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사이 그녀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잘 먹어서 살도 찐다는데 고윤희는 야위어서 뼈만 남은 상태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작은 주근깨가 좀 있었다.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아니, 지금의 그녀는 아름답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행복해 보이고 미소가 달콤해 보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구경민은 그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여자는 큰 키에 비해 발은 아주 작은 편이었다. 평소에는 235 사이즈의 하이힐을 자주 신었다.그런데 지금 교각 아래에 걸터앉은 그녀는 사이즈도 맞지 않는 큰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것도 건설 현장에서나 신는 남성용 검은색 작업화였다.신발 안쪽에는 실밥이 약간씩 보였는데 아마 다 해진 신발에 천을 덧대서 꿰맨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구경민은 워낙 시력이 좋았다.여기저기 꿰맨 그 신발은 딱 봐도 260 이상은 되어 보였다. 발이 작은 고윤희가 그런 걸 신고 있으니 그렇게 거슬릴 수 없었다.신발이 벗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녀는 신발끈을 아주 타이트하게 묶었는데 그래서 더 괴상하게 보였다.구경민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고윤희는 할머니들이나 입는 얇은 솜바지를 입고 있었다. 구경민 옆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차림이었다.세상에나!이런 옷은 시골 마을 장터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옷이었다. 아마 많이 쳐줘도 3천원 이상은 아닐 것이다.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나 구매할 옷을 고윤희가 입고 있었다.그래도 걸치고 있는 롱 패딩은 그나마 나았다.무릎을 살짝 덮는 길이에 촌스러운 붉은색 패딩이었다.패딩에 달린 모자는 변두리가 하얀색 털로 되어 있었다. 커다란 모자는 안 그래도 작은 고윤희의 얼굴을 더욱 작아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얼굴은 창백하고 입술마저 핏기가 없이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구경민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구경민은 가슴이 너무 아팠다.뒤에 있던 송 기사가 그를 불렀다
그녀는 마사지를 꽤 잘했다.여느 마샤지샵 실장님들보다 더 잘했다.구경민은 그때 그녀가 마사지를 해주기 위해 일부러 손톱을 기르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지금의 고윤희는 그때처럼 예쁜 옷을 입고 있지는 않지만 초라하기 짝이 없는 옷을 걸치고 있어도 손은 정말 예뻤다.그녀는 손톱을 알맞은 길이로 길렀고 예쁘게 다듬었다.과거 구경민은 줄곧 이해하지 못한 게 있었다. 가꾸기 좋아하는 여자들은 다 네일 아트를 좋아하는데 왜 고윤희는 한 번도 네일 샵에 가지 않는지 궁금했다.오늘이 되어서야 구경민은 고윤희가 네일 아트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와 같이 있을 때,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과일을 깎느라 손톱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뿐이다.시간이 나면 그녀는 그의 머리와 전신 마사지를 해주었고 가끔은 족욕도 해주고 발마사지도 해주었다.그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손톱을 길게 기를 수 없었다.혹시라도 손톱에 피부가 스쳐서 그가 다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을 나눌 때, 그녀는 그 짧은 손톱으로 구경민의 어깨를 강하게 끌어안다가 그의 어깨에 빨간 자국을 낸 적이 있었다.일이 끝난 후, 고윤희는 정말 미안해하며 그에게 말했다.“경민 씨, 내 손톱에 피부가 쓸렸나 봐. 미안해, 짧게 잘랐어야 했는데 깜빡했어.”그때 그 여자는 항상 배려심 많고 온순했다.구경민의 말이라면 뭐든 들었고 그가 원한다면 뭐든 해주었다.지금의 그녀는 전처럼 고분고분하지는 않지만 전보다 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손톱도 알맞게 길렀다.손톱을 길러서 그런지 손가락도 더 길어 보이고 예뻤다.고윤희는 지금 거지처럼 입고 있고 일자리도 없고 먹을 것도 형편없지만 이 남자의 옆에서 가사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어쩌면 빨래도 고윤희가 직접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등 뒤에 있던 부하직원이 재촉했다.“대표님, 움직일까요?”하지만 구경민은 그를 제지했다.구경민은 분하고 억울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고윤희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고윤희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조심스럽게 여자에게 말했다.