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녀의 영향을 받은 부소경은 지금 서진희를 장모님이라고 부를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가끔은 신세희보다도 더 친절하게 부르기도 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세 식구는 백화점에서 선물을 가득 사 들고 서진희한테로 향했다.도심 한복판 조용한 곳에 위치한 집은 원래는 낡았지만 서준명이 다시 인테리어를 한 덕에 생기가 넘치게 되었다.지난주에 부소경은 삼십억짜리 가구를 주문하여 이 고풍스러운 집에 들여놓아 주희진이 남긴 매화 그림들과 어울리도록 했다.“엄마! 우리 외할머니 그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어?""네 외할머니는 평생 매화를 사랑하신 분이셔. 매화를 그림에 남기고 싶었지만 그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적었지.""엄마… 울지 마. 외할머니가 하늘에서 엄마가 우는 걸 보시면 슬퍼할 거야."서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이건 준명이가 새로 포장해서 보낸 것들이야. 매화 그림과 이 가구들은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방이 훨씬 고급스러워졌어.""응. 그런것 같아.""이번 주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부모들이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아이들을 데리고 왔어. 재능이 넘치는 애들 몇 명만 돈을 받지 않고 가르쳐 주려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이 작은 마당에 즐거움이 보태질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엄마가 좋으면 나도 좋아."신세희는 어머니가 하는 말을 열심히 귀담아듣고 찬성했다.평생 고생만 하고 희생만 한 이제 겨우 50대에 들어선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애들, 다 마음에 들어요?"서진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난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할게.""한 아이 부모님이 댄스동아리도 추천해 줬지 뭐야! 하하하!""그럼 당연히 가입해야지! 엄마 내가 이렇게 응원할게!""그 댄스교실에 정식으로 가입하려면 보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기다리면 돼지. 우리 엄마는 몸매도 좋고 피아노도 잘 치니까... 춤도 연습하면 정말 잘할 것 같아. 어쩌면…."댄스 동아리에 다른 남자들이 있는지 물어보려다가 엄마가 부끄
"할머니랑 장모님이 내주신 숙제 말이야!"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가까워졌다.그녀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안 돼요, 내일 출근도 해야 돼요…"신세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다음 날 아침...남자는 일찍 깨어났지만, 신세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이틀 밤을 꼬박 남편에게 시달리다 보니 신세희는 쓰러질 것만 같았다."오늘 출근하지 마!""안 돼요!"신세희는 바로 반박했다."요즘 너무 많이 쉬었어요. 회사 사람들은 내가 사촌 오빠의 동생이어서 막나간다고 생각할 거예요. 오늘부터 출근을 더 열심히 해야 돼요."신세희는 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여자는 자기 일이 없으면 안 되고 자신의 중심이 없으면 안 된다. 또한 업무 중에는 반드시 진지해야 하며 조금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그녀가 억지로 몸을 지탱하고 일어나 비틀거리며 세수를 마치고 침실에서 나오니 남자는 이미 아침 식사를 끝냈다."오늘 유리랑 같이 나가도록 해. 아침 일찍 회의가 있어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밥 좀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하면 어쩌려고? 할머니가 주신 처방약 잘 챙겨 먹고, 유리 어린이집에 보내고 당신도 출근 잘해!”남자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그리고 신세희와 신유리의 볼에 입을 맞추고 출근을 했다."…."옆에 있던 신유리가 말했다."엄마, 많이 피곤해?"신세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 네 아빠 때문이야!""엄마, 아빠 탓하지 마. 이제 출근할 때 내가 가방 들어줄게."꼬마는 매일같이 아빠 편만 들었다.누가 부소경의 딸 아니랄까 봐.신세희보다 일찍 일어난 신유리는 먼저 밥을 먹고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했다. 그리고 안방에 가서 신세희의 가방도 현관 옆에 내려놓았다.아침을 먹고 있던 신세희는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우리 공주님, 이리 와, 엄마가 뽀뽀해 줄게."신유리는 빠른 발걸음으로 달려갔다."엄마, 나 오늘 상은이
