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봉지 안에 들어 있는 반찬들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남성에서 몇 년 살기도 했고 아들이 공장 관리인으로 일했지만 노인은 이런 사치스러운 반찬은 거의 먹지 않았다.“어머니, 이따가 데워서 같이 먹어요. 새우가 칼슘이 풍부해서 노인한테 좋대요.”고윤희가 말했다.“그래, 그래. 만두는 일단 보관했다가 반찬 없을 때 데워서 먹자.”노인은 기쁜 얼굴로 말했다.세 사람은 웃고 떠들며 주방에서 부산을 떨었다.저택 밖에 세워진 차 안에서 구경민은 고배율 망원경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방 두 개에 다 창문이 있었고 반찬 냄새 빠지라고 창문을 다 열어 두었기에 안 쪽 상황이 똑똑하게 보였다.온 가족이 다 같이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자 구경민은 속이 쓰렸다.그와 고윤희는 같이 7년을 살았다.고윤희는 항상 배려심 많고 온화한 여자였지만 한 번도 그의 앞에서 시름 놓고 크게 웃어본 적 없었다. 그녀는 지금 아이처럼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에는 풍성한 식사가 차려졌다.세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한진수가 새우를 고윤희에게 권하자 고윤희는 웃으며 거절했다.“어머니 드려요. 칼슘 보충해야죠. 난 임신 중이라 해산물 많이 먹으면 안 돼요.”말을 마친 그녀는 새우를 발라 노인의 밥그릇에 놓아주었다.노인도 사양하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하지만 고윤희가 다시 새우를 발라서 권하자 노인은 극구 사양하며 고윤희한테 먹으라고 했다. 고윤희는 어쩔 수 없이 새우를 한진수의 그릇에 놓아주며 말했다.“진수 오빠, 많이 먹어야 해요. 우리 집에 노동력이라고는 오빠뿐이잖아요. 나와 어머니, 그리고 배속의 아이까지 오빠만 바라보고 있다고요.”한진수는 새우를 다시 고윤희의 접시에 놓아주었다.그녀는 더는 거절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오빠, 새우가 일곱 개나 있어요. 내가 세 개 먹을 테니까 오빠랑 어머니가 두 개씩 드세요. 계속 사양하지 말고요.”일가족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고윤희는 새우
고윤희는 누가 들을까 봐 작은 소리로 한진수의 귓가에 대고 말했지만 어려서부터 특수훈련을 받은 구경민의 청각은 남들보다 훨씬 뛰어났다.사실 이런 상황이 올 거라 어느 정도 예측하고는 있었다.두 사람이 같이 4개월을 생활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더 이상했다.하지만 직접 그 말을 들었을 때, 구경민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머릿속에 우뢰가 울고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저 집을 폭파시키고 싶었다.하지만 한진수의 말 한 마디가 구경민의 이성을 다시 돌려놓았다.한진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바보야! 내가 한 말 벌써 잊었어? 너 지금 임산부야. 아무 사고도 없어야 한다고. 너도 이 아이 놓치면 다시는 엄마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앞으로 우린 결혼도 할 건데 뭐가 그렇게 급해?”고윤희도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오빠, 오빠가 나를 구하고 벌써 4개월이 지났어요. 그 동안 한 번도 내 몸에 손을 댄 적 없잖아요. 오빠는 내가 싫어요?”“바보!”한진수가 웃으며 말했다.“네가 싫었으면 너를 업고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난 당연히 네가 좋지. 그래서 너를 다치게 할 수는 없어. 난 기다릴 수 있어. 너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가 끝나면 나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야!”“그때 가서 굶주린 늑대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지!”“농담도 참!”“원래 농담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내 마누라한테는 할 수 있지!”말을 마친 한진수는 부드럽게 웃었다.“어서 들어가서 자. 난 엄마랑 같이 저쪽 방에서 널 지킬게.”“잘 자요, 오빠.”그리고 방에서는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구석진 곳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구경민은 가슴이 울컥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다행이다!정말 다행이다!그의 아내는 아직 다른 남자와 살을 섞지 않았다.마음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주었지만.만약 오늘 두 사이에 뭔가 일어났다면 구경민은 이성을 잃고 그 남자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그날 밤, 구경민은 흥분에 잠에 들 수 없었다. 전날도 밤
