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진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고 반호영을 바라보았다.검은색 정장 차림에 여전히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남자.하지만 말투만큼은 섬뜩할 정도로 부드러웠다.“넌 참 더러운 여자야.”“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반호영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최여진을 쏘아보며 말했다.“네가 여기 있는 줄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어! 너 같이 역겨운 여자는 다시 만나기도 싫거든! 임신했다는 이상한 얘기는 하지 마! 임신했으면 아이 지워! 아이 안 지우고 나한테 들러붙을 생각이면 지옥이 뭔지 맛보게 될 거야!”“네가 인간이니….”퍽!남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최여진을 걷어차고는 가던 길을 갔다.해외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남자를 만났지만 이처럼 무례하고 이기적인 남자는 처음이었다.최여진은 화가 나서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예쁘게 관리를 받았더니 남자의 발길에 바닥을 구르며 한 동안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최여진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거기 안 서?”하지만 반호영은 이미 멀리 가버린 뒤였다.그는 차를 타고 정처 없이 질주하고 있었다.이 땅을 다시 밟은 순간부터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그러고 보니 이 도시에는 그의 핏줄도 살고 있었다.그의 쌍둥이 형.그리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짐승 같은 그의 아버지.반호영은 차를 운전하며 부성웅을 떠올렸다.그는 사실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다.가까스로 부씨 가문 본가에 도착한 그는 대문 밖에서 한참을 기다렸다.날이 어두워진 뒤에야 한 쌍의 노부부와 그리고 한 여자 세 명이 차에서 내려 본가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반호영은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보지 못했다.하지만 몸매나 걸음걸이는 여전히 건장하고 당당했다.‘그런 모습으로 젊었을 때 어머니를 유혹했구나!’그의 어머니!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땅 속에서 잠자고 있을까?참 불쌍한 여인이었다.반호영은 그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녀
그날 밤, 반호영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반호영은 어제 갔었던 노선을 다시 떠올리며 부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그는 교차로에서 조용히 기다렸다.아침 여덟 시가 되자 부성웅과 진문옥이 편한 복장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 반호영은 구역질이 올라왔다.“여보, 당신 쓰러지고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소경이 얘는 당신을 보러 오지도 않고, 괘씸해 죽겠어요!”진문옥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크게 말했다.부성웅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서씨 영감을 돕는 게 아니었어. 누가 뭐래도 신세희랑 소경이는 결혼한 사이인데 신세희를 그렇게 몰아세웠으니 소경이가 화를 내도 할 말 없지.”“사실 그 영감도 불쌍해. 감쪽같이 속은 거잖아. 누가 알았겠어. 신세희가 어르신 외손녀라는 것을 말이야! 임서아가 가짜일 줄은….”진문옥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금이라도 신분이 밝혀졌으니 다행이지. 그런데 신세희랑 그 엄마도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어르신이 한 달 째 앓아누웠는데 어떻게 한 번도 문안을 안 와?”진문옥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그 애가 누구 손녀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 걔가 소경이 아내라는 게 지금도 마음에 안 들뿐이지. 걔가 악랄한 애라는 건 변함이 없잖아?”“그 애가 정말 말처럼 순진하고 착한 애였으면 소경이를 저 정도로 구워삶았겠어? 소경이가 보통 애야?”“상희는 몇 년이 지나도 곁을 허락하지 않던 소경이잖아. 여보, 상희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지켜본 아이잖아. 해외 명문대 출신이고. 걔가 신세희보다 못한 게 뭐야?”부성웅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상희 얘기는 하지도 마! 내가 보기엔 걔랑 소경이는 이제 불가능할 것 같아.”“신세희만 좋은 일 했지 뭐! 더러운 년!”부부는 이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산 아래로 향했다.그들은 운동을 가는 길이었다.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젊은 남자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잘들 지냈어?”