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고소정은 소리를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오빠, 다른 친척분들도 아주 재밌는 사람들이네요.”그리고 그녀는 민정아를 쳐다보며 회사 사모님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말했다.“오빠 사촌 동생 맞죠? 그러니까 내 언니가 되는건가? 저는 고소정이라고 해요. 앗, 미안해요 언니, 언니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네요.”민정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미친년이!”엄선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그리고 고소정을 흘겨보며 말했다.“너, 사람 잘못 찾았어! 서씨 가문에서 돈이라도 많이 갖고 가려고 한 것 같은데, 그것도 일단 내 맘에 들어야 하지 않겠어?”고소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저... 오늘부터 서씨 가문에 들어가서 살게 됐어요.”“누구 마음대로 집에 들어와 살아! 어디라고!”그녀는 버럭 화를 냈다. 곁에 있던 민정아도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고소정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곁에 있던 신세희는 그 모습을 보고 고소정이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세 사람 중 신세희가 제일 냉정하게 판단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민정아와 엄선희의 팔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두 사람 그만해! 화내니까 얼굴에 주름지는 것 좀 봐! 그만하고 올라가자. 내가 점심에 아주 좋은 마사지숍으로 쏜다!”신세희가 민정아와 엄선희를 끌고 올라갔다.엘리베이터에서 그녀는 아무 일도 없는 척 민정아를 보며 말했다.“정아 씨, 저 여자 쉬운 여자 아니야. 아주 무서운 여자야.”“그치? 나도 느꼈어!”민정아는 바로 신세희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다.“그러면 어떡하면 좋을지 우리 세희 씨가 알려줄래?”“저 미친년이 지금 제일 부족한게 무엇일까?”그녀의 말에 민정아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어머! 세희 씨, 오늘 나랑 같은 계열의 색상에 비슷한 스타일의 옷도 입고. 우린 역시 잘 통하나 봐. 안되겠다. 점심에 어디 근사한 곳으로 가서 밥이나 먹을까?”“어디로?”“남편들 불러! 나도 내 남
“오빠... 어떻게 저한테...”서준명은 바로 굳은 표정을 풀고 말했다.“너랑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 들어와 지내도 괜찮아. 하지만 얌전히 있어. 허튼수작이라도 부리면 바로 쫓아낼 테니까.”고소정은 서준명이 이토록 앞뒤가 다른 사람인 줄 몰랐다.그는 자신을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엄마가 한 말에 따르면 엄마는 서씨 가문에서 자라 서씨 가족 사람들과 아주 애틋한 사이라고 했다. 예전엔 서씨 가문의 공주님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근데 지금은 대체 왜 이렇게 변했을까? 겪어보지 않은 갖은 수모에 다시 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자신들의 뒤를 봐주던 사람이 최근에 돌아가셔서, 앞으로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편하려면 서씨 가문에 빌붙을 수 밖에 없다.고소정은 하는 수없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서준명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오빠, 무슨 소리예요. 저 세희 씨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세희 씨는 의심병이 심한 것 같아요. 저 귀국하고 어떻게든 새로운 계약서를 따내려고 노력했어요. 어제는 너무 시간이 급해..”“그만해! 변명하지 말고 열심히 일이나 해!”서준명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그녀의 말을 끊었다.한참 후, 그가 선심을 쓴다는 말투로 말했다.“혼자 힘으로 이룬 것만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어. 직장도 좋고 서씨 가문의 도움도 있으니 너도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네 오빠. 저 진짜 열심히 일 할게요.”뒤로 돌아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그녀가 우는 것을 본 그녀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물었다.“소정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준명이가 너를 괴롭혔어?”“엄마!”그녀의 말에 고소정은 더욱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엄마! 엄마는 처음부터 금수저였잖아!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신분, 좋은 학교에 유학까지 다녀오고 나도 그렇고! 근데 대체 저 여자들보다 못한 게 뭐야!”“저 여자들?”고가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오빠 약혼녀! 엄선희!”“그리고 사촌 동생인지 뭔지 하는 저 민정아! 민정아 남
