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이 물었다.「왜 이제야 출발해? 그 킬힐은 감당할 수 있고?」하예정이 흠칫 놀라더니 문자로 그에게 물었다.「내가 킬힐 신은 건 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서점에서 나올 때 단화를 신고 있었다.전태윤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소현 누나가 너 힐 신고 걸어 다니는 영상을 내게 보냈어. 고마워, 예정아. 나 때문에 많이 힘들지.」그의 세상에 녹아들도록 노력하는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하예정은 원래 제멋대로인 사람이라 평상시 옷차림도 편안함 위주였다. 그런 그녀가 전태윤을 위해 변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전태윤은 안쓰러우면서도 감격할 따름이었다. 그는 평생 그녀를 사랑하리라 다짐했다.「소현 언니가 나를 팔았네요. 하이힐 신고 걷는 모습 되게 웃기죠?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하이힐 벗어 던지고 싶어요. 그래도 슬리퍼가 제일 편해요.」관성을 포함한 이 지역 사람들이 슬리퍼 한 켤레로 만천하를 누빈다는 것은 전국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예준하 씨를 만나서 집에 모시고 한참 얘기 나누다 보니 늦게 출발했어요.」하예정이 좀전의 남편의 물음에 대답했다.전태윤은 살짝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예준하 씨는 어떻게 만났어?」「이모네 옆집 그 별장을 예준하 씨가 샀어요. 마침 준하 씨가 풍수지리 전문가를 모시고 집 보러 왔다가 저희랑 마주쳤어요. 소현 언니가 준하 씨를 집으로 초대했고요. 앞으로 이웃으로 지내야 하잖아요.」부부가 서로 문자를 주고받아 하예정은 안심하고 대담하게 자신의 추측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태윤 씨, 난 왠지 준하 씨가 장씨 일가 별장을 산 게 꼭 소현 언니랑 이웃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그녀가 손을 다쳐서 병원에서 수액을 맞을 때 성소현이 함께 있어 줬는데 그때 마침 예준하도 급성 위장염으로 병원에 갔다. 성소현은 아마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하예정은 똑똑히 지켜보았다.예준하는 성소현을 보자 배를 끌어안고 무기력하게 있다가 불쑥 허리를 곧추세우고 가슴을 쭉 펴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예준하는 성소현에게 다 죽어가는 모습을
동씨 가문에 도착하자 별장 대문이 활짝 열리고 본관 입구의 큰 잔디밭이 아주 예쁘게 꾸며졌다. 많은 손님들이 와인잔을 들고 삼삼오오 잔디밭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었다.이경혜의 신분과 지위가 높다 보니 그녀의 차가 동씨 가문 입구에 도착하고 별장에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을 때 동씨 일가에서 이미 소식을 접했다.동 대표 부부는 즉시 자녀를 데리고 마중 나왔다.이경혜의 차는 동씨 일가 도우미들의 안내로 주차장에 주차했다. 동 대표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와서 친히 이경혜의 차 문을 열어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오셨어요, 사모님.”이경혜가 우아하게 차에서 내렸다.“오랜만이에요, 대표님.”이경혜가 웃으며 인사했다.동 대표의 부인도 자녀들과 함께 이경혜에게 인사를 올렸다.동씨 가문은 1남 2녀인데 막내아들이 올해 막 여덟 살이 되어 새하얗고 통통한 얼굴에 나름대로 예의가 밝았다. 동 대표 부인이 아들을 조용히 가르친 후 꼬마 녀석은 예의 바르게 이경혜에게 인사를 올렸다.성소현과 하예정이 차에서 내려와 나란히 이경혜에게 걸어가 양옆에 서자 마치 친자매 같았다.성소현은 관성 상류층에서 아주 유명했다. 그녀의 성격뿐만 아니라 전태윤에게 공개 고백하고 적극적으로 대시한 유일한 여자이기 때문이다.전태윤을 짝사랑하는 여자가 실은 엄청 많지만 그녀들은 성소현 같은 용기가 없다.“소현 씨는 점점 더 예뻐지시네요.”동 대표 부인이 성소현을 칭찬했다.