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 때문에 하숙민의 묘지는 더욱더 초라해 보였다.그녀의 묘비 앞에서 술을 잔뜩 먹고 쓰러진 남자는 반호영이었다.그의 앞에는 비에 젖은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차가운 색조의 생화는 묘비에 더 처량한 색채를 더했다.반호영은 꽃다발을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부성웅의 경호원이 그를 바로 눕히면서 놓쳐버린 것 같았다.차가운 대리석에 툭 떨어진 꽃다발은 고독해 보이기까지 했다.부성웅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저놈이 왜 하숙민의 묘지에 있지? 저 인간 도대체 누구야?”진문옥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여자라서 그런지 부성웅보다 느낌이 날카로웠다.진문옥은 매번 반호영이 찾아와서 폭행한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러고 보면 부성웅은 한 번도 그에게 맞은 적 없었다.게다가 반호영은 가성섬 섬주의 넷째 아들이었다.부소경과 비슷한 나이.진문옥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해서 경호원에게 말했다.“똑바로 눕히고 얼굴에 묻은 빗물 좀 닦아 봐. 얼굴을 좀 자세히 봐야겠어.”아내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부성웅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경호원이 반호영을 반듯하게 눕히고 그의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아 주었다.다른 사람이 몸을 계속 건드리자 반호영은 드디어 눈을 떴다.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부성웅이었다.반호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시뻘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부성웅을 노려보며 소리쳤다.“망할 영감이!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당장 꺼져! 꺼지라고!”반호영은 미친 사람처럼 부성웅을 걷어찼다.다행히 경호원이 그를 막아섰고 반호영은 술에 취한 탓인지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부성웅은 경호원의 부축을 받아 뒤로 물러선 뒤,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반호영! 넌 반씨 가문 자손이 아니잖아! 넌 도대체 누구야! 누구냐고!”진문옥만 그의 신분을 의심한 게 아니었다.부성웅도 그를 의심하고 있었다.부성웅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반호영은 취기에 게슴츠레한 눈으로 부성웅을 노려보며
“여기서 잠만 자지 말고 일어나 봐! 당신 아직 내 얼굴도 못 봤잖아! 왜 잠만 자고 있어?”“일어나라고! 일어나서 내가 누군지 좀 말해줘 봐!”말을 마친 반호영은 아이처럼 구슬피 울었다.키가 180이 넘는 남자가 실성한 듯 울고 있었다.부성웅은 경호원에게 묘지 관리인을 불러오라고 시켰다.10분 뒤, 묘지 관리인이 도착했다. 반호영을 본 관리인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 이 사람은 이틀 전에 왔던 사람인데요? 올 때 제사용 음식을 잔뜩 사왔던데 설마 그걸 먹으며 여태 버틴 걸까요?”“이틀 동안… 여기 있었다고?”이곳은 공동묘지였다. 가족이나 지인을 보러 오는 사람도 잠시 자리를 지키고 떠나는 곳.누가 이런 곳에서 사람이 이틀이나 지낼 줄 알았을까?반호영은 이틀 전 신세희에게서 주소를 받고 이곳에 왔다.그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엄마를 위해 꽃을 사고 먹을 것과 술을 사왔다. 그리고 여기 앉아서 술을 마시며 이틀을 보냈던 것이다.그는 술 취한 상태로 여기서 잠들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어차피 모든 것을 잃었다.가성섬도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어릴 때부터 그는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아버지라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렇게 쌀쌀맞은지, 어머니는 왜 한 번도 자신에게 관심을 준 적 없는지. 사실 그들은 그의 친부모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그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의 아들이라니.그를 여태 키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그러니 무슨 낯짝으로 다시 가성섬에 돌아간단 말인가?하지만 남성은?그의 아버지와 친형이 남성에 살지만 남성은 반호영을 받아주지 않았다.이 세상에 그를 받아줄 곳이 있기나 할까?그는 세상이 미웠고 부모가 미웠다.땅 속 깊은 곳에 잠든 이 여자를 파내서 제대로 따져 묻고 싶었다. 왜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버려두고 떠났는지! 왜 하필 그였는지!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자신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두 아이를 출산한 여자가 한 아이를 살리려고 가성섬에 숨겼던 그 마음을 생각하니
