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경은 그의 말투에서 진한 질투와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이건 경민이 너답지 않아. 너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 아니잖아.”한참이 지난 뒤에야 부소경은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부소경이었다면 그는 절대 그 남자를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구경민은 달랐다.“그 아이는 내 아이라고! 내 아이가 다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걸 어떻게 참아?”구경민은 미친듯이 소리쳤다.부소경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그럼 고윤희 씨를 끌고 와.”“왜? 그렇게 못 하겠어? 어제 너한테 그러지 말라고 한 건 고윤희 씨가 나쁜 선택을 할까 봐 두려워서였어. 그런데 지금 보니까 네 상태가 더 심각해 보여. 그러니까 그냥 고윤희 씨 여기로 데려와. 나랑 세희가 고윤희 씨를 설득해 볼게.”구경민은 고통스럽게 머리를 쥐어뜯었다.“소경아, 이미 늦었어.”“어젯밤에는 둘이 여태 합방도 하지 않았다고 했잖아.”“하지만 윤희의 마음이 그 남자한테 가 있어.”구경민이 힘없이 말했다.부소경은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과거 그가 신세희를 찾아다닐 때도 이런 심정이었다.곡현에서 신세희를 찾았을 때, 부소경은 서시언을 죽여 버릴 생각까지 했다.하지만 그는 충동을 참고 몰래 신세희를 오랫동안 관찰했다.그리고 그녀가 서시언을 남자로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들은 6년 동안 남매처럼 지냈고 같은 방을 사용하지 않았다.그러던 어느날 밤, 신세희의 집밖에 잠복해 있던 부소경은 그녀가 꿈을 꾸며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다.그녀는 꿈에서도 부소경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소경 씨, 나 버리지 마세요. 제발 나 버리지 마세요. 나랑 결혼해 주면 안 돼요? 나 소경 씨 사랑해요.”그래서 부소경은 신세희를 데리고 돌아올 때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구경민의 상황은 좀 달랐다.고윤희는 완전히 구경민을 포기한 것 같았다.“넌 윤희 씨 사랑해?”부소경이 물었다.“당연한 소리를!”구경민이 물었다
“고마워, 친구야!”부소경은 웃으며 대답했다.“우리는 생사를 나눈 형제야. 고맙다는 인사는 우리 사이에 필요 없어!”“끊을게.”구경민이 말했다.“그래.”전화를 끊은 뒤, 부소경은 엄선우에게 연락해서 말했다.“엄 비서, 이건 무조건 비밀로 해야 해. 일단 경민이 모르게 그 남자를 빼돌려. 그리고 충분한 돈을 줘서 남자를 해외로 내보내.”엄선우는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대표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사람들은 대표님이 냉혈한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인자하신 분인 줄은 누가 알겠어요.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의 라이벌을 살리려 하다니요….”부소경은 웃으며 대답했다.“그 사람이 잘못한 건 없는데 어떻게 죽게 내버려두겠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고윤희 씨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해.”“네, 대표님!”전화를 끊은 뒤, 부소경은 중얼거리듯 말했다.“경민아,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한편, 전화를 끊은 구경민이 다리 쪽을 바라보는데 그 남자가 고윤희를 부축해서 트랙터에 태우고 있었다.남자는 공사장에, 고윤희는 식당에 일하러 갈 시간이었다.구경민은 그들의 뒤를 따라 고윤희가 일하는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고윤희가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윤희야, 앞으로 다시는 이런 곳에서 일하지 않게 해줄게.”“나랑 같이 집에 돌아가면 가정부가 다 알아서 해줄 거야.”“네가 먹고 싶은 건 뭐든지 가져다가 네 앞에 대령할 수 있어.”“앞으로 내가 족욕 시켜주고 칫솔 준비해 주고 매일 아침에 깨워줄게. 아침도 내가 할 거야.”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건지, 안으로 들어가던 고윤희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고 잠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하지만 구경민은 선탠한 차 안에 앉아 있었기에 밖에서는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그는 담담한 말투로 송 기사에게 명령했다.“출발해.”송 기사가 놀라서 물었다.“대표님, 이대로 가실 거예요?”구경민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잘 안 보이는 곳으