"근데 왜 선물로 뽀뽀야?""상은이가 그러는데... 상은이는 엄마한테 뽀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데.""….""그렇게 해도 돼? 엄마?"“엄마?”"그래, 엄마는 괜찮은데 상은이 엄마가 허락하실지 모르겠어. 만약 상은이 엄마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한테 억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알겠지?"신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아침을 먹은 후, 두 모녀가 함께 계단을 내려가자 엄선우가 아래층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아저씨, 안녕!"신유리는 예의가 바르게 인사했다. 이제는 엄선우와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엄선우도 인사했다."공주님, 사모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신세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차에 올라탔다.차가 떠난 지 한참 후에야 신세희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선우 씨, 부 씨 가문에 들이닥친 그 사람, 혹시 선우 씨도 봤어요?""네, 사모님."엄선우는 사실대로 말했다.눈치 빠른 그는 신세희가 묻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대표님께선 요즘 쌍둥이 형제분을 계속 찾고 계십니다. 사모님도 아시다시피 이번에 찾는 사람은 다름 아닌 친 형제시니 너무 강하게 나가면 도망갈까 두렵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또 이렇게 남성에 와서 소동을 일으키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대표님께서 가만히 지켜만 보지 않았다면 절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겁니다.""…."엄선우의 말이 맞다. 부소경이 정말 독한 마음을 먹고 반호영을 붙잡으려고 했다면 반호영이 지금처럼 이렇게 지낼 수 없었다."하지만….""만약 그분이 이렇게 계속 소란을 피우신다면 대표님께서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입니다. 대표님께서는 오래전부터 그분을 찾으셨는데 지금 이렇게 제 발로 나타나 줬으니 더 좋은 거죠."“그럼 죽어?"꼬마 신유리가 불쑥 물었다.엄선우는 백미러로 어린 공주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았다.핏줄은 서로 끌린다고 했던가…신유리가 가성 섬에 있을 때, 그녀의 친 삼촌은 그녀를 친딸처럼 예뻐했다.신유리는 정이 많은 아이다."
"…."고상은 엄마의 말에 신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신유리도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그러자 여자는 바로 사과했다."앗, 사모님, 죄송해요. 제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신세희는 웃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모님, 저는 월급쟁이 일뿐이에요. 저는 사모님과 같은 부자와 비교할 수 없어요. 보세요, 제 딸이 사모님 남편분의 신발을 밟아 신발을 닦아드렸을 뿐인데… 남편분께선 저한테 혐오하시는 말투로…"신세희는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거예요?""아니요!"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저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에요. 귀하고 사치스러운 부자들이랑 저희 같은 월급쟁이들은 서로 다른 세상의 사람이에요. 저는 단 한 번도 당신들과 엮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부럽지도 않았고요! 노숙자가 된다고 해도 사모님 집 앞에는 찾아가지 않을게요.""상은 엄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고상은 엄마는 계속해서 말했다."그래서 말인데요, 사모님, 사모님 친구 분들께 제가 절대 그들의 모임에 끼지 않을 거라고 전해주실수 있나요? 저는 정말 여유 시간이 없어요. 매일 회사 일도 바쁘고, 또 혼자서 애 키우느라.... 전 명품 가방이며 남편이며 그 사람들이랑 비교할 여유랑 돈이 없어요.""그래요, 내가 도와드릴게요."고상은 엄마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고마워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고상은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예전의 신세희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한테만 차가운 표정을 지었고,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따뜻한 미소로 맞이했다.하지만 저 여자는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신세희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신유리가 불만스러운 말투로 신세희를 불렀다."왜 그래?""엄마 상은이한테 뽀뽀 안해줬어!"그녀는 신유리와 시선을 맞추고 말했다."유리도 봤지? 엄마는