고소정은 미소를 지었다.자신감이 붙은 그녀가 말했다.“엄마! 앞으로 우리 같이 부씨 가문에 시집가자! 우린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집의 안주인이 될 자격이 있어!”“당연하지!”고가령은 그런 딸을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그러니까 서씨 가문을 잘 잡아야 해. 그들이 우리의 가장 든든한 발판이 되어줄 거야. 알겠어?”“알지, 엄마.”모녀를 태운 차가 멀리 떠나고 있었다.한편, 신세희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소정은 엄마인 고가령과 함께 서씨 가문 본가에 입주하겠다고 뜻을 밝혔다.만약 그녀의 짐작이 맞다면 파티에서 서씨 가문을 초대한 목적도 고가령 때문일 것이다.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섭섭함이 몰려왔다.자신의 엄마가 떠올랐다.그날 밤, 퇴근한 신세희는 신유리, 부소경과 함께 엄마의 집을 찾았다.딸이 가족들과 함께 나타나자 서진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오늘이 주말도 아닌데 어떻게 왔어?”신세희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엄마를 보며 말했다.“엄마, 잘 지냈지?”그러자 서진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당연하지. 요즘은 춤 연습에 집중하고 있어. 춤은 잘 못 추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맛이 있어. 열심히 해야지.”“엄마는 리듬감이 좋으니까 잘해낼 거야. 춤 연습하면서 친구는 좀 사귀었어?”신세희가 물었다.“그럼. 거의 나랑 또래라서 편해.”서진희가 말했다.“용돈 두둑이 줄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밥도 사고 커피도 사고 그래.”신세희가 웃으며 말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부소경이 골드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장모님, 한도가 없는 카드니까 마음대로 써요. 백화점은 물론이고 식당, 마트 어디서든 가능해요.”서진희도 사양하지 않고 카드를 받았다.“고마워.”그날 밤, 그들 일가는 서진희의 집에서 밥을 먹었다. 신세희는 약간 안쓰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고는 했다.서진희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엄마라서 딸의 감정을 가장 잘 느끼고 있었다.신세희는 안
“고모, 사실… 고모도 우리 할아버지를 신경 쓰고 계셨죠?”서준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서진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되물었다.“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너는 속상해할 거야?”서준명이 대답했다.“아니요, 고모.”“준명이 너는 참 든든하고 착한 아이야. 고모한테는 아주 훌륭한 조카지. 너를 가족으로 인정한 건 우리가 혈연관계이기도 하지만 네가 네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해. 너는 한 번도 이 고모에게 싫은 감정을 드러낸 적 없고 오히려 내 어머니가 살던 집을 깨끗하게 관리해 주었지. 네가 정 많은 아이라는 건 내가 잘 알아.”“고마워요, 고모.”서준명이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네 할아버지는 달라.”서진희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할아버지에게 나는 원치 않은 아이였겠지. 나는 태어날 것을 거부할 능력이 없었어. 아기 때도, 어린이집 다닐 때도 나는 네 할아버지의 혐오의 대상이었어.”“네 할아버지는 내가 죄악의 근원이라는 듯이 행동했고 나도 그렇게 느꼈어. 태어날 때부터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가 나였으니까.”“자신감 없고 어두운 성격을 가지지 않았던 건 네 작은할머니가 낙천적이고 현명한 여자였기 때문이야. 내 엄마가 없었으면 아마 나는 네 할아버지 구박에 미쳐버렸을지도 몰라.”“그런 사람을 내 아버지로 인정할 수 있을까? 신경 쓰이긴 하지. 하지만 미움이 더 큰 것도 당연한 거 아니야?”“내가 속상한 건 난 태어날 때부터 아빠 없이 태어난 아이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고가령은 다르지. 우린 어릴 때 같이 공부하고 친하게 지냈지만 걔는 항상 우월감에 취해 있었어. 지금도 네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지.”“준명아, 이건 질투일까?”서준명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모, 못 받은 사랑은 제가 채워드릴게요. 저를 아들로 생각해 주세요. 평생 고모한테 효도할게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못 해준 거, 제가 다 해드릴게요.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요.”“고마워, 준명아.”서진희가 웃으며 말했다.“