그녀는 이경혜가 하나뿐인 딸을 가장 아낀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성소현을 칭찬하며 이경혜의 환심을 사려했다.아니나 다를까 이경혜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사모님의 두 따님도 너무 예뻐요. 엄마, 아빠의 예쁜 점만 쏙 빼닮았네요. 저번에 큰따님을 볼 때까지만 해도 양 갈래머리를 한 어린아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어여쁜 소녀가 되었대요. 사모님은 참 좋으시겠어요.”동씨 일가 큰딸이 이경혜의 칭찬을 듣고 얼굴이 빨개졌다.동 대표 부인은 하예정을 보면서 전에 만난 적 있는 얼굴인데 어디서 봤던지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
“실례합니다, 대표님.”동 대표 부인은 하예정에게 초대장을 보낸 적이 없다. 그녀는 이모의 명의를 빌려서 함께 왔다.동 대표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실례라니요, 아니에요. 전씨 사모님이 오신 것만으로도 저희에겐 영광인걸요.”하예정은 이경혜가 동씨 가문 큰 따님을 위해 준비한 생일선물을 손에 들고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이모한테 드렸다. 이경혜가 곧이어 동씨 일가 큰 따님에게 선물을 건네며 가볍게 웃었다.“아가씨, 생일 축하해요.”동 대표 부인이 황급히 말했다.“사모님, 그냥 진주라고 부르시면 돼요. 우리 진주 생일 파티에 참석해 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게다가 이렇게 과분한 선물까지 준비해 오시다니, 정말 너무 감사드려요.”그녀는 진주에게 이경혜가 준 선물을 얼른 받으라고 곁눈질했다.이경혜는 진주 세트를 선물했다.진주는 이경혜가 준 선물을 받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이경혜가 딸과 조카만 데리고 올 뿐 성문철은 함께하지 않았다. 동 대표는 아내와 두 딸에게 사모님을 잘 모시라고 분부하고는 곧바로 다른 손님들을 맞이하러 갔다.동 대표 부인은 열정적으로 이경혜 일행을 반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동 대표 부인의 열정 속에 공손함이 담겨 있다는 걸 훤히 보아냈다. 이경혜의 옆에 있는 젊은 여인에게 유독 더 공손하게 대했다.많은 사람들이 하예정은 전태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동 대표 부인은 오히려 냉철하게 꿰뚫어 보았다. 하예정이 전태윤에게 어울리든 말든 그녀는 이미 전태윤의 합법적인 아내이고 전씨 일가의 사모님이다. 전태윤이 하예정의 신분을 공개할 때 애처가 타이틀을 위해 인터뷰를 받았다.전태윤이 이토록 사랑하는 여자이니 하예정의 사모님 자리가 얼마나 굳건한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전씨 일가 어르신들은 늘 생각이 깨어 있고 하예정도 전씨 할머니가 직접 고른 손주며느리 감이라고 한다. 어르신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시는 한 하예정이 거지라 해도 감히 그녀에게 무례할 자가 없다.하여 동 대표 부인도 감히 그녀를 얕잡아보지 못하
여씨 사모님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성씨 사모님과 성소현 씨도 참 아량이 넓어요. 자신의 예비 사위를 외조카 딸에게 빼앗겼는데도 여전히 예정 씨를 데리고 여러 사모님께 소개해 주고 있잖아요.”그녀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조카가 아무리 좋아도 제 딸만 할까?누군가가 여씨 사모님에게 반박했다.“여씨 사모님, 말 좀 가려서 하세요. 전씨 도련님은 소현 씨의 마음을 받아준 적도 없고 무언가를 맹세한 적도 없어요. 단지 소현 씨가 일방적으로 좋아한 것뿐이에요. 다만 소현 씨도 아량이 넓은 건 사실이죠. 화끈하게 사랑했고 쿨하게 내려놨잖아요. 진실을 알게 된 후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해 줬어요. 저도 그때 소현 씨를 다시 보게 됐어요.”“사모님은 저희 앞에서만 얘기하고 이만 멈추세요. 전씨 사모님의 출신을 사방에 알리지 말고요. 전씨 도련님은 여씨 일가에서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여씨 사모님은 입을 벌려 뭐라 말하려 했지만 결국 꾹 삼키고 더는 그런 사모님들과 논쟁하지 않았다.