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혼자 화장실 변기에 두 시간을 앉아 있었어!”“내가 몇 번을 씻었는지 알아?”“내가 긴급 피임약을 얼마나 먹었는지는 알아?”“이미 그런 약들에 내성이 생겨서 효과도 없대!”“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피임에 신경 쓰지 않았어!”“최근 2년 사이에 임신이 더 쉽게 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난 그때 당신의 아이를 너무도 갖고 싶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원하지도 않는데 아이를 가지고 당신을 압박할 생각은 없었어.”“나 당신이랑 7년을 같이 살았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당신들 상류사회는 원래 그런 곳이니까!”“몇십 년 전에 서씨 어르신도 그랬고 그 뒤로 세희 씨의 시아버지 부성웅 씨도 그랬어!”“당신도 그 사람들이랑 다를 게 없어!”“난 아이를 가지고 당신을 협박할 생각 없어! 아이를 가지게 된 건 사고야! 병원에 가서 수술하려고 했어! 그런데 의사가 내 몸이 더 이상 낙태 수술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어!”“이 아이까지 수술하면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다고!”여기까지 얘기한 고윤희는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이제 그런 건 상관없어. 어차피 우린 살아남지 못할 걸 알아. 구경민 씨, 난 당신이랑 돌아가지 않을 거야.”“지금 나한테 말해줘. 내가 꼭 죽어야만 하는 거야?”고윤희는 구경민을 똑바로 바라보며 절망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러고는 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사방을 둘러보던 고윤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사방에서 차량과 경호원들이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그들은 그녀의 주변을 겹겹이 포위했다.식당 사장과 직원들까지 궁금해서 달려 나왔다.여 사장이 중얼거리듯 말했다.“쟤 보통내기가 아닐 줄 알았어. 옷은 정말 촌스러운데 피부가 정말 곱거든. 절대 궂은 일을 하며 살다 온 사람이 아니야.”“처음에는 남편이랑 싸우고 가출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봐.”“어느 재벌이 키우던 장난감이었네. 애를 배고 도망쳐 나와서 그 아이로 재벌을 협박하려다가 들킨 거지. 불쌍한 여자야.”
한진수는 고윤희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윤희 너 바보야? 구경민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왜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 해? 배속의 아이도 생각해야지!”고윤희는 울며 소리를 질렀다.“어서 가요! 나 그냥 내버려 두세요! 오빠가 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난 네 가족이야! 너 출산하면 우리 결혼하기로 했잖아! 내가 어떻게 너를 모르는 척해!”구경민은 어이가 없었다.나를 앞에 세워 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이지?거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구경민은 다가가서 한진수의 뒤통수를 잡고 강제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한진수도 기골이 장대한 남성이지만 구경민은 그보다 키가 훨씬 더 컸다. 그는 마치 작은 동물을 잡듯이 한진수를 끌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그를 옆으로 던져 버렸다.바닥에 가슴을 부딪힌 한진수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한진수는 겁에 질린 눈으로 구경민을 바라보았다.서울에서 호의호식하며 일생을 산 재벌집 귀공자가 권세는 있지만 자신이 체력적으로 그에게 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싸움실력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아마 한진수 같은 남자가 세 명 있어도 구경민의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오빠!”고윤희는 울며 그에게 달려가서 한진수를 품에 안았다.“오빠, 괜찮아요? 오빠… 피 나요. 어떡해요, 오빠….”그녀는 울며 분노한 눈빛으로 구경민을 쏘아보았다.“우리 진수 오빠 죽이지 마… 내가 당신 따라갈게. 나한테는 무슨 짓이든 해도 좋아. 내가 갈게.”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기어서 구경민 앞으로 갔다.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광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그는 달려가서 억지로 고윤희를 일으켜 세웠다.“사모님, 오해세요. 대표님은 사모님을 죽일 생각이 없어요. 그냥 사모님이랑 같이 집에 돌아가고 싶어서 그랬어요. 당신은 사모님이잖아요!”주광수는 고윤희를 부축해서 구경민에게 다가갔다.고윤희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그녀는 그제야 주광수를 알아보고 말했다.“광수 씨? 광수 씨였군요. 저번에 우리를 도와줘서 고마웠어
“하지만, 이건 모두 응당한 대가에요.”“저는 원래 존엄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람처럼 살게 됐어요. 매일 고급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참석하고 돈 많은 사모님 행세를 한 대가.”“매일 그런 날을 보내고 있던 중, 구경민 전 여자친구가 나타나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두 사람이 아직도 서로를 못 잊는 것 같아 제가 먼저 떠났어요.”“이제야 알게 됐어요. 제가 유일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은 오빠와 어머님 두 사람이 있는 곳뿐이에요.”“오빠와 함께 지내면서 진짜 남편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비록 우리가 아직 함께 있지 않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오빠를 저의 남편으로 생각하고 있어요.”“그리고 어머니. 나를 낳아 준 엄마 아빠가 잘 살아 계시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가족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어요. 