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희였다면 전화는커녕 그와 얼굴 마주하기도 싫어했을 것이다.짜증이 치밀었지만 부소경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로 고소정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요.”“말해.”“아저씨가 사실 저번 주에 저랑 엄마한테 말씀한 것이 있거든요. 오늘 대표님 본가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해달라고요. 대표님은 사모님과 같이 참석하실 거죠?”“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부소경이 물었다.고소정은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사모님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그냥 오지 않으시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부소경은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아, 오해하지 마세요. 대표님한테 본가에 오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저희도 초대받은 입장이라 안 갈 수가 없어서요. 아시잖아요. 저희는 여기 의지할 곳도 없고 권력도 없어서 아저씨 말씀을 거역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말씀드린 거예요.”“사모님이 또 화내실까 봐… 사실 두렵거든요.”고소정은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어린아이처럼 구슬프게 말했다.자신은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한 말투로.사실 고소정도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어제 점심, 그와 같이 같은 룸으로 들어갔지만 손도 잡지 못했다.부소경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고소정은 사실 그날 밤 부소경과의 뜨거운 밤을 기대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부소경은 쉽게 낚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자신의 마음을 쉽사리 내보였다가는 오히려 큰 코 다칠 게 뻔하기에 고소정은 천천히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오히려 한 발 물러서서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게 통할 수도 있었다.그래서 부소경에게 전화해서 차라리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좋다는 뜻으로 얘기한 것이다.부소경이 담담하게 대꾸했다.“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아무리 그래도 손님인데 안주인으로써 손님접대는 해야지.”고소정은 잔뜩 감동한 목소리로 되물었다.“저… 정말요?”“다른 일 없으면 이만
단호한 거절에도 부소경은 화를 내지 않았다.그는 그녀보다 더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안 가도 돼.”“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협조 안 하면 내가 유리나 당신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지!”차갑고 담담한 말투였다.“당신!”신세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부소경 당신은 인간도 아니야! 이런 망나니 같은 자식아! 피도 눈물도 없는 놈!”그녀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자신이 아무것도 안 입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한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나면서 이불이 아래로 흘러내렸고 까만 생머리는 그녀의 조막만한 얼굴을 살짝 가렸다.이슬을 머금은 듯한 예쁜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더 안쓰러워 보였다.이불이 흘러내리면서 하얀 피부가 드러났고 부소경의 눈빛은 탐스러운 그녀의 몸매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어젯밤 자신이 남긴 흔적들이 간간이 보였다.멍처럼 파란 자국들은 그녀의 가녀린 인상을 더욱 부각시켰다.남자는 바로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신세희가 흠칫하며 몸부림쳤다.“이거 놔!”“아파?”그가 부드럽게 물었다.“꺼지라고!”남자가 웃으며 말했다.“아직도 화가 안 풀렸네?”신세희는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부소경을 쏘아보았다.부소경이 웃으며 말했다.“유리랑 당신 엄마를 생각해.”신세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잠시 후, 그녀는 다시 평소처럼 돌아와서 억지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까라면 까야죠 어쩌겠어요. 어차피 난 부 대표님이 잡아온 포로잖아요.”“본가가 아니라 남자를 접대하라고 지시해도 들어야겠죠.”부소경은 삭혔던 분노가 다시 끓어올랐다.‘망할 여자가!’사람 화 나게 하는 재주가 탁월한 여자였다. 부소경은 할 수만 있다면 이 여자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다.그의 손은 이미 그녀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신세희는 전혀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다시 손을 내리고 이불을 뒤집었다.“뭐 하는 거예요!”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남자는 말없이 그녀의 전신을 검사했다.그러고는 저도 모르
