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그래서 더 악을 쓰고 그에게 저주를 퍼붓고 속으로는 약해지지 말라고 자신에게 경고했다.신세희, 넌 이제 아무것도 없잖아! 그 사람이 새 애인이랑 같이 있는 모습을 직접 봤잖아! 그러니까 약해지지 마!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자신에게 되뇌었다.하지만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그녀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사실 신세희는 자신이 더 미웠다.온 힘을 다 써서 버둥거렸기에 기진맥진한 그녀는 힘없이 침대에 축 늘어졌다.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아직도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그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아까 했던 말이 다 거짓말이었네?”신세희는 울고 난리를 치느라 쉬어버린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부소경 씨!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을게요. 유리도요! 그냥 나를 죽여요!”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였다.마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남 얘기를 하는 것 같은 표정.“부소경 씨, 난 정말 보잘것없는 여자예요. 이제 이 세상에서 얼굴을 들고 살아갈 수가 없어요. 내가 더럽다고 느껴졌거든요. 그냥 나를 죽여요. 유리도 필요없어요. 유리 당신에게 줄게요. 난 살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스스로를 죽여버릴 거예요.”“나 자신이 너무 하찮고 역겹게 느껴져요. 정말이지….”“살고 싶지 않아요.”차갑고 처량한 목소리.신세희는 자신이 너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처음부터 계속 거부만 했으면 아마 조금은 나아졌을까?그러면 그에게 억지로 당한 거라고 그가 나쁜 놈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그녀는 결국 그에게 호응해 주었고 여기 오기까지 다졌던 수많은 결심들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그래서 신세희는 살기가 싫어졌다.그녀는 부소경을 등진 채, 상처 입은 동물처럼 몸을 잔뜩 웅크렸다.그리고 반쯤 넋이 나간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그냥 나를 죽여요.”이 모습을 지켜본 부소경은 가슴이 쓰라렸다.“신세희, 고집 그만
신세희는 깊은 절망과 함께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이미 그에게 져버렸다.그와의 심리전도 져버렸고 몸싸움에서도 패배했다.오후 내내 그와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속으로 시물레이션했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자존심이 처참하게 뭉개진 느낌이었다.신세희, 6년 전에 비해 나아진 게 뭐야?6년 전에는 그래도 임신한 몸으로 도망이라도 쳤었지.지금은 엄마와 아이가 다 저 사람 손에 있으니 어딜 도망쳐?그리고 너도 그렇게 도망치고 싶지 않잖아?사실은 자존심 굽히면서까지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은 게 네 본심이잖아.신세희, 넌 타락했어!더럽고 비굴해!신세희는 눈물을 흘리며 부소경에게 말했다.“알았어요, 부 대표님. 난 당신이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잡아온 죄인에 불과하죠. 당신의 장난감. 당신이 기분 좋을 때 난 당신이 사랑하는 아내이고 기분 나쁘면 그냥 붙잡혀 온 죄인일 뿐이잖아요.”“당신이 날 걸레 취급해도 난 당신을 벗어날 수 없겠죠. 알겠다고요. 얌전히 당신 옆에서 개처럼 살게요.”“앞으로는 말 잘 듣는 개가 될게요. 그러니까 내 딸과 내 엄마를 괴롭히지 마세요.”여자의 말은 부소경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그는 그녀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자신을 개에 비유하지 마! 절대!”“알았어요. 시키는 대로 할게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잠이나 자!”“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자는 거야. 쓸데없는 생각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알겠어?”“네.”“팔베개나 베고 얌전히 자!”남자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녀는 온순한 고양이처럼 그의 품에 안겨 얌전히 눈을 감았다.그런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자!”그가 다시 명령했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너무 피곤했던 탓일까.사실 오전에 고가령 모녀와 한바탕 소란이 있었고 점심에 부소경과 고소정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본 뒤에 무너져 내렸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그녀가 억지로 약한 티를 안 냈을 뿐이다.그녀에게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머리가 터질 것 같은 상태
