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희와 서진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신유리가 있었다.서진희의 얼굴에 곧바로 화색이 돌았다.가끔 지나가다가 멀리서 쳐다보던 아이였다.한 번도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 없었는데 지금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쭈그려 앉아 신유리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내 착한 외손녀, 예쁘기도 하지…. 나한테 이렇게 사랑스러운 외손녀가 있다니!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아.”신세희도 그 모습을 보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뒤에 있던 엄선우가 말했다.“사모님, 사실 공주님이 돌아올 시간은 아닌데 대표님께서 빨리 어르신께 보여드리고 싶다고 일찍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 선우 씨. 정말 수고 많았어요.”그러자 엄선우는 고개를 흔들었다.“사모님, 오늘 현장에서 사모님과 어르신의 힘든 과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제가 우리 공주님과 어르신을 대표님을 모시듯이 지키겠습니다! 제가 있는 한 아무도 두 분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신세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선우 씨.”“사모님, 어르신 피곤하실 텐데 어서 올라가시죠.”“그래요.”그렇게 신세희는 엄마와 딸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처음 신세희의 집을 방문하는 서진희는 매사가 조심스러웠다.거리 생활을 오래 하다가 갑자기 이런 호화 저택에 오니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다.하지만 외할머니를 처음 보는 신유리는 아주 친절하게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여기저기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다.“외할머니, 이 방에서 생활하시는 게 어때요?”신유리가 물었다.서진희는 넓은 방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둘러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외할머니 혼자 이렇게 큰 방을 쓸 수는 없어. 안에 화장실도 있고 침대도 있네. 온 가족이 같이 살아도 되겠어.”“외할머니도 참. 이 방은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방이 아니에요. 가장 큰 방은 아빠랑 엄마가 쓰고 있어요!”말을 마친 신유리는 외
신유리의 입가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아이는 집안의 모든 기물을 외할머니에게 주고 싶었다.그날 오후, 신세희는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회포를 풀고 싶었지만 신유리가 외할머니를 독차지하는 바람에 밤이 되어서야 엄마와 둘 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놀다 지친 신유리는 서진희가 들려주는 동화 이야기를 들으며 단잠에 빠졌다.아이가 잠든 뒤, 신세희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왜 이제야 나타났어? 나 그때 아파트 입구에서 그렇게 엄마를 불렀는데 왜 안 나타났어? 내가 엄마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알아?”말을 마친 신세희는 또 눈물을 흘렸다.서진희는 딸을 품에 끌어안으며 흐느끼듯 말했다.“내 딸!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 계속 행복하기를 바랐어.”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이유를 말했다.“엄마는 어려서부터 무시를 당하며 자랐어. 이 세상에 엄마를 사랑한 사람은 오직 네 사람뿐이었어. 네 외할머니와 엄마를 길러준 양부모님, 그리고 돌아가신 네 아빠.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무시하고 괴롭혔지. 그래서 엄마는 평생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 네 외할아버지도 엄마를 무시하고 증오했잖아. 네 친아빠도 그랬고.”“엄마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네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을 보고 너희의 생활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하지만 너를 떠나기도 아쉬웠어. 계속 네가 눈에 밟혔어. 평생 네가 행복한 모습을 멀리서 바라만 볼 수 있다면 내 옆을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행복할 것 같았어. 거지처럼 살아도 그게 뭐 어때서.”“너는 엄마의 전부야.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네 외할아버지와 친아빠가 짜고 너를 벼랑으로 내몰지 않았다면 엄마도 나타나고 싶지 않았어. 엄마 사실 잘 살았어. 이거 봐, 건강하기만 하잖아.”서진희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딸을 바라보았다.세상 행복을 다 가진 것 같은 만족스러운 눈빛이었다.하지만 신세희는 울음을 터뜨렸다.“엄마, 내가 미안해. 딸인데 엄마가 그렇게