아팠을까?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전히 그녀의 몸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준 뒤, 겉옷을 입히고 있었다.마치 사랑스러운 애인을 대하듯 부드럽고 자상한 손길이었다. 예전의 애처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도대체 어떤 게 그의 본모습일까?신세희는 혼란스러웠다.그녀가 혼란을 겪는 사이 그는 모든 일을 끝마치고 그녀를 안아 침대에서 내려왔다.“걷기 힘든 거 알아. 그러니까 하이힐 같은 건 신지 마. 아무거나 편한 신발로 신어.”신세희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그녀는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겨 욕실로 들어가서 간단하게 씻었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긴 머리는 하나로 묶었고 얼굴은 창백했다.부소경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물었다.“뭐가 더 필요해요? 화장할까요?”남자가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내려가서 밥부터 먹어!”가정부가 이미 아침을 준비해 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신세희의 앞에는 대추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산에서 재배한 야생 대추인데 귀한 거라 돈 주고도 못 산대요. 대표님이 어디 가서 구해 오셨지 뭐예요. 그래도 너무 많이 드시지는 마세요. 몸에 좋긴 하지만 너무 많이 먹어도 안 좋아요.”가정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아침에 출근했기에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정부는 알지 못했다.신세희가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가정부도 입을 다물었다.이 집 가정부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부소경의 눈치를 살폈다.부소경이 말했다.“아줌마는 이제 됐으니까 나가서 일 봐요.”“네, 대표님!”가정부는 장바구니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대추차부터 마셔!”남자가 명령했다.“네.”신세희는 힘없이 대답했다.남자는 그녀가 대추차 한잔을 다 비우기까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잠시 후, 여자의 얼굴에 그나마 혈색이 돌아오자 그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우리 엄마 있잖아요.”여자가 입을 열었다.그녀는
“고가령? 또 무슨 일로 전화했어! 다음에 또 전화하면 협박 전화로 너 신고할 거야!”신세희는 놀란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고 부소경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지만 고가령은 전처럼 같이 화를 내기는커녕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진희, 네 딸은 네 앞에서 괜찮은 척 연기를 하고 있나 봐? 하지만 걔 지금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은 기분일걸?”“뭐 선택은 네가 하는 거지만 딸 걱정되면 와서 네 눈으로 확인해 보든가.”서진희는 곧바로 신세희에게 고개를 돌렸다.아까는 자세히 못 봤는데 지금 보니 눈이 조금 부어 있었다.오래 울어서 부은 걸까.“다시 전화해서 쓸데없는 소리하면 정말 신고할 거야!”말을 마친 서진희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엄마?”신세희의 눈에서 분노가 치솟았다.“고가령 그 여자가 또 전화해서 시비 걸어?”서진희는 미소를 지으며 딸을 위로했다.“어차피 걔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이모부 믿고 나대는 거야. 걔 이모부가 아무리 잘나도 우리 사위한테 비빌 수 있겠어? 어차피 말만 저렇게 할뿐 아무것도 못해.”“딸, 걱정하지 마. 고가령은 엄마한테 아무 짓도 못할 거야.”“게다가 싸워도 내가 이겨. 그러니까 절대 걱정하지 마. 오늘은 유리랑 소경이랑 같이 시댁에 가서 즐거운 시간 보내.”“알았어, 엄마. 이해해 줘서 고마워.”신세희가 웃으며 말했다.그녀는 엄마 앞에서 우울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더 밝게 웃었다.하지만 엄마 역시 행복한 웃음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연기도 해본 사람이 더 잘한다고 서진희의 미소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그래서 신세희는 엄마가 괜찮다고 믿었다.신세희와 부소경이 유리를 데리고 시댁으로 출발한 뒤, 서진희는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고가령에게 전화를 걸었다.“고가령, 아까 했던 말 무슨 뜻이야?”서진희가 차갑게 물었다.고가령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진희, 신세희가 오늘 부소경 본가로 가는 건 알아?”서진희가 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히 알지!