그 소리를 들은 부소경도 멈칫하며 그에게 물었다.“경민아, 지금 뭐라고 했어?”하지만 그 순간에 전화가 끊겼다.구경민은 부소경과 통화하는 사이에 고윤희가 눈앞까지 다가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윤희가 창문을 두드리자 송 기사가 창을 내렸다.그리고 아무 예고도 없이 차 안에 있는 구경민을 발견했다.“언제부터 여기 있었어?”구경민을 본 고윤희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오히려 구경민이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윤희야….”고윤희는 참담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구경민 씨, 그냥 나 좀 한번에 죽여주면 안 돼?”그녀가 사라진지 4개월, 그녀를 다시 만난 구경민은 여전히 꿈을 꾸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 대하는 것처럼 차가웠고 7년을 동거한 사람에게 느끼는 정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지만 고윤희의 태도는 단호하고 냉정했다.그녀가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심사숙고했을지 말투에서 느낄 수 있었다.구경민은 그들이 과연 사랑했던 적이 있었나 의심할 정도였다.그녀는 그에게 담담하고 당당한 말투로 죽여달라고 말했다.구경민은 가슴에 돌을 얹은 것처럼 무겁고 갑갑했다.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한마디했다.“윤희야, 살이… 많이 빠졌네.”고윤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구경민 씨는 전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여전히 웃으며 사람을 갈구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야. 날 죽일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내 앞에서 미소 짓고 있으니까 말이야.”구경민이 말이 없자 고윤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구경민 씨랑 오래 같이 살아서 그런지 얼굴만 딱 봐도 알 것 같아.”구경민이 물었다.“왜 내가 당신을 죽이러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고윤희는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구경민 씨, 그런 질문은 좀 재미없어.”“당신이 나를 내쫓을 때 난 살기를 느꼈어. 나 정말 산에서 죽을 뻔했어. 죽기 전
오히려 전보다 더 아름다웠다.아이를 가진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침착함이 있었고 임신으로 생긴 주근깨도 사랑스러웠다.그리고 미련 없는 눈빛으로 구경민을 바라보는 그 눈망울 마저도 아름다웠다.예전의 고윤희는 항상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구경민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지금은 경계하지만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다.큰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팽팽한 분위기가 이어졌다.아무리 구경민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억지로 차에 태울 수는 없었다.그는 고윤희를 아래위로 훑다가 그녀의 손에 든 봉지에 시선이 닿았다.고윤희가 말했다.“이런 거 볼 필요 없어! 내 돈 주고 산 음식이 아니야. 마음 착한 여기 사장님이 남은 반찬을 싸주셨어.”오늘은 운이 좋게도 식당에 단체손님이 들어왔다.오후에 도착한 손님들로 인해 긴 회식이 이어지고 여 사장은 그들이 아주 늦게까지 있을 것 같다면서 고윤희에게 설거지는 내일 해도 되니 일찍 돌아가서 쉬라고 했다.그녀가 나오기 전, 여 사장은 또 남은 반찬을 싸서 그녀에게 주었다.“알바, 반찬이 형편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먹어.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꼭 데워서 먹어. 그래야 탈이 안 나.”고윤희는 사장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며칠 전부터 구석진 곳에 같은 차량이 세워져 있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그런데 오늘 따라 가슴이 불안하고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조금 전에 식당에 들어갈 때도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반찬을 들고 밖으로 나온 고윤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검은색 차량을 발견했다.현지 차량 번호였고 평범한 국산차였다.그래서 이 차 안에 구경민이 있을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남은 반찬을 들고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걸어왔다.그리고 그 차에 구경민이 타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끝내는 찾아왔구나.소리 없이 나를 관찰하고 있었구나.두 사람이 맞은편