수화기 너머로 서준명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세희야, 할아버지는 본가 저택의 80퍼센트랑 가문의 재산을 고모와 너에게 물려주시겠대. 그리고 작은할머니를 위해 좋은 땅을 매입해서 무덤을 지어주고 싶으시대. 그리고….”서준명이 잠시 말을 더듬었다.사실 신세희에게 그다지 전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신세희가 동의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어젯밤 서씨 어르신은 밤새 뜬눈으로 새웠다.하룻밤 사이에 어르신은 눈에 띄게 허약해지셨다. 오늘 아침에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셨다.그런 모습을 지켜본 서준명은 대신 말을 전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신세희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듣고 있으니까 말씀하세요.”“할아버지는 작은할머니, 그러니까 네 외할머니를 위해 묘비를 세우고 나중에 세상을 뜨게 되면 작은할머니 옆에 묻히고 싶대. 살아 있을 때 작은할머니한테 미안한 게 많으니 죽은 뒤에 곁을 지키는 것으로 속죄하고 싶대.”신세희는 고개를 들고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그녀가 누구와 통화하는지 모르는 서진희는 신유리에게 음식을 챙겨주고 있었다.신세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서 대표님, 사실… 대표님 말이 맞아요. 대표님도 나랑 엄마가 닮았다는 걸 눈치채셨는데 어르신은 끝까지 저를 인정하지 않으셨죠. 대표님 말씀처럼 우리 엄마가 가출하기 전에 어르신은 엄마를 찾지도 않으셨다면서요. 그러니 외할머니는 오죽했겠어요.”서준명이 말했다.“알아. 나도 다 아는 사실이야, 세희야.”“그러니까 서 대표님, 과거는 과거일 뿐이에요. 아무도 누굴 원망하지 않아요. 엄마가 가장 아빠 사랑이 필요할 때, 내 외할머니가 가장 보살핌이 필요할 때 그분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셨잖아요. 지금 와서 되돌리려고 해도 외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서준명은 할 말을 잃었다.“우리 엄마도 말씀하셨지만 엄마와 어르신 사이에는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사실 서씨 가문에서 여태 찾은 사람도 우리 엄마가 아니라 대표님 할머니가 낳은 진짜
건장한 체격, 좋은 집안, 그리고 군에서의 명망.그는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다.자신의 아내를 너무 사랑했고 남자는 평생 한 여자에게만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그는 아내뿐만 아니라 아내의 가족들도 극진히 챙겼다.아내가 동생의 딸을 유치원에 데리러 가라고 부탁한 날, 그는 순순히 유치원으로 갔다.그리고 유치원에서 어딘가 기가 죽은 여자아이를 만났다.단 하루도 아빠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아빠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아이도 아빠에게 안기고 싶었다.아이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피아노를 쳤다.어린 나이라고는 볼 수 없는 실력이었다.하지만 친아빠는 한 곡을 채 듣지도 않고 가버렸다.그때 그는 아이가 얼마나 실망했을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아이가 느낄 감정을 고민해 본 적 없었다.그와는 상관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그는 분노했다.한 번의 실수로 한 여자가 그의 약점을 잡고 매번 아이를 가지고 그를 압박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는 철저히 그들을 저버리기로 했다.그 아이를 자신의 약점으로 남겨둘 수 없었다. 그는 평생 아이를 모르는 척하기로 결심했다.그랬던 그가 지금은 침대에서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고 있다.그의 혼탁한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심장이 타들어가는 듯이 아팠다.눈만 감으면 사랑을 갈망하던 아이의 눈빛이 떠올랐다.그 아이가 어제 말한 것처럼 아무리 실수라고 해도 피임 조치는 했어야 했다는 말이 그른 것 하나 없었다.아무리 그래도 그의 목숨을 구해주고 주저 없이 그에게 처음을 내준 여자였다.그는 자신의 은인을 상대로 더러운 욕구를 채웠다.일이 다 끝난 다음에는 실수라고 변명했다.그리고 여자를 더럽고 귀찮다고 모욕했다.언젠가 하늘나라로 가면 무슨 낯짝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자신의 아이를 낳아주었던 여자를 본단 말인가?그녀와 그 아이는 무책임한 남자 하나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그런 생각을 하며 서씨 어르신은 고통스럽