이런 생각이 들자 남자는 당장 여자를 깨워서 따지고 싶었다.누가 더 잘못했는지!하지만 울다가 지쳐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그는 조용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았다.눈가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여전히 처절하고 단호한 표정.죽더라도 자존심을 굽히고 싶지 않은 고집스러움.그에게 꺼지라고 욕까지 했다.남자는 웃음이 나왔다.남성에서 그에게 이런 식으로 욕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나 할까?아마 없을 것이다.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도, 그룹 원로급 임원들조차 그의 눈치를 보았고 부성웅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신세희였다.미친 듯이 그에게 고함을 지르고 주먹질을 하고 깨물고 할퀴면서 이혼하자고 소리치던 모습!아마 남성에서 같은 짓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그런데도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자고 있다.울고 때리고 욕을 하다가 지쳐 잠든 여자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지쳐서 잠든 그녀의 입가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팔을 빼고 거실로 나왔다.부소경은 핸드폰을 꺼내 서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진희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잔뜩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장모님, 저예요.”부소경이 말했다.서진희는 한참 지난 뒤에야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자네… 세희랑….”“우리 아무 일 없어요, 장모님.”부소경은 단호하게 서진희의 말을 잘랐다.“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신세희랑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같이할 거예요. 어느 누구도 우리 가정을 흔들지 못할 겁니다. 이 말씀 드리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유리는 오늘만 잘 부탁드릴게요.”“그래. 알았네.”“장모님도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일찍 주무세요.”부소경이 위로하듯 말했다.“그래. 그래야지.”전화를 끊은 뒤, 부소경은 침실로 돌아와 신세희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그날 밤, 신세희는 달게 푹 잤다.반면 부소경은 팔이 저리고 아팠지만 그녀를 깨우기 싫어서
수화기 너머로 부성웅의 씩씩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소경!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어제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부소경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일로 전화했냐고요.”“어제 회사로 찾아갔었는데 회사 안으로 안 들여보내지 뭐야!”“그래서 무슨 일인데요!”“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었어?”부성웅이 물었다.하지만 부소경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냥 오늘이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말다툼을 한 날이라는 것만 알았다.1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그녀가 그렇게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 없었다.만약 이 날에 이름을 단다면 ‘신세희가 미쳐 날뛴 날’이라고 명명했을 것이다.부소경이 말이 없자 부성웅이 말했다.“저번 주에 너랑 신세희가 나랑 약속했잖아. 오늘은 본가에 와서 파티에 참석하기로!”부소경은 그제야 그 날이 떠올랐다.고소정이 서준명의 명함을 들고 그의 사무실로 찾아온 날이자 회사에서 망신당한 날, 그리고 신세희가 가위로 그의 넥타이를 싹둑 잘랐던 그 날이었다.그날 신세희는 유리를 데리고 본가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했었던 것 같았다.아마 그의 부친은 파티라는 명목으로 고가령 모녀를 초대할 게 뻔했다.부성웅이 또 말했다.“부소경! 침묵으로 내 질문을 피하지 마! 어제 내가 불쑥 찾아간 건 좀 너무했지만 내가 회사까지 찾아갔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얘기잖아! 그런데 어제 너는 자리에 없었지! 내가 화를 참지 못하고 파티에서 신세희가 했던 더러운 짓을 까발리게 하지 마!”“그래요? 신세희가 무슨 더러운 짓을 했는데요?”부소경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 신세희를 힐끗 바라보았다.그의 아내는 어제 그 난리를 치고 다시 잠에 들었다.신세희가 그를 향해 성질을 부리고 온갖 욕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는 웃음이 나왔다. 물론 저 사랑스러운 여자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이 세상에 너뿐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이 세상에 나를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라고.그런데 나한테 꺼지라고?다른 여자가 나한테