남자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다른 때였다면 그녀의 이런 주동적인 스킨십이 당연히 좋았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그의 예상이 정확하다면 일단은 참아야 했다.부소경은 그녀를 살짝 밀치며 말했다.“신세희, 얌전히 있어! 오늘은 안 돼!”그러자 여자가 울음을 터뜨렸다.“소경 씨, 이제 내가 싫어졌어요? 싫증난 거예요?”그녀는 입을 삐죽이며 많이 서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한 달 전에 그와 헤어지겠다고 난리를 치던 여자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부소경은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임신인 것 같다고 얘기해야 하나? 그래서 지금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이야기해 주면 될까?하지만 내일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그녀가 속상해할까 봐 두려웠다.사실 임신이든 아니든 부소경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그들 사이에는 이미 유리가 있고 앞으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도 좋았다.그녀의 기분과 건강이 가장 우선이었다.남자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아니야, 세희야. 그런 거 아니야.”“그럼 키스해 줘요. 안 한지 며칠이나 됐잖아요. 나… 하고 싶어요.”그녀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작은 소리로 애원했다.이런 상황에서 욕구가 없다면 당연히 거짓말이었다.하지만 그는 참아내야 했다.그가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신세희의 부드러운 손길이 또다시 그의 몸을 덮쳤다.오늘의 그녀는 아주 매혹적이었다.그리고 어느 때보다 더 적극적이었다.부소경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그는 몸을 뒤집어 여자의 위에 올라탔다.그리고 조심스럽게 힘조절을 해가며 그녀를 안았다. 불타오르는 욕구도 절제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나오는 그녀를 만족시켜 주느라 일이 끝나자 남자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여자는 그의 품에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들었다.잠든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녀와 처음 만나고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녀의 나이 올해 서른, 하지만 얼굴은 6년 전과 거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
구경민은 웃음을 터뜨리며 횡성수설했다.“아,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정말 기분 좋아서 전화했어.”부소경은 화를 참으며 그에게 물었다.“고윤희 씨가 너랑 같이 돌아온대?”“그건 아니야.”“그런데 밤중에 왜 전화질이야?”“그러니까 그 여자 아직은 다른 남자의 여자가 아니라고.”어린아이 같은 구경민의 말에 부소경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고작 그거 때문에 그렇게 흥분한 거야? 구경민! 너 예전의 그 구경민 맞아?”“당연하지! 난 네 친구 구경민이야.”이때, 부소경의 품에서 잠자던 여자가 시끄러워서 잠에서 깼다.신세희는 몽롱한 눈을 뜨고 부소경에게 물었다.“소경 씨, 이 시간에 누구랑 통화해요? 여자?”부소경은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신세희는 요점 정서가 줄곧 불안정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수화기 너머로 구경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자는 무슨! 세희 씨! 저예요! 저 구경민이라고요! 윤희 찾았어요. 아마 며칠 뒤면 세희 씨도 윤희 만날 수 있을 거예요!”멀리 떨어진 구경민은 신세희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하지만 부소경은 똑똑히 보았다.신세희는 구경민의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짓더니 울먹거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울며 부소경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수화기에 대고 물었다.“경민 씨, 뭐라고요? 윤희 언니… 찾았어요?”구경민이 당황하며 물었다.“세희 씨, 왜 그래요? 왜 울어요?”신세희는 처량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윤희 언니 데리고 돌아올 거예요?”구경민이 대답했다.“당연하죠!”그러자 신세희는 눈물을 흘렸다.“구경민 씨! 양심 있어요? 윤희 언니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언니는 당신이 키우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요! 언니도 감정이 있어요!”“언니는 한 번도 당신을 저버리지 않았어요! 언니를 저버린 사람은 당신이에요! 알아요? 당신이 매정하게 언니를 집에서 내쫓았고 당신 전 여자친구가 언니를 죽이려 했어요! 언니는 갈 곳을 잃었다고요!