서준명과 서씨 어르신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검은색 코트를 입고 손에 몽둥이를 든 서진희가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 있었다.어르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가….”서진희가 이를 갈며 말했다.“사람 말을 왜 이렇게 안 들어요? 어제 내가 좋게 얘기했잖아요. 나도 많이 참았다고요. 당신이 우리 엄마와 나한테 한 일, 지금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솟아요. 하지만 내 몸에 당신의 그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어서 당신을 죽일 수도 없다고요!”“내가 이제 다시 보지 말자고 했잖아요. 왜 당신은 항상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요?”“그냥 네 엄마를 보러 온 거야….”“엄마는 당신 만나고 싶어하지 않아요!”서진희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엄마가 살아 계실 때, 엄마가 당신 목숨을 구해줬을 때, 당신의 실수로 임신하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를 낳을 때, 당신은 엄마가 가장 당신을 필요로 할 때 배은망덕하게 엄마를 저버렸잖아요! 이제 와서 이런 거 다 필요 없어요!”“꺼져! 당장 꺼져! 안 꺼지면 아무리 아빠라도 정말 팰 거야!”그 말을 들은 서씨 어르신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진희야, 그러니까 나를 아빠로 인정해 주는 거니?”“난 태어난 자체가 고통스러웠어요! 만약 시간을 되돌리고 할수만 있다면 엄마 배속에 있을 때 혀 깨물고 죽었을 거예요. 내 몸에 당신 피가 흐른다는 게 역겨워요!”서씨 어르신은 비굴하게 사과했다.“진희 네 말이 맞아. 아빠가 여기 오면 안 됐어. 아빠가 앞으로 다시는 엄마를 찾으러 오지 않을게. 네 엄마 기분 나쁘게 하지 않을게. 아빠는 그냥 너한테 살 집이랑 용돈 좀 주고 싶었어. 너도 이제 호사를 누리며 살아야지. 계속 세희 집에 얹혀살 수는 없잖아….”“꺼지라고요! 제발!”서진희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절규했다.서씨 어르신은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피했다.항상 피라미드의 정상에서 사람을 부리던 존재가 이토록 초라한 모습이라니!옆에 있던 경호원들이 어르신에게 다가서며 물었다.“어르
신세희도 절규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다가가서 엄마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했다.“엄마, 너무 속상해하지는 마. 외할머니는 평생 엄마 걱정만 하셨잖아. 엄마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으실 거야. 그러니까 진정해, 엄마….”신세희가 기억하는 그녀의 엄마는 낙관적인 사람이었다.그건 아마 지금은 영원히 잠든 그녀의 외할머니에게서 좋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서진희는 엄마의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무척 닮았다.신세희의 위로를 들은 서진희는 드디어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는 흡족한 표정으로 신세희 부부를 바라보며 말했다.“부 서방, 세희야, 나와 함께 외할머니를 보러 와줘서 정말 고마워. 외할머니도 너희를 봤으니 행복해 하실 거야.”긴 한숨을 내쉰 그녀가 계속해서 말했다.“엄마는 계속 너희 집에서 지낼 수는 없어. 엄마는 외할머니가 살던 집에서 남은 생을 보내고 싶어. 네 외할머니처럼 아이들에게 피아노도 가르치고… 삶이 너무 심심하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싶어. 그래도 될까?”그 말을 들은 신세희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엄마! 잘 생각했어! 난 찬성이야!”그들은 바로 행동에 옮겼다.주희진이 살던 저택은 서준명이 말했던 것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서진희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여전히 아버지인 서씨 어르신과는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조카인 서준명과는 꽤 친근하게 지냈다.서준명이 고모라고 불러도 그녀는 흔쾌히 부름에 응해주었다.서준명과 신세희 일가의 노력 끝에 2주 뒤, 서진희는 30년 전 자신이 생활했던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조금 낡긴 했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었다.번화한 도심 속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운치 있는 저택이었다.서준명의 꾸준한 관리로 안에 있던 가구들도 여전히 깨끗하고 정갈했다.서준명과 신세희는 정원에서 서진희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음대에 합격했으나 돈이 없어 입학하지 못했던 서진희의 피아노 실력은 전혀 녹
