을 죽였어! 70세가 넘은 노인을 납치해서 어쩌려는 거야? 우리 어머니 풀어줘! 내가 너희들을 따라갈게! 제발 어머니 건드리지 마!”최여진은 선심을 쓰는 척, 고윤희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고윤희, 걱정하지 마. 저 노인을 어떻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내 차 줄 테니까 그 차로 따라가!”고윤희는 의심의 눈초리로 최여진을 쏘아보며 물었다.“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최여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말했잖아. 난 한진수만 맡았어. 네 목숨은 신민지에게 달렸다니까? 난 네 목숨 따위에는 관심 없어!”말을 마친 최여진은 우아하게 뒤돌아섰다.차에 오른 고윤희는 쓰러진 한진수의 시체에 눈길을 줄 여유조차 없이 미친 듯이 차를 운전해 신민지를 뒤따라갔다.한진수는 고윤희를 살리려다가 죽었다.만약 그의 어머니를 지켜내지 못하면 한진수를 볼 면목이 없었다.그리고 어머니는 그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다.35살이 될 때까지 고윤희가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엄마 사랑이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는 두 명의 시어머니가 있었다. 한 명은 팔려간 집의 전남편의 어머니었고 매일 그녀를 노예처럼 부렸다.그 뒤에 만난 구경민의 부모님은 고윤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구경민의 부친은 고윤희를 집안의 시종이나 가정부 정도로 생각하고 대했다.이 세상에서 고윤희를 진짜 사람으로 봐준 사람은 지금의 어머니뿐이었다.그녀의 유일한 가족이자 어머니.목숨을 걸고서라도 어머니를 구해야 했다.한진수가 말했던 것처럼 죽어도 같이 죽을 것이다.지금 고윤희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그녀는 죽을 각오로 어머니를 납치한 차량을 쫓아갔다. 죽더라도 어머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