눈을 뜬 고윤희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구경민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뭐라고 했어?”구경민은 다가가서 그녀를 안아 차에 태우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아냈다.그녀의 분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당신 말이 맞아. 나 당신을 며칠 동안 따라다녔어. 당신이 놀라서 나쁜 생각을 할까 봐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어. 난 당신을 죽이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 당신이랑 같이 집에 돌아가려고 왔어.”고윤희는 구경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다가 손에 들고 있던 반찬 봉지를 바닥에 버렸다.안에서 반찬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구경민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했다.먹다 남은 새우, 그리고 갈비와 다 식은 만두까지 있었다.구경민은 가슴이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이런 걸 가져가서 먹으라고 했다고? 이거 사람이 먹는 음식 맞아?”고윤희는 대답 대신 이를 갈며 말했다.“구경민 씨, 죽이고 싶으면 빨리 죽이라니까! 내가 이렇게 앞에 가만히 서 있잖아! 내가 뭘 그렇게 미운 짓을 했어? 내가 얼마나 미웠으면 이렇게까지 해? 이제 제발 끝내줘. 내 목숨을 줄게! 더 이상 나 괴롭히지 마!”고윤희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내가 맞혀봐? 당신 최여진을 사랑하지? 최여진이 나를 생포해서 데리고 오라고 시켰어? 그리고 나를 천천히 괴롭힐 작정이야?”“나 알아! 4개월 전에 그 여자가 남자들을 고용해서 내 몸을 더럽히려 했는데 결국 실패했잖아! 그래서 그게 억울해서 이러는 거지?”“구경민 씨! 내가 당신 여자친구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어?”“난 당신 옆에 있을 때 그 여자의 존재도 몰랐어!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 걸 알았지만 날 사랑해달라고 강요한 적도 없잖아! 가라고 해서 군말 없이 떠났잖아!”“왜 당신 여자친구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임신까지 한 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남자들에게 겁탈당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고 싶어? 당신은 당신 약혼녀랑 같이 와인 한잔하면서 구경하려고?”“경민 씨, 그런 거야?”이렇게 말
“난 혼자 화장실 변기에 두 시간을 앉아 있었어!”“내가 몇 번을 씻었는지 알아?”“내가 긴급 피임약을 얼마나 먹었는지는 알아?”“이미 그런 약들에 내성이 생겨서 효과도 없대!”“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피임에 신경 쓰지 않았어!”“최근 2년 사이에 임신이 더 쉽게 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난 그때 당신의 아이를 너무도 갖고 싶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원하지도 않는데 아이를 가지고 당신을 압박할 생각은 없었어.”“나 당신이랑 7년을 같이 살았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당신들 상류사회는 원래 그런 곳이니까!”“몇십 년 전에 서씨 어르신도 그랬고 그 뒤로 세희 씨의 시아버지 부성웅 씨도 그랬어!”“당신도 그 사람들이랑 다를 게 없어!”“난 아이를 가지고 당신을 협박할 생각 없어! 아이를 가지게 된 건 사고야! 병원에 가서 수술하려고 했어! 그런데 의사가 내 몸이 더 이상 낙태 수술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어!”“이 아이까지 수술하면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다고!”여기까지 얘기한 고윤희는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이제 그런 건 상관없어. 어차피 우린 살아남지 못할 걸 알아. 구경민 씨, 난 당신이랑 돌아가지 않을 거야.”“지금 나한테 말해줘. 내가 꼭 죽어야만 하는 거야?”고윤희는 구경민을 똑바로 바라보며 절망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러고는 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사방을 둘러보던 고윤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사방에서 차량과 경호원들이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그들은 그녀의 주변을 겹겹이 포위했다.식당 사장과 직원들까지 궁금해서 달려 나왔다.여 사장이 중얼거리듯 말했다.“쟤 보통내기가 아닐 줄 알았어. 옷은 정말 촌스러운데 피부가 정말 곱거든. 절대 궂은 일을 하며 살다 온 사람이 아니야.”“처음에는 남편이랑 싸우고 가출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봐.”“어느 재벌이 키우던 장난감이었네. 애를 배고 도망쳐 나와서 그 아이로 재벌을 협박하려다가 들킨 거지. 불쌍한 여자야.”