반호영이 냉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그들의 사이를 오해한 부성웅은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개졌다.“뻔뻔한 년이! 내 아들과 결혼한 뒤에도 널 만나고 다녔단 말이야? 너 도대체 누구야?”반호영은 경멸에 찬 미소를 지으며 부성웅의 멱살을 잡았다.“영감, 잘 들어! 나 오늘 영감 만나러 온 거야! 당신이 여기 사는지 확신할 수 없었거든. 그런데 당신들이 신세희 험담하는 거 듣고 이제 확신할 수 있어!”“영감! 신세희 험담하기 전에 당신이 저지른 짓들을 생각해 보지 그래? 지은 죄가 있으면 갚아야 한다는 말 못 들었어? 난 오늘만 기다리며 매일을 살았어!”부성웅은 평생 살면서 지은 죄가 많았다.사업을 하면서도 죄를 지었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그는 치를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했다.그의 아들들은 전부 죽고 부소경만 남았다.이 나이에 혈육을 잃은 대가로 부족했던 걸까?부성웅은 눈앞의 남자가 누군지 궁금해졌다.이 남자는 무슨 이유로 그를 찾아와서 이런 험한 말을 지껄이는 걸까? 하나 확실한 건, 그가 신세희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부성웅이 물었다.“너는 도대체 누구야! 나한테 그런 협박은 이제 안 통해! 내 아들 부소경이 집 근처에 많은 경비 직원을 배치했어.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나가기는 쉽지 않을 거야!”“난 어제도 왔었는데? 왔다가 가는데 아무도 막지 않더라고? 당신 아들이 대단한 줄 알아? 하지만 당신 아들도 당신 지킬 생각은 없을걸? 당신을 증오하면 모를까!”“너 도대체 누구야?”“내가 누군 거 같아?”“난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이야! 당신이 나한테 빚을 졌거든! 하지만 오늘은 때가 아닌 것 같군! 부성웅, 명심해! 이 망할 노친네랑 둘이 신세희 험담하는 게 다시 내 귀에 들어오면 그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말을 마친 반호영은 차를 타고 휑하니 떠나 버렸다.“저 녀석이! 너 도대체 누구야! 가지 말고 얘기를 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서 협박질이야!”부성웅은 화가 나서 차를 쫓아가며 고함을 질렀지만 돌아오는 응답은 없었다.진문옥은 그 모습
그는 고개를 돌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신세희를 바라보았다.남자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그의 아버지란 사람은 역시 이런 사람이었다.어릴 때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그와 그의 엄마, 그리고 동생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그런 그가 신세희를 비난하고 있다.2주 동안 신세희는 그와 거의 붙어서 보냈다. 시간이 될 때면 고윤희를 찾아 다녔다. 그런 그녀가 무슨 시간이 있어 외간남자를 만날까?부소경의 말투는 점점 온기를 잃었다.“다른 용건은 없죠?”“당연히 있지. 그 외간남자가 글쎄….”탁!부소경은 얘기를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신세희는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남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소경 씨,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아버님이랑 얘기해 보지 그랬어요.”부소경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그러고는 한참 말이 없다가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신세희도 고개를 들고 남자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인데 그래요? 나한테 얘기해 봐요. 같이 고민하자고요.”남자는 착하기만 한 이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서씨 어르신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녀는 그에게 서씨 어르신과 관계를 끊자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그의 마음을 배려했다.가끔 부소경은 자신이 신세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신세희의 존재가 자신의 위로가 된다고 느꼈다.실제로 신세희는 그를 정신을 놓지 않게 지탱해 주는 기둥 같은 존재였다.그녀의 겉모습은 가녀리고 연약해 보이지만 속은 강한 여자였다.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그녀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6년 전, 가난에 찌들어 아이를 안고 거리를 방황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텨낸 그녀였다.어디 그뿐인가.위급한 상황에서 이 가녀린 몸으로 조의찬의 목숨을 구했다.조의찬도 가성섬에서 신세희와 신유리를 구한다고 뛰어들었지만 신세희가 조의찬을 구할 때 상황은 그때보다 더 위험했다. 그래서 조의찬이 신세희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그녀의 아름다운 영혼이 조의찬을 매료시켰다.서시언도 마찬가지였다.가성섬에