안 돼!세희가 어떻게 지켜낸 행복인데! 저들이 망치게 둘 수는 없어!세희가 사람들 앞에서 그 수모를 다시 당하게 할 수는 없어!안 돼!서진희는 바로 서준명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서준명은 엄선희와 통화하고 있었다.“선희 씨, 그만 화 풀어요. 일이 해결되면 우리 같이 홍콩으로 여행가는 건 어때요? 선희 씨도 쇼핑 좋아하잖아요.”엄선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어요? 준명 씨 할아버지는 도대체 왜 그래요? 왜 자기 핏줄은 나 몰라라 하면서 핏줄이 아닌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잘해줘요?”엄선희는 잔뜩 흥분해서 비아냥거렸다.“준명 씨 할아버지는 정말 괴짜 맞는 거 같아요. 사람이 너무 헌신적이야. 자기 건 남들 다 퍼주고! 정말 이 나라의 기둥이네요! 자선사업가!”서준명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사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엄선희가 말한 게 다 사실이었으니까.그의 할아버지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했다.임서아를 외손녀라고 애지중지한 것도 그렇고 그렇게 가까운 친척도 아닌 사람들한테 인정을 베푸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피를 나누어 가진 서진희나 신세희한테는 항상 잔인하게 굴었다.“됐어요. 이만 끊을게요. 오늘 정아 씨랑 쇼핑하기로 했거든요.”말을 마친 엄선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말했다.“음… 결제는 준명 씨가 와서 해줘요. 그리고 가는 김에 운전기사도 좀 부탁해요!”사실 엄선희가 아까 그의 할아버지에 대해 분노를 터뜨릴 때, 서준명은 또 사이가 틀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었다.그런데 엄선희가 갑자기 말을 바꿀 줄이야.서준명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그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부드럽게 말했다.“사고 싶은 거 다 사요. 백화점 인수해도 돼요. 돈은 걱정하지 말고요. 내가 다 알아서 해줄게요.”“됐거든요? 끊어요!”엄선희는 쑥스러웠는지 바로 전화를 끊었다.잠시 후, 서진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준명아… 혹시 소경이네 본가에서 가족모임을 열 거라는데 너희 집 사람들도 초대받았니?
지난번 본가로 찾아왔다가 고가령에게 욕을 먹고 쫓겨난 뒤, 서씨 어르신은 한동안 딸을 만나지 못했다.오랜만에 보는 딸은 많이 수척해 보였다.서진희는 여전히 증오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지만 서씨 어르신은 오히려 서진희를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담담하게 대했다.옆에서 지켜보던 서준명이 분노를 터뜨렸다.“할아버지!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지금 저 사람들이랑 같이 세희가 망신당하는 걸 보려고 여기 오신 거예요?”서씨 어르신은 흠칫하더니 느긋하게 물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가 누굴 망신 줘?”서준명은 더 이상 할아버지와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고가령과 그녀의 딸 고소정을 노려보았다.“고모, 그 동안 두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지내는 거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어요. 내 부모님이나 할아버지도 당신들을 가족처럼 대해줬죠. 하지만 고모, 그럴수록 할아버지를 좀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내 옆에 계신 분은 할아버지 핏줄이라고요!”서준명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고가령을 쏘아보았다.정말 짜증나는 사람이었다.고가령은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 서준명에게 말했다.“준명이 너 뭔가 오해했구나? 우린 오늘 손님으로 여기 왔어. 게다가 여기 주인인 부성웅 씨가 네 할아버지를 초대했고 나는 그냥 네 할아버지 따라온 거야. 저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몰라.”서준명이 말이 없자 고가령은 계속해서 말했다.“준명아, 나도 내가 너희 집에 손님으로 온 거 알아. 그래서 평소에 얌전히 지냈잖아. 사실 오늘도 준명이 너한테 운전을 부탁하려다가 네가 많이 바빠 보여서 우리끼리 온 거야. 난 네 걱정을 많이 한다고.”“네가 일하느라 많이 바쁘고 피곤한 거 아니까 경호원들이랑 같이 온 거야.”순간 서준명은 할 말을 잃었다.그는 서씨 어르신에게 고개를 돌렸다.“할아버지.”서씨 어르신은 손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난 늙었다. 요즘엔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려. 너희가 평소