그녀는 원래 이 사교권에서 남들의 웃음거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제수가 아주버님께 시집간 케이스니까.그녀의 원래 남편은 현재 남편의 친남동생이다. 부부가 딸을 낳고 두 살까지 키웠을 때 남편이 우울증으로 투신자살했고 나중에 그녀는 아주버님과 재혼했다.아주버님과 재혼한 후 그녀는 둘째 사모님에서 큰 사모님으로 거듭났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남편이 세대주로 되었고 그녀는 여씨 일가의 안방마님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제수가 아주버님께 시집간 경우라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여씨 사모님은 아주버님과 재혼한 후 또 아들 하나, 딸 하나 더 낳았다. 한편 죽은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여운초는 여씨 일가에서 투명 인간처럼 지냈고 그 집안의 도우미들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했다고 한다.게다가 16살 때 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실명하니 더 미움받았다. 그녀의 친모인 여씨 사모님마저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혼자 알아서 살게
“방안에 30분 동안 있으면서 가장 큰 수확은 바로 명함이에요.”성소현이 가볍게 웃었다.“다 그래. 서로 이익 때문에 왕래하고 있지. 얻을 게 없는 사람은 아예 상대하지 않아! 뭐 먹을래? 내가 가져다줄게.”“아까 본 디저트들이 정교하고 예뻐서 맛있을 것 같아요. 그럼 디저트 좀 갖다줘요. 가게에서 조금 먹고 와서 너무 배고프진 않아요.”단 음식을 좋아하는 그녀는 정교한 디저트들을 보자 군침이 돌았다.전에 심효진과 심미란을 따라 연회에 참석할 땐 심효진과 둘이 구석에 숨어 실컷 먹기만 했다. 그녀는 디저트가 역시 제일 맛있었다. 밖에서 파는 디저트들보다 훨씬 맛있었다.“알았어.”성소현은 와인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하예정을 위해 디저트를 챙기러 갔다.잠시 후 성소현은 빈손으로 돌아왔고 그녀 뒤에 동씨 일가의 도우미가 두 명 따라왔다. 도우미들은 손에 쟁반을 들고 있었고 쟁반 위엔 성소현이 자신과 하예정을 위해 고른 음식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여기 놔주시면 돼요. 고마워요.”두 도우미는 쟁반을 내려놓고 괜찮다고 말한 후 곧장 다른 사람들의 시중을 들러 갔다.두 자매는 구석에 숨어 실컷 먹었고 아무도 감히 그녀들을 방해하지 못했다. 성소현이 워낙 한 성격 하다 보니 그녀 마음에 안 드는 자가 가까이 오기만 하면 가차 없이 체면을 짓밟아 버린다. 그러니 누가 이런 장소에서 체면이 깎이고 싶겠는가?“예정아.”성소현이 갑자기 하예정을 툭툭 치며 똑같이 구석에 있는 여자아이를 보라고 곁눈질했다. 여자아이는 정교한 지갑에서 무언가를 한 팩 꺼내더니 자신의 술잔에 붓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돌려 인파들 속으로 들어갔다.여자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소현과 하예정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의 꼼수가 누군가에게 적나라하게 들켰다는 걸 전혀 몰랐다.“술에 뭘 넣은 거죠?”성소현이 말했다.“아마도 약 가루인 것 같아. 술에 뿌리니 바로 녹아들고 술 냄새가 가려져 마시는 사람은 전혀 다른 맛을 못 느낄 거야. 과연 누가 타깃일까? 진주 씨 성인식이자 생
하예정은 줄곧 여운별만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약을 탄 술을 아무에게도 안 줬고 본인도 마시지 않았다. 하예정은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살짝 궁금했다!곧이어 하예정은 답을 얻었다.그 술을 다른 사람에게 안 준 게 아니라 술을 마실 사람이 이제 막 도착했기 때문이다.스쿠터 한 대가 동가네 별장으로 질주해 왔는데 정원을 가득 채운 고급 차들 사이에서 스쿠터가 유난히 돌출되어 보였다.스쿠터를 타고 온 사람은 스무 살 남짓한 여자아이였는데 중점은 그녀가 아니라 뒷좌석에 앉은 여자였다. 그녀는 품에 꽃다발을 안고 스쿠터에서 내린 후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서 길을 살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그녀는 맹인이었다!