“누구시죠?”신세희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잘 지냈어?”상대의 말투는 그녀의 오랜 지인 같기도 하고 그녀에게 깊은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신세희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그녀는 옆에 있는 부소경을 힐끗 바라보았다.부소경은 살짝 당황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왜 그래?”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전화를 말도 없이 끊어서 아버지가 신세희에게 전화간 줄 알았다.신세희는 난감한 얼굴로 전화를 부소경에게 넘겼다. 부소경은 냉기가 뚝뚝 흐르는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하지만 상대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그와 신세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신세희가 입을 열었다.“우리 오빠가 아닐까요?”신세희가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서시언.“당신 오빠 아니야!”부소경은 약간 날이 선 말투로 대답했다.서시언의 목소리라면 그는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서시언의 재활 때문에 자주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서시언이 신세희를 걱정하는 말투는 조금 전처럼 음울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말투는 절대 아니었다.멀리 떨어져서 들었지만 상대의 말투에서 후회와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다.서시언은 달랐다.신세희에 대한 서시언의 마음은 가족에 가까웠다.부소경은 자신이 서시언에게 화가 났는지 아니면 그녀에게 전화를 건 남자에게 화가 났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그의 아버지가 한 말 중에 하나는 맞았다.그것은 신세희의 주변에 그녀를 흠모하는 남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조의찬, 서시언, 그리고 서준명까지. 서준명은 과거 신세희가 맡은 프로젝트의 총 담당자이기도 했다.그리고 가장 최근에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던 남자, 반호영.부소경의 쌍둥이 형제, 반호영!부소경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반호영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반호영을 찾을 생각이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엄선우는 이내 정색하며 공손히 대답했다.“사모님, 사실 제가 오늘 늦잠을 잤는데 오는 길에 급하게 김밥을 먹다가 좀 체한 것 같습니다.”그러자 신세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병원에 가보는 게 좋지 않아요? 운전은 소경 씨한테 맡기고 어서 병원에 가봐요!”부소경은 차갑게 식은 얼굴로 신세희를 품에 끌어안으며 무언의 항의를 했다.차는 곧 신세희의 회사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자 회사로 들어가는 구서준과 서준명이 보였다.서준명도 사실 회사에 출근하는 게 오랜만이었다.할아버지가 몸져누우면서 줄곧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보살피고 있었다.서씨 가문은 효를 중요시하는 가문이었다.그래서 요즘 회사 업무는 거의 구서준이 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는데 금요일이 된 오늘에야 서준명이 회사에 나타난 것이다.우연인 건지, 세 사람은 회사 입구에서 서로 마주쳤다.오랜만에 신세희를 만난 서준명은 무척 들떠 있었다.“세희야.”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이미 사촌남매가 되어 있었다.서준명은 만감이 교차했다.처음 신세희를 만났을 때부터 그녀가 자신의 동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동생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물론 신세희 모녀는 그의 할아버지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혈연관계만 따지면 그들은 여전히 가족이었다.“점심에 뭐 먹을래? 오빠가 사줄게.”서준명은 동생을 굉장히 아끼는 오빠처럼 자상하게 행동했다.한편 신세희는 팔목 통증 때문에 말도 할 수 없었다. 부소경이 그녀의 팔목을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뿐이 아니었다. 부소경은 냉랭한 눈빛으로 서준명과 구서준을 쏘아보며 말했다.“최근에 매출이 별로 오르지 않았던데 어떻게 된 거지?”“삼촌, 그게… 나랑 서준이가 딱히 잘못한 게 아니라….”“난 서 대표한테 물었어!”부소경은 날카로운 말투로 조카의 말을 잘랐다.서준명은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부소경에게 물었다.“형이 회사 주주도 아니잖아요?”하지만 부소경은 계속해서 억지를 부렸다.“회사 매출 지금의 두 배로 올리지 못하