서씨 가문 본가.이곳에 방문하는 게 얼마만이지?이곳은 과거 서진희가 받았던 굴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다.어릴 때 그녀는 이곳을 지나갈 때면 작은 소리 하나에도 목을 잔뜩 움츠리고 다녔다. 열일곱 살 때, 그녀는 이곳 가정부한테 질질 끌려 나오다시피 해서 문밖에 던져진 적도 있었다.음악학원에 입학했지만 학비가 없어 찾아왔을 때, 그녀의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서 급전이 필요할 때, 그녀는 몰래 서씨 어르신을 찾아왔다.하지만 만나고자 한 사람은 만나지 못했고 정실 부인에게 덜미를 잡혀 버렸다.그 존귀한 사모님은 그녀를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끌고 가서 차가운 얼굴로 협박했다.“앞으로 다시 우리 가문에 발을 들이면 널 인적도 없는 곳에 팔아버릴 거야! 다시는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도록!”그때 어린 서진희는 얼마나 절망했을까?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났다.서진희가 아직도 가슴을 졸이며 눈물을 글썽일 때, 대문이 열렸다.문을 연 사람은 서씨 가문 경호원이었다. 그는 문을 연 직후에 옆으로 비켜섰다.그리고 익숙한 휠체어가 보였다.휠체어에는 서씨 어르신이 앉아 있었다.한달 사이에 노인은 훨씬 수척해져 있었다.90세가 되어 가는 노인이었지만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관리도 잘해서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듣던 사람이었다.허리도 굽지 않고 정신 상태도 좋았다.외손녀를 잘못 데려온 사건이 있고 친딸이 나타나면서 서씨 어르신은 자신의 진짜 가족을 찾으려 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그 뒤로 노인은 급속도로 늙어갔다.지금은 가벼운 산책도 휠체어를 타고 나와야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그리고 서씨 어르신의 휠체어를 밀고 나온 사람은 다름아닌 고가령이었다.고가령과 그녀의 딸 고소정, 그리고 외손녀 고상은은 어젯밤 이 집에 들어왔다. 이곳에 돌아온 뒤에야 그들은 진짜 재벌의 삶이 어떤 건지 체험할 수 있었다.서씨 가문은 50년 전의 위력이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정계에서 몸담다가 은퇴하고 상계로 진출한 서씨 어르신은 꽤 큰 성과를 이루었다.지금도 서진그룹 계열사
서진희는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눈앞에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은 마치 부녀 사이처럼 각별해 보였다.서진희는 몇십 년 만에 만난 고가령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세월은 고가령의 얼굴에 그렇게 많은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다.정말 신의 사랑을 받는 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녀는 여전히 우아하고 고귀한 모습 그대로였다.여전히 공주처럼 사랑 받는 존재였다.반면 그녀는 어떨까?소박한 차림에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 머리도 빗지 않고 달려왔다. 눈앞에 공주마마처럼 우뚝 서 있는 그녀를 보자 자괴감이 들었다.그리고 휠체어에 탄 노인.그 사람은 고가령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가족이 돌아와서 좋으시겠어요.”서진희가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서씨 어르신은 그제야 딸을 발견했다.초췌하고 상처 입은 눈빛.서씨 어르신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사실 어제 고가령 모녀가 외손녀까지 데리고 집에 들어올 때 그들이 하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다.부소경 아내가 경박하고 무례한 여자라든가.고소정이 신세희 때문에 회사에서 힘들어졌다든가.경박하고 무례한 여자한테 맞아서 내팽개쳐졌으며 신세희 그 여자는 시정잡배와 다름없다는 얘기였다.어르신은 그때 잠든 상태였기에 어렴풋이 들었지만 고가령 모녀는 그가 못 들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게 전부였다.서준명의 부친과 서준명이 이 대화의 주제를 노골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이었다.가장 심한 건 서준명이었다. 그는 그들 모녀에게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결국 고소정이 나서서 대화를 마무리했다.“오빠, 저 정말 일부러 부 대표님한테 접근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든 증명해 보일게요. 오빠 명함을 통행증으로 쓰고 조금 성급하게 접근한 건 인정할게요. 하지만 저는 마케팅 직원이에요. 실적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요.”“엄마는 이곳을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은할아버지나 외삼촌도 제 엄마를 가족으로 대해주시죠. 하지만 저는 제 힘으로 먹고 사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이모부, 왜 그래요? 