“성웅이 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숙민이 죽은지도 벌써 7년이야. 어떻게 지금 와서 죽은 사람을 욕 보일 수 있어?”서씨 어르신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성웅아,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넌 숙민이한테 결혼식도 주지 않았어. 남자가 있다고 해도 그 아이는 미혼 신분이었다고! 널 위해 순결을 유지할 의무는 없어! 넌 가정이 있는 주제에 숙민이를 만났잖아!”서씨 어르신의 호통에도 부성웅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말했다.“그렇긴 하지만 남성 사람들, 그리고 가성섬 사람들은 다 알죠! 하숙민이 제 여자였다는 사실을 말이에요!”“그 여자가 제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그 여자 무덤 앞에 어떤 남자가 찾아왔어요. 제 예상이 맞다면 이 남자 역시 하숙민의 아들이겠죠!”“그 여자 아들이라고요! 어르신! 아들 나이가 몇 살인지 알아요? 그 아들이 누군지 아냐고요?”“반호영이요! 가성섬 반씨 가문의 귀공자 반호영이라고요! 어르신,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저한테 숨긴 비밀이 혹시….”부성웅은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너무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다.그는 반호영이 하숙민과 가성섬 섬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단정지었다.망할 여자!그러고도 내 앞에서는 순정파 연기를 수십 년이나 하다니!평생 나를 사랑할 것처럼 해놓고!죽기 전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생 나를 죄책감 속에 살게 해놓고!사실은 두 남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거야?아들을 둘이나 낳다니!가증스러운 여자!부성웅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콧구멍으로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수화기 너머로 서씨 어르신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성웅이 네 말은 반호영이 자기 엄마 무덤을 찾아갔다는 거야?”“그 말씀은 저 녀석이 하숙민의 사생아가 맞다는 거네요!”부성웅은 바로 전화를 끊고 경호원에게 명령했다.“더러운 자식! 저 자식은 저 자식 엄마가 나를 속이고 다른 남자랑 낳은 사생아야!
진문옥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반씨 가문 사람들 다 못생겼잖아! 키도 작고! 얘 어딜 봐서 반가놈들을 닮았어!”부성웅은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다시 제대로 봐!”부성웅은 주저하며 고개를 들고 반호영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반호영은 여전히 날뛰고 있었다.“망할 영감! 죽여버리겠어! 이거 놔!”그는 경호원들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이틀이나 무덤 앞에서 술만 마신 그로서는 그들을 당해낼 힘이 없었다.게다가 술기운 때문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반호영은 사실 계속 살아갈 생각이 없었다. 엄마의 무덤 앞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그가 계속 몸부림치면서 그의 머리카락이 흩어졌다.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를 가렸다.검은 머리카락과 창백한 이마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선이 고운 날카로운 눈썹과 이글거리는 두 눈, 그 밑으로 조금 야위었기는 했지만 선명한 이목구비가 보였다.부성웅은 흠칫하며 어깨를 떨었다.그가 내뱉듯이 말했다.“소경… 소경이야! 우리가 잘못 봤어! 쟤 반호영이 아니라 내 아들 소경이야!”진문옥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여보! 당신 너무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어? 쟤 소경이가 아니라 반호영이야! 당신 아들과 닮은 사람이라고.”“그… 그치! 쟤는 소경이가 아니지. 소경이는 엄마를 더 많이 닮았어! 가끔 숙민이 모습이 보이기도 하니까.”부성웅은 눈물을 닦으며 다급히 말했다.진문옥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여보, 당신 늙어서 옛날 모습들이 잘 기억 안 나지? 자세히 보니까 반호영 저 녀석은 당신 어렸을 때를 많이 닮았어.”“뭐… 뭐라고?”그는 저도 모르게 뒤로 뒷걸음질쳤다.진문옥이 말을 이었다.“이제 알 것 같아. 왜 유리와 소경이, 그리고 신세희랑 서씨 어르신까지 우리한테 반호영이 우릴 공격한 건 신세희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는지.”“왜 저 자식이 매번 우리를 찾아올 때면 나한테만 손을 대고 당신은 내버려뒀는지 이제 알 것 같아.”“여섯 살 유리까지