신세희는 멈칫하며 고개를 들고 서준명을 바라보았다.혹시라도 그가 자신을 데리고 서씨 어르신을 만나러 갈까 봐, 거부감이 앞섰다.그녀는 담담한 말투로 서준명의 요청을 거절했다.“죄송하지만 그 집 어르신을 만나달라는 요청이라면 제가 좀….”하지만 서준명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그런 게 아니야! 할아버지가 너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거 나도 알아. 나도 그 생각만 하면 할아버지가 밉거든. 어쨌든 할아버지 병문안을 가자는 얘기는 아니었어.”신세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요. 고마워요, 오빠.”“너 나를 뭐라고 불렀어? 오빠?”“처음부터 서 대표님은 나를 동생으로 생각했잖아요.”“맞아!”서준명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신세희가 물었다.“그래서 가고 싶은 곳이 어디예요?”“지금 가보면 알아!”서준명이 말했다.하지만 신세희는 요지부동이었다.“중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난 오늘 할 일도 많은데… 내가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다른 부서까지 피해를 보는 거라.”그러자 서준명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참, 깜빡하고 있었네. 내 동생 워크홀릭이었지? 너 같은 직원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럼 점심 휴식 시간에 잠깐 나가자.”신세희도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먼저 엘리베이터에 탔다.서준명이 가자고 한 곳이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다.그녀는 오늘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였다.최근 서씨 어르신과의 분쟁 때문에 2주를 쉬고 고윤희를 찾느라 또 며칠 쉬었기 때문에 밀린 일들이 많았다.내일은 주말이라 어떻게든 오늘 안에 남은 일들을 마무리해야 했다.사무실로 돌아온 신세희는 온 정신을 업무에 몰두했다.그래도 업무보조가 민정아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민정아는 점점 업무에 적응하고 있었고 배우는 것도 빨랐다.오전 내내 그녀는 신세희가 원하는 서류나 물건을 빠른 시간 안에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신세희가 그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못 그린 초안도 어느 정도
신세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서 대표님, 도대체 어디로….”그러자 서준명은 안심하라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세희야. 가보면 너도 마음이 훨씬 편해질 거야.”신세희는 생각에 잠겼다.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곳?고윤희를 찾았다는 건가?아니면 서시언이 돌아왔나?신세희는 기대를 품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그렇게 서준명은 차로 30분을 달려 교외의 편벽한 곳으로 왔다.신세희는 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길 모퉁이를 돌자 높은 담벼락이 보였다.문 앞에는 치료감호소라고 쓰여진 간판이 있었다.신세희는 의아한 얼굴로 서준명을 바라보았다.“여기 맞아. 병에 걸린 범죄자들을 가두고 치료하는 곳!”“걔… 죽은 거 아니었어요?”최근 한 달, 신세희는 바쁘게 보내느라 자신의 최대 적이었던 사람들의 생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신세희에게는 복수보다 더 중요한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일단 안으로 들어가자.”신세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서준명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치료감호소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안은 매우 조용했는데 이곳에 온 사람들 대부분이 중증 환자들이었다.일부는 이곳에 온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죽는 경우가 다반사였다.신세희는 사방이 꽉 막히고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좁은 복도를 걷고 있자니 음침한 느낌마저 들었다.“여기 느낌이 마치….”신세희는 서준명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정신병원 같아요.”서준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뭐, 비슷하지.”그들은 대략 5분을 더 걸어서 한 병실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안에서는 음침한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마치 밤중에 귀신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선생님, 저… 언제 죽어요? 왜 아직도 살아 있어요?”의사는 아주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당신은 죽지 않아. 이식 수술을 받았거든.”“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죠?”“응, 수술 부작용 때문에 그래.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선생님, 저 매일 밤 악몽을 꾸어요. 너무 무서운 악몽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