“사장님… 혹시 알바생 필요하지 않나요?”사장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고윤희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어디 촌구석에서 올라온 아줌마야? 글은 읽을 줄 알아?”고윤희가 웃으며 말했다.“사장님, 저 나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글은… 당연히 읽을 줄 알죠.”식당 사장은 고윤희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물었다.“할 줄 아는 게 뭐야?”“저… 뭐든 할 수 있어요. 힘든 일, 더러운 일 다 괜찮아요.”고윤희가 다급하게 말했다.“서빙은 안 돼. 옷차림 보고 손님들이 도망가겠어.”고윤희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도 서빙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냥 설거지나 쓰레기 치우는 일을 시켜도 할 수 있어요.”설거지와 쓰레기 치우는 일?구경민은 당황스러웠다.옆에 있던 송 기사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식당 사장이 또 물었다.“그럼 월급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어?”고윤희가 물었다.“얼마나 주실 수 있어요?”“설거지만 하면 80만원 정도 주기는 하는데….”여 사장은 말끝을 흐리며 고윤희를 아래위로 훑었다.그러더니 약간 미심적은 말투로 물었다.“너… 임신했지?”고윤희는 어떻게든 감추려고 옷으로 배를 가렸지만 너무 직설적인 질문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네… 맞아요. 저 임신했어요. 그래서 일자리가 꼭 필요해요. 아기 분유값이라도 벌어야죠. 그러니 사장님, 부탁 좀 드릴게요. 일하게 해주세요.”“임신은 맞지만 저 정말 일할 수 있어요. 저 힘도 좋아요. 며칠만 써보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마음에 안 드시면 돈은 안 줘도 괜찮아요.”고윤희는 사장이 매몰차게 거절할까 봐 두려웠다.이미 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아다닌 지 일주일이 지났다.화장실 청소하는 일도 지원했지만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그녀는 백수로 살 수는 없었다.한진수 혼자 일해서 어머니와 그녀, 그리고 아기까지 돌보기엔 한없이 부족했다.그녀는 그에게 미안했다.집에 돌아가면 한진수와 그의 어머니
고윤희는 고집스럽게 양동이를 든 채, 간절한 말투로 말했다.“사장님, 보셨잖아요. 저 이 정도는 들 수 있어요. 그러니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저 정말 돈이 필요해요. 한 달에 80만원이라도 저한테는 큰 돈이에요.”구경민은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멘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여 사장이 말했다.“받아줄 테니까 일단 그거 내려놔.”고윤희는 그제야 양동이를 내려놓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장을 바라보았다.여 사장이 말했다.“내가 너 불쌍해서 받아주는 거야. 사실 식당에서 임산부는 안 받아. 일하다가 다치면 우리가 책임질 수 없으니까. 차라리 50대 아줌마를 돈 더 얹어주고 쓰고 말지.”“사장님, 제 몸은 제가 챙길 수 있어요. 혹시라도 저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사장님한테 책임을 지게 하지 않을 거예요. 저도 늦은 나이에 가지게 된 아이라 저한테도 소중한 아이예요. 그러니 제 몸은 제가 잘 돌볼게요.”여 사장은 그녀의 말을 잘랐다.“받아준다고! 하지만 임산부니까 너무 오래 일하게 할 수는 없어. 오전이나 오후에 일하고 60만원을 줄게. 그래도 괜찮으면 여기서 일하고 안 괜찮으면 나도 어쩔 수 없어.”“60만원이요?”고윤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사실 80만원도 적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사장은 60만원이 한계라고 말했다.“혹시….”그녀는 80만원은 받고 싶었지만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야, 됐어. 임산부 고용했다가 골치 아픈 일이라도 생기면…. 너 불쌍해서 받아주려고 했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할게요! 60만원이라도 주시면 할게요! 저 정말 일 잘할 수 있어요. 열심히 할게요!”고윤희가 다급히 말했다.잠시 머뭇거리던 여 사장이 말했다.“알았으니까 들어와. 급여는 오늘부터 계산할 거고 월말에 정산해 줄게.”“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고윤희는 뛸 듯이 기뻐하며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구경민은 누가 칼로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대표님, 지금 당장 사모님을 모셔갈까요?”송 기사가 물었다.구경민