구멍 난 저의 바지와 신발을 꿰매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처음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받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두 달 전, 제가 심하게 열이 났던 날에 어머님은 아이가 잘못될까 봐 밤새 저의 이마에 물수건을 올리고 간호해 줬어요.”“어머님은 세상에서 저를 제일 많이 아껴주는 사람이에요.” “어머님과 오빠가 있어 이곳에서 버틸 수 있었어요. 이제야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살 수 있었던 거예요.”“오빠, 저 지금 많이 행복해요.”“오빠와 어머니는 처음부터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아왔지만 저는 아니에요.”“저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집에서 개 돼지 취급을 받고, 결혼하고 시부모님 집 하녀가 되었으며 구경민의 애완동물로 살아갔어요. 저는 사람답게 살아 본 적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오빠, 저 하나 때문에 오빠의 아까운 생명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어머님과 함께 열심히 지내면 돼요. 열심히 돈을 모아 예쁜 아내를 맞이해요. 함께 아이도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오빠, 제발 제 말 좀 듣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요!”고윤희는 울부짖으며 구경
고윤희의 눈에 고인 눈물이 시선을 흐리게 했다. 그녀의 표정에서 구경민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다.그녀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네가 추악하다고 생각해 본 적 한 번도 없어.”“나는 그냥 네가 진수 오빠를 놓아줬으면 좋겠어. 진수 오빠는 이번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 오빠는 집에 보살펴야 할 어머니도 있어. 그러니까 그만 오빠를 놓아줘. 내가 너를 따라갈게. 제발…”고윤희의 절망 가득한 목소리를 들은 구경민의 가슴은 찢어질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고윤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러웠다.“내가 누구야!”그는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물었다.“구경민, 서울 구 씨 가문의 구경민.”고윤희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우리 무슨 사이야? 대답해! 우리 무슨 사이야!”고윤희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그의 손에 떨어졌다.“하, 하녀… 나는 구씨 가문의 하녀.”“그리고!”“나는… 구경민의 잠자리 파트너!”고윤희는 굴욕적인 표정으로 대답했다.“평소에 나를 뭐라고 불렀어? 잠자리를 할 때, 나를 뭐라고 불렀어! 잘 생각하고 대답해야 될 거야. 아니면 너의 진수 오빠는 당장 죽게 될 거니까.”“말해! 침대 위에서 절정의 순간에 네가 나를 뭐라고 불렀어! 대답해!”고윤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만 하염없이 흐를 뿐이다.지금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4개월 동안 사랑한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하염없이 부르며 외쳤다.“윤희야, 너는 존엄 있는 엄마가 될 사람이야! 윤희야 제발 정신 차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버티고 있어.”고윤희는 사정없이 머리를 저었다.그녀는 누구보다 존엄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이 세상에 그녀보다 더욱 존엄을 갈망하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죽게 생겼는데 존엄 따위가 뭐란 말인가?존엄은 조금도 필요 없다!그녀는 그저 한진수와 연로하
“고윤희, 나는 네가 지금 당장 구경민의 손에 죽었으면 좋겠어. 너를 절절하게 바라보는 저 남자와 함께! 제발 이 세상에서 사라져줘!”지금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구경민이 데려온 부하들과 고윤희, 그리고 한진수가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은 재빨리 자신들의 집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문틈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찬바람이 거칠게 부는 거리에는 구경민과 고윤희, 그리고 몇 발자국 뒤에 쓰러져있는 한진수가 전부였다.그리고 세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구경민의 부하들.모든 사람이 고윤희가 구경민을 부르는 호칭을 정확하게 들었다.구경민의 부하들은 구경민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 그들이 모시고 있는 구경민은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이고, 볼품없는 한 남자를 질투하고 있다.고윤희를 제일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주광수이다. 하지만 걱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구경민은 부소경만큼 독한 사람이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일은 닭의 목을 치는 것만큼 쉬운 일일 것이다.이 순간, 주광수는 고윤희를 걱정하는 것 외에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눈시울이 빨개진 구경민은 고윤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내가 네 남자라는 건 알고 있어?”“이 세상에 너보다 독한 여자는 없을 거야! 영원히! 우리가 그동안 몇 년을 함께 했는지 알아? 7년이야!” “7년 동안 너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파티에도 너와 함께 참석했어. 너는 내 아이도 품고 있잖아! 그런 네가 4개월 동안 나를 까맣게 잊어버린 거야? 그 짧은 시간 동안 저 남자 하나 때문에 너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상관하지 않고 저 남자를 구해주려는 거야?”“고윤희, 너는 지금 내 마음을 짓밟았어.”“이 세상에 나한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너를 제외한 그 누구도 나한테 상처를 주지 않아! 다른 사람들한테 내가 너를 죽인다고 했지? 내가 언제 너를 죽이려고 했어?”“너의 말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찔러 나를 죽이려고 했어!”“네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알기나 해?