오후 두 시쯤이었다. 고윤희에게서 연락이 오자 신세희는 의아한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언니, 요즘 통화가 잦네요?”고윤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세희 씨, 앞으로는 내가 전화하고 싶을 때 전화할 거예요. 이제 더 이상 구경민을 피하지 않기로 했거든요.”신세희가 말이 없자 고윤희는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어쨌든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일이잖아요. 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이런 말을 하는 고윤희의 말투가 처량하고 씁쓸했다. 신세희는 고윤희가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녀가 물었다.“언니, 혹시….”“필요한 거 없어요. 좋은 소식 알려주려고 전화했어요. 나 일자리 구했어요.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일인데 괜찮아요. 일하다가 시간 나서 여기서 쉬면서 전화한 거예요. 그리고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어요.”신세희는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인데요?”고윤희가 말했다.“점심에 어떤 손님이 식사를 하시고 갔는데 음식이 많이 남겼더라고요. 내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음식을 싸주시는 거예요. 그거 가져가면 저녁을 해결할 수 있어요. 고기도 있고 생선도 있고 새우도 있더라고요.”신세희는 순간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언니…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고윤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세희 씨,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요. 세희 씨도 예전에 곡현에 있을 때 나보다 더 힘들었잖아요.”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때는 그랬죠. 아이를 출산한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분유값도 벌고 장애인이 된 오빠를 돌봐야 했으니까요. 매달 오빠한테 들어가는 약값도 만만치 않은데 괜찮은 일자리는 없어서 공사장에서 남자들처럼 시멘트를 나르고 했죠. 그렇게 한달에 겨우 200만원 벌었어요.”고윤희가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난 지금 세희 씨보다 행복한 거잖아요.”“난 공사장에 나갈 필요도 없고 하루에 반만 일해요. 사장님도 인심이 좋으신 분이라 매번 남은 반찬을 싸주세요. 그리고 날 사랑해 주는 남자
화장실에서 나온 신세희는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그녀는 기쁨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부소경에게 말했다.“여보, 나 임신했어요! 내가 임신이래요!”부소경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신세희는 팔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사실 요즘에 많이 예민해지고 눈물도 많아진 것 같아서 이런 내가 정말 싫었는데 임신이래요.”여자는 기쁘면 밖으로 표현하는 법을 알았지만 남자는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부소경은 속으로 날아갈 것처럼 기뻤지만 겉으로는 부드럽게 아내에게 당부했다.“동작 너무 크게 하지 마.”“알았어요!”“앞으로 편식하지도 말고.”신세희는 요즘 입맛이 없어서 그렇지 편식하는 사람은 아니었다.“알았어요.”“유리 유치원에 데려가고 병원에 가자.”부소경이 말했다.“네!”두 사람은 달콤한 표정으로 거실로 나왔다. 금방 잠에서 깬 신유리도 엄마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물었다.“엄마, 로또라도 맞았어?”“네 아빠가 부자인데 내가 로또를 살 일이 뭐가 있어?”신세희는 자랑스럽게 대꾸했다.“그런데 왜 그래?”신유리가 물었다.“비밀이야!”“그래? 괜히 좋아했네.”신유리가 시무룩해서 말했다.“뭐 기쁜 일이라도 있어?”신세희가 물었다.“난 또 엄마 배 속에 내 동생이 자라고 있는 줄 알았지. 그래서 괜히 좋아했다고 그랬잖아. 엄마, 이번 주말에 백화점에 가서 나 바비인형 사줘. 동생 대신 내 방에 데려다놓을래.”신유리가 말했다.신세희는 남자를 바라보며 몰래 웃음 지었다.아직 병원에 가서 확진을 받지 못했기에 아직은 신유리에게 소식을 알려줄 수 없었다.아침을 먹은 뒤, 그들은 신유리를 유치원에 데려가고 두 사람이 함께 산부인과로 향했다. 한 시간이 지나 검사를 끝낸 신세희가 밖으로 나왔다.그녀는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왜 그래?”부소경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제 가요.”신세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부소경은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다급히 물었다.“도대체