송 기사는 바로 핸드폰을 찾았다. 그가 직원들한테 전화하려는데 구경민의 핸드폰이 먼저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신세희였다.구경민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세희 씨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구경민이 고윤희를 찾았다고 말하려던 순간, 신세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구경민 씨, 사실 깜빡하고 하지 않은 얘기가 있어요. 조금 전 낮잠을 자는데 악몽을 꿨어요. 그래서 이 일을 꼭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전화했어요.”구경민이 물었다.“무슨 꿈인데 그렇게 심각해요?”“윤희 언니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꿈을 꿨어요. 4개월 전에 임서아 신장이식 때문에 소란이 있을 때도 그런 꿈을 꿨었거든요.”구경민이 물었다.“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예요?”신세희는 암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경민 씨, 2주 전 윤희 언니랑 통화했을 때 말투에서부터 느껴졌던 게 있어요. 언니는 이제 경민 씨를 피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말은 경민 씨가 언니를 찾을 수 있는 확률이 예전보다는 크다는 거예요. 하지만….”신세희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그건 언니가 경민 씨랑 정면승부를 택했다는 뜻이기도 해요. 경민 씨가 언니를 찾게 되는 날이 언니에게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언니를 너무 압박하지 마세요.”“언니가 압박감을 못 이겨서 나쁜 선택을 하면 난 평생 경민 씨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구경민 씨, 명심해요! 언니를 먼저 내친 사람은 경민 씨잖아요. 경민 씨가 윤희 언니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어요. 언니의 희생은 알아주지도 않고 그 전 여자친구만 챙긴 건 경민 씨잖아요. 10년을 안 만난 그 여자가 돌아왔다고 경민 씨가 언니를 먼저 내쫓았잖아요!”“경민 씨가 언니를 버린 거예요! 그러니 제발 언니 가만히 내버려둬요! 언니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당신을 죽여버릴 거예요!”신세희의 말은 구경민에게 큰 타격이었다.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그는 4개월 동안 고윤희를 찾아다녔다. 서울에서 동부 지방, 그리고 남성까지 몇 번을 인력을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낮잠을 잤는데 그 사이 많은 꿈을 꾸었던 것 같다.꿈 속에서 그녀는 고윤희가 사람들에게 쫓기다가 벼랑 끝까지 내몰린 상태에서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것을 들었다.“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어. 날이 참 좋네! 뛰어내리기 좋은 날씨야!”“구경민, 잘 들어.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게 당신을 만난 거야. 그리고 그보다 더 후회하는 건 당신의 자상함을 탐낸 거야. 이제는 그러지 않을 거야.”“나를 향했던 자상함이 나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았으면 그 지하실에서 평생 갇혀 살더라도 평생 매를 맞으며 살더라도 당신에게 구원을 요청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때는 매를 맞아도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거든.”“구경민 당신은 내 마음을 망가뜨렸어! 평생 당신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이제 이별할 시간이야!”말을 마친 고윤희는 웃으며 절벽에서 뛰어내렸다.“언니, 언니!”신세희는 울며 잠에서 깼다. 비명소리가 너무 커서 밖에서 청소하던 가정부도 그 소리를 들었다.놀란 가정부가 안으로 들어와서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사모님, 왜 그러세요? 악몽이라도 꿨어요?”신세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아줌마, 저 유리 임신하고 유리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6년이나 도망다녔어요. 그때는 소경 씨가 저를 사랑하는 줄도 모르고 그 사람이 나를 잡으면 죽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사람에게 잡히면 아이를 데리고 죽을 생각까지 했어요. 소경 씨가 저를 찾아왔을 때, 그 사람은 제 약점을 쥐고 있었어요. 그게 아니라면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소경 씨를 따라오지 않았을 거예요.”가정부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신세희를 바라보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사모님, 두 분은 지금 사이가 너무 좋으시잖아요. 대표님은 남성 남자들의 공공의 적이라고요. 아내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왜 갑자기 옛날일이 떠오른 거예요?”“다 지나간 일이예요. 그만 잊고 앞으로 꽃길만 걸어야죠.”신세희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거 알아요? 저는 사