그의 옆에는 부태성과 그의 부인인 윤혜정 여사가 앉아 있었다.아들이 치를 떠는 모습을 보자 윤혜정은 그런 아들에게 핀잔을 주었다.“성웅아! 뭐가 그렇게 화났어? 소경이도 지금 그애랑 잘 지내는 게 더 좋잖아.”“어머니!”부성웅은 아들에게 풀지 못한 화를 엄마인 윤혜정에게 풀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소경이가 누군데요?”부성웅이 분개한 표정으로 윤혜정에게 물었다.“내 손자지.”“어머니 손자일 뿐만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귀한 손자예요. 우리 집안 대를 이을 유일한 손자라고요! 걔는 우리 가문을 대표하고 F그룹을 대표하는 인물이고요! 남성에서 가장 권위 있는 존재라고요!”“그렇지. 내 손자가 대단하긴 해.”부성웅은 더 큰 짜증이 치밀었다.“그렇게 대단한 손자의 마누라가 허튼짓을 하고 다니는데 참을 수 있어요?”“뭐?”윤혜정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어머니 손자며느리가 밖에서 허튼짓을 하고 다닌다고요!”“어머니 손자 며느리가 손자 몰래 나가서 외간남자랑 놀아났다고요!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에요! 시아버지인 나한테 현장을 들키기도 했어요!”윤혜정은 그제야 아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노인은 약간 충격 받은 표정으로 아들에게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니까 세희가 바람을 피웠다고? 예전에 우리 가문 사람들은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여자가 집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지금은 상황이 뒤바뀐 거야?”“그러니까 소경이 마누라가 밖에서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데 소경이는….”“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윤혜정이 정색하며 말했다.“무슨 말이긴!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어머니!”“이게 다 업보라는 말 못 들어봤니?”100세가 다 되어가는 어머니가 이렇게 나오자 부성웅은 할 말을 잃었다.“네 할아버지, 그러니까 내 시아버지가 밖에서 여자를 몇이나 만났는지 알아?”“네 아비!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영감탱이도 그렇고! 나도 젊었을 때 많이 울었어!”“그리고 너! 내 아
“신세희, 이 빌어먹을 년아!”부성웅은 입을 열자마자 며느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금방 잠에서 깬 신세희는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부소경이 나가면서 침실 문을 잠가버렸기에 그녀는 밖에 나갈 수 없었다.어차피 나가지 못할 거 그냥 잠이나 자자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어 버린 것이다.얼마 안 돼서 잠들었는데 부성웅 때문에 잠이 확 깼다.깊은 피로와 함께 근육통이 몰려왔다.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던 것 같다.꿈에서 그녀와 부소경은 이혼을 했고 그녀는 매일 눈물을 흘리며 살았다.사실 그녀의 진짜 마음은 부소경을 떠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가 없다는 사실만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고 우울했다.그렇게 그녀는 자면서 눈물을 흘렸다.그러다가 부성웅의 전화에 잠에서 깬 것이다.부성웅의 욕설에 정신이 확 들었다.신세희는 입에 담지도 못할 심한 말을 퍼붓는 시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냉소를 지었다.“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버님이 판단할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아버님이야 제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그거 알아요? 욕 많이 먹는 사람이 오래 산대요! 나한테는 딸이 있고 보살펴야 할 엄마가 있는데 내가 왜 죽어요?”신세희는 기운이 없는 말투였지만 부성웅은 그녀가 느긋하게 거드름을 피운다고 생각했다.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가 고함을 질렀다.“신세희, 죽을 때가 다 됐는데 아직도 기고만장하네! 좋다! 일단 본가에 오면 얘기하지!”“본가요?”신세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제가 거길 왜 가요?”“오늘 파티가 있어!”부성웅이 말했다.“저번 주에 네가 네 입으로 가족 파티에 참석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가 온다고 했잖아!”“아….”신세희가 웃음을 터뜨렸다.너무 웃어서 눈물이 났다.“가족 파티요! 저번 주에는 가겠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런데 제 마음이 바뀌었어요!”“넌 어떻게 된 애가 약속을 막 번복해?”“하!”신세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버님한테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 허튼짓 잘하고 약속도 잘 지키지 않는