하예정은 술잔을 내려놓고 반듯하게 앉아 맹인 여자아이가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맹인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잔디밭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할머니가 전이진에게 준 사진이자 그에게 정해준 신붓감이 바로 그녀였다. 할머니는 전이진에게 1년 안에 무조건 상대의 마음을 얻어 아내로 들여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행하지 못하면 뒷일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그랬다, 그 상대도 여씨 성이었다.여씨 그룹 오너 여 대표의 의붓딸이자 조카딸인 여운초였다.하예정은 동씨 가문의 연회에서 여운초를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여운초는 걸음이 매우 느렸다. 앞이 안 보이니까.주차한 곳은 여운별과 그리 멀지 않아 일반인들은 2분이면 걸어올 거리인데 여운초는 십여 분을 걸어서야 겨우 여운별 앞에 도착했다.“꽃 배달 좀 시켰더니 뭘 이렇게 늦게 와? 배달 속도가 이렇게 느린데 네 그 가게가 문을 안 닫는 게 기적이지 기적이야.”여운별은 여운초보다 여섯 살 어려 올해 갓 스무 살이다. 여씨 사모님이 제 아주버님과 재혼하고 낳은 첫 아이라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여씨 일가는 2천억 자산의 숨은 재벌 가문이다. 여운별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이기적이고 교활한 성격으로 돼버렸다.그녀가 가장
여씨 사모님은 가까운 곳에서 몇몇 사모님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두 딸아이의 인기척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처 없이 여전히 딴사람들과 수다를 떨었다.여운초는 한참 침묵하다가 결국 동생이 준 술잔을 받으며 물었다.“이거 마시면 꽃값 줄 거야?”“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내가 번복하겠니? 이 술만 마시면 20만 원 전부, 한 장도 빠짐없이 다 너 줄게.”“알았어.”여운초가 잔을 들어 입가에 갖다 대고 막 마시려던 참인데 누군가가 불쑥 손 내밀어 그녀의 술잔을 뺏어갔다.“이 술 마시지 말아요.”낯선 이의 목소리였다.여운초는 상대의 목소리로 위치를 찾고는 고개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마주했다.여운초의 술잔을 뺏어간 사람은 다름 아닌 하예정이다.다들 재미난 구경거리를 보고 있을 때 하예정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녀는 여운별이 여운초의 술잔에 가루를 탄 걸 알고 있다. 이는 누가 봐도 좋은 취지가 아닐 터이니 여운초가 마시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여운초는 할머니가 전이진에게 정해준 신붓감이다. 몰랐다면 모를까, 다 알게 된 판에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하예정은 선뜻 나서서 그녀를 지켜주었다.“하예정 씨, 이건 하예정 씨랑 상관없는 일이에요.”하예정을 본 여운별은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그녀는 하예정을 전씨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부르고 나면 자신이 이 시골 여자만도 못하다고 느껴질까 봐.“좀 전에 여운별 씨가 이 술잔에 약 타는 걸 봤어요.”말을 건넨 사람은 하예정이 아닌 성소현이었다.그녀는 하예정이 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미 나선 바에 그녀도 뒤처질 수 없어 함께 끼어들었다. 여운별 같은 레벨은 성소현의 안중에도 없다.그녀는 여운별의 음모를 바로 까발렸다.“성소현 씨,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른대로 해야죠. 내가 술에 약 타는 거 어느 눈으로 봤어요?”성소현이 턱을 치키고 거만하게 말했다.“내 눈 보이죠?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이런...