남자는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예전에는 소경 씨가 유리랑 나 두 명만 돌보면 됐었는데 앞으로 네 명을 더 돌봐야 한다는 얘기예요.”“이런 상황도 있을 수 있겠네요. 한 아기의 기저귀를 먼저 갈아주면 다른 아기가 당신의 팔에 매달려서 팔을 물어버릴 수도 있겠죠.”“그러니까 우리한테 아이가 두 명이나 더 생긴다고?”남자가 입술을 감빨며 물었다.“맞아요.”신세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남편에게 말했다.“그러니까 앞으로 날 부를 때 호칭을 바꿔줘요!”“뭐, 뭐라고 불러?”“여왕님! 오늘부터 나를 여왕님으로 불러요!”“그… 그래. 여… 여왕님.”누구보다 냉철하고 침착했던 남자는 지금 이 순간 공손히 신세희의 앞에 고개를 숙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여왕님께 인사드리옵니다. 여왕님, 조심하세요. 이 노비가 부축해 드리겠사옵니다.”부소경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세희를 부축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차에 오른 뒤에도 신세희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까불어댔다.“어허! 조수석에 앉거라! 오늘 여왕님이 기분이 좋으니 직접 운전하겠다!”하지만 부소경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다른 건 다 들어줄 수 있었다.여왕님이라는 호칭도 좋았다.하지만 운전은 맡길 수 없었다.배 속에 아이가 두 명이나 자라고 있는데 허리를 무리하게 할 수는 없었다.“어허! 옆에 타라는데도!”여왕이 명령했다.남자는 고개를 들고 평소의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그녀에게 말했다.“얌전히 조수석으로 돌아가!”신세희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하나, 둘….”신세희는 얌전히 조수석에 탔다.가슴이 두근거렸다.사실 아이를 두 명이나 동시에 임신하면서 자신의 지위가 조금은 올라가지 않았을까 기대하고 있었다.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얌전히 안전벨트 매!”“알았어요!”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여보… 그러면 출근은… 계속해도 돼요?”그녀는 남자가 절대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다.“해야지! 왜 출근을 안 해? 어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었다.“경민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결정을 한 거야?”한편 지금 통화 중인 구경민은 쌓였던 화가 당장이라도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어젯밤, 그는 신세희의 전화를 받고 한참을 고민했다.기쁜 것만 생각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걸 잊었다.고윤희는 그 남자와 방을 같이 쓰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그 남자에게로 갔다.그녀는 그 남자에게 모든 마음을 내주었다.잠에서 깬 구경민은 다시 그 연립주택을 찾아갔다가 마침 같이 마당에서 세수를 하는 고윤희와 그 남자를 발견했다.남자가 양치를 끝내자 고윤희는 미리 준비해 둔 세수물을 남자의 앞에 가져다주었다.“오빠, 여기 물이요.”“고마워!”한진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고윤희를 바라보았다.고윤희도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한진수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당 밖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구경민의 마음에서 질투의 불길이 치솟았다.하지만 그는 충동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그는 원래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이제 고윤희가 어디 있는지도 알아냈고 그녀가 출산하고 산후조리가 끝나기 전에는 그들이 합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구경민은 그나마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밉고 증오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마당의 일남일녀를 보고 있자니 부부가 같이 생활하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여자가 남자를 위해 세수물을 받아오는 모습을 보자 구경민은 자신과 고윤희가 함께 있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1년 365일 항상 구경민보다 일찍 기상했다.아이를 지우고 온 날에도 그녀는 한 번도 늦잠을 자지 않았다.매일 아침 그가 잠에서 깨면 그녀는 다가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경민 씨, 잘 잤어요? 가서 양치해요. 화장실에 준비해 뒀어요.”그가 양치를 끝내면 고윤희는 그에게 면도기와 따뜻한 물을 준비해 주었다.다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식탁에는 항상 맛있는 반찬이 준비되어 있었고 외출할 때면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