신세희는 평소에 수진 엄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말투가 곱게 나가지 않았다.“수진 어머니, 제가 오늘 좀 지각했거든요. 큰일 아니면….”“유리 엄마, 나도 저번 사건이 있은 뒤로 유리 엄마가 우리를 싫어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내 인격을 걸고 약속할게요. 우리가 과거에 안하무인인 사람이었던 건 맞지만 우린 단톡방에서 명품 자랑 같은 건 일체 하지 않아요. 육아 경험을 의논했을 뿐이죠.”신세희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수진 엄마가 계속해서 말했다.“나도 그 사람 억지로 우리 단톡방에 가입하라고 강요한 적 없어요. 자기가 원해야 같이 어울리는 거죠. 그런데 수진이가 어느 날 집에 와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고상은이라는 친구가 유치원에서 우울해 보인다고 했어요.”“우리는 그냥… 상은이 엄마랑 소통을 좀 해보고 싶었어요. 혼자 애 키우는 엄마가 얼마나 힘든 걸 알기에 같은 여자로서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라고요.”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수진 엄마를 보자 신세희는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죄송해요. 제가 뭔가 오해를 했나 보네요.”“괜찮아요, 유리 엄마.”수진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유리 엄마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다 알죠. 내가 노파심일 수도 있겠지만 상은 엄마는 지나치게 차가워요. 유리 엄마도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달라요. 최근에 상은이가 전학을 왔잖아요. 그 아이… 온지 일주일도 안 돼서 유리랑 아주 붙어 다닌다고 하더라고요.”신세희는 조용히 수진 엄마를 바라보았다.수진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냥 그렇다고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애들이 친해지는 거야 뭐라고 할 수 없죠.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유리 엄마도 유리 잘 챙겨요.”말을 마친 수진 엄마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작별인사를 했다.“사실… 나도 요즘 직장을 구했거든요. 이만 가볼게요.”신세희는 멀어지는 수진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수진 엄마가 해줬던 말 때문에 며칠 전 백화점에서 민정아와 엄선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구서준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준명이한테 친척은 정아 씨랑 공주님밖에 없죠.”“장난하지 말고요!”신세희가 곱지 않게 그를 흘겼다.“숙모님, 그래도 내가 상사거든요? 일 안 해요?”구서준이 생글생글 웃으며 되물었다.신세희는 그제야 자신이 지각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녀는 곧장 뒤돌아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로 들어서려던 신세희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준명 오빠 다른 친척 없는 거 맞아요?”“확실해요!”구서준이 대답했다.신세희는 그제야 시름이 놓였다.‘그래, 서 씨가 한두 명도 아니고. 내가 예민했던 거야.’그렇게 그녀는 이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그리고 일에만 몰두했다.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야 했기에 일정이 빠듯했다. 요즘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그렇게 일주일 동안 신세희는 유치원에서 고상은 엄마를 마주치지 못했고 그녀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흐려졌다.어차피 그녀와 별로 접점이 없는 사람이었다.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차갑고 솔직한 사람일 뿐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갔다.그날은 주말이었고 엄선희는 야외로 캠핑을 나가자고 제안했다. 마침 남성에 있던 구서준도 바로 그 제안에 동의했다.물론 민정아도 두 손 들어 찬성했다.하지만 신세희는 약간 미안한 얼굴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나는 시간 안 될 것 같아. 다음 주로 미루는 게 어떨까? 이번 주에 엄마가 댄스 클럽에 가입하시기로 했어… 사실 우리 엄마가 피아노 잘 치고 그림도 잘 그리지만 엄청난 몸치시거든.”“그런데 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마침 시간 되니까 같이 연습하자고 했어. 이런 때라도 응원해 드려야지.”신세희가 웃으며 말했다.평생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본 적 없는 엄마였다. 이 나이에 하고 싶은게 생겼다는데 당연히 지지해 줘야 했다.“그럼 가지 말자. 집에서 서준 씨랑 데이트해야지.”민정아가 말했다.엄선희도 어깨를 으쓱했다.“나도 됐어. 엄마랑 뜨개질이나 해야겠어.”“