여운별은 실은 성소현과 하예정에게 도발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여운초를 한 번 도울 순 있어도 평생 도울 건 아니니까!여운별만 원한다면 아무 때나 여운초의 꽃 가게를 박살 낼 수 있고 여운초는 감히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한다.여운초도 바보가 아니기에 성소현이 술에 약을 탔다고 한 이상 절대 그 술을 마실 리가 없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이 꽃은 그냥 너 줄게. 돈 안 받아도 돼.”말을 마친 그녀는 성소현과 하예정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에 감격을 담아 감사의 뜻을 표했다.“여운초, 좋게 말할 때 듣지 그냥!”여운별은 면이 안 섰다.그녀는 여운초가 떠나려 하자 손을 뻗어 덥석 붙잡고 그녀 앞에 성큼 다가가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꽉 잡고 강제로 그 술을 들이부으려 했다.하예정과 성소현은 거의 동시에 나섰다.하예정은 주먹질 솜씨로 가뿐히 전세 역전하여 여운별의 손에서 여운초를 구해냈을 뿐만 아니라 여운별의 턱을 꽉 잡았다. 한편 성소현은 그 술잔을 뺏어와 재빨리 여운별에게 먹였다.여운별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결국 그 술을 몇 모금 마셨다.그녀가 술을 다 마신 후에야 하예정도 천천히 풀어주었다.성소현은 술잔을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잔디밭이라 해도 잔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줄곧 담담하게 딴사람들과 얘기 나누던 여씨 사모님도 그제야 화들짝 놀랐다.제 딸이 손해 보자 여씨 사모님은 곧장 다가왔다.“엄마, 우리 가요, 얼른 가요.”여운별은 자신이 술에 무슨 약을 넣었고 마시고 나면 어떤 후과가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고 개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이건 그녀가 여운초를 위해 준비한 계략인데 성소현과 하예정의 간섭하에 결국 스스로 그 술을 마셔버렸다.여운별은 초조한 마음에 빨리 떠나고 싶었다. 약발이 나기 전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운별아, 너 왜 그래?”여씨 사모님은 초조하게 물었다. 여운초가 옆에 서 있자 그녀는 표독스럽게 째려보며 으름장을 놓았다.“여운초, 너 운
소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정윤하는 소지훈을 보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면 도장의 코치 선배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이내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았다.정윤하는 그녀와 소지훈이 사이도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지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정윤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스스로 가볍게 얼굴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정윤하,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기뻐한 거야? 좀 진정해. 진정하자고.”소지훈은 정윤하의 소개팅 상대들처럼 그녀가 나중에 가정폭력을 행사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정혁주까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남자였다.정윤하조차도 정혁주를 이기지 못하는데.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소지훈의 무술 실력이 정윤하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지훈이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오히려 앞으로 소지훈과 싸울 때 그에게 터져 맞아 땅에 짓눌리지 않게 정윤하가 걱정해야 할 것이다.정윤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던 정윤하는 자신 있게 웃으며 중얼거렸다.“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아저씨가 역시 보는 눈이 있네.”단 정윤하는 자신과 소지훈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소지훈은 대기업의 대표이고 집안도 재벌가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재력이 강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 가문은 가난하지 않고 연성에서도 부자에 속했지만 소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컸다.정윤하는 소지훈이 보통 여자들과 다른 자신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를 좋아할까 봐 무척 걱정했다.남자는 돈이 있으면 나빠지고 여자가 나빠지면 돈이 많아지게 되는 법!소지훈은 부자인 데다 잘생겼기에 여자에게 심장까지 꺼내어 잘해주면 그 여자는 분명 그에게 퐁
“형,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정혁주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본 소지훈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며 물었다.정혁주가 대답했다.“여기 남아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든지 하세요. 어쨌든 정윤하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녁에 돌아올 테니까요. 돌아오면 두 사람 다시 얘기해 봐요. 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믿게 하면 돼요.”“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이모님을 도와 요리할게요.”윤미연에게 잘 보이면 정윤하의 마음을 훔치는 이 길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정윤하는 소지훈의 고백에 놀란 것이 아니라 별로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도장에서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추워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정윤하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도장은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윤미연은 오늘 밤 샤브샤브를 먹을 요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추운 날에는 역시 샤브샤브를 먹어야 속이 편안할 것이다.