부성웅은 예상치 못했던 전화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전화하자마자 이런 질문이라니.진문옥이 물었다.“누구야?”“신세희.”진문옥은 왜 이 시간에 신세희에게서 전화가 왔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여기 없다고 해!”한편 경호원에게 붙잡힌 반호영은 여전히 악을 쓰고 소리지르고 있었다.“내가 누군데? 엄마한테 버림받고 아빠한테까지 인정받지 못한 쓰레기야!”“난 쓰레기야! 어차피 반씨 가문 핏줄도 아니고 남성 부씨 가문 막내아들도 아니라고!”“부성웅! 이 망할 영감!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세상이 이렇게 큰데 내가 있을 곳은 없어! 반호영 내 자리는 없다고! 아니 난 반씨가 아니지. 부씨인가? 나 부씨 맞아?”“누가 나를 인정해 줬지? 난 성도 물려받지 못한 사생아야! 반씨 가문 자식도 아니고 부씨 가문 핏줄도 아니라고! 난 도대체 누구지?”“부성웅!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엄마한테는 나중에 저승에 가서 사과할게!”반호영은 여전히 분노한 표정으로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깊은 절망과 자괴감,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그는 아이처럼 울고 소리를 질렀다.“아버님?”수화기 너머로 신세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며칠 사이에 고소정 모녀 사건도 있었고 부소경과의 다툼에 오래 못 만난 서시언까지 만나느라 사실 반호영 생각을 할 겨를이 별로 없었다.한 시간 전, 그녀는 부소경과 함께 경찰서를 들렀다.고신걸은 처벌을 받기 전에 고소정을 한 번 만나고 싶어했다.경찰서에 도착하니 고소정과 고신걸은 서로 네가 잘못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신세희와 부소경은 조용히 경찰서를 나왔다.그들이 나오기 전, 고소정은 미친듯이 부소경에게 애원했다.“대표님, 한 번만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저 정말 대표님 사랑해요! 해외에 있을 때부터 대표님이 어떤 분인지 다 알고 있었어요.”“저는 결혼한 적도 없고 명문 대학을 나왔어요. 명분 없는 애인이라도 상관없어요. 대표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게요. 그러니 제발 저를 경찰서에서 빼내줘요.”
“싫어….”고소정은 눈에 뵈는 게 없어 보였다.‘감옥은 안 돼! 싫어! 끔찍해! 그럴 바에야 죽고 말겠어!’이성을 잃은 고소정은 신세희의 팔목을 꼭 잡고 애원했다.“신세희, 제발! 한 번만 봐줘! 부 대표님 옆에서 애인으로 살게 해줘! 내가 너 대신 부 대표님 주변을 처리할게! 평생 부 대표님에게는 우리 둘밖에 없는 거야!”“아니! 넌 정실 부인이고 난 그냥… 일주일에 한번 만날게… 아니지 한 달에 한번이라도 좋아. 그러면 얌전히 너 속 안 썩이고 조용히 살게. 제발!”“네가 허락만 하면 부 대표님의 개가 될게! 걱정하지 마! 어차피 아이 가질 생각도 없어. 그냥 개처럼 부 대표님이 필요할 때 부릴 수 있게 같은 자리에 있을게. 물론 네가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시켜도 돼. 그러니까 제발 감옥에만 보내지 마….”신세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보름 전 신유리의 유치원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도도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맞나 싶었다.아니 세상에 이 정도로 비굴한 사람이 있을까?보름 전의 고소정은 자신이 가장 잘난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하지만 지금의 고소정은 염치도 없고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신세희는 구역질이 올라왔다.“너… 정말 역겨운 애였구나. 내 귀가 다 썩을 것 같아! 미안한데 난 너처럼 대범하지 못해! 나와 소경 씨 사이에 제3자는 용납 못한다고!”“언젠가 나타난다고 해도 난 하루도 용납하지 못할 거야! 아니 한 시간도!”“소경 씨는 나를 사랑하고 평생 나만 사랑할 거야!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그 사람이 나를 배신하면 난 바로 뒤돌아설 테니까! 난 그 사람과 이혼할 거고 철저히 그를 무시할 거야! 하지만 너는 어떻지?”“넌 소경 씨한테 여자도 아니야! 왜 사람들이 싸구려를 잘 안 사는지 알아? 너 같은 여자는 고신걸도 더러워서 싫다고 할걸!”“네 의도가 뭔지는 알겠어! 감옥에 가기 싫다는 거지?”“하지만 고소정! 사람은 죄를 지었으면 감옥에 가는 게 당연해! 도망친다고 해결되지 않아!”“탓할 거면