신세희였다면 전화는커녕 그와 얼굴 마주하기도 싫어했을 것이다.짜증이 치밀었지만 부소경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로 고소정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요.”“말해.”“아저씨가 사실 저번 주에 저랑 엄마한테 말씀한 것이 있거든요. 오늘 대표님 본가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해달라고요. 대표님은 사모님과 같이 참석하실 거죠?”“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부소경이 물었다.고소정은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사모님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그냥 오지 않으시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부소경은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아, 오해하지 마세요. 대표님한테 본가에 오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저희도 초대받은 입장이라 안 갈 수가 없어서요. 아시잖아요. 저희는 여기 의지할 곳도 없고 권력도 없어서 아저씨 말씀을 거역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말씀드린 거예요.”“사모님이 또 화내실까 봐… 사실 두렵거든요.”고소정은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어린아이처럼 구슬프게 말했다.자신은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한 말투로.사실 고소정도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어제 점심, 그와 같이 같은 룸으로 들어갔지만 손도 잡지 못했다.부소경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고소정은 사실 그날 밤 부소경과의 뜨거운 밤을 기대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부소경은 쉽게 낚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자신의 마음을 쉽사리 내보였다가는 오히려 큰 코 다칠 게 뻔하기에 고소정은 천천히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오히려 한 발 물러서서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게 통할 수도 있었다.그래서 부소경에게 전화해서 차라리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좋다는 뜻으로 얘기한 것이다.부소경이 담담하게 대꾸했다.“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아무리 그래도 손님인데 안주인으로써 손님접대는 해야지.”고소정은 잔뜩 감동한 목소리로 되물었다.“저… 정말요?”“다른 일 없으면 이만
단호한 거절에도 부소경은 화를 내지 않았다.그는 그녀보다 더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안 가도 돼.”“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협조 안 하면 내가 유리나 당신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지!”차갑고 담담한 말투였다.“당신!”신세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부소경 당신은 인간도 아니야! 이런 망나니 같은 자식아! 피도 눈물도 없는 놈!”그녀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자신이 아무것도 안 입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한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나면서 이불이 아래로 흘러내렸고 까만 생머리는 그녀의 조막만한 얼굴을 살짝 가렸다.이슬을 머금은 듯한 예쁜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더 안쓰러워 보였다.이불이 흘러내리면서 하얀 피부가 드러났고 부소경의 눈빛은 탐스러운 그녀의 몸매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어젯밤 자신이 남긴 흔적들이 간간이 보였다.멍처럼 파란 자국들은 그녀의 가녀린 인상을 더욱 부각시켰다.남자는 바로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신세희가 흠칫하며 몸부림쳤다.“이거 놔!”“아파?”그가 부드럽게 물었다.“꺼지라고!”남자가 웃으며 말했다.“아직도 화가 안 풀렸네?”신세희는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부소경을 쏘아보았다.부소경이 웃으며 말했다.“유리랑 당신 엄마를 생각해.”신세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잠시 후, 그녀는 다시 평소처럼 돌아와서 억지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까라면 까야죠 어쩌겠어요. 어차피 난 부 대표님이 잡아온 포로잖아요.”“본가가 아니라 남자를 접대하라고 지시해도 들어야겠죠.”부소경은 삭혔던 분노가 다시 끓어올랐다.‘망할 여자가!’사람 화 나게 하는 재주가 탁월한 여자였다. 부소경은 할 수만 있다면 이 여자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그의 손은 이미 그녀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신세희는 전혀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다시 손을 내리고 이불을 뒤집었다.“뭐 하는 거예요!”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남자는 말없이 그녀의 전신을 검사했다.그러고는 저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