집이 난방이 안 되면 그녀도 이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한다.겨울이 되면 윤미연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맡기곤 한다.그녀는 따뜻한 도시에서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추위를 타서 연성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향하던 윤미연은 정윤하인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이 시간이면 수업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돌아왔어? 밖에 여전히 눈이 오지? 부엌에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놨는데 한 잔 마셔.”윤미연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왜 혼자 왔어? 너희 오빠들은?”윤미연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윤하에게 물어보았다.정윤하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는요?”“네 아빠가 약속 있어서 나가셨어. 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소지훈이 일어나 정윤하를 쫓아가려 하였으나 정혁주가 가로막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정혁주인 것을 확인하더니 성깔 좋게 말했다.“형, 제가 나가 볼게요.”“지금 가지 말고 윤하에게 혼자 생각하게 시간 좀 줘요. 윤하가 지금 소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거예요. 윤하는 지금 친구 감정이 아닌 이 남녀 간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밖이 추운데... 눈이 내리면 추워질까 걱정돼요.”그러나 정혁주는 친여동생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소 대표님은 추울지 몰라도 윤하는 연성 토박이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추위에 익숙해요. 그러나 소 대표님은 아니죠. 당신은 관성에서 왔으니 관성 쪽에는 겨울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윤하가 추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내버려 둬요. 마음을 다잡고 잘 생각해 보게 내버려 둬요. 갑자기 고백하니, 윤하는 심리 준비도 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 대표님도 그래요. 때가 되면 고백하셔야지... 꽃다발 하나로 윤하가 소 대표님 마음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소지훈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도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같아서요. 제가 한 트럭의 꽃을 선물한다고 해도 윤하 씨 성격으로는 이 꽃들로 얼마나 많은 꽃 떡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까요.”정혁주도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정윤하도 분명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를 사랑한다면 확실히 말해야 했다. 그녀가 알도록 명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형, 윤하 씨가 이렇게 황급하게 나갔는데 정말 저를 피하는 거 아니에요? 윤하 씨는 제가 너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하 씨보다 10세 4개월이나 많은데.”그의 나이는 그녀보다 11살 많다고 말은 했지만 진지하게 계산하면 10년 4개월 연상이다.정
정윤하는 그렇게 하면 소지훈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말을 건넸다.“그럼 그때 가서 신세 좀 질게요.”소지훈이 연성에 있을 때 정윤하가 그에게 잘 접대했으니 그녀가 관성으로 가게 되면 소지훈이 잘 접대해 주면 서로에게 빚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윤하 씨, 꽃 떡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소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정윤하가 소지훈을 쳐다보니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정윤하가 입을 열었다.“제가 또 무슨 생각 해야 하죠? 아저씨가 저에게 꽃을 선물했으니 저를 좋아한다는 생각 해야 돼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저씨가 좋아요.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로 될 수도 없는걸요.”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소지훈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윤하 씨는 제가 윤하 씨에 대해 좋아함이 우정이 아닌 남녀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아저씨가 남자고, 저는 여자인데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뭐가 달라요?”“제 말은 윤하 씨, 저는 윤하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싶단 의미에요. 형제 사이가 아닌 윤하 씨 남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소지훈은 단숨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정윤하의 되묻는 물음에 화가 난 것이다.소지훈도 충동적으로 그 뜻을 똑똑히 해석해 준 것뿐인데...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소지훈이 그녀에게 고백해야 정윤하가 그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소정남이 알려주었다.그가 말하지 않는데 털털한 정윤하가 어찌 알 도리가 있겠는가?목소리가 좀 커진 소지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웅성거리던 도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소지훈은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윤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붉은 구름이 떠 올랐다.그는 도장이 아닌 단둘이 있는 곳을 찾아 로맨틱하게 현장을 꾸민 다음 정윤하에게