“아버님, 다시 한번 물을게요. 어머님 묘지에 반호영 아직도 있어요?”“신세희! 예의 차려!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전에 널 오해한 건 맞지만 나 아직 네 시아버지야!”“아버님….”부성웅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내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말해줘. 반호영이 왜 네 시엄마 무덤에 찾아온다는 거냐? 이유가 뭐냐고!”“도대체 너희가 나한테 숨기는 게 뭐야!”부성웅이 강하게 나올수록 신세희는 그가 뭔가를 감춘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전화에 대고 태연하게 말했다.“알겠어요, 아버님! 묘지에 너무 오래 계시지는 마세요. 가을비에 감기 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요.”“끊어!”전화를 끊은 부성웅은 진문옥을 돌아보며 물었다.“왜 신세희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 거지?”진문옥은 반호영을 힐끗 보고는 대답했다.“쟤 상태 좀 봐. 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어?”“쟤 지금 갈 곳이 없다고 했어. 세상에 자신을 용납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면서!”“가성섬은 반씨 가문 거고 남성은 자기 형 거라고 했다고. 자기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면서.”“자기한테 남은 건 치욕뿐이라고 했어.”진문옥이 반호영이 했던 말을 그대로 말하자 부성웅은 짜증스럽게 아내를 흘겨보았다.“왜 저놈이 했던 말을 곧이곧대로 다시 말하는 거야? 지금 상황이 그렇기도 하고. 다 자기 팔자지 뭐!”“그건 아니지! 반호영은 핏줄로 따지면 우리 가문 다섯째야!”진문옥이 말했다.“당신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왜 어르신이 우리한테 이 일을 비밀로 한 건지 알 것 같아! 당신이었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남성 전체가 소경이 거라고 해도 반대할 사람이 없어. 그런데 갑자기 반호영이 나타났어. 이제 어떻게 할까?”부성웅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예전에 반호영이 자신의 아들인 걸 몰랐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그런데 자신에게 아들이 한 명 더 있었다니.당연히 기뻤다.하지만 기쁨이 지나가고 현실을 생각하니 막막했다.서른이 넘은 아들
진문옥은 과장해서 얘기하지 않았다.“그러니까 여보, 호영이를 아들로 거두게 해줘.”“저 아이가 나를 증오하는 거 알아. 나를 때린 건 괘씸하지만 그게 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해. 저 아이는 당신 아들이기도 하잖아. 우리가 모은 적금이나 재산, 그리고 지방에 있는 계열사들을 전부 팔아서 해외에 호영이가 운영할 수 있는 회사를 하나 차려주자. 어떻게 생각해?”진문옥은 간절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부성웅은 자신의 아내가 이렇게 대범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진문옥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 나를 위해서야. 내 아들들은 다 죽었잖아. 난 80세가 되어서 소경이한테 내쫓겨서 길거리에 나앉고 싶지 않아. 그때가 되면 난 어딜 가라고?”말을 마친 진문옥은 눈물을 흘렸다.“아들 하나 생겼다 치지 뭐. 최소한 당신이 있는 한 쟤네가 서로 피 터지게 싸울 일은 없잖아.”“당신 말이 맞아. 그렇게 되면 쌍둥이 형제끼리 죽일 듯이 대립할 일은 없겠지.”잠시 고민하던 부성웅이 말했다.“하지만 우리가 가진 돈은 많지 않아. 소경이가 매달 준 돈으로 생활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지만 호영이를 재기시켜 줄 정도는 아니야.”“당신은 거지지만 난 돈이 있어.”진문옥이 말했다.“당신한테… 무슨 돈이 있어?”“오래 전에 친정에서 준 돈이 있어. 나중에 그분들 돌아가시고 상희나 주려고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걔도 딱히 능력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럴 거면 호영이 주는 게 낫지.”감격한 부성웅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했다.“여보….”진문옥은 그런 남편을 곱지 않게 흘겨보며 말했다.“지금은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야. 일단 호영이를 데려가자. 아마 세희랑 소경이는 당신 말을 안 믿을 거야. 일단 자리부터 피하자.”“그래.”노부부는 의논을 마친 뒤, 술에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반호영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그들이 떠나고 30분 후, 신세희와 부소경이 묘지에 도착했다.하지만 묘지에는 꽃다발 하나만 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