신세희는 멈칫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최근 엄마가 살 집을 정리하느라 출근도 못 한 그녀였기에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게 오랜만이었다.오랜만에 전화하는데 휴대폰이 꺼져 있자 그녀는 가슴이 철렁했다.불길한 느낌이 음습했다.그녀는 2주 전, 엄마와 재회하기 전날 저녁 꾸었던 악몽이 떠올랐다.벼랑에서 떨어지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던 고윤희의 얼굴이 떠올랐다.꿈에서 들었던 고윤희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세희 씨….”비명소리에 놀라서 깬 뒤로 신세희는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고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그때도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그날은 신세희가 구경민의 별장에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고윤희와 민정아, 엄선희가 그녀의 복수를 한다고 병원에 찾아갔던 일도 있었다.신세희는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고윤희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그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부소경의 아버지가 갑자기 집으로 찾아왔다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서씨 어르신과 임지강이 그녀의 집 앞으로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참담한 날이었지만 그날로 임씨 가문과의 오랜 악연도 끝이 났다.그날이 신세희에게는 복수에 성공한 날이었고 엄마와 재회한 기쁜 날이기도 했다. 그녀는 가족상봉의 기쁨에 젖어 고윤희를 잠시 잊고 있었다.그 뒤로는 엄마의 거처 때문에 바쁘게 보냈다.그러다 보니 그날의 악몽도 점차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오늘에야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는데 여전히 전화기가 꺼져 있으니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두 친우를 바라보았다.“세희 씨, 왜 그래?”엄선희가 물었다.민정아도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신세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2주 전에 윤희 언니한테 전화했을 때도 꺼져 있었는데 지금도 휴대폰이 꺼진 상태야.”잠시 후, 엄선희가 민정아에게 말했다.“정아 씨, 윤희 언니는 정아 씨 숙모님이기도 하잖아. 요즘 윤희 언니한테서 따로 연락 없었어?”민정아가 얼굴을
신세희는 엄선희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엄선희도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세희 씨도 알다시피 나와 정아 씨는 세희 씨를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해. 세희 씨는 마치 큰언니 같거든. 윤희 언니는 세희 씨 친구고 우리도 윤희 언니를 좋아하지만 세희 씨랑은 좀 달라.”“게다가 저번에 나랑 정아 씨가 윤희 언니를 끌고 병원에 찾아가서 난동을 부린 일 때문에 윤희 언니도 곤란하게 만들었어. 그 뒤로는 언니한테 먼저 연락하지 않았어.”민정아도 고개를 끄덕였다.“저번에 병원 난동 때, 사실 숙모님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어. 나랑 선희 씨가 억지로 끌고 거기까지 간 거야. 그런데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그랬다.신세희가 집안 일로 바쁘게 보낸 2주 동안 두 친구도 고윤희에게 연락하지 않았던 것!하지만 신세희는 그들을 탓할 수 없었다.아무리 친구라도 2주 정도 연락을 안 할 수도 있는 법이다.“어떡하지? 지금 퇴근하고 구경민 씨 별장으로 찾아갈까?”엄선희가 물었다.민정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난 찬성! 나도 숙모님이 보고 싶긴 했거든. 어디 아픈 거라면 우리가 가서 보살펴주자.”엄선희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혹시 윤희 언니… 임신한 거 아닐까? 언니는 줄곧 아이를 원했잖아. 만약 임신했다면 구경민 씨 성격에 윤희 언니 핸드폰을 빼앗아 버렸을지도 몰라.”민정아도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와! 그럼 나한테 시동생이 생기는 건가?”“시누이가 될 수도 있지! 섣부른 판단이야!”“그냥 말해본 거야!”서로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자 신세희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최근 들어 그렇게 아이를 원했으니 정말 임신했을 수도 있었다. 고령산모라 구경민이 그녀의 핸드폰 사용을 제한한 것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그녀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부소경은 요즘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장모님의 거처를 해결한 뒤, 쌓인 그룹 업무를 처리하느라 요즘은 야근이 잦았다. 가성섬에서 신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