“윤하 씨, 이 꽃다발... 제 말은 윤하 씨가 이 꽃다발을 받고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소지훈은 용기를 내어 정윤하에게 물었다.정윤하는 닭 날개를 다 먹고 또 오징어구이를 먹으며 대답했다.“무슨 생각이요?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누가 키운 꽃인지 정말 아름답고 좋네요. 저 보고 꽃을 키우라고 하면 이 꽃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정윤하는 눈치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리고 꽃다발을 받고 보니 장미꽃 떡이 생각났어요. 갑자기 꽃 떡을 떠올리니 너무 먹고 싶네요. 지금 바로 주문해서 먹어야겠어요.”정윤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인터넷으로 꽃 떡을 사려고 했다.“제가 사드릴게요. 지금 여행 중인 친구가 있는데 꽃 떡 좀 가져다 달라고 하면 돼요. 훨씬 맛있을 거예요.”정윤하가 말을 건넸다.“그들이 현장에서 만들어서 팔지 않는 한 산 것과 인터넷에서 사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을걸요. 현장에서 만든 것이 맛있다고 들어는 봤는데. 내년에 시간이 나면 저도 여행 가서 현장에서 구운 꽃 떡을 먹어봐야겠어요.”소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부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즉시 청주성으로 날아가서 꽃 떡을 만드는 것을 배워 정윤하에게 신선한 꽃 떡을 맛보게 하라고 지시했다. 단, 정윤하가 여행을 가지 않고도 신선한 꽃 떡을 먹을 수 있도록 반드시 청주성의 맛과 똑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적어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보다 맛있을 테니까.정윤하는 토픽 X 이라는 앱을 즐겨 사용하는 데 정말 싸다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에게 그 앱에서 물건을 사지 말라고 수없이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소지훈이 역시 부자답다고 말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일반인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결국 침묵을 선택했고 그녀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주었다.“정말 주문하셨어요?”정윤하는 소지훈이 핸드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더니 그에게 물었다.소지훈이 대답했다.“네. 주문해드렸으니 받을 때까지 기다리시면 돼요.”그는 먼저 정윤하에게 인터넷으로
모두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소 대표님한테 매수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소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윤하에게 잘 어울려요.”코치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도 우리 윤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윤하가 주로 만나본 젊은 남자들이 우리 말고는 좋은 남자가 없어서 그래요. 게다가 사장님과 사모님도 얼마나 걱정하세요. 만약 소 대표님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도 반대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소 대표님과 윤하가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 윤하가 왠지 소 대표님께 남녀 간의 정이 없다고 느껴져요. 윤하가 우리를 대한 것처럼 똑같이 소 대표님을 대하는 것 같아요.”정혁주는 코치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도장에는 여성 후배들도 많지만 유독 정윤하가 정혁주를 무척 걱정시켰다.정윤하는 습관적으로 남자들과 형제 사이로 지냈기에 그들도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그들도 정윤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상대방이 무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개를 받을 남자들은 정윤하의 “명성”을 듣더니 심지어 몰래 도장에 가서 정윤하를 지켜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막강한 실력을 보더니 정윤하를 다스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결국 투항하게 되었고 다른 맞선남들과 마찬가지로 감히 나서지 못했다.이로 하여 뒷부분의 맥락은 그대로 뚝 끊기게 되었다.정혁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너희도 사실 소 대표님의 재력에 넘어간 거야. 나조차도 좋게 느껴지는데 너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소 대표님의 재력이 정말 좋은 건 사실이야. 우리도 자기도 모르게 속아 넘어간 거지. 그런데 소 대표님은 꽤 좋은 사람이긴 해. 우리 윤하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너희들도 장난치고 있는 걸 알기에 나도 너희들 탓하지 않아. 우리 전부 윤하를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 내가 소 대표님을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그분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너희들의 말처럼 윤하 계집
“들어가요. 밖이 너무 추워요.”정윤하는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는 소지훈을 도장으로 가자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를 따라갔다.도장의 사람들은 정윤하가 꽃다발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두 사람이 썸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그 꼬맹이들조차 정윤하가 안고 있는 그 꽃다발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정윤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코치님, 이 꽃다발이 정말 아름다워요.”“코치님, 바비큐 드실래요? 우리 거의 다 먹었어요.”“코치님, 지훈 아저씨가 선물한 꽃이죠? 왜 코치님께 꽃을 주세요?”정윤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많이 먹어. 다 먹어도 돼. 지훈 아저씨가 나에게 따로 준비해 줬거든. 너희 지훈 아저씨가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에 있는 꽃이 너무 예뻐서 나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라고 선물해줬어. 어때? 예쁘지? 나도 이 꽃다발이 너무 예뻐서 좋아.”학생들은 꽃다발이 예쁘다고 연신 칭찬했다.정윤하의 사제들은 헤벌쭉한 정윤하를 보고는 또 여우처럼 웃고 있는 소지훈을 보더니 결국 모두 정혁주를 일제히 쳐다보았다.