구경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윤희는 더욱 세게 웃음을 터뜨렸다. “구경민, 게임의 룰은 네가 정했어. 나는 그 룰을 수년간 지켜왔고. 너는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을 거야. 그래도 너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나를 집에서 쫓아냈잖아?”“7년을 부부처럼 지내오면서 나는 줄곧 너를 내 남편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너는? 너는 단 1초라도 나를 너의 아내라고 생각한 적 있어?”“만약 있다면 너는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겠지?”“너는 우리가 처음 만난 그날부터 나를 너의 잠자리 파트너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잖아. 그동안 너는 너의 전 여자친구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던 거야.”“나는 우리의 관계가 바뀔 거라는 기대도 했어.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하니까. 구씨 어르신 생신날, 아버님께서 시끌벅적한 연회는 싫어하신다고 해서 간단하게 가족들만 모인다고 했을 때도 너는 그 나를 집에 혼자 내버려 뒀어. 아마 그날부터 나는 알게 되었을 거야. 나는 영원히 너의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걸.”“하지만 경민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했어. 명분 따위 없어도 늘 너의 곁에 있고 싶었어.”“나는 늘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지. 하지만 네가 싫다고 하니까 아이도 포기했어.”“내가 처음 임신했을 때, 너한테 우연으로 생긴 아이라고 할 때, 너는 나의 말을 믿지 않고 내가 일부러 너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생각했어.”“그래서 너는 직접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낙태 수술을 시켰지.”“그 후, 너는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했어. 병원에서 효과가 제일 좋은 피임약을 구매해서 내가 삼키는 것까지 감시했잖아.”“그리고 내가 2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제야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거야.”“그때도 나는 혼자 병원에 가서 낙태를 받았어.”“집으로 돌아오고 네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수고했다, 착하다. 구경민, 내가 그날 방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알아? 나는 내가 더 이상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그저 너의
“그런 건 당연히 생각하지도 않았겠지. 너는 나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그 집에서 함께 지낼 때, 네가 나를 어떤 눈빛으로 쳐다봤는지 기억해?”“내가 구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날, 돈도 휴대폰도 없어서 호텔에서 지내지 못했어. 구 씨 가문으로 돌아가 휴대폰과 갈아 입을 옷 몇 벌만 챙기려고 했던 것뿐이야. 절대 너한테 매달리려고 돌아간 게 아니라고!” “그날 밤, 나는 산에서 홀로 밤을 보냈어. 너는 내가 그긴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기나 해? 상상이라도 해봤어? 내가 얼마나 두려웠고 절망스러웠는지 알기나 하냐고? 너는 영원히 모를 거야. 나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으니까!”“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아.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외칠 수 있을 만큼 너를 사랑했어. 그래서 네가 나를 집에서 쫓아냈을 때 나는 단 한마디의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던 거야. 경민아, 대체 내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니?”“그 집에서 쫓겨나는 날, 나는 너의 앞에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어. 네가 나가라는 말에 나는 바로 집에서 나왔어. 구경민, 나도 사람이야. 나도 사람답게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어. 진수 오빠가 죽을 뻔한 나를 구해주고 아껴주며 사랑해 줬어. 어머니도 나를 많이 아껴주고 있어. 진수 오빠와 어머니와 함께 지낼 때, 나는 그제야 사랑받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 비록 우린 가난하고 도망칠 힘도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로를 믿고 아껴주며 지내고 있어.”“사랑받고 지내는 지금이 나는 너무 행복해.”“태어나서 지금까지 35년이라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사랑받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 구경민, 나는 평생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던 걸까?”“내가 대체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저질러서 사랑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까?”“너는 내가 지독한 사람이라고 했지. 7년 동안 너와 부부처럼 지내면서 4개월은 너를 완전히 잊으려고 노력했어. 내가 왜 너를 잊으려고 했는지 알아?
구경민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윤희만 바라보았다.항상 싱긋 웃으며 그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는 고윤희다. 집에서 쫓겨나는 그 순간까지 고윤희는 싱긋 웃으며 ‘나 갈게.’라고 말했다. 항상 쑥스럽게 웃기만 하던 그녀가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건 처음 보았다. 고윤희가 똑똑한 여자라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7년 동안 그와 함께 지낼 때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이제야 그녀가 한 말이 모두 그녀의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구경민이다.그렇다!고윤희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만 지적하느라 그동안 자신이 고윤희에게 했던 행동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직접 그녀를 집에서 쫓아냈다.그녀를 쫓아낸 후, 그녀가 어디서 지내는지, 지내는 동안 다른 사람이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쫓겨나는 그녀의 몸에 충분한 현금은 있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다.고윤희가 그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가 고윤희에게 베푼 사랑은 그녀에게 내린 은사와 같았다. 구경민은 미간을 찌푸리고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의 머리카락은 차가운 바람에 흩날렸고,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입술에는 핏기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고, 눈물자국은 차가운 공기에 그대로 얼어붙었다.불쌍하다…하물며 그녀는 임신 5개월을 한 몸이다.조금 전, 구경민이 그녀의 외투를 잡아당기자 단추가 모두 뜯겨져 임신한 배가 밖으로 드러났으며 무릎을 꿇은 두 다리는 뱃속에 있는 아이를 보호하며 벌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은 고윤희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다.그녀의 다리에 걸친 찢긴 바지를 본 구경민은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그 고통은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다.노숙자보다 처량한 모습을 한 여자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며 다른 남자를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 나를 죽이고 진수 오빠는 살려줘. 내가 너를 따라 갈게…”“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