아이는 밤에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아침에 잠에서 깨자 침대 옆을 지키고 있는 외할머니가 보였다.신유리가 외할머니에게 물었다.“외할머니, 어제 저녁에 여기서 유리를 지켜준 거예요?”외할머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아침에 눈을 떴는데 유리 혼자 무서울까 봐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외할머니가 선물 준비했는데 한번 볼래?”“꽃이네요? 생화!”신유리는 활짝 웃었다.서진희는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아이에게 주었다.아이는 더 이상 엄마나 아빠를 찾지 않았다.외할머니가 어쩌면 부모님보다 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부모님이 도착하기 전, 신유리는 주말마다 외할머니 댁에서 자겠다고 말했다.그렇게 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졌다.본가로 오는 길에서도 신유리는 쉴 새 없이 아빠와 엄마에게 왜 외할머니만 두고 오냐고 물었다.“할아버지는 유리한테 외할머니가 생겼다는 거 몰라?”“다 가족인데 왜 외할머니만 쏙 빼고 파티하는 거야?”아이의 질문에 부모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신유리는 그럴수록 이유가 궁금했다.마침 차에서 내리자 보고 싶었던 외할머니가 보였다.아이는 쪼르르 달려가서 외할머니의 품에 안겼다.“외할머니, 유리 놀래켜 주려고 온 거예요?”“조금 전에 같이 오지 왜 따로 왔어요? 외할머니 나빴어. 그래도 유리는 여기서 외할머니 만나서 기뻐요. 다음에는 꼭 같이 와요.”신유리는 할아버지 댁에서 열리는 가족모임에 외할머니도 참석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아이는 이따가 본가로 들어가면 저택 이곳 저곳을 구경시켜 줘야겠다고 다짐했다.서진희는 아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그래. 우리 유리 놀래켜 주려고 일부러 따로 왔지.”신세희와 부소경이 그들에게 다가왔다.신세희는 여전히 눈이 부어 있었다. 서진희는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걸까?둘은 아직 화해하지 않은 걸까?그런데 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 부소경을 따라 이곳까지 온 걸까?부성웅이
부소경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계속 기분 좋았으면 좋겠군.”옆에 있던 신세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아줌마가 왜 여기 있어?”신유리가 고개를 들고 불쾌한 표정으로 고소정을 바라보며 따지듯 물었다.고소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유리구나. 나도 너희랑 친척이니까?”“그런데 왜 우리 엄마한테 인사 안하고 아빠부터 찾아?”신유리의 질문에 고소정은 대답을 피했다.“아줌마 일부러 그랬네.”신유리가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고소정은 어린 신유리의 질문공세에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저번에 백화점에서 우리 엄마랑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한 것도 사실은 거짓말이지?”“그리고 아줌마 딸을 나랑 같은 유치원에 보낸 것도 일부러 그런 거잖아?”“상은이한테 다 들었어. 아줌마는 상은이 친엄마가 아니라면서? 그리고 상은이한테 자꾸 나랑 친하게 지내라고 재촉했다며?”고소정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어린 신유리의 말빨에 밀린 것이다.“유리야. 난 네 엄마 친척인 동시에 네 아빠의 친구이기도 해. 그러니까 우리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거지. 못 믿겠으면 네 아빠한테 물어보렴.”고소정은 도발적인 눈빛으로 신유리를 쏘아보며 말했다.사실 이렇게 하면 부소경이 자신을 똑똑한 여자라고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하지만 부소경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신유리가 버럭 화를 냈다.“아줌마 정말 이상한 여자네! 우리 엄마 친척이면 친척이지 왜 자꾸 우리 아빠한테 친한 척해?”“아줌마랑 우리 아빠가 친구야? 우리 아빠랑 친구가 되기 전에 나한테 허락 받았어?”“허락 받은 적 있냐고 묻잖아!”“우리 아빠는 남자 친구를 사귈 때마다 나한테 허락 받고 사귀었거든?”고소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신유리의 발언에 서준명까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가 약간 통쾌한 표정을 지으며 신유리에게 물었다.“그래서 유리야? 네가 허락한 네 아빠 친구 중에 여자는 있어?”신유리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