정혁주는 정윤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평소에 앉던 테이블에 앞에 앉아 바비큐를 먹으며 보이차도 곁들여 마셨다.“선배님.”몇몇 코치들이 정혁주에게 다가가더니 그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궁금한 듯 물었다.“소 대표님이 우리 윤하에게 고백한 거예요? 그런데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정윤하의 표정을 보면 고백받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소 대표님이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의 꽃이 예쁜 것을 보고 윤하에게 선물했다고 하던데, 이런 어설픈 이유도 윤하가 믿다니, 참! 저렇게 멍청한 꼴을 보니 사람들에게 팔려가도 돈을 세어줄 기세인데.”“윤하가 종일 우리와 함께 지내다 보니 남자답고 털털해서 그래요. 소 대표님만큼 신중하지 못하잖아요. 소 대표님이 윤하에게 직접 고백하지 않는 한 윤하는 분명 별생각 하지 않을걸요.”“어휴, 윤하가 소개팅마다 실패하고 시집을 못 가는 데는 우리 책임도 있어요
정혁주는 아예 보이차 한 병씩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보이차를 나누어 주면서 소지훈은 학생들이 정윤하 앞에서 좋은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매번 큰돈을 퍼부었다.소지훈은 도장으로 올 때마다 도장의 사람들에게 맛 나는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또 각자의 몫도 전부 챙겨주었으며 심지어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사 올 때도 있었다.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면 돈도 많이 들었도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정윤하의 말대로 그녀의 수입으로 전체 도장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사주면 몇 번이나 사줄 수 있겠는가!정혁주는 도장의 여러 코치 중에서 수입이 가장 높지만, 소지훈처럼 돈이 많지 않았다.역시 대기업 대표답다!정혁주가 보이차를 나누어 줄 때 밖에 서 있는 두 바보를 유의하여 보며 마음속으로 소지훈은 아마 정윤하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연성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서 왔을 것이다.소지훈은 지금 출장 중이지만 저녁에 약속도 없이 도장으로 온 것을 보면 아마 출장할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다 처리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정씨 저택에 남아서 설을 쇠려고 하는 모양인데...정윤하를 노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소지훈은 정윤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서 작은 도움을 받았지만, 소지훈은 기어코 그녀가 자신의 은인이라고 외치며 다녔다.정혁주는 정윤하가 오지랖이 넓고 너무 빨리 움직여 소지훈을 도와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지훈의 실력으로 그날 밤 그 건달들 정도는 아주 쉽게 때려눕힐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소지훈의 상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렇게 정윤하는 소지훈의 생명의 은인으로 되었다.그리고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연애사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본 소지훈은 천 리 길을 달려와 그녀를 데리고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다.정씨 가문은 관성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관성 전씨 가문의 명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몇 번만 뒤져봐도 관성 전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사실 시간은 아직 이르다. 다만 겨울에는 낮이 짧고 밤이 길어서 빨리 어두워질 뿐이다.정윤하의 수업도 마침 끝났다.“지훈 아저씨 오셨어.”한 학생이 소지훈의 차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밖으로 나오지 마. 바람이 많이 불어.”소지훈은 웃으면서 소리쳤지만, 학생들은 모두 뛰쳐나갔다.소지훈은 이내 사 온 간식 몇 봉지를 큰 학생들에게 건네고 포장된 바비큐는 조금 작은 학생들에게 건네주어 도장 안으로 들여보냈다.정윤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면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소지훈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아저씨가 오시기 전에는 제가 도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이제 아저씨가 가장 인기가 많네요.”정혁주도 따라 나와 정윤하의 말을 이었다.“너무 인색한 거 아니야? 소 대표님처럼 시원스럽게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다들 다시 널 좋아하게 될걸.”“내가 인색한 게 아니라 월급이 쥐꼬리밖에 안 되는데 음식을 몇 번 정도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저씨는 회사의 대표잖아. 난 절대로 이 방면에서 아저씨와 다투지 않을 거야. 이런 일들은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잖아... 음? 눈이 오는 것 같아.”정혁주도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눈이 오는 것 같긴 하네. 근데 뭐가 이상해? 겨울이 되면 눈이 자주 올 텐데, 정상이잖아.”“형님, 얼른 오세요. 보이차 몇 상자 드릴게요. 바비큐를 사 왔는데 혹시라도 학생들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될까 봐 몇 상자 사 왔어요.”소지훈은 보이차 상자를 들면서 정혁주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다.정혁주는 차를 향해 다가갔고 조수석에 놓인 꽃다발을 보더니 눈이 번쩍 뜨였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소지훈이 그들 정씨 가문의 저택에 오래 머문 덕분으로 정씨 집안 가족들이 소지훈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를 잘 알게 되었다.소지훈은 냉혹한 면과 부드러운 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냉혹한 면을 정씨 가문의 가족들 앞에서 보여준 적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그들도