한진수는 고윤희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윤희 너 바보야? 구경민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 해? 배속의 아이도 생각해야지!”고윤희는 울며 소리를 질렀다.“어서 가요! 나 그냥 내버려 두세요! 오빠가 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난 네 가족이야! 너 출산하면 우리 결혼하기로 했잖아! 내가 어떻게 너를 모르는 척해!”구경민은 어이가 없었다.나를 앞에 세워 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이지?거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구경민은 다가가서 한진수의 뒤통수를 잡고 강제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한진수도 기골이 장대한 남성이지만 구경민은 그보다 키가 훨씬 더 컸다. 그는 마치 작은 동물을 잡듯이 한진수를 끌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그를 옆으로 던져 버렸다.바닥에 가슴을 부딪힌 한진수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한진수는 겁에 질린 눈으로 구경민을 바라보았다.서울에서 호의호식하며 일생을 산 재벌집 귀공자가 권세는 있지만 자신이 체력적으로 그에게 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싸움실력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아마 한진수 같은 남자가 세 명 있어도 구경민의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오빠!”고윤희는 울며 그에게 달려가서 한진수를 품에 안았다.“오빠, 괜찮아요? 오빠… 피 나요. 어떡해요, 오빠….”그녀는 울며 분노한 눈빛으로 구경민을 쏘아보았다.“우리 진수 오빠 죽이지 마… 내가 당신 따라갈게. 나한테는 무슨 짓이든 해도 좋아. 내가 갈게.”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기어서 구경민 앞으로 갔다.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광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그는 달려가서 억지로 고윤희를 일으켜 세웠다.“사모님, 오해세요. 대표님은 사모님을 죽일 생각이 없어요. 그냥 사모님이랑 같이 집에 돌아가고 싶어서 그랬어요. 당신은 사모님이잖아요!”주광수는 고윤희를 부축해서 구경민에게 다가갔다.고윤희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그녀는 그제야 주광수를 알아보고 말했다.“광수 씨? 광수 씨였군요. 저번에 우리를 도와줘서 고마웠어
“하지만, 이건 모두 응당한 대가에요.”“저는 원래 존엄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람처럼 살게 됐어요. 매일 고급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참석하고 돈 많은 사모님 행세를 한 대가.”“매일 그런 날을 보내고 있던 중, 구경민 전 여자친구가 나타나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두 사람이 아직도 서로를 못 잊는 것 같아 제가 먼저 떠났어요.”“이제야 알게 됐어요. 제가 유일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은 오빠와 어머님 두 사람이 있는 곳뿐이에요.”“오빠와 함께 지내면서 진짜 남편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비록 우리가 아직 함께 있지 않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오빠를 저의 남편으로 생각하고 있어요.”“그리고 어머니. 나를 낳아 준 엄마 아빠가 잘 살아 계시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가족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어요. 구멍 난 저의 바지와 신발을 꿰매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처음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받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두 달 전, 제가 심하게 열이 났던 날에 어머님은 아이가 잘못될까 봐 밤새 저의 이마에 물수건을 올리고 간호해 줬어요.”“어머님은 세상에서 저를 제일 많이 아껴주는 사람이에요.” “어머님과 오빠가 있어 이곳에서 버틸 수 있었어요. 이제야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거예요.”“오빠, 저 지금 많이 행복해요.”“오빠와 어머니는 처음부터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아왔지만 저는 아니에요.”“저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집에서 개 돼지 취급을 받고, 결혼하고 시부모님 집 하녀가 되었으며 구경민의 애완동물로 살아갔어요. 저는 사람답게 살아 본 적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오빠, 저 하나 때문에 오빠의 아까운 생명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어머님과 함께 열심히 지내면 돼요. 열심히 돈을 모아 예쁜 아내를 맞이해요. 함께 아이도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오빠, 제발 제 말 좀 듣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요!”고윤희는 울부짖으며 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