수화기 너머로 구경민의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소경아, 너… 세희 씨를 찾으러 다닐 때 어떻게 접근했어? 접근하기 엄청 어렵지 않았어?”부소경이 물었다.“너 윤희 씨 만났어?”구경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조금 전에 네 마누라가 연락이 왔어. 나한테 윤희를 찾아도 절대 자극하지 말라고 경고하더라. 안 그러면 나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부소경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신세희 성격이라면 무턱대고 접근하면 아마 시체로 발견됐을지도 몰라.”“그때 신세희가 곡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찾아갔거든. 하지만 곡현에 도착한 뒤에는 바로 세희를 찾아가지 않았어.”“그러면 어떻게 했어?”구경민이 다급하게 물었다.부소경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경민아, 이거 얘기해 주면 나 우리 마누라한테 맞아 죽어!”“빨리 말해!”“약간의 계획을 세우고 접근했지.”부소경이 말했다.“자존심 강하고 고집도 센 여자를 억지로 데려와 봐야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죽는다고 난리를 칠 거야. 내 여자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부소경의 말투에서 신세희를 향한 사랑이 가득 느껴졌다.잠시 침묵하던 구경민이 말했다.“알았어. 세희 씨 말이 맞아.”“신세희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데?”부소경의 질문에 구경민은 볼멘 소리로 대꾸했다.“한바탕 협박하더라!”부소경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넌 욕 좀 먹어야 해!”“세희 씨 보면 꼭 좀 잘 얘기해 줘. 네 마누라는 나한테 불만이 너무 많아. 애초에 나는 얼마나 예의 바르게 대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알았어.”부소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먼저 끊을게.”“고윤희 씨는 찾았어?”부소경이 물었다.“아니!”구경민은 1초의 주저도 없이 거짓말을 했다.전화를 끊은 뒤, 구경민은 사면팔방에서 이쪽을 포위해 오는 자신의 부하직원들을 바라보았다.“다 물러가라고 해! 당장!”구경민이 다급히 말했다.“대표님….”“다 철수해!”송 기사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으로 지시를 전달했다.
구경민은 홀로 식당 근처에 남았다. 그는 차에 앉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식당 내부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일분일초 흐르고 있었다.멀지 않은 곳 모퉁이의 한 호텔방에서 최여진은 창가에 앉은 채, 커튼 뒤에 숨어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그녀의 마음도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팠다.그녀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손바닥이 손톱에 찔려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눈에서는 차가운 불꽃이 튀었고 이가 갈렸다.“빌어먹을 고윤희! 도대체 나보다 잘난 게 뭐야? 비천한 하녀 주제에! 도대체 뭐가 잘나서 내 약혼자가 이렇게까지 널 신경 쓰는 거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고윤희! 나가서 죽어 버려!”“아니지! 넌 행복을 가질 자격이 없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네 행복을 막을 거야!”최여진이 언제 근처 호텔까지 왔는지, 언제부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구경민은 온 신경을 고윤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이날 오후는 구경민에게 고역이었다.그는 고윤희가 식당에서 무리하다가 지칠까 봐 걱정이었고 고윤희한테 발각될까 봐 노심초사해야 했다. 신세희 말처럼 만약 고윤희가 그를 발견하고 갑자기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그럼 구경민은 아내를 찾으러 왔다가 장례식을 치러야 할 수도 있었다.절대!구경민은 그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구경민은 이미 고윤희를 자신의 아내로 생각하고 있었다.고윤희와 함께 있던 날들에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았는데 사람은 정말 이상한 동물이었다.왜 모두가 잃은 후에야 소중함을 깨달을까?다행인 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이제 안다는 점이었다.지금 그에게 부족한 건 돌파구였다.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앞에 나타나야 그녀가 겁을 먹지 않을까?이날 오후, 구경민은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지 고민하며 식당 주변을 지켰다.밤 여덟 시가 지나서야 고윤희는 지친 기색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식당에서 나왔다.여 사장은 그녀에게 반찬을 챙겨주며 말했다.“알바, 먹다 남은 거긴 하지만 집에 가서 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