반호영이 전달한 뜻은 명확했다. 공 들여서 찾지 않으면 절대 찾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모든 정력을 반호영에게 쏟아 그를 억지로 끌어낸다면 폭탄 장치를 실행할 것이다.압박을 가하면 자폭한다는 뜻이었다.“수백억의 대가를 주고 구한 폭탄이야. 중동 쪽에서 유명한 암시장에서 구매했대.”신세희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도대체 뭘 하려고 그런 짓까지 벌일까요?”그녀가 기억하는 반호영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이성적이고 선을 지키며 사랑을 할 줄 아는 남자였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으면 이렇게 처절하게 누군가를 해치려는 걸까?신세희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어떻게 할 거예요?”그녀가 남자에게 물었다.“추격을 멈추기로 했어.”“하지만 그렇게 하면 본가 쪽을 자꾸 들쑤시고 다닐 텐데요.”“그건 그 인간들이 자처한 거야!”부소경이 차갑게 말했다.“만약에….”“만약 그 자식이 당신이랑 유리한테 접근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지만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부소경의 말투는 담담했다.어머니가 낳은 또 다른 아들. 부소경도 그가 무척 신경 쓰였다.하지만 반호영은 이미 미친 것 같았다.만약 반호영이 선을 넘지 않고 얌전히 군다면 회사 지분이라도 떼서 줄 생각이었다.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었다.하지만 만약 그가 다 같이 죽자고 덤빈다면 봐줄 생각이 없었다.신세희는 남자의 머리를 살며시 품에 안았다.남자가 무슨 일을 하든 그만의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런 남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뿐이었다.“이제 자요.”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그래.”그날 밤, 신세희는 남자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얼마나 아파했을지 그녀도 알고 있었다.아무리 얄미워도 핏줄이었다.부소경에게는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자요, 여보. 내일 나랑 같이 엄마 집에 가요. 엄마가 춤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확
화분을 들고 있던 서준명이 멈칫했다.“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세희 너… 뭔가 발견한 거라도 있어?”신세희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에요. 오빠가 주말마다 엄마 집에 내려오니까 우리 말고 다른 친척은 없는 것 같아서요.”그녀는 일부러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서준명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 친척 얘기가 나오니까 머리가 아파.”신세희는 잠시 주저하다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요, 오빠? 설마 정말 다른 친척이라도 있어요?”서준명이 웃으며 대답했다.“있지. 우리 엄마도 아는 친척이야. 고모랑은 유치원 동창이라고 들었어. 사이가 꽤 가까웠다고 했는데 고모 신분을 알고는 고모를 우리 집에서 내쫓았지.”신세희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어린 시절 서진희에게는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서진희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고 바로 절교했다고 했다.그리고 서진희가 서씨 가문 저택에 오는 것까지 반대했다.아마 기억이 맞다면 그 친구의 이름이 고가령이었을 것이다.고씨!고상은도 고씨였고 서씨 성을 가진 할아버지와 친척 사이라고 했다.아마 우연은 아닐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서준명을 바라보았다. 서준명은 화분을 내려놓고 입구 계단에 걸터앉더니 그녀에게 말했다.“사실 할아버지는 건강이 안 좋은 게 아니라 그 친척을 피하겠다고 서울로 가신 거야.”“네?”놀란 신세희가 되물었다.서준명은 약간 피곤한 말투로 대답했다.“사실 다 할아버지 잘못이지 뭐. 나한테는 사촌고모인데…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 언니의 딸이야. 어릴 때부터 우리 할머니 옆에서 컸거든. 우리 할머니가 딸을 잃었잖아. 그래서 그 고모를 딸처럼 키웠어.”“물론 할아버지도 고모를 예뻐하셨지. 이름이 고가령일 거야.”신세희는 이미 아는 이름이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고가령의 아버지는 모 기업의 임원이었다. 평범한 가정보다는 풍족하게 살았지만 서씨 가문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