괜찮아요? 왜 저 여자를 보고 그렇게 놀라세요? 이모부?”고가령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호들갑을 떨었다.하지만 서씨 어르신은 기침을 하느라 그녀의 말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그의 시선은 여전히 서진희를 향해 있었다.서진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밤새 생각했다.오늘 아침에 어떻게 이 노인에게 따질까.왜 조카딸과 그 조카딸이 낳은 딸까지 감싸주면서 신세희에게 상처 주냐고?어디까지 가야 끝낼 거냐고?심지어 서씨 가문에서 자신의 목숨을 원한다면 서슴없이 내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삶에 미련이 없었다.하지만 딸의 행복을 누군가가 빼앗아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게 서진희가 밤새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녀는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이곳으로 왔다.하지만 이 순간, 자신의 아버지가 여전히 그 아이를 친딸처럼 따뜻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그리고 친딸인 자신은 잔뜩 움츠리고 서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조차 잊었다.그녀는 한참을 흐느끼다가 입을 열었다.“이게… 당신이 바라던 행복이었군요. 당신의 조카딸은 여전히 당신의 사랑을 받고 있군요.”“나를 알아?”고가령이 짜증스럽게 서진희에게 물었다.고가령은 귀국하기 전, 남성에 관해 많은 것을 조사했다.그리고 서씨 가문이 여전히 잘나간다는 것을 확인했다.F그룹 새 오너가 부성웅의 사생아라는 것도 확인했고 그 사생아가 남성의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존재라는 것도 확인했다.그리고 부소경은 남성에서 귀족의 상징이었고 그의 아내의 이름이 신세희라는 것을 확인했다.신세희는 감옥에 간 적 있는 전과자였고 남성의 많은 재벌2세들과 스캔들이 있었다.게다가 신세희가 이모부인 서씨 어르신이 가장 증오했던 존재라는 것도 알았다.그 뒤에 벌어진 일은 고가령이 모르는 내용이었다.그녀의 소식통에 문제가 생겼던 건 아니다.어르신도 최근에 들어서야 신세희가 자신의 외손녀라는 것을 알았고 친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고가령은 마치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서진희를 비난했다.그리고 그녀를 혐오했다.마치 30년 전에 가난에 허덕이며 서씨 가문에 찾아온 그녀를 비난했을 때와 같은 태도였다.“이모부가 왜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나 했는데 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음침하구나!”서진희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너는 염치도 없어? 그 어미에 그 딸이라더니! 뭐라고 했더라?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나? 넌 너희 엄마랑 닮아도 너무 닮았어!”고가령의 폭언에 서진희는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평생 남과 싸울 일 없이 조용히 살아온 여자와 어릴 때부터 예쁨만 받고 자라서 기고만장한 여자는 뭔가 달라도 많이 달랐다. 서진희는 자신을 비난하는 고가령 앞에서 패배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게다가 서씨 어르신이 여전히 조카딸을 애지중지하는 것을 보자 가슴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이게 자신을 30년이나 찾아다닌 아버지가 보일 수 있는 태도인가?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녀의 진짜 가족이 되고 싶다고 했던 말도 거짓인 것 같았다.안 그래도 2주 사이에 자신을 몰래 찾아오지 않은 서씨 어르신 때문에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진짜 가족이 신변에 돌아왔으니 이제 필요가 없어진 걸까.어차피 자신은 사생아일 뿐이니 포기가 빨랐을지도 모른다.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서진희는 오늘 여기 온 목적조차 잊어버렸다.그녀는 속으로 자신을 욕했다.‘서진희, 넌 욕을 먹어도 싸! 넌 이 집안에 또 뭘 기대했던 거야? 이 집안 사람들은 처음부터 너를 인정한 적 없어!’“이곳은 너를 환영하지 않아! 당장 꺼져!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말고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라고! 생떼는 어릴 때나 부리는 것 아닌가?”고가령의 비아냥이 쏟아졌고 서씨 어르신의 표정이 차갑게 굳은 것을 보고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거리로 달려 나온 그녀는 급급히 택시를 불러 거처로 돌아왔다.집에 돌아온 뒤에도 고가령의 욕설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비천한 출신은 어딜 가도 변하지 않는 법이지! 옷 좀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